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군인줄 알았는데... 어느 비행사의 '위대한' 이중생활 [김종성의 '히, 스토리']
[김종성 기자]
1956년부터 10월 1일이 국군의 날인 이유는 한국전쟁 때 국군이 38도선을 돌파하며 북진한 날이 그날이기 때문이다. 이날은 국군의 탄생과는 무관하다.
오히려 이날은 일본군이 볼 때 훨씬 중요하다. 경술국치일인 1910년 8월 29일의 병합조약에 따라 조선총독부가 출범한 날은 그해 10월 1일이다. 식민통치기구가 출범한 이날을 계기로 이 땅의 일본군은 대한제국을 감시하는 '내정간섭 군대'에서 식민지를 억압하는 '식민지배 군대'로 전환됐다. 일부러 이것을 기념하고자 10월 1일을 국군의 날로 정한 것은 아니지만, 이승만 정부가 친일정권이 아니었다면 이 점도 당연히 살폈을 것이다.
이처럼 10월 1일은 국군 창설과 무관하지만, 공군과 관련해서는 그렇지 않다. 대한민국임시정부 한국광복군이 창설된 날은 1940년 9월 17일, 해군의 전신인 해방병단이 창설된 날은 1945년 11월 11일, 육군의 전신인 조선경비대가 창설된 날은 1946년 1월 15일이다. 가장 늦은 시점인 1949년에 창설된 공군의 생일이 바로 10월 1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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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용덕 장군 |
| ⓒ 국가보훈처 |
이런 미국의 입장에 맞서 1949년에 공군 독립을 관철시킨 인물 중 하나가 제2대 공군참모총장 최용덕이다. 김영환·김정렬·박범집·이근석·이영무·장덕창과 더불어 '7인의 공군창설 주역'으로 기억되는 최용덕은 공군독립 운동의 핵심 인물이다.
미국이 한국 공군의 창설을 막을 목적으로 벌인 일들은 공군본부가 2011년에 발행한 <공군사> 제1집에 설명돼 있다. 이 책은 "미군정은 1945년 11월 13일 통위부(현 국방부)를 창설하면서 한국 국방경비대에는 공군이 필요하지 않다는 이유를 들어 육군과 해군만을 창군하였다"라고 한 뒤 이렇게 설명한다.
"미 제5공군에서는 연합군최고사령부 지령(SCAPIN 301호) '민간항공 폐지에 관한 지시각서'를 하달, 한반도에 있는 모든 항공기를 서울 여의도비행장에 집결케 하여 비행 금지를 선포하였다. 또한 집결된 항공기는 당시 비행장에 모여 있던 정비사를 통해 해체하도록 하였다."
연합군최고사령부를 움직이는 미국은 "모든 항공기는 사령관이 지시하는 대로 폐기처분한다", "항공국을 위시한 모든 민항공 조직이나 단체를 1945년 12월 31일부로 해체한다"는 내용을 위의 지시각서에 포함시켰다. 한국 공군 창설을 규제하는 정도를 넘어 사실상 억압했던 것이다.
미군정은 한반도 사정에 둔감했다. 진보적 성향이 강한 한국 여론을 어떻게 통제할지도 크게 고민했다. 북한 및 중국·소련과의 충돌 가능성 역시 우려했다. 그래서 미국은 예측 가능한 범주에서 한반도 상황을 관리하고자 했으며, 한국군이 지나치게 강해져 예측불허 상황이 초래되는 것을 막고자 했다. 이런 전략적 판단 속에서 한국 공군 창설에 대한 미국의 입장이 정리됐다. 최용덕을 비롯한 7인은 미국의 이 같은 부정적 입장에 맞서 공군 독립을 추구했다.
1898년 9월 19일 대한제국 한성부에서 출생한 최용덕은 15세 때 중국으로 넘어가 1916년에 중국 육군군관학교를 졸업하고 18세 때인 그해부터 중국군 장교로 근무했다. 그 뒤 공군군관학교에 입학한 그는 1925년에 중국 공군기지학교 교장이 되고 1926년에 중국 항공대 창설에 참여했다.
그런데 그는 '두 마음'을 품은 중국군 장교였다. 오로지 중국군에만 헌신하지 않고 빈틈을 봐서 '투잡'을 하는 '이중적'인 인물이었다. 중국군 중대장으로 재직하던 때인 1919년에 3·1운동이 일어나자 19세인 그는 중국군 장교직을 헌신짝처럼 내던진 뒤 한국 독립운동진영을 위한 무기 공급에 참여했다. 이 때문에 중국군에 체포됐다가 석방된 뒤에 공군비행학교로 들어갔다.
그의 이중생활은 중국군 복귀 뒤에도 고쳐지지 않았다. 중국 비행부대 대장으로 근무할 때인 1922년에는 중국인들이 볼 때 상식에서 한참 벗어나는 일을 벌였다. 이때 그는 동갑내기인 약산 김원봉(1898.9.28.생)을 돕는 활동에 참여한다. 국가보훈처(국가보훈부)가 1988년에 발간한 <독립유공자공훈록> 제5권에 이런 설명이 있다.
"1922년 6월에는 김원봉이 조직한 의열단에 참여하여 천진(天津)에서 조선무산자동맹회장 김한(金翰)과 의열 활동을 위한 폭탄 확보와 투척 계획 등을 협의하여 김상옥 의사를 지원하는 등 항일투쟁에 앞장섰다. 이후 북경과 안동 사이를 오가며 폭탄 운반 등의 활동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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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9년 12월 4일 진주 공군교육사령부 최용덕 장군 동상 제막식의 모습. |
| ⓒ 공군교육사령부 |
중국군 눈치를 의식하며 독립운동을 수행했던 최용덕은 1946년 7월 26일 귀국 뒤에는 미군이라는 새로운 상전의 눈치를 살피며, 또 한국군 내의 친일파들을 의식하며 공군창설 운동을 전개했다. 그와 함께 공군을 창설한 7인 중 김정렬·박범집의 이름은 <친일인명사전> 제1권에서 확인된다.
친일파들을 배제해 놓고 공군 창설에 나섰다면 좋았겠지만, 그것이 현실적으로 어려운 상황에서 최용덕은 미군정 및 친일파들과 부대끼며 공군 창설을 주도했다. 미군정 하인 1948년 5월에 항공부대 창설에 참여하고 동년 9월 5일 육군 항공기지사령부 출범에 참여한 그는 공군 독립을 위한 적극적 활동을 추진했다. 공군본부가 2007년에 발행한 최용덕 전기인 <항공독립운동과 대한민국 공군의 아버지: 창석 최용덕의 생애와 사상>은 이렇게 설명한다.
"1948년 9월 5일 미군으로부터 L-4형 연락기 10대를 인수하고 출범한 항공부대의 창석과 김정렬 등 간부들은 공군 창군을 관철시키기 위해 이승만 대통령에게 건의함은 물론 미 군사고문단 측과도 교섭을 벌였다."
해방 직후뿐 아니라 정부수립 직후에도 미국은 여전히 반대 입장을 고수했다. 이런 시기에 최용덕과 공군 지도부는 이승만과 미국 양측을 설득해가며 1949년 10월 1일에 공군 독립을 성사시켰다. 이 시기에 최용덕이 국방부차관이었던 점도 이 운동에 유리하게 작용했다.
그 뒤 공군사관학교 교장과 공군기지사령관 등을 거쳐 1952년에 공군참모총장이 된 그는 한국 항공기의 국산화에도 이바지했다. 그의 총장 퇴임 7개월 전인 1954년 4월 3일에 '부활호'라는 이름이 수여된 이 국산 항공기가 제작된 일차적 원동력은 참모총장의 의욕이었다. 위 책의 설명이다.
"창석은 '우리 손으로 제작한 항공기가 우리 공역을 날아야겠다'고 한 바 있다. 또한 평소에 '죽기 전에 우리가 제작한 비행기를 타보고 싶은 것이 소원이다'라고도 말하였다."
최용덕의 흔적은 국산 항공기 1호뿐 아니라 공군 장병들의 머릿속에도 입력돼 있다. 공군이 부르는 군가 가사의 상당수는 그의 작품이다. 위 책의 서술이다.
"1951년, 한국전란으로 인하여 군가의 보급이 많지 않았을 때 문장에 조예가 깊은 창석은 사관생도에게 어울리는 품위 있고 평이하면서도 씩씩한 '공군사관학교 교가'와 공군 장병들을 위해 '공군가'를 작사하였다. 특히 공군가는 육군·해군의 행진곡 풍보다 예술성이 뛰어나다는 평을 받고 있다. 창석이 작사한 곡은 공군가, 공사 교가, 은익의 노래, 공군행진곡(추정), 비행행진곡(추정) 등 다수가 있으며"
'부활호'를 하늘에 띄운 뒤 참모총장직에서 내려온 최용덕은 총장고문으로 있다가 1956년에 전역했다. 그 뒤 4·19혁명 직후의 허정 과도내각에서 체신부장관을 지낸 뒤 중화민국 주재 대사로 나갔다가 1962년에 외교부 고문이 됐다.
1969년 8월 15일, 최용덕은 향년 71세 나이에 하늘로 날아올라 갔다. 그는 독립군 출신이 공군 창설에 주도적으로 참여했다는 다행스럽고도 자랑스러운 역사를 대한민국 공군에 선사한 인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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