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명의 여성 손에서 탄생하는 마을 반찬 320인분
어르신의 하루 한 끼를 공공이 책임지겠다는 약속은 지난 총선과 대선에서 여러 차례 등장했습니다. 그러나 약속은 아직 현장에서 온전히 실현되지 못했습니다. 옥천에서는 '공동체식당’이라는 이름으로 다섯 개 면 단위에서 시범사업이 진행 중입니다. 먹거리 기본권을 보장하고, 지역 농산물의 생산과 소비를 연결하며, 지역 안에서 일자리를 만들어내는 구조로 확장될 가능성을 품고 있는 이 사업이 현장에서 어떤 모습으로 펼쳐지고 있는지 소개합니다. <기자말>
[월간 옥이네]
'밥 먹었냐'... 농촌에선 이 질문의 의미가 다른 거 아세요? https://omn.kr/2he9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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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왼쪽부터 조인호·유은미·임진숙씨 |
| ⓒ 월간 옥이네 |
조인호씨는 지난해 1월 공동체식당 시작과 함께했다. 운영자를 구한다는 소식에 도움이 되고 싶어 시작한 일은 1년 넘게 직접 만든 반찬을 마을 곳곳에 전하며 밥 먹는 일의 중요성을 몸소 느끼게 해줬다.
"대가족이라 명절이면 30명 이상 집에 모여요. 얼굴 볼 일이 많지 않으니 모이는 날에 제대로 먹이고 싶어 잔치처럼 음식을 해요. 맛있는 밥으로 식구가 모이고 대화의 물꼬가 트이죠. 같이 밥 먹는 일이 중요하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마을에도 필요하다는 걸 공동체식당 활동하면서 깨달았어요. 배달을 통해 주민들이 얼마나 기다리고 있는지를 직접 확인하니까요. 아, 이 한 끼가 마을의 활기가 될 수 있구나를 많이 느껴요."
3년 전 고향인 종미리로 돌아온 유은미씨는 몸이 안 좋은 활동가를 대신해 2주 전부터 활동을 시작했다. 갑작스러운 제안이었지만 평소 먹는 즐거움으로 사는 그였기에 큰 고민 없이 수락했다.
"가족과 맛있는 음식 먹는 걸 좋아해요. 외식 말고 직접 만든 음식이요. 어렸을 때부터 제철 음식의 맛을 알려주신 어머니 덕분에 음식 만드는 일을 즐거워해요. 그 재미에 5년간 식당을 운영하기도 했고요. 이런 경험으로 대용량 음식에 대한 부담도 없었어요. 오히려 고향에서 더 많은 이에게 먹는 즐거움을 나눌 수 있어서 좋아요."
이날의 반찬은 소고기뭇국, 봄동 겉절이, 잡채. 설날을 앞두고 명절을 생각해 준비한 메뉴다. 시금치, 당근, 양파, 어묵, 당면을 한데 버무리는 잡채는 손이 많이 가는 음식이다. 재료 손질이 오래 걸리지만 주민들이 먹고 싶어한 반찬이기에 세 사람은 부지런히 손을 움직인다.
"배달을 하다 보면 먹고 싶은 음식을 말씀해주세요. 잡채도 그중 하나였어요. 원래는 부추를 사용하려고 했는데 시금치가 제철 맞아 달고 맛있어서 바꾸기로 했어요." (임진숙씨)
음식을 준비하면서도 다음 메뉴에 대한 고민이 한창이다. 임진숙씨가 다음 메뉴로 메밀묵을 이야기하자마자 조인호·유은미씨 입에서 메밀가루와 물의 비율, 솥에 눌지 않게 하는 방법 등의 비법이 술술이다. 메뉴 선정은 제철 재료를 우선으로 하기에 반찬에 대한 고민은 틈날 때마다 해둬야 한다.
"지난해 여름에는 닭백숙을 했어요. 예산 문제로 닭다리만 사용했지만 농사가 한창인 여름철에 조금이라도 영양 보충하길 바라는 마음으로 준비했죠. 평소보다 더 이른 시간에 나와 준비했는데, 좋아하시는 주민들 모습이 기억에 남아요. 힘들어도 맛있게 드시는 모습을 보면 메뉴 고민을 더 열심히 할 수밖에 없어요." (임진숙씨)
밥 한 끼 속 마을 돌봄
2016년 안남면으로 이주한 임진숙씨는 옥천군농민회, 안남면 배바우장터, 안남배바우도서관 사무국장으로 활동하며 먹거리 돌봄 활동을 이어오고 있다. 공동체식당도 그중 하나. 마을에 필요한 활동이기에 기쁜 마음으로 시작했다.
"안남면은 공동체식당 이전부터 마을 돌봄에 관심 갖고 실천해 오던 곳이에요. 2003년 안남면 문해학교 안남어머니학교 개교를 시작으로 마을순환버스, 공동급식 등 활동을 넓혀갔죠. 우연히 안남초등학교 강사로 왔다가 마을 돌봄을 실천하는 주민 활동가를 만나면서 이주를 결정했어요. 지금은 그분들과 함께 마을에 필요한 것들을 만들어가고 있고요. 공동체식당도 마찬가지로 먹거리 돌봄의 일환으로 참여하고 있어요."
공동체식당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특별한 어려움은 없었다. 2019년 금강수계특별주민지원 대단위 사업으로 조성된 다목적회관의 조리 시설을 사용하고 안남로컬푸드직매장을 통해 재료 수급이 가능했기 때문이다. 주민들이 주체가 되어 마을에 필요한 기반을 미리 마련해 둔 덕분에 비교적 수월하게 시작할 수 있었다.
"공동체식당을 시작한다고 했을 때 주민 대부분 필요성을 이해하고 계셨어요. 그간의 활동 덕분이죠. 다만 배바우도농교류센터에서 안남배바우공동체가 제공하는 공동급식과의 차별점이 고민됐어요. 반찬 배달로 더 많은 주민에게 음식을 제공하고 직접 배달로 부족한 점을 바로 받을 수 있다는 점을 적극 활용하자고 생각했죠."
반찬 배달은 마을 주민 수에 맞춰 마을당 적게는 10인분에서 많게는 30인분까지 준비된다. 맛과 영양을 고려해 정성껏 만든 반찬은 전반적으로 높은 만족도를 보인다. 특히 주민 수가 적은 마을의 만족도가 높다.
"경로당 도우미 사업을 진행해도 식재료비, 인력 지원이 없어 어려움이 많아요. 고령화가 높은 마을은 80대 넘은 주민이 식사 준비를 해야 하니까요. 돌봄을 받아야 할 나이에 돌봄을 하는 주민이 많은 마을에선 반찬 배달을 항상 기다리고 계세요."
그는 언론을 통해 식사를 제대로 하지 못해 영양실조로 생을 마감하거나 사회적 단절로 우울증을 겪는 고령자 이야기를 자주 접해왔기에, 경로당에서 한 끼를 나누며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을 볼 때면 반찬 배달이 음식 제공 그 이상으로 느껴진다.
"반찬 배달로 세밀하지 않아도 대략적이라도 주민들의 건강을 살필 수 있어요. 계속 보던 주민이 안 보이면 무슨 일 있는지 같은 마을 주민을 통해 안부를 묻죠. 그러다 보면 반찬 배달 날이 아니더라도 평소에 주민들이 서로의 건강을 살피세요. 자연스럽게 서로를 돌보는 분위기가 마련된 것을 볼 때마다 공동체식당의 가치를 느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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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충북 옥천군 안남면 공동체식당 |
| ⓒ 월간 옥이네 |
"마을에서 어떻게 해야 할까 논의하고 있지만 아직까지 구체적인 대책은 없어요. 종료 소식을 들은 주민들은 많이 아쉬워하세요. 그런 모습을 볼 때마다 드릴 말씀이 없어서 죄송해요. 공동체식당이 지속되기 위해선 마을만의 노력으론 어려워요. 행정의 의지가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후속 조치에 관한 의논이 미리 이뤄지지 않은 점이 아쉽습니다."
1년간 공동체식당을 운영해 오며 보완이 필요한 것들도 이야기해온 이들이다. 공동체식당의 한 달 운영비는 1천여만 원. 반찬 식재료비는 1인당 5천 원에 맞춰 준비하고 인건비는 시간당 1만5천 원으로 책정돼 있다. 활동가는 4대 보험이 적용되지 않아 주 20시간 미만으로 근무해야 한다. 하지만 조리와 배달 외에도 장보기와 서류정산 등 추가로 소요되는 시간이 적지 않다. 백숙이나 메밀묵처럼 조리 시간이 오래 걸리는 음식은 전날 미리 준비하기도 한다. 반찬 배달에 드는 기름값 역시 활동가가 부담한다. 활동가의 차 두 대로 약 한 시간씩 이동하는데, 기름값은 인건비에 포함돼 있지 않다.
"정해진 돈과 시간에 맞출 수도 있지만 더 맛있고 건강한 반찬을 만들고 싶어요. 그러다 보니 시간 외 근무나 주유비는 좋은 일이라고 생각하고 그냥 하게 돼요. 최소한 예산에 주유비 정도는 반영되면 좋겠어요."
시간이 지날수록 맛과 영양에 더 신경 쓴다는 그는 로컬푸드 차액 지원이 절실하다고 전했다. 공동체식당은 지역 먹거리 순환의 목적을 담고 있어 친환경, 로컬푸드 식재료를 우선으로 사용한다. 하지만 친환경이나 로컬푸드 식재료는 일반 식재료에 비해 가격이 높아 정해진 예산으로 해결하기에 어려움이 많다.
"일반 슈퍼에서 양파를 1천 원에 판매한다고 했을 때 친환경, 로컬푸드 양파는 1200원 정도 해요. 일반 시장 가격을 제외한 나머지 200원을 지원해주면 더 많은 식재료를 친환경, 로컬푸드로 이용할 수 있어요."
공동체식당이 지속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사람이 중요하다. 특히 인력 구하는 일이 가장 큰 숙제인 면 지역에서 먹거리 돌봄의 가치를 이해하고 공감하는 사람을 만나는 일은 더욱 쉽지 않다.
최근에도 건강상의 이유로 1년간 함께했던 활동가가 휴식기를 갖게 됐다. 다행히 먹거리 돌봄에 관심 있던 유은미씨를 만나게 됐지만 활동가를 찾는 일은 여전히 어렵다.
"많은 돈을 버는 일은 아니지만 슬프게도 농촌에 일자리가 많지 않아 하려는 분들이 좀 계세요. 먹거리 돌봄 체계를 만드는 일을 돈벌이로만 생각하면 오래 하기 어려워요. 주민의 건강으로 이어지는 공동체식당의 필요성을 이해해야 해요. 여자, 남자 할 것 없이 모두가 활동가의 마음을 가지고 먹을거리 활동할 수 있는 분위기가 널리 퍼졌으면 좋겠어요."
월간옥이네 통권 105호
글·사진 김혜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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