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 먹었냐'... 농촌에선 이 질문의 의미가 다른 거 아세요?
어르신의 하루 한 끼를 공공이 책임지겠다는 약속은 지난 총선과 대선에서 여러 차례 등장했습니다. 그러나 약속은 아직 현장에서 온전히 실현되지 못했습니다. 옥천에서는 '공동체식당’이라는 이름으로 다섯 개 면 단위에서 시범사업이 진행 중입니다. 먹거리 기본권을 보장하고, 지역 농산물의 생산과 소비를 연결하며, 지역 안에서 일자리를 만들어내는 구조로 확장될 가능성을 품고 있는 이 사업이 현장에서 어떤 모습으로 펼쳐지고 있는지 소개합니다. <기자말>
[월간 옥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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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충북 옥천군 안남면 공동체식당 |
| ⓒ 월간 옥이네 |
밥 먹는 가치가 흐릿해질 때쯤 마을 밥상에 온기가 찾아왔다. 충북 옥천군 농촌신활력플러스사업단의 지원으로 면 지역 먹거리 복지를 위한 공동체식당이 시작된 것. 안남면은 안남두레상사회적협동조합이 맡아 일주일에 두 번 21개의 마을에 반찬을 배달한다. 매주 찾아오는 따뜻한 국과 반찬에 "반찬 오는 날에는 하던 일 다 제치고 경로당에 간다"는 주민들이다. 주민들을 모으고 밥 먹는 날의 마을 문화로 정착하기까지. 1년 넘는 시간 동안 마을 밥상에 어떤 변화가 있었는지, 지속가능한 방법은 무엇인지, 공동체식당 운영자와 이용자에게 들어봤다.
"수요일은 밥 먹는 날!"
오전 11시, 안남면 청정리 심청마을회관에 주민들의 발걸음이 끊이지 않는다. 앉을 자리가 모자랄 만큼 주민들로 북적이는 모습이 마치 명절 풍경을 보는 듯하다. 반가운 인사와 함께 모인 20여 명의 주민들이 주변을 살피며 안 온 이는 없는지 살핀다. 그리곤 마을회관 안쪽에 정리해 놓은 여분의 식탁과 의자를 꺼내 점심 준비를 시작한다.
매주 수요일은 심청마을의 '점심 먹는 날'. 한창 바쁠 농번기에도 참석할 만큼 마을의 중요한 약속이다. 이제는 없어선 안 될 점심 약속은 지난해 1월 당시 이장이었던 정진용씨가 주민들에게 공동체식당 소식을 전하면서 시작됐다.
"마을에 반찬 배달해주는 공동체식당이 있다고, 같이 밥 먹으면 좋지 않겠냐고 그러더라고요. 특별히 손 거들 일 없으니까 좋다고 했죠. 그렇게 한두 번 먹다 보니 주민들이 모였고 자연스레 수요일은 다 같이 밥 먹는 날이 됐어요. 한 명도 빠짐없이 모이면 25명쯤 돼요. 그전에는 마을에 모일 일이 없었는데, 지금은 수요일이면 무조건 마을회관으로 모여요." (황영옥씨, 69)
막 배달된 반찬통을 열자 잡채, 소고기뭇국, 봄동겉절이, 시루떡이 풍기는 맛있는 냄새가 마을회관 가득 퍼진다. 반찬 배달 시간에 맞춰 지은 밥도 때마침 완성돼 모두가 그릇에 음식을 담는 데 손을 보탠다. 전순례(70)씨도 "따뜻할 때 먹어야 맛있다"며 분주하게 움직인다. 평소 마을 식사에 대한 고민이 있었던 그는 공동체식당 덕분에 밥하는 부담을 덜었다.
"공동체식당 이전에 이웃 마을에서 함께 밥 먹는 시간을 갖는다는 이야기를 듣곤 했어요. 우리 마을도 하면 좋겠다고 생각했지만 생업과 동시에 마을 식사를 책임진다는 게 부담이었어요. 그런데 반찬 배달이 오니까 부담이 없어요. 밥만 하면 되고 양이 부족하면 각자 집에서 반찬 조금씩 가지고 오면 되니까요. 덕분에 모이는 일이 즐거워요."
국 한 가지와 반찬 두 가지, 후식이 한 묶음으로 오는 반찬에 밥과 각자 가지고 온 반찬을 곁들이면 완성되는 한 상. 이날은 노인회장 정재영(75)씨가 준비한 막걸리가 더해져 식사 분위기가 한층 무르익었다.
"노인회장 수당으로 떡과 한과 같은 간식을 준비해요. 공동체식당으로 얼굴 보는 시간이 늘다 보니 이렇게나마 준비해야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마을 일 잘하라고 받는 돈을 제 목적에 쓰는 것 같아 저도 좋고, 같이 먹는 즐거움이 있어 또 좋아요."
마을의 최고 어른인 박순분(98)씨가 수저를 들자 식사가 시작됐다. 같은 식탁에 앉은 유준봉(64)씨가 필요한 것은 없는지 박순분씨를 살핀다.
"청력이 약한 거 말고는 건강하세요. 대충 끼니를 해결하는 어르신이 많다고 들었는데, 박순분 어르신은 가리는 거 없이 정말 잘 드세요. 다행이에요. 저는 일주일에 한 번이라도 모여서 별일 없는지 확인할 수 있어서 그게 가장 좋아요. 밥이 그냥 밥이 아니에요. 이웃의 건강을 살피는 일도 포함돼 있어요. 또 농사를 지으면서 어려운 점을 같이 고민하는 자리이기도 해요. 2년 전 고향으로 돌아와 농사를 짓고 있는데 어르신들의 조언이 얼마나 큰 힘이 되는지 몰라요. 이런 자리가 생겨서 정말 감사할 따름이에요." (유준봉씨)
가장 먼저 식사를 마친 최금선(76)·남명복(66)씨가 집으로 가지 않고 거실 한쪽에 자리 잡는다. 식탁에서 마치지 못한 이야기를 이어가느라 바쁜 두 사람이다. 무슨 이야기를 저리 즐겁게 하나 자세히 들어보니 밥에 대한 이야기다.
"모이지 않으면 대충 먹게 돼요. 김치 하나에 밥, 물에 밥 말아 먹는 식으로요. 그것도 귀찮아서 거르는 경우도 있어요. 수요일마다 마을회관에 오면 고기와 채소가 골고루 들어간 반찬, 따뜻한 국이 있어요. 제대로 된 밥을 먹을 수 있어서 좋아요." (남명복씨)
남명복씨의 이야기를 들은 최금선씨가 "요즘 밥은 헛헛하다"고 말한다.
"어렸을 적에 비하면 식재료도 많아지고 외식하기도 편해졌죠. 그런데 바깥에서 먹는 음식은 많이 먹어도 헛헛해요. 대단하지 않더라도 같이 만들고 나눠 먹어야 든든해요. 여럿이 얼굴 보며 밥 먹으면 없던 입맛도 생긴다니까요. 나눠 먹는 법을 알아야 건강해져요. 우리 마을에도 그런 문화가 생겨서 다행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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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충북 옥천군 안남면 공동체식당 |
| ⓒ 월간 옥이네 |
독락정경로당은 공동체식당 이전부터 함께 밥 먹는 문화가 자리 잡혀있던 곳이다. 한 번에 주민 30여 명이 모이는 식사 자리 준비는 온전히 여성들의 몫이었다. 반찬 배달은 매번 마을 식탁을 채워야 했던 여성 주민들의 부담을 덜어주었다.
"마을 단합이 잘 되는 편이에요. 일주일에 세 번 이상 밥 먹는 자리를 마련해 대화하죠. 다 같이 식사를 준비해요. 마을에 사람이 적지 않아 다행이지만 다들 나이가 있어서 힘에 부칠 때가 있어요. 공동체식당으로 필요한 인원수만큼 반찬을 받으니까 훨씬 수월해졌죠." (이병순씨, 79)
이병식(71)씨는 모두가 시간 내서 모이는 자리에 어떤 반찬을 내야 할지 늘 고민이 많았다. 다양하고 좋은 식재료를 사용하기 위한 고민이 커질수록 장보기의 어려움도 커졌다. 차가 없거나 운전할 사람이 없으면 읍 지역의 마트에 갈 수 없기 때문이다. 면 지역에서 장을 보더라도 많은 식재료를 옮겨야 하는 만큼 차량을 가진 운전자와 일정을 맞춰야 했다. 이러한 고민들을 해결해 준 것이 공동체식당의 반찬 배달이었다.
"농촌에서 밥 먹는 문화는 중요하죠. 만나고 이야기할 수 있게 이어주니까요. 그러니 대충 먹을 수 있나요. 간단하게 먹더라도 라면 말고 국수 삶아 먹게 되는 거죠. 되도록 제철 음식, 고기반찬으로 든든하게 먹고 싶어요. 자주 모이는 만큼 장도 자주 봐야 하는데, 버스로는 힘들죠. 거리도 있고 양도 많으니까요. 젊기라도 하면 좋을 텐데 그것도 아니고... 한 끼 먹는 데 드는 여러 어려움을 반찬 배달이 해결해줘요."
주민들의 일손을 줄이고 건강한 먹거리로 식탁을 채워주는 공동체식당은 올해 상반기에 종료될 예정이다. 얼마 전 이 소식을 접한 유경희(71)씨는 걱정이 앞섰다.
"지금은 일주일에 한 번이지만 회차가 더 많아지길 바랐던 터라 서비스 종료 소식이 더 아쉬워요. 그래서 군수님이 면 순방 왔을 때 공동체식당이 종료되지 않게 지속할 방법을 찾아달라고 강력하게 이야기했죠."
마을 기금을 활용하는 방안도 고민해봤지만 형편이 넉넉지 않아 그마저도 어렵다.
"대한노인회에서 마을 기금 87만 원 이상, 하반기 두 번 나와요. 전기요금 등의 경로당 유지비로 사용하면 13만 원 정도가 남아요. 그 돈으로 밥 해 먹는 건데, 주민이 많이 모이면 30명 가까이 되니까 제대로 된 한 끼 먹으려면 부족하죠. 공동체식당에서 쓰기에도 부족하고 무엇보다 쓰고 싶어도 주민들 동의가 있어야 하니까... 군 차원에서 재정을 마련해 안정적으로 유지되길 바랄 수밖에 없어요." (유경희씨)
[다음 기사]
세 명의 여성 손에서 탄생하는 반찬 320인분 https://omn.kr/2he9x
월간옥이네 통권 105호
글·사진 김혜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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