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년중앙] 화가 된 배우 박신양…‘쑈’ 같은 전시로 던지는 묵직한 질문
평생 한 가지 일을 해온 사람이 진로를 바꾸는 일은 쉽지 않습니다. 새로운 도전에는 막막함과 두려움이 따르기 때문이죠. 그러나 새로운 경험을 통해 다른 길을 선택하기도 하고, 자신이 진짜 하고 싶은 일을 발견하기도 하는데요. 배우에서 화가로 변신한 박신양 작가가 그 대표적인 사례이죠. 드라마 ‘바람의 화원’ ‘싸인’ ‘동네 변호사 조들호’ 등에서 다양한 인물을 연기한 박 작가는 어느 순간 ‘감정’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했고 그 답을 찾기 위해 붓을 들었다고 고백했습니다. 40여 년간 배우로 활동한 그가 화가로 완벽하게 자리 잡을 수 있었던 것은 자신의 감정에 솔직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누구나 다양한 감정을 느끼지만, 박 작가처럼 자신의 감정을 오롯이 들여다보기란 쉽지 않습니다. 때로는 외로움이나 그리움 같은 감정을 드러내는 것이 부끄럽게 느껴지기도 하고, 불편한 마음을 애써 지나치기도 하죠. 이렇듯 자신의 감정을 이해하는 과정은 결국 자신을 알아가는 시간이기도 합니다. 박 작가는 그림을 그리면서 이러한 다양한 감정을 탐구하고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지면서 답을 찾았다고 해요. 그 결과물을 한데 모아놓은 것이 오는 5월 10일까지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미술관에서 열리는 ‘박신양의 전시쑈: 제4의 벽’입니다.

1~2m 대작 150점을 선뵈는 이번 전시는 그림과 함께 물감·붓·팔레트·이젤 나이프·의자 등 화가의 작업실에 타임머신을 타고 다른 시공간에 들어온 것 같은 환상적인 장소로 꾸몄어요. 또 열다섯 명의 배우가 작업실의 정령처럼 등장해 전시장 곳곳에서 연기를 펼칩니다. 이 연출을 통해 그는 현실과 상상을 가르는 ‘제4의 벽’이 자유롭게 이동하는 듯한 경험을 만들었습니다. 박 작가에게 그림은 이미지를 그리는 작업이 아니라 감정의 정체를 탐구하는 과정인 셈이죠. 이처럼 오랜 시간 이어온 예술과 감정에 대한 고민을 많은 관객과 나누고자 그는 지난 6일 자신의 작품을 직접 소개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전시장에 들어서자 거대한 크기의 작품 ‘사과’가 관람객을 맞아줬죠. 박 작가는 “처음에는 사과의 형태를 정확하게 그리려고 했는데, 계속 그리다 보니까 형태 자체보다 그 안에서 느껴지는 힘이나 움직임을 더 중요하게 표현한 것 같습니다”라고 설명했어요. 이런 이유로 연달아 ‘사과’를 그린 박 작가는 사과를 그릴수록 점점 단순해지고 붓의 움직임은 더 거칠어졌다고 해요.

거대한 캔버스에 박 작가가 그리워하던 유학 시절 친구 ‘키릴’이 담긴 ‘키릴2’는 이번 전시의 대표작 중 하나입니다. “‘키릴’은 제가 러시아에서 공부하던 시절에 알게 된 친구예요. 그와 함께 예술에 관해 이야기하던 시간이 제게는 굉장히 소중한 기억으로 남아 있어서 그 이름을 자연스럽게 작품 제목으로 붙였습니다.” 그는 ‘키릴2’를 통해 단순한 형태를 그리는 것보다 감정과 움직임을 화면에 남기고 싶었다고 강조했죠. 단순히 친구의 얼굴을 그리는 것에서 멈추지 않은 박 작가는 이 감정이 왜 생기고 어디에서 시작됐는지 등 계속 질문했고, 그 결과 그림은 단순히 이미지를 만드는 작업이 아니라 자신의 감정을 이해하는 과정이었음을 알게 됐다고 고백했습니다.
배우로 오랫동안 활동한 경험도 작품에 고스란히 녹아있었죠. 연기와 그림은 서로 다른 예술이지만 공통점도 많다는 박 작가는 “연기할 때도 몰입이 중요하고 동시에 거리를 두는 순간도 필요하다”라면서 이를 ‘몰입과 이완의 균형’이라고 표현했습니다. 그림 그릴 때도 마찬가지로 너무 깊이 빠져들면 작품을 객관적으로 보기 어렵고, 너무 멀어지면 감정이 사라질 수 있기 때문에 적절한 균형이 필요하다는 것이죠.

‘투우사’는 이러한 박 작가의 경험과 생각이 담긴 작품이에요. “투우사가 거대한 황소와 마주한 채 계속 움직이며 균형을 잡아야 하는 모습이 저의 삶과 예술 활동과도 비슷하게 느껴졌습니다. 배우의 삶과 화가로서의 작업을 병행하며 여러 상황 속에서 균형을 잡아야 하는 순간이 많았거든요. 그래서 투우사의 움직임과 긴장감이 자연스럽게 작품의 주제가 됐죠.” 그의 설명처럼 ‘투우사’는 인물의 형태가 완전히 사실적으로 표현되기보다는 강렬한 붓의 움직임과 색 대비, 역동적인 선이 화면을 가득 채우고 있습니다. 이는 단순히 투우사의 모습을 묘사하기보다 움직임과 긴장감, 에너지를 표현하려는 시도로 해석되며 황소를 마주한 투우사의 긴박한 감정을 잘 포착했다고 평가받았죠. “제가 그리고 싶었던 것은 투우사의 정확한 모습이라기보다 그 순간의 긴장과 움직임이었어요.”
다음 작품 '당나귀'는 마치 그림에 몰두한 박 작가를 투영한 듯한 느낌을 자아냅니다. “당나귀는 인간과 가까이 살아온 동물이면서도 묵묵히 자신의 역할을 하는 존재”라는 그는 “당나귀는 매우 조용하고 묵묵한 동물이다. 그런데 그 모습이 인간의 어떤 부분과 닮았음을 느꼈다”면서 당나귀를 그리게 된 계기를 설명했어요. ‘당나귀’ 역시 형태를 정확하게 묘사하기보다 색과 선, 붓의 움직임을 통해 피사체의 강렬한 에너지를 표현한 특징이 눈길을 끌었습니다. 박 작가는 “제가 어떤 정답을 드리기보다는, 그림을 보면서 떠오르는 느낌이나 생각이 있다면 그것이 관객에게는 하나의 답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라면서 관람객 각자가 자신의 감각으로 온전히 작품을 느끼기를 바란다고 덧붙였어요.

“감정은 인간이 세계를 이해하는 가장 강력한 방식이며, 나는 그 감정의 정체를 예술로 탐구하고 싶다”는 박 작가 말처럼 ‘박신양의 전시쑈: 제4의 벽’은 단순히 그림만 향유하는 공간이 아닌 스스로를 돌아보고 나에 대해 고민할 수 있는 전시였죠.
동행취재=서진하(경기도 홈스쿨링 중2) 학생기자
■ 박신양 작가 일문일답
「
Q : 그림을 그리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러시아에서 유학하던 시절, 예술이나 연기 등에 대해 자주 이야기하던 친구들이 있었어요. 그런 얘기를 자유롭게 하는 분위기였고요. 한국에 와서 배우 생활을 하다 문득 그 친구들과 그 자유로운 분위기가 그리워지더군요. 그런 감정에 대해 오랫동안 고민하다 그리움을 표현하는 방법을 찾게 됐는데, 그 매개가 그림이었습니다. 그림을 그리면서 ‘어떻게 그릴까’보다 ‘그림이란 무엇일까’라는 고민을 하게 됐고요. 저에게 그림은 어떤 정답을 찾는 작업이라기보다 질문을 계속 던지게 되는 과정인 것 같아요. 그림을 그리면서 제 감정을 들여다보고, 제가 무엇을 생각하는지 알아가는 시간인 셈이죠.

Q : ‘박신양의 전시쑈: 제4의 벽’에서 '제4의 벽'은 무슨 의미인가요.
저는 오랫동안 연기하며 연극·영화·드라마를 만들어온 배우로 '제4의 벽'은 그 시간 내내 함께한 아주 오래된 주제이자 철칙이었죠. 연극에서 ‘제4의 벽’은 무대와 관객 사이에 있다고 가정하는 보이지 않는 벽을 의미하는데, 배우는 그 벽이 존재하는 것처럼 연기하지만 때로는 그 벽을 깨고 관객에게 직접 말을 걸기도 합니다. 저에게 ‘제4의 벽’은 단순한 연극 용어가 아니라 자신과 세상 사이의 경계이자 마음속에 존재하는 벽을 의미하기도 하고요. 그래서 이런 의미에서 이번 전시장은 작가의 작업장으로 꾸며 그 안에서 벌어지는 일을 경험하도록 배치했죠.
Q : 이번 전시 작품들을 준비하며 어떤 부분을 가장 많이 고민했는지, 전시명에 ‘쑈’를 붙인 이유도 궁금합니다.
미술 전시를 보러 갈 때 미리 공부하고 가야 할 것 같다고 느끼시는 분들이 많다는 것을 알게 됐어요. 그때부터 어떻게 하면 전시가 더 쉽고 재미있고 감동적일 수 있을까 고민했고요. 그래서 우선 접근성이 좋은 전시 공간을 알아보다가 세종문화회관 미술관에서 전시하게 돼 기분이 참 좋았죠. 전시명에 ‘쑈’를 붙이면 공부해야 할 것 같은 부담감을 줄일 수 있을 것 같았고요. 그렇게 해서 두 번째 개인전 제목이 '박신양 전시쑈'로 정해졌죠.

Q : 이번 전시 특징이나 독특한 점 소개해 주세요.
이번 전시에는 연극적 요소를 넣어 관객들이 색다른 경험을 할 수 있도록 준비했습니다. 전시장에는 배우들이 등장해 작가의 작업실을 상징하는 공간 속에서 움직여요. 주인이 자리를 비운 사이 정령들이 살아 움직인다는 '호두까기 인형'의 설정에서 착안했죠. 광대 분장을 한 정령은 바닥에 앉아서 그림을 그리거나 자신들만의 언어로 소리를 내며 이야기를 나눠요. 간혹 이들이 전시 몰입을 방해할 수도 있다고 우려하거나 왜 이런 시도를 하느냐고 묻는 분도 있죠. 왜 이런 시도를 하지 말아야 하는지도 잘 모르겠습니다. 단순히 보는 전시가 아니라 관객 스스로 이야기를 완성하는 전시를 만들고 싶었고 이런 점이 이번 전시의 독특한 점이라고 생각합니다.
Q : 관객이 이번 전시를 통해 꼭 느꼈으면 하는 점이 있다면요.
저는 이번 전시가 정답을 알려주는 전시가 아니라 질문을 남기는 전시가 됐으면 좋겠습니다. 일상에서 다양한 감정을 느끼지만, 그 감정을 제대로 들여다보는 경우는 많지 않죠. 내 감정을 들여다보는 것 또한 쉽지 않더라고요. 그래서 이번 전시를 통해 관객분들이 '나는 나 자신을 얼마나 알고 있을까?"와 같은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졌으면 해요.
」
■ 소중 학생기자단 취재 후기
「 '기자간담회'에 처음 참여해보는 색다른 경험을 했습니다. 여러 매체에서 온 기자 분들이 손을 들고 질문하고 함께 움직이는 모습을 직접 보는 것도 신기했는데, 그 일원으로 참여하다니 영광이었죠. 박신양 작가는 화가이기 전에 배우로 다양한 드라마와 영화에 출연한 것으로 알아요. 오랫동안 배우 활동을 이어가다 문득 유학 시절 만난 친구가 그리워지면서 이 감정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고민이 많았다고 해요. 그래서 그림을 그리게 됐고 이런 활동을 통해 그리움이 무엇인지 알게 됐다고 합니다. 저 역시 감정을 표출하고 이런 이야기 나누는 게 어렵다고 생각하는데요. 박신양 작가님처럼 나만의 감정 표출 방법을 찾아 제 감정에 솔직해지려고 합니다. 또 작가님이 직접 어떤 의도로 그림을 그렸는지 또 특징은 무엇인지 등을 자세하게 설명해주셔서 작품을 쉽게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내 감정을 고민하고 싶다면 이번 전시에 방문해보세요.
서진하(경기도 홈스쿨링 중2) 학생기자
」
글=이보라 기자, 사진=박종범(오픈스튜디오)·믿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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