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 떠나보내고 뇌경색, 딸 장애에도…섬마을 지키는 이유

김수연 2026. 3. 22. 12:30
음성재생 설정 이동 통신망에서 음성 재생 시 데이터 요금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글자 수 10,000자 초과 시 일부만 음성으로 제공합니다.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거제 칠천도 대곡교회, ‘스티커 모임’으로 주일학교 5→17명
체험·기록·나눔 신앙교육으로 아이들 삶의 변화 이끌어
차재철 목사 “아이와 부모 모두 오고 싶은 교회가 목표”


최근 경남 거제도 칠천도 대곡마을 앞바다. 아이들은 해변에 흩어진 조개껍데기와 쓰레기를 주워들고 각자 발견한 ‘특별한 이유’를 적어 내려갔다. 누군가에겐 버려진 물건들이 아이들에겐 저마다 의미가 있는 작품이 됐다. 한 아이는 “그냥 두면 하찮은 쓰레기지만 반짝이는 은박지 위에 무언가를 올려두면 빛이 반사돼 멋진 작품이 된다”며 “우리도 하나님 안에 있으면 그렇게 멋진 사람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깨진 유리 조각을 모아 작품을 만든 또 다른 아이는 “조각들이 보석처럼 느껴졌다”고 했다.

이날 칠천도 대곡교회(차재철 목사) 아이들은 예배를 마치고 곧장 바닷가로 나가 ‘비치코밍(Beach combing)’ 활동을 진행했다. 단순히 쓰레기를 줍는 것을 넘어 자신이 발견한 물건의 가치를 새롭게 정의하고 서로 발표하는 시간이었다.

앞서 차재철(44) 목사는 주일학교 예배 때 동화책 ‘너는 특별하단다’의 영화를 함께 보고 이사야 43장 1절 말씀을 나눴다. 사람들에게 ‘별’과 ‘회색 점’으로 평가받던 나무 인형 펀치넬로가 자신을 만든 목수를 통해 ‘있는 그대로 특별한 존재’임을 깨닫는 이야기다. 차 목사는 “하찮아 보이는 것도 특별하게 바라보면 의미가 생기듯, 아이들 역시 하나님 안에서 특별한 존재임을 몸으로 배우는 시간”이라고 설명했다.

이 같은 활동은 대곡교회의 다음세대 사역 ‘스티커 모임’의 일환이다. 요한복음 15장 4~5절에서 착안해 “예수님께 스티커처럼 붙어 있게 하자”는 의미를 담은 프로그램으로, 아이들이 말씀을 단순히 듣는 데 그치지 않고 몸으로 체험하도록 설계된 것이 특징이다.

이날 일정도 촘촘하게 이어졌다. 오전 9시 45분 찬양과 예배를 시작으로 기타·우쿨렐레·플루트 등 악기 수업이 진행됐고, 점심 식사 후에는 레이저 사격이나 찬양 연습이 이어졌다. 오후에도 계속된 스티커 활동의 모든 일정은 오후 3시 30분이 가까워서야 마무리됐다. 온종일 교회에 머물렀지만 아이들의 웃음과 참여 열기는 내내 이어졌다.

학생들 교회로 이끈 ‘스티커 모임’

거제도 섬 가운데 가장 큰 칠천도 대곡마을에 있는 대곡교회는 올해 창립 60주년을 맞았다. 장년 성도 18명 가운데 대부분이 60~90대인 전형적인 농어촌 교회지만, 이곳에는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는다. 매주일 25평(약 82.6㎡) 남짓한 예배당에서 중학생 6명과 초등학생 11명 등 총 17명의 아이들이 함께 예배드린다.

대곡교회 주일학교는 불과 몇 해 전까지만 해도 5명에 그쳤다. 그러나 2024년 추수감사절을 기점으로 다음세대 사역 ‘스티커 모임’을 시작하면서 변화가 일어났다. 차재철 목사가 교인 가정과 함께 프로그램을 준비하고 지인들에게 직접 연락해 아이들을 초청한 것이 계기가 됐다. 이후 입소문과 SNS를 통해 참여자가 늘었고, 외부 가정의 등록이 이어지면서 현재 규모로 성장했다.


인근 교회 상당수에 주일학교가 없는 상황에서 다른 교회 아이들도 자연스럽게 이곳으로 모이고 있다. 칠천도에 거주하는 초등학생 5명과 중학생 1명이 모두 대곡교회에 출석하고 있으며, 나머지 학생들은 다른 지역에서 찾아온다. 경남 양산의 비신자 가정에서 부모의 허락을 받은 자녀 2명이 최근 교회에 정착했고, 거제 다른 지역에서 45분가량 차량으로 이동해 매주 예배에 참석하는 가정도 있다.

차 목사는 “아이들이 모인 가장 큰 이유는 하나님의 은혜”라면서도 “아이들을 예수님처럼 여기고 섬기려는 진심이 부모들에게 전달된 것 같다”고 말했다. 이어 “아이와 부모 모두가 오고 싶어 하는 교회가 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체험·기록·나눔’… 몸으로 익히는 신앙교육

스티커 모임은 단순한 놀이가 아니라 ‘체험-기록-나눔’의 과정을 반복하도록 설계된 프로그램이다. 예를 들어 ‘창조’를 주제로 설교한 날에는 아이들이 바닷가에 앉아 시를 쓰고 서로 낭송한다. 이후 설교 내용을 정리해 ‘스티커 일지’에 기록하고 발표한다. 아이들이 말씀을 듣는 데 그치지 않고 몸으로 체험하고, 이를 글로 정리한 뒤 서로 나누도록 하는 것이 핵심이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배운 말씀이 자연스럽게 삶 속에 내면화되도록 돕는다.

성경과 과학을 결합한 프로그램도 특징적이다. 하늘과학실험실의 ‘바이블 스팀’을 활용해 성경 이야기를 과학 원리와 연결해 설명함으로써 아이들이 성경을 단순한 이야기나 신화가 아닌 실제로 이해하도록 돕는다. 예를 들어 비뉴턴성 유체 실험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과 인성을 설명하는 식이다. 해당 프로그램은 매달 1회 진행되며 학부모와 아이들 모두에게 높은 호응을 얻고 있다.

악기 수업 역시 스티커 모임의 중요한 축이다. 차 목사는 기타와 우쿨렐레, 플루트, 드럼 등을 직접 가르친다. 어린 시절 드럼과 플루트를 배우고 군 복무 중 기타를 익힌 데 이어, 아이들을 위해 우쿨렐레까지 추가로 연습했다. 그는 “아이들을 전도하기 위해 하나님이 주신 달란트를 활용했다”며 “악기 수업이 학부모들 사이에서 입소문을 타며 아이들이 빠르게 늘어나는 계기가 됐다”고 말했다.


매년 12월 마지막 주일에는 ‘대곡교회 어워즈’도 열린다. 아이들에게 개성 있는 상 이름을 붙인 상장과 선물을 전달하는 행사로, 아이들은 이 시간을 1년 내내 기다린다. 상 이름은 별명처럼 불리며 공동체에 웃음을 더한다.

이처럼 다양한 활동을 운영하는 이유에 대해 차 목사는 “아이들은 금방 지루함을 느끼기 때문에 프로그램과 게임, 간식, 식사까지 계속 변화를 준다”며 “교회가 즐겁고 의미 있는 공간이 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처음에는 단순한 흥미로 시작하지만 점차 아이들이 설교 내용을 기억하고 자신의 언어로 신앙을 고백하는 모습으로 변화하고 있다”고 말했다.

농촌 소형 교회 특성상 재정과 인력이 부족하다. 교사 3명과 식당 봉사자 1명의 자비량 헌신으로 사역이 이어지고 있다. 차 목사는 “스티커 모임을 통해 아이들과 함께하는 시간이 늘어나면서 자연스럽게 삶을 나누게 됐다”며 “일지를 기록하고 발표하는 과정에서 아이들의 마음을 깊이 이해하게 됐다”고 말했다. 이어 “아이들이 점점 자녀처럼 느껴지면서 작은 변화에도 민감해지고, 교사들과 기도 제목을 나누며 함께 돌보고 있다”며 “가정을 돌보듯 영적인 부모로 서가고 있는 것 같다”고 덧붙였다.

“아이들 웃음소리 나게 해달라”… 부르심으로 시작


대곡교회를 섬기는 차재철 목사의 사역 여정 역시 ‘스티커 모임’의 출발점과 맞닿아 있다. 차 목사는 2015년 부산 장로회신학대 신학대학원 입학 직후 대곡교회 후임 요청을 받았다. 하나님의 뜻을 구하며 기도하던 그는 도서관에서 우연히 펼친 책의 첫 장 첫 글자가 ‘거제도’였던 경험을 계기로 부르심을 확신하게 됐다. 비슷한 시기 아내 역시 기도 중 섬에 있는 교회와 침몰 직전의 배를 보는 환상을 경험했다. 이후 10일 만에 전임 목사가 소천했고, 그는 곧바로 후임 사역을 맡게 됐다. 담임 전도사로 부임한 그는 약 11년째 한 교회를 지키고 있으며, 2020년 10월 목사 안수를 받았다.

부임 당시 교회 상황은 열악했다. 35년간 목회하던 전임 목사의 투병으로 예배가 정상적으로 드려지지 못했고, 교회 건물은 비가 오면 물이 샐 정도로 낡아 있었다. 주보조차 없는 상태였다. 그런데도 전임 목사는 마지막으로 “대곡교회에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나게 해 달라”는 부탁을 남겼다.

차 목사는 이 말을 사명으로 받아들였다. 그는 “10년 후면 교회 존립이 어려울 수 있다는 위기의식 속에서 다음세대 사역만이 교회의 미래라는 확신이 있었다”고 말했다. 이어 “내 자녀들조차 끝까지 신앙을 지킬 수 있을지 확신할 수 없었기에 더 절실했다”고 덧붙였다. 이 같은 고민 속에서 시작된 것이 바로 ‘스티커 모임’이다. 차 목사 가정과 교인 한 가정이 함께 뜻을 모아 시작한 작은 시도는 오늘날 대곡교회 주일학교 부흥의 출발점이 됐다.

순탄치 않은 목회...아내와 이별, 딸의 장애까지

그는 현재 두 자녀 차기쁨(15) 차영광(10)을 홀로 키우며 목회를 이어가고 있다. 2017년 아내가 대장과 폐, 간으로 전이된 암으로 시한부 판정을 받았고, 2019년 두 자녀를 남긴 채 세상을 떠났다. 이후 그는 신경성 위염과 공황장애, 자율신경실조증을 겪었고, 같은 해 뇌경색까지 찾아와 3개월간 거동이 어려운 시간을 보내야 했다. 여기에 2025년에는 중학생 딸이 특발성 척추옆굽음증으로 영구장애 판정을 받는 아픔까지 겹쳤다. 그는 “아내를 떠나보낸 이후 6개월 동안 제대로 먹지도 자지도 못했다”며 “하루하루가 고통의 연속이었다”고 털어놨다.

전환점은 아내 장례 이후 찾아왔다. 성도들은 교회로 찾아와 “목사님은 절대 떠나면 안 된다. 아이들은 우리가 함께 키우겠다”며 교회를 지켜 달라고 요청했고, 마을 주민들까지 나서 같은 부탁을 전했다. 한 성도는 “장례를 다녀오며 성도들이 한마음으로 ‘두 아이를 함께 키우자. 한 집에 반찬 하나씩만 해도 되지 않겠느냐’고 이야기했다”고 전했다. 불신자 주민들까지 찾아와 교회를 떠나지 말아 달라고 당부하는 모습은 그에게 깊은 울림을 남겼다.


차 목사는 이 모든 상황을 “하나님의 위로이자 사명을 재확인하는 사건”으로 받아들였다. 그는 “하나님께서 이곳에 보내신 이유가 있고 아직 해야 할 일이 있다는 응답으로 들렸다”고 말했다. 그렇게 그는 사역을 내려놓지 않았다. 차 목사는 “죽을 것 같은 상황에서도 사명만 생각했다”며 “설교단에 서면 공황과 슬픔이 사라지고, 오히려 설교가 나를 살리는 은혜의 시간이 됐다”고 회고했다. 설교는 성도들을 향한 메시지이자 동시에 자신을 붙드는 생명의 통로였다.

이 경험은 그의 목회관에도 깊은 변화를 가져왔다. 그는 “이제는 입으로만 기도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으로 기도하게 됐다”며 “성도들의 아픔이 곧 나의 아픔이 됐다”고 말했다. 과거에는 아픈 성도를 위해 기도하는 데 그쳤다면, 이제는 직접 삶으로 돌보는 목회를 실천하고 있다. 특히 고령의 성도들이 많은 교회 특성상 돌봄은 더욱 구체적이다. 그는 성도들이 아프다고 하면 직접 병원에 동행하고, 자녀들에게 상태를 자세히 설명하며 함께 돌본다.

가족 목회로 세워가는 교회 공동체

차 목사가 강조하는 시골교회의 목회 방식은 ‘가족 목회’다. 혼자 사는 어르신들의 집을 찾아 보일러와 전등을 고쳐주고, 병원에 동행하는 등 실제 가족처럼 삶을 나누는 것이 교회의 역할이라고 설명한다. 특히 그는 아픈 성도들을 직접 병원에 데려가고, 자녀들에게 상태를 상세히 설명하는 등 구체적인 돌봄을 실천하고 있다.

그는 “교회는 말이 아니라 행동으로 사랑을 보여줄 때 진짜 공동체가 된다”고 강조했다. 이어 “내가 받은 사랑을 갚아야겠다는 마음”이라며 “교회 공동체는 서로 마음을 나누는 공동체이고, 말이 아니라 행동으로 보일 때 진심이 전해진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럴 때 하나님이 원하시는 교회가 세워진다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다음세대 사역을 고민하는 작은 교회 목회자들을 향한 메시지도 전했다. 그는 “누구에게나 하나님이 주신 달란트가 있다”며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지만, 시작하면 하나님이 일하신다”고 말했다. 이어 “대곡교회는 자료와 컨설팅을 무료로 나누며 함께 동역할 준비가 돼 있다”고 밝혔다.

그의 비전은 분명하다. 차 목사는 “더 다양한 말씀과 프로그램을 통해 아이들이 ‘초강력 스티커처럼’ 예수님께 붙어 있도록 돕는 것”이라며 “나아가 아이들을 중심으로 찬양단을 세워 도시 교회와 지역 축제, 거리 공연 등 다양한 현장에서 복음을 전하는 꿈도 품고 있다”고 덧붙였다. 이어 그는 “자신의 건강과 딸 기쁨이의 회복은 개인적인 기도이기도 하지만, 더 많은 아이와 성도, 지역을 섬기기 위한 공동체의 기도 제목이기도 하다”며 기도를 요청했다.

김수연 기자 pro1111@kmib.co.kr

GoodNews paper ⓒ 국민일보(www.kmib.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Copyright © 국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