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대폰 두 개 들고 다니던 교사들, 이제 한시름 놓을 수 있을까

오성훈 2026. 3. 20. 2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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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교육청 2026 교육활동보호 매뉴얼, 교사 '각자도생의 시대' 끝내겠다는 제도적 선언

[오성훈 기자]

▲ 연결의 과잉 시대, 교사가 세운 '최후의 방어선' 서랍 속 깊숙이 있던 낡은 휴대폰에 새 유심을 끼웠다. 34년 차 교사인 아내가 다시 담임을 맡으며 스스로 세운 사생활의 방어선이다.(웍스 이용한 AI이미지)
ⓒ 오성훈
3월, 담장을 넘어온 개나리가 새 학기를 알리지만 학교 현장의 공기는 여전히 비장하다. 며칠 전, 아내는 서랍 깊숙이 넣어두었던 낡은 휴대폰을 꺼내 새 유심칩을 끼웠다. 몇 년간 부장 보직을 맡아오다 다시 1학년 담임을 맡게 된 아내의 자구책이었다.

이제 아내의 가방 속에는 두 개의 휴대폰이 들어 있다. 하나는 가족과 친구의 안부가 담기는 일상의 창이고, 다른 하나는 학부모와 학생의 호출이 쏟아질 업무의 전장이다. 34년 차 교사인 나에게도 그 풍경은 낯설면서도 아팠다. 퇴근 후 집에서도 휴대폰 알람 소리에 가슴이 철렁 내려앉아야 했던 지난 세월의 상처가 그 낡은 기기 속에 투영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밤 11시에 걸려 오는 전화

왜 우리 시대의 교사들은 두 개의 번호를 가져야만 할까. 기술의 진보는 '연결의 과잉'을 낳았고, 공적 업무와 사적 생활의 경계는 처참히 무너졌다. 밤 11시에 걸려 오는 전화나 무단 촬영, 녹음은 이제 단순한 불편함을 넘어 교사의 인간적 존엄을 위협하는 수준에 이르렀다. 이러한 절박함 속에 서울특별시교육청이 내놓은 '2026 교육활동보호 매뉴얼'은 교사들이 스스로 휴대폰을 두 개씩 들고 다녀야 하는 이 서글픈 '각자도생의 시대'를 끝내겠다는 제도적 선언이다.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은 용어의 재정의다. 매뉴얼은 '교권 침해'라는 관습적 표현 대신 '교육활동 침해행위'라는 법적 용어를 명확히 쓴다. <교원지위법> 제19조에 근거한 이 용어 전환은, 교사가 안전하게 가르칠 수 없을 때 아이들의 배울 권리 또한 지켜질 수 없다는 지극히 상식적인 진리를 법적 근거로 명시한 것이다. 일부에서 교권 보호를 학생·학부모의 권익과 상충하는 개념으로 여겼던 오해를 풀기 위한 언어의 재설계이기도 하다. 물론 매뉴얼 곳곳에 '교권 침해'라는 단어가 나오지 않는 것은 아니다.

매뉴얼은 아내가 왜 휴대폰 두 개를 써야 했는지에 대해 구체적인 해법도 제시한다. 학생과 보호자가 지켜야 할 실천 수칙을 명시하여 교사의 사생활을 보호한다. 교육활동 중인 교사의 모습이나 목소리를 촬영·녹음하여 합성하거나 공유하는 행위를 금지하고, 야간이나 주말에 긴급하지 않은 일로 연락하는 행위를 자제하도록 하는 디지털 예절을 요구한다. 상담이 필요한 보호자는 '학교 방문 사전 예약제'를 통해 근무 시간 중 소통하며, 문제가 생겼을 때는 감정적 대응보다 객관적 사실관계를 먼저 파악하는 성숙한 자세를 강조한다.

374명의 구조대가 진용을 갖췄다

만약 불행한 사태가 발생한다면, 이제 교사는 홀로 외로운 싸움을 할 필요가 없다. 교육활동 보호 업무 담당 장학사·주무관·교권전담 변호사 등으로 구성된 'SEM119'(Seoul Educational Ambulance 119) 교육활동보호 긴급지원팀이 출동한다. 2025년 12월 기준, 내부 인력과 외부 전문가를 합쳐 374명의 구조대가 진용을 갖췄다. 이들은 법률 자문부터 갈등 조정, 심리 상담에 이르기까지 교사가 처한 위기 상황에 원스톱으로 개입한다.
▲ 서울시교육청의 '2026 교육활동보호 매뉴얼' 요약도 긴급 지원팀 'SEM119'의 원스톱 대응부터 마음의 회복을 돕는 단계별 심리 상담 그리고 두터워진 법률·경제적 공제 서비스까지 담겼다. 각자도생의 길을 걷던 교사들에게 국가와 교육청이 내미는 공식적인 약속의 이정표다
ⓒ 오성훈
여기에 서울시교육청이 예산 전액을 출자하여 학교안전공제회에 위탁운영 하는 '교원보호(안심)공제'는 소송비 지원(최대 660만 원)과 손해배상 책임 지원(최대 2억 원) 등 폭넓은 보호망을 제공한다. 심리적 상처를 위한 치유 지원도 세분화되어 있다. 일상적 소진을 위한 '마음선(先)' 상담부터 사안 발생 시의 '마음생(生)', 피해 인정 후의 '마음동(同)', 자살위험성이 관찰되는 교원을 대상으로 추가로 제공되는 '마음행(行)' 상담까지, 사안의 단계별로 촘촘한 회복 경로를 마련했다. 보호의 범위 역시 학교 담장을 넘어, 피해 교사와 침해 학생이 반드시 같은 학교 소속이 아니더라도 법적 보호를 받을 수 있도록 확장되었다.

이 매뉴얼이 유의미한 이유

물론 솔직히 물어야 할 것들도 있다. 매뉴얼이 정교하게 설계된 만큼 현장 구현의 문제는 별개다. SEM119의 대표전화(02-1395) 운영 시간은 평일 오전 9시에서 오후 6시까지다. 하지만 실제 교육활동 침해가 가장 심각해지는 순간은 종종 그 시간 바깥에 존재한다. 효율적인 운영을 위해 시간 제한이 필요하겠지만 아쉽다. 긴급지원팀이 실제로 얼마나 신속하게 현장에 투입될 수 있는지, 심리상담 서비스가 소외된 지역의 교사들에게도 동등하게 접근 가능한지는 제도의 설계가 아닌 현장의 체감으로 평가받아야 한다.

그럼에도 이 매뉴얼이 유의미한 이유는, 처음으로 '학교 공동체의 약속'이라는 언어를 전면에 내세웠기 때문이다. 법이 모든 갈등을 해결해 주지는 못한다. 아내의 낡은 휴대폰이 다시 서랍으로 들어가는 날은 처벌이 강화될 때가 아니라, 선생님의 퇴근길을 존중하고 학교의 정당한 교육적 판단을 믿어주는 마음이 학교 안에 회복될 때 올 것이다.

제도는 뼈대를 세웠다. 그 뼈대에 살을 붙이고 온기를 불어넣는 것은 결국 우리의 몫이다. 이 약속이 종이 위의 글자로 남지 않고 학교 현장에서 살아 숨 쉬는가. 2026년 서울의 교실이 그 답을 만들어 가기를 바란다.

※ 이 글에 인용된 수치와 절차는 서울특별시교육청 <2026 교육활동보호 매뉴얼>(2026년 개정판)을 근거로 작성되었으며, 이 글은 필자 개인의 견해입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기사 채택 후 개인블로그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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