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년 여성의 알바 생활] 화장하는 아침

2026. 3. 21. 0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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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장 알바를 나가기 전 나는 매일 집에만 있는 게 우울했다.

제일 처음 출근한 아이돌 앨범 공장에 나온 알바들은 대부분 나 같은 중년 여성들이었는데 다들 깨끗하게 옷을 입고 화장을 하고 있었다.

언니는 공장에 나올 때 일부러 신경 써서 옷을 입고 화장을 한다고 했다.

그날 이후 나도 공장 알바를 나가는 아침이면 깨끗한 옷을 골라 입고 화장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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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로운 작가


공장 알바를 나가기 전 나는 매일 집에만 있는 게 우울했다. 가까운 마트에 가기 위해 세수를 하고 옷을 입는 것도 귀찮았다. 집에서 입던 무릎 나온 바지와 오래 입어 목이 늘어진 티셔츠를 그대로 입고 나갔다. 화장 따위는 하지 않는 게 당연했다. 운동을 하지 않아 살이 찌고 몸이 아팠다. 매일 아침 일어나면 내가 왜 이렇게 사나 자괴감이 들었다. 거울을 보니 초라한 내가 보였다.

더 이상 이렇게 살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번 태어났는데 이렇게 무기력하게 살 수는 없는 거 아닌가. 뭔가를 하겠다고 결심하고 가장 빨리 돈을 벌 수 있는 방법을 찾았다. 내가 사는 동네에서는 그게 공장 알바였다. 지역 기반 앱에서 알바 자리를 찾았다. 지원을 해놓고도 연락이 올까 정작 자신이 없었지만 인력 알선 업체에서 금방 연락이 왔다. 심지어 업체에서는 알바 자리가 아주 많으니 꼭 나와 달라고 부탁을 했다. 아침에 일어나 공장에 출근하기 위해 가장 신경을 쓴 건 밥을 먹는 일이었다. 배가 고프면 일을 잘 못할 것 같았다. 평소에는 거르던 밥도 챙겨 먹었다. 그러곤 세수를 하고 옷을 입었다. 공장일을 할 테니까 편하고 더러워도 괜찮은 후줄근한 옷을 입었다. 화장 따윈 하지 않았다.

그런데 공장에 출근하니 내가 제일 후줄근했다. 제일 처음 출근한 아이돌 앨범 공장에 나온 알바들은 대부분 나 같은 중년 여성들이었는데 다들 깨끗하게 옷을 입고 화장을 하고 있었다. 정신이 번쩍 들었다. 비록 앨범을 포장하는 단순 반복 공정이었지만 눈을 반짝이며 최선을 다했다. 끝나고 퇴근할 때는 뿌듯한 얼굴들이었다. 보기에 좋았다.

얼마 후 처음으로 간 의류 포장 공장에서 나를 가르친 언니를 만나게 됐다. 화장을 곱게 하고 힙한 앞치마를 두르고 있어서 내 나이 또래거니 했다. 그런데 언니는 60대 초반이었다. 언니는 공장에 나올 때 일부러 신경 써서 옷을 입고 화장을 한다고 했다. 그게 일하는 예의라고. 그날 이후 나도 공장 알바를 나가는 아침이면 깨끗한 옷을 골라 입고 화장을 했다. 그러면 훨씬 자신감을 가지고 하루를 시작할 수 있었다. 그렇게 오래 알바를 하게 되었다.

의류 포장 공장 알바 경력이 좀 붙었을 때 이제는 거꾸로 새로 시작하는 알바들을 대하게 되었다. 이들이 아침에 출근할 땐 희망찬 얼굴이 빛났다. 눈을 반짝거리며 설명을 듣고 성심성의껏 옷을 접고 포장을 했다. 흐트러진 옷이 깨끗이 접힌 모양을 보면서 성취감을 느꼈다. 반장의 말을 잘 듣고 동료들과 잘 지내기 위해 애를 썼다. 퇴근할 때는 지친 얼굴에서도 뿌듯함이 느껴졌다.

나는 그녀들이 알바를 시작하기 전 나처럼 우울하고 사는 의욕이 없었을 것이라고 짐작해 본다. 옷을 깨끗이 입고 화장을 하고 일하러 나오면서 사는 데 의욕을 되찾았을 것이다. 자신을 가꾸고 일하러 나오는 게 인생을 가꾸는 것이라는 걸 느꼈을 것이다. 오랫동안 집에서 누군가의 아내, 누군가의 엄마로만 살다가 나 자신으로 무언가를 성취하는 보람에 뿌듯했을 것이다.

김로운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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