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사 '순서' 잡으려면 몇 날 며칠 입원? 병원이 이래서 되나요

서이슬 2026. 3. 21. 1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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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소질환 아이 검사를 위해 입원한 상급종합병원, 그곳에 환자와 보호자를 위한 공간은 없었다

[서이슬 기자]

 상급종합병원은 고난도의 검사와 치료를 요하는 중증질환 환자, 희소질환 환자, 수술 대기 환자, 갑작스러운 응급외상환자 등으로 늘 북새통을 이룬다.
ⓒ marceloleal80 on Unsplash
선천성 희소복합혈관질환인 KT 증후군 환자들은 정기적으로 관찰을 위한 검사를 진행하는 경우가 많다. 작년 말, 청소년기에 들어선 아이가 심한 통증을 호소하며 다리를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이 벌어졌다. 혹시 이전에 없던 무언가가 새로 진행되는 것은 아닌지 확인하기 위해 오랜만에 MRI를 찍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오래전부터 염두에 두었으나 아이가 어려 시도하지 못했던 림프신티그래피라는 검사도 같이 해야겠다는 생각에 담당 교수님과 상의해 입원 예약을 한 것이 작년 12월의 일이다.

토요일 입원, 하지만 검사는 목요일 예정?

입원 예정일인 2월 21일은 토요일이었다. 2020년에는 평일 외래로 들어가 검사 후 바로 귀가를 했는데, 이번에는 토요일 입원이었다. 주말에는 응급한 경우가 아니면 검사를 진행하지 않는다는 것쯤은 알고 있었고, 늦어도 월요일 정규 진료 시간에는 MRI 촬영이 가능할 줄 알았다. 그런데 토요일 늦은 오후, 담당 간호사는 목요일이나 되어야 촬영이 가능할 것 같다는 소식을 전했다. 이럴 거면 왜 토요일부터 입원을 시키는 건지 잘 이해가 되지 않았지만 속시원한 답변은 들을 수 없었다. 나중에 검색을 해보면서 알게 된 것은, 이것이 우리가 다니는 소위 빅파이브(Big 5) 상급종합병원의 상시 과부하로 인해 구조적으로, 동시에 관행적으로 발생하는 일이라는 사실이었다.

상급종합병원은 고난도의 검사와 치료를 요하는 중증질환 환자, 희소질환 환자, 수술 대기 환자, 갑작스러운 응급외상환자 등으로 늘 북새통을 이룬다. MRI 등의 검사 수요도 항상 포화 상태일 것이다. 그러니 입원을 해서 병원 내에 자리를 잡고 있어야 그나마 검사를 빠르게 받을 수 있다. 여러 검사 대기 환자들 간에 우선순위가 실시간으로 조정되기 때문에, 빈 자리가 있을 때 빠르게 들어갈 수 있으려면 입원을 해서 병원 내에 대기하고 있어야 하는 것이다.

하지만 환자 입장에서는 정확히 언제 올지 확실하지 않은 그 '순서'를 붙잡기 위해 몇 날 며칠을 병원에 있어야 하니 여러모로 불합리하다. 불필요한 병원 체류로 인해 비용이 과다하게 발생하는데다, 보호자가 있어야 하는 경우 보호자의 생계에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우리의 경우 실제로는 검사가 화요일 오후로 당겨지긴 했다. 그 다음에 이어진 갑작스러운 수술 결정으로 결국 7박 8일을 머물러야 했지만 말이다.

사생활 보호도, 감염관리도 안 되는 다인 병실

입원 예약을 할 때 원하는 병실을 선택할 수 있는데, 6인실과 1, 2인실은 비용 차이가 상당히 나기 때문에 우리는 6인실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 2박 3일이면 검사를 마치고 퇴원할 줄 알았던 것과 달리, 여러 검사 끝에 급히 수술 결정이 나면서 입원 기간이 7박 8일로 늘어났고, 그 기간 내내 6인실에 머물러야 했다.

많이들 알다시피, 6인실은 수면과 사생활을 포기해야 하는 곳이다. 특히 보호자는 보호자용 간이침대에서 옴짝달싹 못한 채 잠을 청해야 하니 더 그렇다. 보호자용 침구가 제공되지 않기 때문에 보통은 집에서들 챙겨오는데, 대중교통으로 이동하는 우리는 캐리어에 넣을 수 있는 짐이 한계가 있어 제대로 된 침구를 챙길 수 없다보니 잠자리가 몹시 불편하다.

6인실, 그것도 어린이병동 6인실은 정말 다양한 소리가 한데 섞이는 공간이다. 소리만 섞이면 차라리 다행이겠다. 맞은편 침대 아이는 고열에 가래가 심해 밤새도록 석션기로 가래를 뽑아내야 했고, 그 옆에는 우는 것 밖에는 표현할 방법이 없는 영아가 들어와 있었다. 우리 바로 옆 침대 아이는 수술 직후 통증에 시달리느라 밤새 끙끙거렸고, 그 옆 침대 아이는 속에 든 것을 힘겹게 게워내야 했으며, 앞 옆 침대 아이는 소변통에 소변을 볼 때마다 소란스러웠다. 검사만을 위해 입원한 우리는 그 모든 소리와 상황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었다.

회진시간이면 누가 무슨 질환으로 어느 과 어느 교수님을 보고 있는지, 경과가 어떻고 병원에 얼마나 있었는지 힘 하나 들이지 않고 알 수 있었다. 6인실이라 어쩔 수 없다기엔, 너무나 무방비한 노출이다. 그게 불편하면 1인실 가지 그러냐는 말은, 하루 입원비로 50만 원을 쓸 수 있는 극소수 사람들에게나 통하는 말이니 여기서는 넣어두도록 하자. 게다가 우리는 그 흔한 '실비 보험' 하나 없고, 치료법 없는 선천성 희소질환자라 다른 데서는 받아주지 않으니 이 병원 말고는 갈 곳도 없다.

누구를 위한 공간인지 알 수 없는 휴게실과 백화점

낯 모르는 누군가와 커튼 하나 사이에 두고 살아야 하는 그 좁은 공간이 싫어 병실을 박차고 나와봐야 갈 곳은 휴게실 뿐이다. 하지만 휴게실에 있는 시설이라곤 병원비 정산용 키오스크 한 대, 벽에 붙은 TV, 2열로 늘어선 1인용 소파들, 그리고 자판기 두 대가 전부다. 같은 층에 '완화의료 프로그램'이라는 이름으로 잦은 입원, 장기 입원으로 병동에 오래 머무는 아이들을 위한 프로그램실이 있었지만, 7박 8일 머무는 동안 단 한 번도 그곳에서 무엇을 하는지 제대로 안내 받은 적은 없었다.

유학시절 낳은 아이라 해외의 아동병원에서 수술과 입원을 해본 경험이 있는 우리로서는 그 병원의 휴게실과 도서관, 놀이시설, 적극적이고 선제적이었던 사회복지사의 개입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런 시설들을 갖추자면 당연히 돈이 들고 감염예방을 위해 수시로 소독과 청소를 해야 하니 인력과 품이 든다. 한국 최고의 시설과 의료기술을 자랑하는 병원에 그런 시설과 인력이 전무한 이유가 무엇일지는, 누구나 짐작할 수 있을 테다.

그런가 하면 지하에는 난데없는 백화점과 비싼 베이커리 카페, 비싼 편의점, 비싼 일식당과 한식당이 들어서 있다. 환자복을 입은 환자들은 그런 식당에는 출입이 불가하지만, 백화점과 편의점, 베이커리 카페는 특별히 출입문이 있는 구조가 아니기 때문에 얼마든지 출입이 가능하다. 외래진료를 온 환자, 보호자와 외부 방문객들, 입원환자들이 한데 섞이는 지하 공간은 당연히 누군가에겐 감염의 원인이 될 텐데도, 어떤 제지도 찾아보기 어려웠다. 계절 옷과 침구류, 화장품, 옷과 가방, 신발, 안경, 주방기구... 이런 것들을 판매하는 작은 백화점이 병원 지하에 꼭 필요할까.

병원들, 언젠가는 달라질까

이 병원에 백화점 등의 상업시설이 들어선 것을 알리는 언론기사가 2000대 초로 검색된다. 그만큼 이미 오래된 일이라는 뜻이다. 20여 년이 지나는 동안, 병원 내 부대시설은 줄기는커녕 늘어나기만 했을 것이다. 2008년 당시의 언론 보도는 이런 쇼핑몰 시설이 "쇼핑할 시간이 부족한 병원 직원과 입원 환자"를 위한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

심지어 "입원 환자들이 무료함을 달래기 위해 윈도우 쇼핑을 많이 하는 것도 재미있는 현상"이라고 말했다는 관계자의 코멘트도 실려 있다. 병원 직원이 쇼핑할 시간이 부족한 건 장시간 근무 때문일 것이고, 입원환자에게 필요한 물건은 고급 가방이나 계절 옷, 주방기구가 아닐 텐데, 속이 빤히 들여다보이는 일을 이렇게 포장하고 있으니, 기가 찰 노릇이다.

병원 직원들에게 필요한 것은 적절한 처우와 적정 근무시간, 충분한 휴게시간이다. 그리고 입원환자와 가족에게 필요한 것은, 조금이라도 마음 편히 머물며 쉴 수 있는 공간, 가끔 책 몇 장 들춰볼 수 있는 공간, 아픈 몸에만 집중하지 않아도 되는, 마음의 짐을 조금은 덜고 일상을 이어나갈 수 있는 공간이다.
 나는 비싼 음식들 틈에서 컵라면 하나 마음 편히 먹을 곳이 없어 칼바람 부는 병원 테라스에 나가 벌벌 떨며 끼니를 때웠다. AI생성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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갓 태어난 아이가 희소질환 진단을 받아 검사를 진행하던 시기, 우리 부부를 먹이고 재워주었던 '로널드 맥도널드 하우스' 같은 병원 내 숙식제공 시설은 전국에 단 1개소에 불과하고, '환자방'으로 불리는 사설 숙박시설만이 난무하는 것이 우리 현실이다. 장기 입원 중인 아이들과 부모들이 가벼운 소설책 한 권, 잡지 한 권 집어들 수 있도록 하는 도서관이 갖춰진 병원 역시 찾아보기 어렵다.

크리스마스 시즌에 따뜻한 가정식을 제공받아 고마운 마음으로 지친 심신을 토닥였던 2012년 겨울과 달리, 2026년 초 나는 비싼 음식들 틈에서 컵라면 하나 마음 편히 먹을 곳이 없어 칼바람 부는 병원 테라스에 나가 벌벌 떨며 끼니를 때웠다.

환자-보호자의 일상을 지키기 위한 최소한의 시설과 문화를 조성하는 일을 왜 하지 않느냐 물으면 분명, 비용과 인건비와 관리의 어려움을 들고 나올 것이다. 우리가 정말로 그 정도 수준밖에 안 되는 나라인지, 묻고 싶다. 우리의 입원생활, 과연 언젠가는 슬기로울 수 있을까? 완치가 되지 않는 선천성 희소질환을 갖고 태어나 앞으로도 숱하게 입원 검사와 수술, 치료를 반복하게 될 내 아이에게 조금 더 나은 환경을 만들어주고 싶어서 오늘도 이렇게 글을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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