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혐중'하던 아이들이 '반미'를 외치는 이유
[서부원 기자]
|
|
| ▲ 3월 7일(현지시간) 쿠웨이트에서 이란의 드론 공격으로 사망한 미군 병사 6명의 유해가 미국으로 송환되는 가운데 델라웨어주 도버 공군기지에서 열린 이송식에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야구 모자를 쓰고 서 있다. |
| ⓒ UPI. 연합뉴스 |
미국과 이스라엘의 기습적인 폭격으로 시작된 '이란 전쟁'을 지켜본 아이들의 '소감'이다. 갑작스레 전쟁이 터졌다는 소식에 처음엔 원인이 뭔지 궁금해하며 설왕설래하는 분위기였다. 그러다 유가 폭등으로 인한 경제적 위기를 우려하기도 했고, 나아가 청년 세대의 취업난과 결부시키는 목소리까지 나왔다.
전쟁이 장기화하고 언론이 연일 대서특필하다 보니 전쟁의 원인과 전개 양상 등은 아이들도 대강 꿰고 있다. 호르무즈 해협을 봉쇄하는 게 왜 이란의 강력한 무기로 작용하는지 설득력 있게 설명할 줄도 안다. 이번 전쟁이 쉽게 끝나지 않을 것 같다고 전망하면서 미국의 '섣부른 불장난'이라고 단언하는 아이도 있다.
그런가 하면, 중동 지역의 역사와 지리를 공부하게 된 계기가 됐다는 경우도 있다. 한 아이는 호르무즈 해협을 사이에 둔 양쪽 땅이 이란의 영토라는 것과, 이란은 주변 이슬람교 국가들과는 달리 아랍어가 아닌 페르시아어가 공용어라는 사실을 처음 알게 됐다고 했다. 교과서의 지명인 '페르시아만'이 '아라비아만'과 같은 곳이라는 것도 이참에 알았다고도 했다.
나아가 중동 국가들의 얽히고설킨 외교 관계에까지 관심을 두는 아이도 있다. 지금껏 중동 문제라고 하면, 이스라엘과 주변 아랍 국가들과의 분쟁으로 이해하고 있었단다. 그런데, 이란과 나머지 아랍 국가들과의 불화가 이스라엘과의 그것 못지않게 심하다는 사실을 이번 전쟁을 통해 알게 됐다고 말했다.
미국·이스라엘-이란 전쟁을 통해 알게된 것
아이들과 대화를 나누노라니, 이번 전쟁이 그들에게 준 가장 큰 영향은 두 가지로 압축된다. 하나는 이스라엘과 유대인에 대한 반감이 심해졌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트럼프 대통령의 막가파식 행보가 미국에 대한 혐오를 부추기고 있다는 점이다. 이스라엘에 '호구 잡힌' 미국의 모습을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는 목소리도 심심찮게 들렸다.
기독교의 성지이자 <탈무드>의 고향으로서 이스라엘에 대한 우리 국민의 인상은 매우 호의적이었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에 의해 수백만 명이 학살된 이들의 후예라는 역사적 사실까지 덧입혀져 오랜 연민의 대상이기도 했다. 과거 주변 아랍 국가와 벌인 중동 전쟁에서의 승리조차 '골리앗을 쓰러뜨린 다윗'이라며 상찬했다.
유대인들이 노벨상을 밥 먹듯이 수상하는 이유라면서, 한때 그들 고유의 하브루타 학습법이 국내에 유행하기도 했다. 우리에게 이스라엘은 열악한 여건에서도 부강한 공동체를 일궈낸, 근면하고 지혜로운 유대인의 나라로 각인됐다. 특히 아이들은 남녀 구분 없이 병역의 의무를 공평하게 진다는 점을 손꼽으며 내심 부러워하는 눈치였다.
하지만 근래 들어 이스라엘에 대한 호감은 반감을 넘어 증오로 바뀌어 가고 있다. 지난 윤석열의 내란과 탄핵 과정에서 드러난 일부 극우 교회의 반사회적 행태와 맞물려, 기독교에 대한 거부감과 이스라엘에 대한 반감이 '시너지 효과'를 내는 모양새다. 이번 전쟁이 이스라엘과 미국의 협잡으로 시작됐다는 점이 드러나면서 거기에 기름을 끼얹었다.
"지난번 팔레스타인을 향한 그들의 폭력은 약과였던 것 같아요. 나치에 학살당한 참혹한 역사를 떠올리며 이란 사람들에게까지 앙갚음이라도 하려는 걸까요?"
아이들은 얼마 전 팔레스타인을 폭격하고 주민들을 사지로 내몬 이스라엘의 무자비함을 또렷이 기억하고 있었다. 집도 잃고 생계조차 막막해진 주민들에게 건넬 세계 각지의 구호품조차 가로막는 그들의 비인도적 행태에 혀를 내둘렀다. 나치가 자신들의 조상인 유대인에게 행한 만행과 뭐가 다르냐며 분노하기도 했다.
그들의 타격 목표가 한두 해 만에 팔레스타인에서 이란으로 바뀌며 무력의 강도는 배가되었다. 팔레스타인은 폐허로 변한 채 여전히 전쟁 중이지만, 이란 전쟁에 묻혀 여론의 관심에서 멀어졌다. 반인권적 전쟁에 대한 비난을 다른 전쟁을 일으켜 덮는 형국이다. 언제부턴가 이스라엘은 전쟁을 통해 존속되는 나라로 여겨지기 시작했다.
미국에 대한 아이들의 반감
한편, 최근 미국에 대한 아이들의 반감은 이스라엘 저리 가라다. 미국을 공공연히 '깡패 국가'라고 말할 정도다. 비유컨대, 이스라엘이 '동네 건달'이라면, 미국은 '조폭 두목'이라는 식이다. 지금껏 아이들에게 미국은 민주주의의 종주국으로, 세계의 평화와 공동 번영을 추구하는 '좋은 나라'로 여겨져 왔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과 일본 등 전체주의 세력을 막아내고 유엔 중심의 전후 국제 질서를 확립한 국가라는 점도 미국에 우호적인 이유다. 공산주의의 패망과 자본주의의 승리를 증명한 나라이며, 우리에겐 6.25 전쟁 당시 공산군의 침략을 막아낸 영원한 우방으로 각인되어 있다. 성조기를 보면 자유와 평화, 번영이라는 단어를 가장 먼저 떠올리게 된다는 아이들이다.
그런데, 지금은 전혀 '아니올시다'다. 캐나다와 그린란드를 미국에 편입시키겠다는 말을 스스럼없이 꺼내고, 군 병력을 동원해 베네수엘라의 마두로 대통령을 체포해 가는 장면을 통해 아이들도 미국의 '진면목'을 깨닫기 시작했다. 그들도 트럼프 대통령의 언뜻 '기행(奇行)' 같은 통치 행위에서 미국식 민주주의의 민낯을 본 거다.
이젠 아이들도 "대체 트럼프 대통령이 왜 저러는지" 더 이상 묻지 않는다. 그냥 원래 그런 사람이려니 한다. 다른 나라의 무고한 사람들이 겪는 참혹한 고통에 공감하기는커녕 아무런 관심이 없고 자신의 잇속만 챙기는 파렴치한 인물로 여긴다. 정치 지도자로서 품성과 자질을 전혀 갖추지 못했다며 '미국의 윤석열'이라 조롱하기도 한다.
"트럼프 개인보다 선거에서 그에게 투표한 미국 국민을 당최 이해할 수가 없어요."
그를 탓하는 대신 아이들이 고개를 갸웃거리는 건, 그를 대통령으로 선출한 미국 국민 다수의 정치의식 수준이었다. 배우지 않았어도 '모든 국민은 자신들의 수준에 맞는 지도자를 가진다'는 알렉시 드 토크빌의 금언을 본능적으로 깨달은 셈이다. 트럼프를 통해 드러난 반인권적 폭력성과 천박함이야말로 오늘날 미국 민주주의의 실상이라는 뜻이다.
몇몇 아이들은 공공연히 '반미(反美)'를 언급했다. 미군의 오폭으로 수업 중이던 이란 초등학생 170여 명을 숨진 사건이 '변곡점'이었던 걸로 보인다. 비인도적 전쟁 범죄에 대해 사과하기는커녕 이란의 소행이라고 버젓이 말하는 트럼프 대통령의 모습이 황당했다고 했다.
이 와중에도 이란의 민주화를 외치며 트럼프 지지 시위를 벌이는 미국 국민이 적지 않다는 게 충격적이라고도 했다. 민주주의가 무너진 미국이 이란의 민주화를 위해 전쟁을 일으키는 게 말이 되느냐고 물었다. 미국 민주주의가 얼마나 허약한가를 보면서 지난해 윤석열 내란 사태를 막아낸 우리 국민의 위대함을 새삼 깨달았다고 말하는 아이도 있었다.
여전히 미국이 군사력과 경제력 면에서 압도적인 세계 최강국이지만, 이미 아이들의 마음속에서조차 미국의 시대가 저물고 있음이 확연하다. 머지않아 아이들이 대학에 진학하고 사회에 나올 때쯤이면 미국의 영향력이 지금과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쇠약해져 있을 듯하다. '트럼프의 미국'이 미래세대 아이들에게 준 충격이 너무나 커 보였다.
사족. 트럼프가 벌이는 전쟁 때문인지 몰라도 중국을 혐오하는 아이들의 정서도 부쩍 약해진 느낌이다. 당장 '약방의 감초' 격이던 중국이 아이들의 대화 중에 언급되는 빈도가 크게 줄었다. 한 아이는 '민주국가' 미국이 '독재국가' 중국과 싸우면서 서로 거울상처럼 닮아버렸다고 해석하면서, 이제 우리에겐 중국도 미국도 다 적(敵)이라고 말했다.
Copyright © 오마이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밥 먹었냐'... 농촌에선 이 질문의 의미가 다른 거 아세요?
- 검사 '순서' 잡으려면 몇 날 며칠 입원? 병원이 이래서 되나요
- 우리 동네에서 태어난 아기들이 광고에... 이런 신문이 있습니다
- 감옥에서 탈옥한 김구, 50여 일 은신했던 마을에서 한 일
- 알레르기비염은 차라리 낫지, 50 앞두고 민감해지는 것들
- 하늘에 수박이 주렁주렁... 팔순 화가가 만든 '특별한 세계'
- 모임통장까지 있는 이웃과 차린 밥상, 군침 넘어갑니다
- 일본 평화헌법 9조가 트럼프를 막았다
- "유일무이한 경험될 것"... BTS 컴백 장소 선택에 얽힌 비하인드
- AI의 역설, 사모신용 시장이 흔들리는 이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