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는 질주, 세트는 감속…삼성 사업부 '명암 뚜렷'

임채현 2026. 3. 20. 1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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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도체에 110조 베팅…세트는 수요 둔화에 거점 축소
노사 갈등까지 겹친 '이중 압박'…사업부별 온도차 심화
서울 삼성전자 서초사옥. ⓒ연합뉴스

삼성전자가 인공지능(AI) 반도체 호황을 발판으로 대규모 투자에 나서며 반등 흐름을 타고 있지만, 사업부별 체감 경기는 극명하게 엇갈리고 있다. 반도체(DS)는 공격적 투자와 실적 개선 기대 속에 성장 축으로 부상한 반면, TV·가전(DX)은 수요 둔화와 생산 재편 압박에 직면하며 감속 국면에 들어선 모습이다.

20일 업계에 따르면, 삼성전자는 시설 투자와 연구개발(R&D)에 총 110조 원 이상을 집행하는 내용을 담은 '2026년 기업가치 제고 계획'을 전날 공시했다. 연간 투자 규모가 100조 원을 넘어선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지난해 90조4000억 원을 투자한 데 이어 올해는 약 21% 늘어난 수준이다.

투자는 사실상 DS 부문에 집중된다. 삼성전자는 메모리·파운드리·첨단 패키징을 아우르는 '원스톱 솔루션' 경쟁력을 강화하고, 고대역폭메모리(HBM) 등 고부가 메모리 시장에서 우위를 공고히 한다는 전략이다. 평택캠퍼스 P4 공정 효율화와 P5 구축, 미국 테일러 파운드리 공장,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 등 대규모 인프라도 동시에 추진 중이다.

반면 세트 사업은 상황이 다르다. 글로벌 TV 시장은 성숙 단계에 접어든 데다 최근에는 교체 수요마저 둔화되며 성장세가 꺾인 상태다. 프리미엄 중심 전략이 강화되고 있지만, 전체 시장 규모는 정체 흐름을 보이고 있다. 이런 흐름 속에서 삼성전자 TV 유럽 생산 거점인 슬로바키아 공장이 문을 닫는 것으로 전해졌다.

회사 측은 생산 효율화 차원의 조정이라는 입장이지만, 업계에서는 글로벌 TV 수요 둔화와 비용 부담이 맞물린 결과로 해석한다. 회사는 그간 슬로바키아를 포함해 멕시코, 브라질, 베트남, 태국, 인도네시아, 인도, 헝가리, 이집트, 남아프리카공화국 등 약 10개의 글로벌 TV 생산 거점을 기반으로 분산 생산 체계를 운영해 왔다.

슬로바키아가 제외될 경우 생산 거점은 9곳으로 재편되며, 기존 물량은 헝가리를 비롯한 타 지역으로 분산될 것으로 보인다. 카자흐스탄을 포함해 아프리카 일부 지역 등에서는 현지 위탁 생산 방식도 병행하고 있어, 수요 변화에 대응한 유연한 공급망 전략을 이어간다는 방침이다.

이처럼 삼성전자 내부에서도 반도체 부문에서는 공격적인 투자 확대가 이어지는 반면, 세트 사업에서는 수요 둔화에 대응한 생산 재편이 병행되는 '이중 전략'이 전개되고 있다. AI 호황의 수혜가 사업부 전반으로 확산되기보다는 특정 영역에 집중되고 있다는 점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대목이다.

이러한 온도차는 최근 노사 내부에서도 그대로 나타난다. 삼성전자 노동조합 공동투쟁본부는 최근 쟁의행위 찬반투표에서 93.1%의 찬성률로 쟁의권을 확보하고, 오는 5월 총파업을 예고한 상태다. 회사는 현재 OPI(초과이익성과급)에 연봉의 50% 상한을 두고 있는데 노조는 이를 폐지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특히 이를 주도하는 것은 현재 성과가 나고 있는 반도체 부문 중심이다.

지난해 4분기 기준 삼성전자 영업익을 보면 DS 부문과 DX 부문의 영업이익 격차는 10배 가량 벌어졌는데 OPI 상한선이 폐지될 경우 양 부문의 성과급 격차가 크게 벌어진다. 이에 DX 부문에서는 파업 동참 분위기가 상대적으로 미미한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 세트 사업은 지난해 일부 사업에서 손실을 기록하는 등 투자 여력도 제한적인 상황이다.

한편 이번 노조의 파업을 바라보는 외부의 불안감도 커지고 있다. 차세대 HBM4 양산 시점과 파업 시기가 맞물릴 가능성이 높은데, AI 반도체 수요 대응이 중요한 시점에서 생산 차질이 발생할 경우 고객사 대응과 수주 경쟁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 노조는 '생산 차질'을 목표로 앞세운 상태다. 시장에서는 대규모 투자가 반도체에 집중된 상황에서 생산 변수가 겹칠 경우 투자 성과의 불확실성이 확대될 것이라 걱정하는 모습이다.

이를 두고 업계 한 관계자는 "결과적으로 회사를 둘러싸고 주주, 근로자, 나아가 그 속에서도 사업부 간 체감 경기가 서로 다른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다. 외부에서는 주가 상승과 실적 회복 기대 속에 긍정적인 분위기를 보이고 있지만, 내부에서는 실제 업황 간의 격차 심화에 따른 긴장이 큰 상태"라며 "AI 투자 확대가 실적 반등으로 이어지더라도, 사업부 간 격차와 노사 갈등을 관리하지 못하면 내부 균열이 리스크로 확대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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