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서 배운 지식 유통기한 짧아져… 유연한 사고가 더 중요”

이도경 2026. 3. 23. 0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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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 초대석] 이기정 한국대학교육협의회 회장
이달 초 한국대학교육협의회 회장에 취임한 이기정 한양대 총장이 지난 10일 한양대 총장 집무실에서 국민일보와 인터뷰하고 있다. 그는 인공지능(AI) 시대 빠른 변화에 대응할 수 있는 인재를 키우려면 학문과 전공, 대학 간 경계를 허물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윤웅 기자


“요즘 기업이 원하는 인재상은 유연한 인재입니다.”(대기업 인사 담당 A씨)

“유연한 인재요?”(이기정 한양대 총장)

“과거에는 즉시 현장에 투입 가능한 인재를 선호했지만 바뀌고 있죠.”(A씨)

“대졸자 뽑아도 6개월은 더 가르쳐야 해서 대학이 달라져야 한다고 요구했잖아요.”(이 총장)

“인공지능(AI)이 고도화되고 기술 발전 속도도 빨라 대학에서 배운 지식의 유통기한이 짧아지고 있습니다. 앞으로는 이런 변화 속도를 극복하는 유연한 사고를 더 중요한 역량으로 볼 겁니다. HR(인적자원 관리)이 달라지고 있어요.”(A씨)

이 총장과 한 대기업 인사 담당자의 최근 대화다. 이 총장은 ‘AI 시대에 대학은 무슨 준비를 하고 있는가’란 질문에 이 대화를 소개하며 인터뷰를 풀어갔다. 그는 유연한 인재를 키우려면 전공과 대학, 지역 사이에 공고하게 자리잡은 장벽을 낮추는 작업부터 시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달 초 전국 4년제 대학들의 협의체인 한국대학교육협의회(대교협) 회장으로 취임해 정부의 고등교육 분야 정책 파트너 역할도 하고 있다. 인터뷰는 지난 10일 서울 성동구 한양대 총장 집무실에서 이뤄졌다.

-대교협 회장 취임 소감과 역점 과제는.

“학령인구 감소, 지역 소멸, AI 중심 기술 전환이란 구조적 변화가 진행 중이고, 이는 대학 운영의 기반부터 교육·연구 전반에 영향을 주고 있다. 대학 총장으로, 대교협 회장으로 무거운 책임감을 느낀다. 단순한 위기 대응이 아닌, 대학의 역할을 재정의하고 지속가능한 구조로 전환해야 하는 시기로 대학 간 경계를 낮추고 협력의 통로를 넓히는 일을 하려고 한다. 수도권·비수도권, 국립·사립, 대형·중소 대학 구분을 넘어 고등교육 생태계를 만들지 못하면 위기 돌파는 어렵다.”

-정부 차원에서 ‘서울대 10개 만들기’를 추진 중이다. 지역 거점국립대 집중 육성책이 서울권 대학 입장에서 달갑지 않을 수 있겠다.

“전혀 그렇지 않다. 연구 분야를 예로 들면, 개별 대학에서 이뤄지는 연구보다 대학 간 공동 연구나 국제적 공동 연구의 영향력이 더 크다. 연구의 경계를 허무는 게 중요하다. 현재 한양대 교수들도 지역 대학들과 많은 공동 연구를 하고 있고 성과도 상당하다. 거점 국립대를 중심으로 지역 대학들의 연구 경쟁력이 높아지면 국가 전체의 연구 경쟁력도 상승한다. 서울 소재 대학이 위축되는 게 아니라 지역 대학의 역량이 올라가면서 시너지 효과가 나타날 것이다.”

-서울대 10개 만들기 성공하려면.

“현재는 (정부와 대학들이) 예산 문제에 집중하고 있지만 (서울대 10개 만들기 사업의) 설계 방식이 더 중요하다. 올해 한양대에 교수 60여명을 새로 모셨다. 거점 국립대에서도 왔는데 그 제자들도 따라왔다. 서울뿐 아니라 에리카(안산) 캠퍼스에도 오셨다. ‘그 대학도 좋은 대학인데 왜 우리 대학을 오셨는가’라고 물었더니 ‘대학원생이 없어요’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예산을 지원한다고 지역 대학이 살아나지 않는다. 교수와 학생이 지역에 정주하도록 일자리는 기본이고 문화와 주거, 의료까지 종합 설계가 들어가야 한다. 거점 국립대만으로는 성공하기 어렵다. 지역 중소규모 대학들과 상생하는 지역 전반의 고등교육 생태계 조성을 목표로 설계해야 한다.”

-대학들 이해관계 조정이 어렵다. 예컨대 거점 국립대들이 명실상부한 연구중심 대학으로 거듭나 지역의 타 대학들과 상생하려면 학부생을 줄이고 대학원생을 늘려야 하는데, 쉽지 않다.

“발상을 바꿀 필요가 있다. 서울대 10개 만들기가 성공하더라도 최소 10년은 걸린다. 10년 뒤에는 고교 졸업하고 대학에 오는 인원이 반토막 난다. 학생 소유권이라고 하면 좀 이상하지만 우리 학생, 타 대학 학생 구분이 의미가 있을까. 학적은 필요하지만 부산대에서 배우고 한양대에서도 공부하는 방향으로 패러다임이 이동해야 한다. 대학의 공동 교육·연구 플랫폼이 있어야 하고, 공동 강좌, 학점교류, 공동 마이크로디그리 같은 협력 모델이 활성화될 것이다. 대학이 벽을 허물면 현재의 치열한 대입 경쟁 구도도 달라질 수 있다.”

-AI 고도화로 산업 전반에서 인력 구조조정이 현실화되고 있다.

“최근 한양대 영문과에서 이런 수업을 했다. AI와 학생들이 상호작용하며 철학과 문학 서적을 새로 해석하는 수업이다. 기존 유명 평론가들의 해석을 AI와 함께 재해석하는 완전히 다른 시도다. 이처럼 AI는 특정 학문 영역의 전유물이 아니다. 모든 학문에 AI를 얹혀 새로운 가치를 창출할 수 있다. 종전 방식으로 답을 찾는 경직된 사고를 AI라는 도구로 깨트리는 과정으로 보인다. 대학도 유연한 사고를 갖추도록 해야 한다. 예컨대 기계공학과에서 열심히 공부했어도 취업 후 2년을 버티기 어렵다. 유연한 사고를 하고 늘 배우는 인재가 중요하고 이런 인재를 원한다면 학문 간 대학 간 벽을 허물어야 한다.”

-정부와 대학 사회에 하고 싶은 말은.

“대학은 위기 속에서 해법을 찾아왔다. 지금도 그렇게 할 것이다. 다만 개별 대학의 힘으로는 불가능하다. 대교협은 대학을 공동체로 연결하고 대학의 목소리를 정부와 국민에게 전달하는 ‘통역사’가 될 것이다. 대학은 국가 경쟁력을 좌우하는 공공재라는 말씀을 꼭 드리고 싶다. 공공재라면 국가가 재정을 뒷받침할 의무가 있다. 미래 인재를 키워내는 걸로 보답하겠다. 대학들도 각자도생이 아니라 벽을 낮추는 데 동참해 변화의 시기를 함께 돌파하자는 말씀을 드린다.”

이도경 교육전문기자 yido@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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