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 잃은 18살 소년의 치즈 만들기, 청소년 관람불가인 까닭
[김상목 기자]
18살 소년 '토톤'의 일상을 들여다보면 이런 '금쪽이'가 따로 없다. 가족 부양을 위해 농사일에 분주한 아버지를 도울 생각은 안중에도 없다. 동네 또래 소년들과 어울려 매일 파티를 즐기며 만취하고, 여자애 꾀는 데에만 정신이 팔렸다. 집안일에 관심 없고 미래에 대한 계획 따위도 관심없다. 답답한 시골에서 그저 하루 하루 노는 게 즐겁기만 하다.
하지만 그의 행복하던 나날에 청천벽력이 떨어진다. 집안의 기둥이던 아버지가 사고로 세상을 떠나고 만 것. 철부지 소년에게 갑자기 7살 여동생을 돌봐줘야 하는 무게가 얹히지만, 아무 대책이랄 게 없다. 급한 대로 구한 농장 아르바이트도 시비 끝에 해고당해 생계가 막막하다. 우연히 들은 전통 치즈 경연 상금에 혹한 소년은 최고의 치즈 만들기에 무작정 뛰어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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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랑, 우유, 그리고 치즈> 스틸 |
| ⓒ 필름다빈 |
18살 소년 토톤의 가족에는 어머니의 자리가 공백이다. 낙농가를 운영하며 종일 바쁘게 일해서 가족을 부양하는 아버지의 노고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말썽꾸러기 장남은 꿈도 희망도 딱히 없는 채 방탕한 생활로 나날을 보낼 뿐이다. 의무교육은 마쳤지만, 상급학교 진학도 가업을 물려받을 의지도 도통 기색이 없다. 만취해 고단한 일과를 마친 아버지가 밤늦게 데리러 와야할 판이다.
그러나 일순간에 모든 게 바뀐다. 든 자리는 몰라도 빈 자리는 대번에 태가 나듯, 아버지의 존재만 믿고 무위도식하던 탕아에게 운명의 날이 온 것. 졸지에 자신만 바라보는 어린 여동생과 세상에 홀로 남겨진다. 어찌 된 일인지 이 남매에겐 그 흔한 일가친척 의지할 곳도 없다. 생계를 아버지의 노동에 전적으로 의존하다 보니 가업을 물려받을 엄두도 나지 않는다.
더는 목장 운영이 불가하니 당장은 농기구와 트랙터 같은 장비를 팔아치우지만, 호구지책에 불과할 따름, 뭐든 일자리를 찾아야 한다. 그나마 함께 어울리던 동병상련 친구들이 딱한 처지의 친구를 방문하지만, 딱히 큰 도움은 될 리 없다. 어렵게 구한 인근 낙농가 아르바이트도 성질 다스리지 못해 악연 있던 그집 형제와 싸움박질하다 해고되고 만다. 자신만 바라보는 어린 동생을 물끄러미 보던 소년의 눈빛이 바뀐다. 아르바이트하다 목격한 고향 특산물 콩테 치즈 경연에 참여해 상금을 받으려는 결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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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랑, 우유, 그리고 치즈> 스틸 |
| ⓒ 필름다빈 |
치즈를 만들겠다고 선포했는데 정작 소도 이미 다 팔았고 트랙터도 없는 처지다. 자동차 경주가 삶의 낙인 친구가 자기 애마를 희생해 트랙터는 구했지만, 젖소는 언감생심이다. 이때 토톤이 기막힌 잔꾀를 부린다. 자신이 일했던 치즈 공장에 최상급 우유를 공급하는 외딴 목장, 이곳을 지키는 또래 소녀를 유혹해 자리를 비운 사이에 친구들이 우유를 몰래 빼돌리자는 계획이다. 용케 이 어설픈 음모가 순조롭게 진행되어 우유를 확보하지만, 치즈 한 번 만들어본 적 없는 일당이 오랜 전통의 결실인 콩테 치즈를 만들기까진 갈 길이 까마득하다.
우스꽝스러운 촌극으로 보이지만, 영화 속 치즈 제조는, 주인공이 눈 동그랗게 뜨고 시청하는 유튜브 교육 채널처럼 차근차근 상세하게 묘사된다. 관객이 대수롭지 않게 가게에서 손에 덥석 짚던 치즈가 어떤 과정을 거쳐 제조되는지, 각각 공정마다 얼마나 많은 노동과 품이 투입되는지가 소상하게 해설된다. 특히 전통 방식으로 오랜 숙성을 거치는 단단한 재질의 경성 치즈 대명사인 콩테 브랜드이기에, 감독이 어릴 적 주변에서 바라보며 성장한 고향 특산물이기에 그 재현 수준은 웬만한 음식 영화 못지 않을 정도다.
이 유서 깊은 명품 치즈 생산의 전모가 친절하게 영화 내내 구현되지만, 절박한 사정이 생기기 전까지는 동네 토박이인 주인공조차 한 번도 제대로 만들어본 적 없다는 실태는, 프랑스 역시 도시화 경향 속에 지역 공동체가 위기를 겪고 있음을 은연중에 드러낸다. 일정 규모를 갖추고 목장과 제조공장을 설비 투자를 통해 분리한 이웃 농장도 가족 경영에 의존할 만큼 마을에는 젊은 일꾼이 부족하다. 토톤이 꾄 여자친구도 휴일조차 없이 새벽 5시에 기상해 밤 10시까지 일하는 고단한 노동에 시달린다. 코믹한 분위기 속에도 감독은 고향의 현주소를 깨알 같이 담아내기에 주저함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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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랑, 우유, 그리고 치즈> 스틸 |
| ⓒ 필름다빈 |
물론 영화는 그림 같은 판타지로 모든 걸 해결할 생각은 없다. 주인공의 진정한 각성은 역설적으로 조마조마하던 도전의 파국처럼 여겨지기 때문이다. 고급 숙성 치즈를 완성해 가족의 위기를 극복하고 성공의 길로 나아가야 하건만, 현실의 장벽은 절대 만만하지 않다. 토톤은 연인도 잃고, 친구와도 결별하고, 애써 만든 콩테 치즈로 우승하지도 못한다. 그야말로 총체적인 파국이다.
하지만 소년은 어른이 되기 위한 마지막 관문을 넘는다. 바로 자기 행동에 책임을 지는 주체로 일어서는 것. 여동생에게 부끄럽지 않게, 겨우 찾은 연인에게 진실하고 과오를 사과하기, 마지막 통과의례가 그 앞에 펼쳐진 것. 주인공은 이 장애물을 반드시 통과해야만 비로소 제대로 홀로서기를 완성할 수 있다. 처음 품었던 절박하지만 허황된 미몽에서 벗어나 현실에 발을 딛고 차근차근 전진하는 삶을 향한 구불구불한 길을 찾는 과정이 주인공을 바라보는 대견한 시선과 함께 서서히 형태를 갖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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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랑, 우유, 그리고 치즈> 스틸 |
| ⓒ 필름다빈 |
고향의 기억을 생생하게 녹인 이야기에 영화 속 인물들과 닮은 꼴 청소년 연기자 조합은 다큐멘터리와 다른 형태로 극사실주의를 구현한다. 실제로 농업고등학교에 다니며 소를 치거나 양계장을 돌보는 남녀 배우들이 활약하니 연기 연습이랄 게 딱히 없다. 오랜 친밀감과 익숙함, 자기 동네라는 익숙한 배경을 극강 효율로 누수 없이 접속한 덕분에 <사랑, 우유, 그리고 치즈>는 신예 감독이 써먹기 가장 좋은 요소, 성장기+가족+고향을 적재적소 활용해 탄탄하지만 뻔한 답습이 아닌 방식으로 구조화한다.
'깨 발랄' 기운이 넘실대지만, 불쑥 튀어나오는 매운맛이 느슨함을 찢는다. 청소년 성장기에 반드시 수반되는 성적 접촉, 서로 연결된 탓에 쉽게 부딪히는 폭력 등이 순화된 형태일지언정 은폐 없이 그려진다. 동네 사람들이 감정을 잘 드러내지 않는 언뜻 무뚝뚝한 면까지 제대로 구현된다. 감독이 고향에 애착을 간직한 채, 단순 소재로만 소모할 생각이 없기 때문일 테다. 자신의 뿌리를 부정하지 않고 연결을 유지하는 '태도'의 소중함이 한국의 신진 창작자에게도 모범이 될, '앙팡 테리블(무서운 신인)'의 등장이다.
<작품정보>
사랑, 우유, 그리고 치즈
Vingt Dieux
Holy Cow
2024|프랑스|코미디
2026.03.25. 개봉|92분|청소년관람불가
감독 루이즈 크루보아제
출연 클레망 파보, 루나 가렛, 마이웬 바르텔레미
수입/배급 필름다빈
2024 77회 칸영화제, 유스상(주목할 만한 시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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