[李정부, 통제vs과제] “값은 묶고 생색은 정부가”…기업만 짊어진 물가 부담

임유정 2026. 3. 23. 07: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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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가 TF 가동, 핵심 먹거리 전방위 관리
라면·식용유 인하 확산…식품업계 강압 통제
외식은 사전 공지 협약…여론 부담에 인상 제약
고용·투자 위축 현실화…통제의 역설 드러나나
서울 시내 대형마트에 라면이 진열돼 있다.ⓒ뉴시스

식품·외식 기업들의 부담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 별도 지원 없이 가격 인하 압박에 시달리던 기업들은 제품 가격을 낮추며 수익성 악화와 구조조정 압박에 직면했고, ‘기업은 폭리를 취한다’는 소비자 인식까지 더해지며 경영 환경이 더욱 위축되고 있다.

이를 바라보는 시민들의 표정도 불안하기만 하다. 단기적으로는 체감 물가를 낮추는 효과를 기대하면서도 부작용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만만치 않다. 가격 인상이 어려워질 경우 기업이 용량 축소나 품질 조정 등 다른 방식으로 대응하면서 시장 기능이 약화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정부는 지난 12일 정부서울청사에서 구윤철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 주재로 ‘민생물가 특별관리 관계장관 태스크포스(TF)’ 회의를 열고 ‘민생물가 특별관리 품목 집중점검방안’을 확정했다. 특별관리 품목에는 돼지고기, 냉동육류, 계란, 고등어, 쌀 등 먹거리 13종이 포함됐다.

식품업계는 정부의 물가 안정 기조에 맞춰 가격을 인하하고 있다. 라면과 가공식품을 중심으로 주요 식품기업들이 제품 가격을 낮추거나 인상 계획을 미루는 사례가 이어지면서 업계 안팎에서는 사실상 ‘가격 압박’이 작용한 결과라는 해석이 나오는 중이다.

실제로 이는 이재명 대통령의 물가 관리 의지를 반영한 결과다. 이 대통령은 지난달 소셜미디어(SNS)를 통해 “스스로 가격을 정상화하는 기업을 제외하고 담합이나 시장 지배력 남용 등 부당행위에 대해서는, 수사기관들이 철저히 감시·조사·제재할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이에 라면 업체 4곳(농심·삼양·오뚜기·팔도)과 식용유 업체 6곳(대상·동원F&B·오뚜기·CJ제일제당·롯데웰푸드·사조대림)은 다음 달 출고분부터 일부 제품 가격을 인하하기로 했다. 인하율은 라면 업체가 평균 4.6~14.6%, 식용유 업체가 평균 3~6% 수준이다.

앞서 지난달에도 기업들 스스로 가격 인하를 감행했다. 공정거래위원회로부터 담합 과징금 처분을 받은 제분·제당 업계가 밀가루와 설탕 가격을 낮췄고, 밀가루와 설탕 가격이 내리면서 파리바게뜨와 뚜레쥬르 등 제빵 업계도 일부 제품에 대한 가격 인하에 나서기도 했다.

외식업계 역시 정부의 가격 관리 기조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다만 정부의 접근 방식은 식품업계와 다소 다르다. 외식업체가 가격을 인상하거나 중량을 줄일 경우 사전에 소비자에게 알리도록 하는 ‘가격 인상 사전 공지’ 협약을 통해 사실상 가격 관리에 나선 모습이다.

가격을 직접 규제하진 않지만 인상 계획을 미리 공개하도록 해 소비자 여론의 부담을 고려하게 만드는 구조다. 업계에서 공식적인 가격 통제는 아니지만 결과적으로는 가격 인상을 어렵게 만드는 간접 규제라는 평가가 나오는 배경이기도 하다.

정부가 가격 관리에 나서는 가장 큰 이유는 체감 물가 안정이다. 식품과 외식 가격은 서민 생활과 직결되는 핵심 품목인 만큼 가격이 연쇄적으로 오를 경우 전체 물가 상승을 자극할 수 있어 일정 수준의 정책 개입이 필요하다는 판단이다.

정부의 가격 관리 정책은 단기적으로 물가 상승 속도를 낮추는 효과가 있다는 분석도 있다. 기업이 가격 인상 시점을 조정하거나 인상 폭을 줄이면서 소비자 부담을 완화하고 기대 인플레이션 확산을 억제하는 역할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서울 송파구의 한 종합상가 점포 앞에 임대 안내문이 붙어 있다.ⓒ뉴시스

◇ 정부 직접 개입, 부작용 수두룩…투자·고용 위축 등 우려

하지만 이러한 정책이 장기적으로 시장 기능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최근 국내 식품 기업만 봐도 내수 부진과 원가 상승 속에서 가격 인상이 어려워지자 희망퇴직을 시행하며 인건비 등 고정비를 줄이기 위한 구조조정에 나섰다.

희망퇴직 대상도 확대되는 추세다. 과거에는 부장급 이상 고연령층 중심이었지만 최근에는 대리·과장급 등 40대 초반까지 범위가 넓어졌다. 원재료와 물류비, 전기료 등이 동시에 오르면서 기업 비용 부담이 커진 영향이다.

여기에 정책 부담이 더해지고 있다는 볼멘소리 나온다. 내수 부진을 상쇄하고 수익 확보를 위해서는 수출 확대가 필요하지만, 정부의 분유·할랄 등 해외시장 지원은 제한적인 반면 국내에서 가격 인하와 고용 확대 요구가 이어지며 경영 환경이 갈수록 악화되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 기업들은 가격 인상 자체를 어렵게 만드는 환경이 지속될 경우 기업은 원가 상승을 다른 방식으로 흡수할 수 밖에 없다고 입을 모은다. 가격으로 못 올리면 다른 데서 메워야 하기 때문이다. 기업은 이익집단으로 손실을 계속 감수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사례가 ‘슈링크플레이션’이다. 가격 인상이 어려운 상황에서 기업이 원가 상승을 흡수하기 위해 제품 용량을 줄이거나 원료를 변경하는 방식으로 대응하는 경우다. 실제로 식품업계에서는 원재료 가격 급등 시기 용량 축소 사례가 반복적으로 나타난 바 있다.

또한 기업의 생산·투자 의욕이 약화될 수도 있다. 원재료 가격과 환율, 물류비 등이 상승하는 상황에서 가격 조정이 제한되면 기업 입장에서는 수익성을 확보하기 어려워질 수 있기 때문이다. 신규 설비 투자나 연구개발(R&D), 해외시장 확대 등 중장기 투자 계획도 위축될 수 있다.

외식업계에서도 비슷한 부담이 나타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외식업은 식재료 가격과 인건비, 임대료 비중이 높은 구조인 만큼 가격 인상이 어려워지면 점주들이 비용 절감에 나설 수 밖에 없다.

이 경우 메뉴 가격을 유지하는 대신 재료 품질을 낮추거나 메뉴 구성을 축소하는 방식으로 대응할 가능성이 있다. 일부 점포에서는 영업시간 단축이나 인력 감축 등으로 비용을 줄이는 사례도 나타날 수 있다.

특히 외식업은 프랜차이즈 가맹점주와 자영업자가 가격을 직접 결정하는 구조여서 부담이 현장에 전가될 수 있다는 걱정도 제기된다. 업계에서는 가격 인상 사전 공지 등 간접 규제가 지속될 경우 점주들의 경영 부담이 커지고 폐업 증가로 이어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전문가들은 물가 안정 정책의 필요성 자체는 인정하면서도 시장 원리를 훼손하지 않는 균형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기업은 공익 기관이 아니라 이익을 추구하는 경제 주체인 만큼 가격 통제 중심의 정책 만으로는 지속 가능한 물가 관리가 어렵다는 것이다.

업계 관계자는 “물가 안정 정책이 단기적으로는 소비자 부담을 완화하는 효과가 있지만 시장 가격 형성 과정까지 강하게 영향을 미치면 기업의 경영 전략과 투자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며 “시장 기능을 고려한 정책 설계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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