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을 <보검 매직컬> 어윤옥·라옥자 할머니처럼
짧은 숏폼 콘텐츠가 대세인 시대에 느림에 주목합니다. ‘결과보다는 과정'을, '성공보다는 태도'를 보여주는 드라마나 예능에서 마음의 위로를 얻고 인생의 지혜를 발견하기도 합니다. '김지은의 그거 봤어?'에서 다루는 이야기입니다. <편집자말>
[김지은 기자]
<보검 매직컬>은 tvN의 예능 프로그램으로 박보검과 이상이, 곽동연이 전북 무주의 시골에서 헤어숍을 운영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박보검은 헤어 스타일링을, 이상이는 네일 아트를, 곽동연은 식사 및 붕어빵을 담당한다.
이 셋의 팀워크와 마을 주민과 오가는 정이 기대 이상으로 좋아 예상치 못한 곳에서 눈물이 나고 웃음이 터진다. 잔잔한 예능일 거라 생각했던 내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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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90살이신 어윤옥 할머니 90살의 연세에도 정정하신 어윤옥 할머니. '보검 매직컬' 에서 자신의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 |
| ⓒ tvN |
이를 지켜보던 나도 박보검, 이상이와 똑같은 표정이 됐다. 나이가 90세인데 저렇게 정정하시다고? 미용실에 같이 있던 마을 사람들은 어윤옥 할머니 별명이 '어박사'라며 모르는 게 없으시다고하하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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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92세에도 벽을 타시는 라옥자 할머니 92세에도 가뿐하게 몸을 움직이시는 라옥자 할머니. |
| ⓒ tvN |
일이란 참 묘하다. 때로는 '일'을 계속해야만 삶을 영위할 수 있는 현실이 답답하고 무섭다. 그래서 가끔 로또를 사며, '이것만 당첨되면, 일을 그만둬야지' 하고 생각한다. 내 주변의 모든 일을 다 뿌리치고 휘리릭 떠나고 싶다.
그러나 또 한편으로는 죽을 때까지 '일' 하고 싶다. 황석영 소설가, 후덕죽 셰프, 이순재 배우처럼 나이 들어서도 계속 현역이고 싶다. 은퇴한 후, 눈에 띄게 늙으신 주변 어른들을 보면서 '나는 은퇴가 없는 일을 하고 싶다'는 소망을 가진 지 꽤 오래 되었다.
영화평론가 이동진은 자신의 유튜브 '이동진의 파이아키아'에서 노동의 어원이 '무거운 짐을 지고 비틀거리는 것'이나 '슬픔'과 관련되어 있음을 언급하며 기본적으로 일은 힘들 수밖에 없다고 정의했다. 원래도 힘든 노동을 오로지 돈을 벌기위해 견디는 시간으로만 치부하면 그 인생은 행복하기 어려우므로, 노동의 시간 속에서 즐거움이나 보람을 찾아 적극적으로 행복해야 한다고 말한 것이 인상적이었다.
그의 말대로 일은 기본적으로 힘들지만 그 안에 보람이 있고 반짝이는 순간들이 있다. 어려운 목표를 성취했을 때 느끼는 기쁨과 함께 일하며 도움을 주고받는 경험은 무척이나 귀하다. 예전에 할 수 없었던 일을 할 수 있게 되면서 자신의 발전을 확인하는 과정도 재미있다. 내 일이 누군가에게 도움이 될 때의 보람도 빼놓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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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눈보라가 치는 덕유산에서 이상이와 곽동연의 상황극 이상이는 '생사를 오가는 산악대원'인 것처럼 상황극을 했는데, 네일 아트를 해주어야 함을 기억하고 벌떡 일어났다. |
| ⓒ tvN |
"여기서 포기할 거야? 여기서 포기하고 내려갈 거냐고?"
"먼저 가."
"아냐, 먼저 못 가. 눈 떠, 눈 뜨라고!"
"아, 네일 아트, 네일 아트하러 가야 해. 라 여사님 네일 수정해 드려야 해."
이상이의 말에 모두 웃음이 터졌다. 단지 상황극이었지만, 정말 어떤 상황에는 '일'이 나를 붙잡아 주기도 한다. 몸이 푹 꺼지고 그 자리에 주저앉고 싶을 때도 팀원에게 건네주어야 할 업무가, 내 원고를 기다릴 담당자의 눈빛이 날 일으킨다.
지금 하는 일과 지금 만나는 사람을 잘 돌보기
90대 할머니들의 또 다른 공통점은 주변에 함께 대화하고 웃을 사람들이 있다는 것이다. 노년까지 이어지는 단단한 관계는 어느 순간 갑자기 생기지 않는다. 평소에 정을 주고받으며 쌓인 시간이 안전하고 끈끈한 관계를 만드는 것일 터. 주변 사람들을 잘 돌아봐야 하는 이유다. 이건 비단 노후뿐 아니라 현재를 풍성하게 해 주는 일이기도 하다.
작년에 이사한 후 시작한, 나만의 다정한 일이 있다. 그건 바로 나보다 늦게 출근하는 남편에게 쪽지를 쓰는 거다.
'안녕, 오늘 식사는 육개장이야. 라면 먹지 말고 국 데워 먹어. 그럼 좋은 하루!'
이런 식의 쪽지에 불과한데, 어느 날 그 쪽지가 남편의 방에 있는 가족 사진이 전시된 곳에 붙어 있는 걸 발견했다.
'설마, 내 쪽지에서 사랑을 느낀 건가?'
그 뒤로 좀 더 정성 들여 쪽지를 쓰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 쪽지는 내가 귀가할 때까지 그냥 식탁 위에 붙어 있는 경우가 더 많았다. 남편의 방에 붙어 있는 쪽지의 기준은 대체 무엇인지... 궁금하지만 그렇다고 부러 묻지는 않았다. 그저 나만의 리그를 계속 이어가고 있을 뿐이다. 마침 서점에 갈 일이 있으니 귀여운 모양 포스트잇을 사서 거기에 메모를 적어봐야지.
100세 시대라고 하지만, 유병장수를 원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90대에도 정정하게 살기 위해 필요한 것은 어쩌면 거창한 비결이 아닐지도 모른다. 지금 하는 일과 지금 곁에 있는 사람들. 이 둘을 잘 가꾸며 살아가다 보면, 어윤옥 할머니와 라옥자 할머니처럼 웃으며 늙어갈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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