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 만에 만난 단종, 또 눈물 났습니다

황윤옥 2026. 3. 20. 15: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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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과 사는 남자> 라는 제목은 묘한 긴장감을 품고 있다.

그곳에 머물렀던 이는 어린 왕, 단종이었다.

사약이 기다리는 그때, 단종은 문을 걸어 잠그고 엄흥도가 만든 화살에 목을 넣는다.

엄흥도가 줄을 당겨 단종이 최후를 맞이하는 그 장면을 보고 울지 않을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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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영화 <왕과 사는 남자>

[황윤옥 기자]

<왕과 사는 남자>라는 제목은 묘한 긴장감을 품고 있다. '왕의'가 아닌 '왕과'라는 말은 그 거리가 안전하지 않음을 예감하게 한다. 개봉 전부터 여러 매체를 통해 접한 이 영화는 이상하게도 마음을 자꾸 흔들어 놓았다.

혼밥은 잘하는 편이지만 영화는 혼자 본 적이 거의 없다. 결혼 37주년 기념일에 오랜만에 남편과 영화관을 찾았다. 근래 남편과 함께 영화를 본 기억도 드물다. 그래서 오랜만의 영화관 데이트가 더 기대되었다.
 영화 <왕과 사는 남자> 스틸컷
ⓒ ㈜쇼박스
단종이 낯선 건 아니다. 20여 년 전, 학생들에게 역사를 가르친 적이 있다. 책에서 읽은 단종의 이야기가 오래 마음에 남았다. 그 허망함과 비애를 잊지 못해 아이들과 함께 대구에서 강원도 영월로 향했다. 동강에서 래프팅 체험을 한 다음 청령포를 찾았다. 사방이 물로 둘러싸인 그곳은 생각보다 고요했다. 그래서 더 쓸쓸했다. 또렷한 풍경은 희미해졌지만, 그때 느꼈던 막막함과 고립감은 지금도 남아 있다.

그곳에 머물렀던 이는 어린 왕, 단종이었다. 왕이었지만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시간. 권력의 중심에 있었으나 결국 가장 외로운 자리로 밀려났던 그의 삶을 떠올리자, 마음 한편이 서늘해졌다.

영화는 유해진 배우의 능청스러운 연기로 문을 연다. 익숙한 듯 가볍게 흘러가는 장면 속에서도 인물의 처지가 가볍지 않게 느껴졌다. 웃음을 이끌어내면서도 그 이면에 깔린 불안이 서서히 드러난다. 그 균형을 잡아내는 연기가 인상적이었다.

나는 단종을 떠올리면 늘 마음이 젖는다. 그래서였을까. 영화를 보는 내내 감정이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영화가 시작되기도 전에 몰입해 있었다. 이미 알고 있는 비극이기에, 화면 속 인물의 움직임 하나에도 시선이 오래 머물렀다.

"사약을 먹고 죽기는 싫다. 부디 그대의 손으로 강을 건너게 해 달라."

항복이 아니라 최후의 선택이었을지도 모르겠다. 단 한 번도 자기 의지대로 살지 못한 소년이 마지막 순간에 처음으로 자기 인생의 주인이 된 것이다. 사약이 기다리는 그때, 단종은 문을 걸어 잠그고 엄흥도가 만든 화살에 목을 넣는다.

"전하, 이제 강을 건너셔야지요."

엄흥도가 줄을 당겨 단종이 최후를 맞이하는 그 장면을 보고 울지 않을 수가 없었다. 옆에 있던 남편에게서도 훌쩍이는 소리가 들려왔다.

단종을 연기한 박지훈의 처연하고도 담담한 눈빛은 오래 기억에 남는다. 삶과 죽음의 경계에 선 인물이 보여줄 수 있는 가장 조용한 감정이 그 안에 담겨 있었다.

20여 년 전, 내 눈시울을 뜨겁게 했던 단종과 청령포의 기억은 영화 속에서 다시 살아났다. 막막함과 쓸쓸함으로 남아 있던 그 감정이, 스크린 위에서 또 한 번 나를 붙잡았다.

영화 <왕과 사는 남자>는 사실과 허구의 경계 위에서, 한 인간의 마지막 선택을 조용히 되짚는다. 그리고 그 선택이 남긴 감정은 영화가 끝난 뒤에도 쉽게 가라앉지 않는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브런치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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