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양이 이기셨다
전쟁 속 이란 지하교회
기독교인을 향한 공개서한
BSH 동역자들을 대표해

지금으로부터 9년 전 4월, 튤립이 만발하던 시기에 저는 이란을 방문한 적이 있습니다. 한국 땅을 떠나 이란에 도착했을 때 막연한 두려움과 잘못된 선입견은 완전히 깨졌습니다. 테헤란의 밝은 시민들, 자그로스산맥 해발 1600m에 자리한 장미의 도시, 고레스왕의 위상이 돋보이는 찬란한 페르시아 문명의 유적 페르세폴리스, 그리고 ‘세계의 절반’이라 불리는 아름다운 전통 도시 이스파한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합니다. 특히 테헤란의 공원에서 만개한 튤립의 총천연색 물결을 바라보며 저는 이 땅이 얼마나 깊은 역사와 문화의 아름다움을 품고 있는지, 여러분들이 얼마나 따뜻한 분들인지를 깊이 느끼게 되었습니다.

그때 저는 또 하나의 사실에 깊이 감사했습니다. 종교 경찰의 집요한 감시와 핍박 속에서도 이란 지하교회가 더 단단하게 뿌리내리고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당시 이미 100만명 넘는 성도들이 있다는 이야기를 들으며 하나님께 감사했습니다. 그리고 최근에는 그 수가 수백만을 넘어, 어떤 보고에 따르면 1000만명에 가까운 가정교회 공동체로 성장하고 있다는 소식을 듣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지금의 상황은 참으로 마음을 아프게 합니다. 멀리 대한민국 땅에서 세기말적인 전쟁터가 되어버린 여러분의 조국을 바라볼 때마다, 제 마음 깊은 곳에서 탄식의 기도가 올라옵니다. 우리는 서로의 얼굴을 모릅니다. 그러나 우리는 같은 이름을 부르는 사람들입니다. 같은 주님의 이름을 부릅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한 형제자매입니다. 그래서 여러분은 낯선 사람들이 아니라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던 가족처럼 느껴집니다.
여러분의 하늘에는 평온 대신 전투기의 굉음이 지나가고, 도시의 밤은 고요 대신 폭발 섬광으로 흔들립니다. 어떤 날에는 갑작스러운 폭격 소리에 잠에서 깨어나고, 어떤 날에는 사랑하는 가족과 이웃의 안부를 확인하기 위해 숨죽이며 전화를 붙들고 있어야 할지도 모릅니다. 누군가는 집을 떠나야 하고, 누군가는 폐허가 된 거리를 지나며 내일이 어떻게 될지 알 수 없는 시간을 살아갑니다.
최근 지하교회 성도들이 보내온 편지들을 보면 많은 성도들이 공습과 미사일 소리 때문에 심각한 심리적 충격을 겪고 있다고 합니다. “너무 무서워서 부엌에서 냄비가 떨어지는 소리만 나도 잠에서 깼습니다. 심장이 너무 빨리 뛰었습니다.” 그들은 평범한 소리조차 폭발음처럼 들릴 만큼 감각이 극도로 예민해졌다고 말합니다. 또한 많은 가정이 심각한 경제적 어려움 속에 있습니다. 어떤 부모들은 고기나 쌀을 살 수 없어 아이들이 배고픈 채 잠자리에 드는 것을 지켜보아야 하는 아픈 현실을 이야기합니다.
그러나 그 편지들 속에는 놀랍도록 깊은 믿음도 함께 담겨 있습니다. 많은 성도는 해외 교회에서 보내오는 기도와 격려의 메시지를 전쟁의 추위 속에서 자신들을 덮어 주는 ‘따뜻한 담요’라고 표현했습니다. 극비리 전달된 물품에 대해서도 “하나님의 손이 우리에게 닿았다”며 감격해 합니다. 주님은 여러분을 향해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는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를 구속하였고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 것이라…네가 불 가운데로 지날 때에 타지도 아니할 것이요 불꽃이 너를 사르지도 못하리니.”(사 43:1~2) 여러분은 주님의 소유입니다. 더욱 담대하십시오.
이란인은 단지 강한 민족이 아니라 깊은 영혼을 가진 민족입니다. 페르시아 문명은 오래전부터 사색과 시, 철학과 아름다움을 사랑하는 문화였습니다. 세계가 여전히 전쟁과 권력의 언어로 움직이던 시대에도 페르시아는 시와 철학, 예술과 정원의 문화를 꽃피웠습니다. 그래서 이란 사람들은 단지 현실을 사는 사람들이 아니라 의미를 찾는 사람들입니다. 질문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고 삶을 깊이 사유하며, 언어를 단순한 소통의 도구가 아니라 영혼을 담는 그릇처럼 사용합니다. 하페즈와 루미 같은 위대한 페르시아 시인들의 작품이 수백 년간 사랑받는 이유도 여기 있습니다. 그것은 단순한 문학이 아니라 영혼의 갈망을 표현한 언어이기 때문입니다.
또한 이란 민족의 역사 속에는 고난을 견디는 강한 영성이 있습니다. 특히 시아파 전통 속에서 강조되는 카르발라의 기억은 정의와 희생, 그리고 기다림의 영성을 이 민족의 마음 깊은 곳에 남겼습니다. 그래서 이란 사람들은 고난 속에서 진실과 의미를 찾으려는 깊은 영적 감수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바로 이 점 때문에 이란은 놀라운 방식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복음과 깊은 접점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십자가 역시 고난 속에서 드러난 사랑이며, 희생 속에서 드러난 구원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많은 선교학자가 말합니다. 이란은 단지 복음이 들어가야 할 나라가 아니라 복음을 가장 깊이 이해할 수 있는 영적 토양을 가진 나라라고. 저는 바로 그 이유로 하나님께서 오늘날 이란 교회를 놀라운 방식으로 일으키고 계신다고 믿습니다.
성경 속에도 지금 여러분과 같은 질문을 하나님께 드린 사람이 있습니다. 하박국은 폭력과 혼란 속에 살았습니다. 정의는 무너지고 강포가 가득했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외칩니다. “여호와여 내가 부르짖어도 주께서 듣지 아니하시니 어느 때까지리이까.”(합 1:2) 이 질문은 단지 옛 선지자의 질문이 아닙니다. 전쟁 속에서 살아가는 모든 시대 사람들의 질문입니다. 왜 고통이 멈추지 않는가. 왜 하나님은 침묵하시는 것처럼 보이는가.
그러나 하나님은 결국 하박국의 질문을 찬양으로 바꾸십니다. “비록 무화과나무가 무성하지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외양간에 소가 없을지라도 나는 여호와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리로다.”(합 3:17~18) 하박국은 역사의 끝을 보았기에 최후 승리를 확신합니다. 사람의 눈에는 혼란처럼 보이는 파괴적인 상황에서도 하나님은 여전히 역사를 주도하시며 붙들고 영광의 빛을 발하고 계십니다.
여러분이 살아가는 이란 땅은 한때 페르시아라 불리던 땅입니다. 성경 속에서 페르시아는 특별한 의미가 있습니다. 앗수르는 북이스라엘을 멸망시켰고 바벨론은 예루살렘을 무너뜨렸으며, 로마는 십자가를 통해 폭력의 질서를 완성한 듯 보였습니다. 그러나 페르시아는 달랐습니다. “바사 왕 고레스의 마음을 여호와께서 감동시키시매….”(스 1:1) 이 한 문장 속에서 역사의 거대한 반전이 시작됩니다.
포로는 귀환으로, 폐허는 재건으로, 눈물은 다시 소망으로 바뀌었습니다. 더 놀라운 것은 하나님께서 이방 왕 고레스를 향해 “나의 기름 부음 받은 자”라고 부르셨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은 때로 당신을 모르는 왕도 사용하시고, 당신의 이름을 부르지 않는 제국도 사용하시며, 당신의 백성이 전혀 예상하지 못한 방식으로 회복의 문을 여십니다.
페르시아는 강해서 중요한 제국이 아니라 하나님께 붙들려 회복의 통로가 되었기 때문에 중요한 제국입니다. 지금 이란의 고통을 영적으로 해석한다면 저는 세 가지를 말하고 싶습니다. 첫째 모든 헛된 우상과 인간 권력의 한계가 드러나는 시간입니다. 둘째 잠든 영혼을 깨우는 깊은 질문이 살아나는 시간입니다. 셋째 십자가와 부활의 복음이 전파되는 황금 같은 기회의 시간입니다. 사실 성경에서 가장 큰 각성과 회복은 종종 문명이 자신을 신뢰할 수 없게 되었을 때 시작되었습니다. 지금이야말로 복음이 이란의 모든 영역에 깊숙이 침투할 수 있는 황금 같은 기회입니다.
선교학적으로 이란이 중요한 이유도 여기 있습니다. 제도화된 종교에 대한 피로, 페르시아 문화의 시적·초월적 영성, 최근의 디지털 탐색 확산이 함께 작동하면서, 이란은 단순히 억압받는 나라가 아니라 ‘깊은 영적 질문이 분출되는 나라’ ‘십자가 복음에 열정적으로 반응하는 나라’가 되고 있습니다. 그래서 세계 선교학자들이 이란을 21세기의 핵심 부흥 가능 국가 중 하나로 보는 것은 과장이 아닙니다. 사회·문화, 영성·디지털 조건이 동시에 바뀌고 있기 때문입니다.
객관적으로 현재 전황은 매우 위험하고 단기적으로는 더 나빠질 가능성도 있습니다. 그러나 벼랑 끝에서 급속하게 타결될 가능성도 있습니다. 어떤 상황이든 성도들이 붙들어야 할 핵심은 ‘하나님은 고통을 가볍게 여기지 않으신다’ ‘하나님은 제국의 충돌 위에서도 역사를 주관하신다’ ‘하나님은 이란 땅에서 새로운 일을 행하기 원하신다’입니다. 그래서 믿고 확신합니다. 지금 전쟁의 소리 속에서도, 지금 두려움과 눈물 속에서도 하나님은 여전히 여러분을 붙들고 계십니다. 그리고 어떤 상황 속에서도 순교적 신앙을 가진 지하교회를 계속 일으킬 것입니다.
이런 영적 각성을 통해 이란은 물론 무슬림 세계 가운데 수많은 영적 탐색자들이 살아계신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리라 확신합니다. “눈을 들어 밭을 보라 희어져 추수하게 되었도다.”(요 4:35) 우리가 보는 것은 전쟁과 혼란일지 모르지만 주님은 희어져 추수할 영혼들을 보고 계십니다.
마지막으로 여러분을 위해 기도하는 것은 영적 분별력입니다. 싸움의 대상을 명확히 해야 합니다. 우리의 싸움은 증오의 싸움이 아니라 믿음의 싸움이며 총체적 영적 전쟁입니다. 우리의 무기는 폭력이 아니라 절대진리와 하늘의 사랑입니다.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을 상대하는 것이 아니요 통치자들과 권세들과 이 어둠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을 상대함이라.”(엡 6:12)
요한계시록은 역사의 마지막 장면을 우리에게 보여 줍니다. 전쟁의 소리와 제국의 충돌이 지나간 뒤 우리는 한 장엄한 장면을 보게 됩니다. 하늘의 보좌 앞에 죽임을 당하신 어린 양이 서 있습니다. 그는 십자가로 승리하신 왕입니다. 그의 못자국과 상처는 패배의 흔적이 아니라 영원한 승리의 표식입니다.
그래서 하늘과 땅과 바다에 있는 모든 피조물이 함께 외칩니다. “죽임을 당하신 어린 양은 능력과 부와 지혜와 힘과 존귀와 영광과 찬송을 받으시기에 합당하도다.”(계 5:12) 그리고 성경은 선언합니다. “어린 양은 만주의 주시요 만왕의 왕이시므로 그들을 이기실 터이요.”(계 17:14) 어린 양이 이기셨다!
이 승리는 세상 모든 권세에 대한 하나님의 최종적인 대답이며, 어둠을 뚫고 일어나는 진리와 사랑의 승리입니다.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요 16:33) 우리는 주님이 이미 선포하신 승리를 누리는 자들입니다. 그리고 그 승리는 이미 십자가와 부활 안에서 시작되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두려움 속에서도 소망을 말할 수 있고 눈물 속에서도 찬양할 수 있습니다. 어린 양이 이기셨다! 어린 양이 이기셨다!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그 어떤 경우에도 하나님의 사랑과 선하심을 의심하지 말고 절대감사, 절대찬송으로 담대히 나아가십시오. 이란 교회를 위해 기도합니다.
1. 전쟁 속에서도 믿음이 강해지고 교회가 확산되는 영적 대반전을 위해
2. 지하교회 성도들과 그 가족들의 안전과 보호를 위해
3. 영적 리더들의 순교적 믿음과 담대한 증언을 위해
4. 헌신적인 이웃 사랑을 통해 무슬림 이웃들에게 복음이 전해지도록
5. 이란의 젊은 세대가 영적 각성을 통해 부흥의 주역이 되도록
6. 이란 교회가 중동과 이슬람 세계를 향한 선교 교회가 되도록
7. 이번 전쟁을 계기로 중동 전역에 대부흥과 대추수가 일어나도록

황성주
미션펀드 회장·사랑의병원 원장
GoodNews paper ⓒ 국민일보(www.kmib.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Copyright © 국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소형교회 사모 10명 중 4명, 사모의 길 만류한다
- 발달장애인 아우른 예배 꽃 피우기, 사역 방법 찾는다
- 편 가르는 정치색 벗고 환대 공동체 회복을
- 병력 줄고 군선교사 감소세… 병영교회 기초 위태롭다
- 전쟁 고아에서 아프리카 아이들까지… 사탕 한 알에 담긴 복음
- 미군 일각 ‘아마겟돈’ 언급… 전쟁에 ‘성전’ 덧입히나
- “폭락장에 사지 말라” 200조 운용 장로 믿음 투자법은
- “기독교 정신이 절실한 때 희망 주는 게 교회의 존재 이유”
- 셀린 송 감독 “‘기생충’ 덕분에 한국적 영화 전세계에 받아들여져”
- “태아 살리는 일은 모두의 몫, 생명 존중 문화부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