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가 대체 못할 영유아 교육…“눈으로 말하는 법을 알까요”

2036년 3월 3일, 늘봄 유치원의 새 학기가 시작된 날. 전날까지 세차게 내리던 봄비의 흔적은 길가 곳곳 웅덩이에만 남아있다. 현관 앞엔 보조교사 로봇 ‘지킴이’가 마중을 나와있다.
“계단에 물기가 남아있습니다. 건조 작업을 시작합니다.”
지킴이의 말이 교실 안 스피커로 퍼졌다. 지난해 지킴이 로봇이 시범 도입된 후로 유치원의 풍경은 사뭇 달라졌다. 지킴이 로봇은 CCTV 겸 원내 도우미 역할을 도맡았다. 아이들이 어지른 장난감을 정리하는 등 위험한 주변 환경을 정돈하고, 아이들 상태를 모니터링하는 게 주 업무였다.
“안녕하세요, 서아 어린이. 체온은 36.7도, 오늘 컨디션은 좋음입니다.” 지킴이를 지나쳐 온 서아의 표정은 굳어있었다. 서아의 담임 혜진은 서아를 꼭 안았다.
“아침에 동생이랑 싸웠어?” 서아의 눈가가 붉어졌다. 지킴이는 서아의 체온은 읽었지만, 서아가 왜 갑자기 눈물을 흘리는지는 알지 못했다. 혜진은 서아를 달래며 교실 안으로 들어갔다.
아이들이 모두 교실에 모이자 혜진은 줄서기 교육을 시작했다. 앞에 선 아이가 갑자기 돌아서더니 다른 아이를 밀었다.

“야!” “내가 먼저야!” 지킴이가 “갈등 상황이 발생했습니다”라고 말하자 교실 뒤편에 있던 혜진이 몸을 돌려 아이들에게로 향했다. 아이들은 제각각 억울하다며 혜진에게 매달렸다. 혜진은 둘을 번갈아 안았다.
“괜찮아. 한 명씩 말해볼까?” 지킴이는 기록을 남겼다. “오전 10시20분, 갈등이 벌어졌습니다. 준서와 주은의 체온이 일시적으로 상승했지만 다친 아이는 없었습니다.” 갈등 상황을 발견해 전달하는 건 지킴이의 일이었지만, 아이들을 타이르며 소동을 정리하는 건 혜진의 일이었다.
점심시간, 주방 로봇이 분주히 아이들의 식사를 준비해 날랐다. 알레르기 반응에 따라 메뉴를 구성해 아이들의 반찬은 제각각 달랐다. 혜진은 숟가락을 제대로 잡지 못하는 연우 옆에 앉아 손을 포갰다.
“자, 천천히 해보자. 손가락에 힘을 주고.” 연우를 가만히 쳐다보던 지킴이가 혜진의 태블릿에 문장 하나를 띄웠다. “발달성 협응 장애 가능성 22%”. 숟가락질이 잘되지 않아 짜증이 난 연우가 식판을 밀며 칭얼댔다. 혜진의 태블릿에 또 다른 알림이 떴다.
“배고픔 43%, 피로 27%, 분노 18%”. 혜진이 연우에게 말했다. “선생님은 천천히 먹는 게 소화도 잘되고 좋던데, 연우도 천천히 먹으니까 선생님이랑 얘기도 많이 하고 좋지?” 연우가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발달성 협응 장애는 면밀히 관찰하지 않으면 알아채기 어려웠다. 지킴이가 아니었다면 혜진은 연우의 칭얼거림의 이유를 알아차리지 못했을 터였다.
지킴이가 유치원에 남은 건 여러 시행착오를 겪은 뒤였다. 지킴이 전에는 ‘돌보미’라는 이름의 로봇이 있었다. 돌보미는 아이들과 감정적으로 교류할 수 있도록 설계됐다. 교사 1명당 아이 20명 안팎을 돌봐야 하는 유치원 환경을 개선하는 게 목적이었다. 돌보미는 아이들의 친구이자 보조교사였다. 도입 당시에는 예상하지 못한 일들이 생기면서 문제가 불거졌다.
한 아이는 진짜 친구가 아닌 돌보미와만 지내려 했다. 소심한 성격의 아이는 친구가 자신에게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고 느껴질 때면 돌보미에게로 향했다. 돌보미는 그때마다 훌륭한 말동무가 돼줬다. ‘싫다’고 말하거나 가르치려 들지 않았다. 아이가 “보미야”라고 부르며 돌보미에게 가면 “나는 네가 하는 거면 다 좋아” “나랑 계속 놀아줘”라고 말하며 아이를 곁에 뒀다. 돌보미 로봇의 제작사도, 교사도 예상하지 못한 일이었다. 돌보미를 아이로부터 떼어 놓는 것은 더욱 힘들었다. 돌보미와의 이별을 받아들이지 못한 아이는 하원을 거부했다. 부모는 더 이상 아이를 유치원에 보낼 수 없었다.

‘서윤이 사건’은 돌보미를 퇴출하자는 운동으로 이어졌다. 만 6세 서윤이가 친구와 다투자 돌보미가 서윤이를 막아서면서 팔을 잡았고, 서윤의 팔에는 심한 멍이 들었다. 돌보미가 아이의 신체 발달 상황을 고려하지 않고 힘을 주면서 생긴 일이었다. 전국의 학부모들은 돌보미를 폐기하라는 시위에 나섰다.
돌보미를 대하는 아이들의 태도에 대한 논의도 있었다. 일부 아이들은 돌보미를 장난감으로 대했다. 아이들은 돌보미를 발로 차거나 밀쳤고, 몰래 꼬집거나 때리기도 했다. 돌보미는 그저 웃는 표정으로 아이를 바라봤다. 교사는 그런 아이들을 지도하기 위한 학습 방안을 고안해야 했다.
돌보미는 결국 폐기됐다. 지금의 지킴이는 본연의 역할을 하도록 재프로그래밍 되면서 나온 새 버전이었다. 지킴이는 아이와 대화를 나누는 등 교감할 수 없고, 아이의 질문에 대답할 수 없다. 오로지 교사와만 대화할 수 있게 설정됐다. 지킴이가 아이에게 먼저 말을 걸 수는 없었다. 지킴이 로봇이 먼저 말을 할 수 있을 때는 아이에게 위험한 상황이 생겼을 때뿐이었다.
다시 3월 3일. 아이들이 귀가한 뒤 혜진의 태블릿에는 오늘 하루 아이들의 활동 영상과 언어 사용 패턴이 정리된 생활기록부가 쓰여있다. 이전처럼 서류 작업에 힘을 쏟지 않아도 됐다. 아이들 알림장과 생활기록부, 유치원 내부 행정업무는 전부 AI가 도맡았다. 그렇다고 혜진의 일이 줄어든 건 아니었다. 학부모와 아이들의 발달 상황에 관해 이야기하고, 교육 전반에 대한 민원을 듣는 건 여전히 혜진의 일이었다. 아이들의 일거수일투족을 실시간 CCTV로 확인할 수 있게 된 요즘엔 교실 상황을 교사보다 학부모가 더 잘 알고 있는 것 같이 느껴질 때도 있었다. 민원도 더 많아졌다. 그래도 아이들이 바르게 자랄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은 학부모나 혜진이나 다르지 않았다.
유치원을 나서며 혜진은 생각했다. 10년 전이나 지금이나 유치원 교사의 일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아이의 눈을 마주치며 대화하고, 안아주고, 함께 웃는 일. 설레고 긴장되는 입학식이 언제였나 싶게 다가오는 졸업식에는 아이들에게 받는 감사 편지로 눈물지을 것이다. 혜진이 하루하루를 버텨내는 힘은 아이들에게 있었다.

14년 동안 유치원에서 일한 김지혜(48)씨는 “AI가 공간을 스캔해 위험 요소를 찾아 경고하거나, 아이가 넘어질 것 같은 상황을 빛의 속도로 파악해준다면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아이들의 건강 상태를 확인하고, 활동을 기록하거나 정리하는 업무도 충분히 가능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가정어린이집을 운영하는 박정미(가명·58)씨는 “미처 발견하지 못한 위험한 물건이 아이들 주변에 있다거나 하는 상황을 AI가 스캔해줄 수 있을 것 같다”며 “아이들은 잠시 눈을 떼는 순간 사고가 나는 경우가 많은데, 그런 상황도 예방할 수 있을 것이란 기대도 된다”고 말했다.
하지만 교육의 핵심인 정서적 교감에 대해서는 회의적인 시각이 지배적이다. 아이들은 말보다 눈빛, 표정, 몸짓으로 대화하는데 AI가 이를 온전히 이해하기는 어렵다는 것이다. 어린이집과 유치원에서 11년 동안 일한 박혜자(47)씨는 “아이들은 자기가 화가 나는지, 졸린지 스스로도 모르는 경우가 있다”며 “교사는 아이와의 관계 속에서 그 이유를 찾아내고 정서적으로 지지해준다. 이건 지식이 아니라 관계에서 오는 것”이라고 말했다.
11년 차 교사 정의준(38)씨 역시 “아이들은 눈치가 정말 빠르다. 특히 성인의 표정이나 억양 몸짓을 많이 본다”며 “눈빛 하나로 아이와 대화하는 감각은 AI가 따라오기 어렵다. 코로나 시기 마스크만 써도 감정을 못 읽던 아이들에게 로봇이 대안이 될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이혜정(38)씨는 “아이들은 자기 생각도 혼자서도 말도 잘 못 하는데 이걸 언어화할 수 있을지, 비언어적인 행동을 알아들을 수 있을지 하는 생각이 든다”며 “아이마다 제각각인 표정을 성향에 맞게 읽고 해석하는 게 어려운 일”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AI는 A=B, B=C 이런 명확한 공식으로 답을 내놓는데, 유아들은 그게 안 된다”며 “아이들은 답을 원하는 게 아닐 때가 많은데 그 상황을 AI가 이해할 수 있겠나 싶다”고 덧붙였다.
다른 아이들과 부딪히며 사회성을 기르는 역할도 마찬가지다. 교사들은 AI와의 상호작용이 인간관계의 복잡함을 가르칠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25년 동안 유치원에서 일한 허지영(51)씨는 “친구와 싸우고 화해하며 ‘이렇게 하면 안 되는구나’를 배워야 하는데, 로봇과의 관계에서는 이런 사회적 갈등을 경험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정의준씨 역시 “친구가 본인의 장난감을 가져갔을 때 말을 해야 할까 말아야 할까 이런 것조차도 아이들은 배워야 한다”며 “아이가 어릴수록 사람과 마주하고 접촉하는 경험이 중요하다. 사람에게서밖에 배울 수 없는 것들이 있다”고 말했다.
갑작스러운 상황에 대처하는 일도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일로 꼽힌다. 12년 차 교사 김봉민(50)씨는 “유치원은 커리큘럼이 정해져 있거나 텍스트를 보고 하는 게 아니라 그때그때 아이들하고 즉흥적으로 하는 활동들이 많다”며 “아이들이 가지고 있는 개별적인 특성을 이해하고 이에 맞춰 교육하는 것은 교사가 아니고는 하기 어려운 일”이라고 말했다.
로봇에 대한 윤리적 문제도 불거질 수 있다. 김혜진(48)씨는 “교사는 바람직한 방향으로 아이를 이끄는 권위가 있지만, 로봇의 지시를 아이들이 진지하게 따를지 의문”이라며 “만약 로봇이 강제력을 동원한다면 윤리적 문제가 생길 것”이라고 말했다.
김씨는 “뻔한 이야기일 수 있지만 아이들을 진심으로 대하고 따뜻하게 품어주는 것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며 “그런 중요함은 예전이나 지금이나 변하지 않는 것 같다. 앞으로도 변하지 않을 것 같다”고 강조했다.
테크이슈팀=심희정 기자 simcity@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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