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콘 빵이 이 사연의 주인공? 700년 묵은 한 맺힌 이야기 [윤한샘의 맥주실록]

윤한샘 2026. 3. 21. 19: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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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한샘의 맥주실록] 비터와 위 헤비 사이, 스코틀랜드의 얄궂은 역사

[윤한샘 기자]

1950년 크리스마스, 영국 런던. 빛 하나 들어오지 않는 웨스트민스터 사원 한 구석에 세 명의 청년이 온 몸에 땀을 흘리며 거대한 무언가를 옮기고 있다. 거친 숨소리 속에 쉴 새 없이 두리번거리는 모양을 보니, 도둑질을 하는 게 분명하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이 불청객들이 훔쳐가려고 하는 것이 왕관이나 금은보화가 아니었다. 그것은 거칠고 투박한 '돌덩이'였다.

운명의 돌

스쿤의 돌(Stone of Scone), '운명의 돌'이라 불리는 네모난 사암은 스코틀랜드 왕권을 상징한다. 9세기 최초의 스코틀랜드 통합 왕이었던 케네스 맥알핀은 대관식에 앉았던 돌을 왕국의 수도, 스쿤으로 가져갔다. 이후 스코틀랜드 왕들은 머리에 관을 얹기 위해 이 돌 위에 앉아야 했다. 152kg 무게를 가진 돌은 단순한 성유물을 넘어 민족의 정체성, 그 자체였다.

그러나 1296년, 스쿤의 돌에게 참혹한 일이 일어났다. '스코틀랜드의 망치'라 불리던 영국 왕 에드워드 1세가 이 돌을 전리품으로 가져간 것이다. 그는 런던 웨스트민스터 사원에 대관식용 의자를 새로 만들면서, 의자 바로 아래에 이 돌을 끼워 넣도록 명령했다.

그날 이후, 영국 왕들은 대관식 때마다 스쿤의 돌을 엉덩이 아래에 깔고 앉았다. "너희는 영원히 우리 밑에 있다"는 노골적이고 굴욕적인 메시지였다. 14세기 로버트 브루스가 배녹번 전투에서 영국에게 승리하며 독립을 쟁취했을 때도 돌은 끝내 돌아오지 못했다.

크리스마스 밤, 이안 해밀턴, 케이 메티슨, 개빈 버넌, 앨런 스튜어트, 글래스고 대학생 네 명은 654년 동안 영국 왕들에게 치욕을 당하며 의자 밑에서 잠자고 있던 자신들의 자존심을 되찾기 위한 발칙한 계획을 실행한다.
 영화 <운명의 돌> 스틸컷. 얼라이언스 필름스(캐나다), 오데온 스카이 필름웍스(영국) 배급.
ⓒ 얼라이언스 필름스, 오데온 스카이 필름웍스
2008년 개봉한 <운명의 돌>은 1950년 대영제국을 뒤 흔들었던 실제 사건을 유쾌하지만 묵직하게 그리고 있다. 우여곡절 끝에 스쿤의 돌을 스코틀랜드로 가져간 이안 해밀턴과 친구들. 돌이 사라진 뒤, 영국은 발칵 뒤집히지만, 스코틀랜드인들은 700년 묵은 한을 풀어낸다.

그런데 영화가 끝을 향해 다가갈수록 묘한 기분이 들었다. 영화는 곧 스코틀랜드에서 독립 운동이 날 것 같은 분위기를 풍기지만, 현실에서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심지어 이안 해밀턴은 스스로 범인임을 밝히며 돌의 위치까지 알려 준다.

영국 경찰 또한 이들의 행위를 '대학생들의 치기어린 장난'으로 격하하며 사건을 종결한다. 돌은 다시 웨스트민스터 사원으로 돌아갔고 스코틀랜드인들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조용한 일상으로 복귀한다.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영화는 재미있었지만, 마지막 크레디트를 본 뒤에도 머릿속은 여전히 혼란스러웠다. 왜 이안 해밀턴은 자수한 걸까? 스코틀랜드인들은 독립을 원한 게 아니었나? 돌이 다시 웨스트민스터 사원으로 돌아갔는데 이들은 왜 가만히 있었던 거지?

3.1운동의 혁명 정신을 헌법에 새긴 한국인의 시선에선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는 풍경이었다. 일제강점기를 거치며 '독립 아니면 죽음'이라는 결연한 정서를 지닌 우리에게, 돌을 되찾는 데 몰두하면서 체제는 유지하려는 그들의 태도는 좀처럼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 같았다.

그때, 영화 속에 봤던 한 장면이 떠올랐다. 거사를 모의하던 스코틀랜드 대학생들의 손에 들려있던 맥주가 '스카치 에일(Scotch ale)'이 아니라 '잉글리시 비터(English bitter)'였던 그 장면이.

같지만 다른 나라

'함무라비 법전 제 109조. 만일 어떤 여인(주모)의 집에 반역자들이 모였는데, 그녀가 그들을 체포하여 궁궐로 끌고 가지 않는다면, 그 여인은 사형에 처한다.'

수천 년 동안 반역 모의는 술집에서 이루어졌다. 민족의 정기를 되찾아 오기 위해 글래스코 대학생들이 모인 곳도 역시 펍이었다. 이들은 맥주를 마시며 위대한 도적질을 준비한다. 그런데 손에 들린 맥주가 이상했다. 나는 이 맥주가 응당 스코틀랜드 맥주, '스카치 에일'이라고 생각했지만, 몇 번을 봐도 투명한 앰버색 맥주는 영국 맥주인, '잉글리시 비터'였다.

웨스트민스터에 침입할 정도로 민족주의로 무장된 청년들이 영국 맥주를 마신다고? 나에겐 가장 어색한 그 장면이 어쩌면 스코틀랜드인들이 품고 있는 아이러니를 드러낸다는 생각이 불쑥 들었다.

2018년 개봉한 영화 <메리, 퀸 오브 스코틀랜드>는 16세기 두 여왕을 사이에 두고 영국과 스코틀랜드 사이에 벌어졌던 역사적 사건을 흥미진진하게 보여준다. 직계 혈통이라는 명분 아래 영국 왕의 자리를 노렸던 메리와 후처의 자식으로 불안감과 열등감에 시달렸던 엘리자베스.

1603년, 후사가 없던 엘리자베스 1세가 세상을 떠나자, 스코틀랜드 여왕 메리 스튜어트의 아들이자 헨리 7세의 증손자였던 제임스 1세가 영국 왕에 올랐다. 영화는 단두대에서 생을 마감하는 메리의 비극으로 끝나지만, 역사의 아이러니는 당대 인간들 모르게 흐르는 법. 영국 왕좌를 차지한 인물은 스코틀랜드 독립 영웅 로버트 브루스의 직계 후손이었던 제임스 1세였다.

제임스 1세가 돌 위에 앉으며 영국 왕이 되는 광경은 스코틀랜드인들이 그토록 바랐던 순간이었을지도 모른다. 혹시 이 '왕관의 연합'이 스쿤의 돌을 찾아오려는 스코틀랜드 민족의 염원을 흐릿하게 한 건 아니었을까?
 영화 <메리, 퀸 오브 스코틀랜드> 포스터.
ⓒ UPI코리아
그로부터 100년 뒤 스쿤의 돌이 돌아올 가능성을 더 멀어지게 하는 사건이 벌어졌다. 1707년 식민지 사업의 실패로 파산 위기에 놓인 스코틀랜드는 모든 빚을 갚아주는 대가로 합병을 요구한 영국의 손을 잡았다. 파산한 스코틀랜드가 당시 전쟁을 벌이고 있던 프랑스에게 넘어갈 것을 우려한 영국의 고육지책이었다.

정치와 경제는 통합하되 법률과 종교는 각자 보장하는 느슨한 통합, 우리가 알고 있는 '대영제국'(Great Britain)이 탄생한 순간이었다. 불가피한 선택이었지만, 빚을 탕감하는 조건으로 영국의 안전을 보장하는데 이용 당한 스코틀랜드인들은 씻기 어려운 굴욕의 정서를 품을 수밖에 없었다.

스코틀랜드 기개를 닮은 위 헤비

홉이 자라지 않는 척박한 땅과 가혹한 날씨는 스코틀랜드 맥주 속에 맥아 뉘앙스를 묵직하게 남겼다. 어두운 색 뒤로 건 과일과 감초 향을 품고 있는 이 맥주를 스카치 에일이라고 한다.

스카치 에일은 알코올 도수에 따라 영국의 화폐 단위, 실링으로 나뉜다. 2~3도 정도의 가장 낮은 알코올을 가진 스카치 에일을 60실링, 3~4도는 70실링, 4~5도는 80실링, 6도 이상 알코올 도수를 가진 스카치 에일은 90실링으로 구분한다. 모두 알코올에 따라 높은 세금을 부과했던 흔적이다.

이중 스카치 에일의 정수는 90실링, 일명 위 '헤비(wee heavy)'라고 불리는 녀석이다. 짙은 고동색, 6.5% 이상의 알코올, 건과일과 캐러멜 향, 거기에 묵직한 바디감을 가지고 있는 이 맥주는 고집스럽게 전통을 지켜온 스코틀랜드인의 기개와 맞닿아있다.

반면 잉글리시 비터는 전혀 다른 세계다. 영국 남부의 비옥한 토양에서 자란 홉이 듬뿍 들어가 꽃과 허브 향이 섬세하고 쓴맛도 살아있다. 같은 에일이라는 카테고리 안에 있지만, 위 헤비와 비터는 서로를 전혀 닮지 않았다. 마치 두 나라처럼.

영화 <운명의 돌> 속에 나오는 맥주 장면은 그래서 더욱 의미심장하다. 영화 속 청년들은 가슴 속에 위 헤비의 뜨거움을 품고 런던으로 향하지만, 손에 들고 있는 맥주는 잉글랜드 비터였다. 2차 세계대전이라는 참혹한 전쟁 속에서 영국과 함께 피를 흘리며 전우가 된, 20세기 중반 스코틀랜드의 모순을 영화 속 맥주는 보여주고 있었다.

느슨한 연합과 날카로운 경계 사이

고향으로 스쿤의 돌이 돌아왔다는 뉴스가 나오자, 사람들은 거리로 뛰쳐나와 환호한다. 자동차 경적을 울리고 스코틀랜드 국기를 들고 로버트 브루스 동상 위로 올라가기도 한다. 심지어 정치에 관심이 없던 이안 해밀턴 아버지도 아들을 자랑스러워했다.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그들은 돌을 되찾았다는 사실에 열광하면서도 영국이라는 울타리를 부수지 않았다. 이안 해밀턴조차 '피 한 방울 흘리지 않고 나라를 위해 무언가를 한다는 것, 그것은 자랑스러운 일이라고 생각한다'고 고백했다.

나의 짧은 지식으로 대영제국 안에 존재하는 미묘한 정서를 완벽하게 이해하기란 어려운 일일 것이다. 하지만 다르지만 함께 있고 싸우면서도 떠나지 않는 그들의 방식이 어쩌면 지금 시대에 필요한 공존의 모델일 지도 모른다. 오랫동안 반으로 갈라져 살아온 우리에게 언젠가 역사가 새로운 길을 물어볼 때, 작은 힌트가 될 수 있을지도.

스쿤의 돌은 지금 어디에 있을까? 현재 돌은 스코틀랜드 퍼스 박물관에 놓여있다. 1996년 영국은 스쿤의 돌을 반환했다. 높아지는 독립 여론을 의식한 존 메이저 총리의 상징적 제스처였다. 단, 영국 왕의 대관식에는 잠시 런던으로 가져갈 것이라는 조건이 붙어있었다.

1999년 스코틀랜드는 300년 만에 자치 의회를 세우고 독립의 틀을 마련했다. 하지만 2014년 독립 찬반과 2016년 브렉시트 파고 속에서도 속내는 복잡할지언정 결국 영국과의 동행을 선택했다. 대영제국의 종착점은 어디까지 일까? 알 수 없지만, 두 나라 국민들에게 행복한 결말이 되길 바란다.

아, 그리고 우리가 알고 있는 빵, 스콘이 바로 이 스쿤의 돌의 모양에서 유래되었다는 설이 있다. 오늘 밤, 쌉쌀한 비터 한 잔에 달콤하고 푸석한 스콘 한 조각을 먹어보자. 자신의 인생에서 되찾아야 할 '운명의 돌'이 무엇인지 생각하면서. 건배.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브런치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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