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진 동해 '바다 숲' 살리기, 남북이 함께 대응할 수 있다?

진재중 2026. 3. 20. 16: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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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각된 남북 관계 속, 바다에서 움트는 '해빙'... 해조류 중심 남북 공동연구 필요성 제기

[진재중 기자]

▲ 해조숲 해조류는 국경 없이 남과 북을 오가며 생명의 통로를 연다.
ⓒ 진재중
남북관계가 좀처럼 대화의 회복 기미를 보이지 않는 가운데, 뜻밖의 곳에서 '해빙(解氷)'의 씨앗이 움트고 있다. 그것은 정치 회담장이 아니라 바닷속, 그리고 해조류에서 출발했다.

20일 강원특별자치도 강릉시 사근진, 거센 파도 소리가 들리는 이 작은 해변에서 '한반도해조류포럼' 준비 모임이 열렸다. 해조류 연구 교수, 전문가, 어업인, 콘텐츠제작자들까지 다양한 분야의 사람들이 자리했다. 특히 이날 모임에는 서해안 백령도 어업인들이 함께 참여해 의미를 더했다. 서로 다른 바다를 마주하며 살아왔지만, 해조류라는 공통의 생태·생업 기반을 통해 하나의 바다 문제를 논의하는 모습은 그 자체로 '연결'의 상징이었다.

다시마 숲이 사라진 바다, 어업인이 증언한 동해안의 변화

강릉 사근진해변은 북한 해역에 자생하는 토종 다시마(개다시마)가 넓게 군락을 이루며 '토종 다시마의 고향'이라 불릴 만큼 풍요로운 바다였다. 이 다시마는 오랜 세월 지역 어민들의 삶을 지탱해온 중요한 자원이기도 했다.

사근진 앞바다에서는 예전에는 흔했던 토종 다시마와 참다시마가 거의 사라졌고, 톳·지누아리·곰피 같은 다양한 해조류도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 바다는 여전히 그대로지만, 해조 숲이 사라지면서 풍경은 과거와 크게 달라졌다. 이러한 변화는 단순한 자원 감소를 넘어 동해안 해양 생태계 전반에 영향을 미치고 있으며, 바다에 의존해 살아온 어민들에게도 큰 어려움으로 이어지고 있다.

이날 모임에 참석한 어업인들은 이러한 변화를 가장 가까이에서 체감해온 이들이었다. 바닷속의 미세한 변화부터 사라져간 생명의 흔적까지, 그들은 사근진 해역이 어떻게 달라졌는지를 몸으로 기억하고 있었다. 사근진 어촌계에서 평생 바다와 함께 살아온 전찬길 해양생태복원협회 이사장은 과거를 이렇게 회상했다.

"예전에는 바닷속을 들여다보기만 해도 다시마가 파도를 따라 춤추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었습니다. 바다는 그 자체로 숲이었고, 다시마는 늘 그 자리에 있었죠."

그러나 그는 "이제 다시마는 마음먹고 찾아 나서도 발견하기 어려운 해조류가 됐다"며 안타까움을 드러냈다. 이어 "그나마 고성 북쪽 해변 쪽으로 가면 다시마의 흔적을 만날 수 있지만, 이마저도 예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줄어들었다"고 덧붙였다.
 동해안에서 자생했던 토종다시마와 참 다시마는 자취를 감췄다.
ⓒ 진재중
경계를 넘는 바다, 연결을 만드는 해조류

바다는 경계를 구분하지 않는다. 동해의 물결은 남과 북을 나누지 않고 흐르며, 그 속에서 자라는 해조류 또한 하나의 생태계를 이룬다. 이러한 자연의 흐름 속에서 사람들은 새로운 가능성을 발견하고 있다.

포럼 관계자들은 해조류를 단순한 수산 자원이 아니라 '연결의 매개'로 바라본다. 남과 북이 공유하는 바다에서 자라는 해조류는 이해관계를 넘어 함께 논의할 수 있는 주제이기 때문이다. 특히 기후변화로 해양 생태계가 빠르게 변하는 상황에서, 해조류는 공동 대응의 필요성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존재다. 바다 온도와 환경 변화에 따라 해조류의 서식지도 함께 달라지고 있다. 이는 남북 모두가 직면한 현실이다. 이런 상황에서 해조류를 중심으로 한 협력은 환경 문제를 함께 해결해 나가는 출발점이 될 수 있다.

무엇보다 주목되는 점은 이 교류가 '작지만 지속 가능한 방식'이라는 데 있다. 거창한 정치적 합의가 없어도, 현장에서 시작되는 협력은 조용히 이어질 수 있다.
 한반도해조류포럼 홍보동영상 캡쳐
ⓒ 진재중
 한반도해조류포럼 홍보동영상 캡쳐
ⓒ 진재중
해조숲에서 찾은 새로운 남북 교류의 실마리

참석자들은 한반도해조류포럼 홍보 영상을 공유한 뒤, 향후 실행 과제를 중심으로 논의를 구체화했다. 논의는 한반도 연안 해조류 생태계의 조사와 복원을 출발점으로, 해조 자원을 활용한 어업인 소득 증대와 탄소 저감 전략, 정부·지자체와 연계한 남북 공동연구의 실행 방안을 마련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 특히 각 과제에 대해 참여 주체별 역할과 준비 사항을 점검하며, 선언을 넘어 실제 추진 가능성을 확인하는 단계로 나아갔다.

김영대 박사는 해조류가 단순한 자원을 넘어 일상과 산업, 환경을 포괄하는 공통 기반으로 인식되고 있다고 강조했다. 또한 해조류는 남과 북이 자연스럽게 가치를 공유할 수 있는 매개로서, 정치적 상황과 관계없이 교류를 이어갈 수 있는 가능성을 지닌 자원이라고 설명했다. 이를 바탕으로 해조류 중심의 협력이 현실적인 대안이 될 수 있다는 데 공감대가 형성됐다.

또한 동해안 전반에서 빠르게 확산되고 있는 바다 사막화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남북이 각각 대응하는 방식에서 벗어나 하나의 해역이라는 관점에서 공동으로 접근해야 한다는 필요성이 제기됐다. 김수아 인공어초협회 회장은 이 문제를 특정 지역에 국한된 현상이 아닌 공동 과제로 인식해야 한다고 강조하며, 해양 생태계 회복을 위해서는 조사와 데이터 공유, 기술 협력이 유기적으로 결합된 협력 체계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장태헌 백령도 선주협회 회장은 과거 다시마 교류 사례를 언급하며, 해조류가 이미 남북을 연결해온 실질적인 매개였음을 강조했다. 이러한 현장 경험은 협력 재개의 가능성을 보여주는 중요한 근거로 제시됐다. 학문적 관점에서는 남북 해역이 하나의 생태계로 연결돼 있다는 점이 재확인됐다.

해조류를 연구해온 강원대학교 김형근 명예교수는 북한 해역의 다시마가 동해안 일부 지역에 분포하던 토종 계통과 이어져 있다는 사실은, 해조류가 경계를 넘는 생명체임을 보여주는 사례로 제시됐다. 이를 바탕으로 생태적 공통성에 문화와 역사적 의미를 더해 나간다면, '하나의 바다, 하나의 생태계'라는 인식을 확산시키는 데 중요한 기반이 될 수 있다는 의견이 더해졌다.
▲ 한반도해조류포럼 모임 해조류를 통한 남북교류의 물꼬를트기 위한 다양한 의견이 개진되었다.
ⓒ 진재중
국경이 없는 해조류'가 남북의 문을 두드리다

모임 이후 참가자들은 사근진 해역을 찾아 해조숲의 자생 가능성을 직접 살폈다. 거센 파도가 부딪히는 암반 위에서도 어린 해조류는 묵묵히 뿌리를 내리고 있었다. 그 모습은 단절된 현실 속에서도 이어지는 생명의 힘과 바다가 지닌 연결성을 상징적으로 보여주기에 충분했다.

이날 논의된 협력의 가능성은 눈에 띄지 않지만 분명한 흐름이 되어 퍼져가고 있다. 바다는 멈추지 않고 흐르듯, 해조류를 매개로 한 이 작은 시도 역시 경계를 넘어 미래로 이어질 또 하나의 길을 조용히 만들어가고 있다.
 거친 파도 속에서도 다양한 해조류는 굳세게 생명을 틔우며 자라난다. 바다의 흐름을 따라 남과 북을 오가듯, 끊임없이 이어지며 그 생명력을 넓혀가고 있다.
ⓒ 진재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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