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료를 떠나보낼 수 없었다”… 자동용접 개발한 30년 베테랑

지난 12일 경남 거제시에 자리한 한화오션 거제조선소. 유독 눈에 띄는 보라색 안전모를 쓴 중년의 기술자가 액화천연가스(LNG) 운반선이 건조 중인 플로팅 독(바다 위에서 선박을 건조·수리하기 위해 고안된 대형 바지선 형태의 설비) 위를 분주히 누비고 있었다.
그는 건조 중인 선박 하단에 설치된 사다리를 오르내리며 연신 고개를 돌려 현장을 살폈다. 용접할 때 불똥이 튀면 대형 화재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에 물이 잘 채워져 있는지 확인하는 절차였다. 작업 지연을 방지하기 위해 공정 일정을 조율하기도 했다. 그는 한 직원에게 “저 작업 발판은 언제까지 쓰시나요? 용접을 진행해야 하는데요”라며 작업 속도를 확인했다. 휴게 공간에선 직원들의 애로사항을 청취했다. 한 작업자가 “어제 설치한 환풍기가 사라졌다”고 말하자 “확인해 보겠다”며 어깨를 다독였다.
그는 한화오션 거제조선소의 30년 베테랑 조수연 기원이다. 그는 올해 한화오션 상선사업부의 1대 ‘명장’으로 선정됐다. 탑재 자동용접 분야의 기술 담당자로 무레일 수직·수평 전기가스용접(EGW) 장치를 개발하는 등 8건의 공정 개선을 이뤄낸 공로를 인정받았다. 현장 파트 내 공정과 작업 일정을 관리하고 소속 작업자들을 이끄는 현장 리더로 활동하고 있는 조 기원을 만나 명장이 되기까지의 여정을 들어봤다.
그가 조선업계에 발을 들인 건 1996년이다. 그 한 해 전만 해도 인천 부평의 한 자동차 공장에서 부품 조립 일을 하고 있었으나, 지인의 권유로 거제조선소로 오게 됐다고 했다. 명장의 상징이 된 자동용접 기술은 조선소에서 처음 접했다.
과정은 순탄치 않았다. 조 명장은 “처음부터 바로 자동용접을 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니었다”며 “현장에서 기본 작업을 반복하면서 용접의 원리를 몸에 익히는 일부터 시작했다”고 말했다. 재료 두께에 따른 용접 조건, 비드(용접 과정에 용융 금속이 응고돼 형성된 용접 부위) 형상과 결함 원인 등에 대한 지식도 시간과 경험을 통해 축적해야 했다.
자연스레 퇴근 후 현장에 남아 연습하는 일도 잦았다. 그는 “장비구조를 분해·조립하면서 원리를 공부했고, 용접 조건을 시험해 보기도 했다”며 “매일 2~3시간씩 남아서 공부하다 보니 기술이 쌓였다”고 돌아봤다. 덕분에 1년 동안 용접 자세 관련 2건, 자동용접 장치 사용 자격 EGW, 용접 기법(SAW) 등 용접 관련 사내 자격증을 4개나 취득했다.
조 명장은 약 30년간 기술자의 길을 걸어온 원동력에 대해 “기술을 가진 사람은 어디서든 당당할 수 있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는 “힘들 때마다 ‘지금 배우는 기술이 내 인생의 자산이 된다’는 생각으로 버텼다”고 웃으며 말했다.

조 명장이 회사 1호 명장으로 선정된 건 무레일 수직·수평 EGW 장치를 비롯해 8건의 기술 개발을 이뤄냈기 때문이다. 특히 무레일 EGW 장치는 2024년 한국기계기술단체총연합회가 선정하는 대한민국 올해의 10대 기계 기술에 들기도 했다.
무레일 EGW 장치는 작업자의 신체적 부담을 줄이고, 공정 속도를 높인 혁신적인 제품이다. 기존 EGW 장치는 레일과 장비를 포함한 무게가 총 108㎏에 달했는데, 레일을 고정 자석으로 대체하는 방식을 고안해 무게를 16㎏으로 줄였다. 이 덕분에 장비와 용접 재료를 옮기는 시간이 줄었고, 작업자가 레일을 외판에 직접 부착하는 수고 또한 덜게 됐다.
그는 “점심시간 탈의실에 가면 허리와 어깨 통증을 호소하는 동료들의 얘기를 자주 들었고, 실제 허리 부상 등으로 현장을 떠나는 용접사도 많았다”며 “더 가벼운 장비로 작업할 수 없을까 생각했다”고 돌아봤다.
시행착오도 많았다. 처음 만든 장치는 바퀴가 헛돌아 올라가지 않거나 비드에 걸려 멈추기도 했다. 용접 안정성이 확보되지 않아 용융풀이 흐르는 문제가 발생하기도 했다. 하지만 포기하지 않았다. 코딩 전문가와 함께 현장에서 프로그램을 수정하고 바퀴 구조를 바꾸고, 자력을 이용해 철판에 밀착시키는 방식 등을 적용하며 테스트를 반복했다.
결국, 무레일 장치를 만드는 데 성공했다. 그는 개발 성공 당시의 기분을 묻는 말에 “무엇보다 우리 작업자들이 더 안전하게 일할 수 있게 됐다는 점이 가장 기뻤다”고 말했다. 현재 이 장치는 현장에서 100여 대가 사용되고 있다.

조 명장은 앞으로도 기술 개발과 후배 기술인 양성에 힘쓰겠다고 했다. 그는 “자동용접 기술 고도화와 현장 맞춤형 자동화 장비 개발을 이어가면서 후배들이 기술을 습득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하고 싶다”는 포부를 밝혔다. 그는 이날도 후배 직원들이 용접하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세세히 노하우를 전수했다.
조 명장에게 후배들에게 당부하고 싶은 메시지를 물었다. 그는 “기술보다 먼저 기본과 안전을 지키는 자세를 갖추라는 말을 전하고 싶다”며 “기술은 시간이 지나면 누구나 배울 수 있지만, 기술자의 책임감과 자세는 쉽게 만들어지지 않는다. 좋은 기술자는 일을 빨리하는 사람이 아니라 안전하게 끝까지 해내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어 “후배들이 기술이 아닌 현장을 사랑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조 명장은 “현장을 사랑한다는 것은 현장의 문제를 그냥 지나치지 않는 것”이라며 “작업자가 힘들어하는 부분, 위험한 부분, 비효율적인 부분을 봤을 때 ‘어떻게 바꿀 수 있을까’ 고민하고 개선하려는 태도가 중요하다”고 거듭 강조했다.
한화오션의 특별한 명장제도
추가 인센티브… 개인 사무실·車 제공
한화오션은 최근 생산직 최고 기술자에게 동종 업계 최고 수준의 예우를 제공하는 '명장' 제도를 새롭게 도입했다. 명장 임명을 통해 숙련 기술인의 명예를 높이고 생산현장 기술 인력을 양성하는 차원에서다.
명장에겐 짙은 보라색 바탕에 금색 띠를 두른 명장 전용 안전모를 제공한다. 포상금 1000만원과 실적 평가에 따른 추가 인센티브도 지급되고 개인 사무실 및 개인 업무용 차량 혜택도 있다.
명장은 최대 2년간 '현장 기술 리더'를 맡아 사고 예방과 표준 작업서 개정, 품질·납기 신뢰도 제고, 생산성·원가 개선, 후배 멘토링 등을 수행한다. 임기가 끝난 뒤에는 실적과 공헌을 기록한 동판을 사내 '명예의 전당'에 등재한다. 정년 이후에도 기술지도강사로 근무할 기회를 부여해 베테랑의 노하우가 지속적으로 전수될 수 있도록 한다.
한화오션은 명장 선발에 공을 들였다. 대한민국 명장을 외부 심사위원으로 초빙해 평가의 객관성과 전문성을 높였다. 또 '기술 심층 세션'을 통해 실제 문제 해결 능력과 공정 간 연계 이해도를 집중 검증했다고 한다.
한화오션은 이와 별도로 기술 레벨(TL)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생산직 구성원의 기술력을 5단계로 나눠 성장할 때마다 일시금 인센티브를 제공하는 제도다. 명장은 최고 기술 레벨 달성자 중에서 선정된다.
거제=허경구 기자 nine@kmib.co.kr
GoodNews paper ⓒ 국민일보(www.kmib.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Copyright © 국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불안정한 비정규직이 정규직보다 더 받아야”… 李 ‘동일노동 차등임금’ 지적
- 입학식 날 신입생 집단폭행…촬영 뒤 “신고하면 유포” 협박
- 결국 지상군 투입되나…美 중동 전쟁에 미군 수천 명 추가 파병 검토
- “커피 더 달라, 부식도 불만”…尹 교도관에 불만 쏟아내
- ‘두쫀쿠’로 반짝 늘었던 헌혈…증정 끝나니 ↓
- 생활고 비관에… 네 자녀와 함께 30대 아빠 숨져
- 다시 치솟는 국제 유가… 브렌트유 110달러 재돌파
- ‘3세 딸 시신’ 숨기려 초교 입학 미룬 친모 체포
- 공군사관학교 출신 파일럿 4명 타깃… 전 부기장의 ‘살인 계획’
- [단독] “불 지른다” 휘발유 뿌렸는데 집유… 공중협박죄 처벌 약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