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챗GPT 변호사’로 전세사기 보증금 돌려받았다”

심희정,양한주,김혜지 2026. 3. 20. 0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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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36년 당신의 직업은 안전합니까?]
AI 이용 ‘나 홀로 소송’ 사례 늘어
게티이미지뱅크


이호종(39)씨는 지난해 7월, 전세금을 돌려주지 않는 집주인에 대해 챗GPT의 도움을 받아 작성한 고소장을 제출했다. 챗GPT는 이씨가 사실관계 위주로 작성한 고소장 초안에 적용 법 조항과 전문적인 법률 용어를 반영했다. 과거였다면 변호사 없이 소송을 진행하는 것을 주저했겠지만, 챗GPT는 변호사라는 역할을 부여하자 맡은 바 업무를 충실히 대신해줬다. 그 결과 집주인은 지난 1월 사기 혐의로 검찰에 송치됐다. 이씨는 집주인을 상대로 제기한 보증금 반환 소송에서도 승소한 뒤 경매와 추심 절차를 진행하고 있다. 이씨는 19일 “챗GPT의 도움으로 변호사가 쓴 것처럼 전문성 있고 글의 구성도 탄탄한 고소장을 완성할 수 있었다”며 “담당 경찰도 고소장을 받고는 ‘그대로 쓰겠다’고 했을 정도”라고 말했다.

생성형 AI를 이용해 ‘나 홀로 소송’을 진행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AI가 단순히 변호사 등 법조인들의 조력 도구를 넘어 법률 소비자의 법률 비서 역할까지 하게 된 것이다. 이씨는 고소장 작성에 앞서 챗GPT에 자신의 사건과 관련한 기초적인 사실관계, 공개된 판례, 언론 기사 등을 입력했다. 고소장을 작성할 때는 ‘형사전문 변호사’라는 역할을, 이를 검토·보완할 때는 ‘사기죄에 엄격한 잣대를 가지고 있는 판사’의 역할을 부여했다. 이씨가 판례를 제시하면서 ‘이 판결문의 논리를 고소장에 반영해봐’라고 입력하자 챗GPT는 순식간에 수정된 고소장 초안을 작성해 파일로 만들었다. 이씨는 “복잡한 법리적 쟁점을 다투는 큰 소송이 아닌 이상 AI를 활용하면 충분히 혼자서도 소송을 할 수 있겠다는 자신감이 들었다”고 말했다.

AI 활용이 일상화하면서 법원 내부에서도 AI 활용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다. 대법원 법원행정처는 지난달 ‘법관을 위한 AI 가이드북’을 출간했다. AI 활용에 관한 일반론을 제시한 뒤 법관의 업무에 챗GPT, 제미나이 등 생성형 AI를 도입할 수 있는 활용례를 제시하는 식이다.

가장 쉽고 실용적인 활용례는 판결문을 요약해 설명자료로 만드는 것이다. 제미나이에 비실명화된 판결 요지를 올린 뒤 ‘법률 교육을 받지 않은 성인 일반 시민도 이해할 수 있도록 판례 요지를 작성하라’고 지시하자 제미나이는 ‘당사자적격’을 ‘재판을 진행할 자격’으로, ‘급부 추심’을 ‘실제로 돈을 받아가는 행위’로 알기 쉽게 수정했다. 특정 사건에 대해 검사(유죄 의견), 변호사(무죄 의견), 판사의 역할을 부여한 뒤 의견서를 쓰고 토론하도록 하는 활용례도 있었다. 법관이 각 입장의 합리성을 검증하는 데 AI의 도움을 받을 수 있다는 취지다.

다만 AI의 환각 현상(없는 이야기를 허구로 꾸며내는 것)은 치명적인 문제다. 이 때문에 법조계에서는 AI에 전적으로 의존하지 말고 사실관계를 재확인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보험금 관련 나 홀로 소송을 진행했던 A씨(39)는 “AI가 거짓말을 많이 해서 여러 AI를 활용해 교차 검증해야 했고, 그런데도 맞지 않는 부분이 있어 결국엔 대한법률구조공단에서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야 했다”며 “AI를 100% 신뢰하는 것은 위험하다”고 말했다. 민감한 개인정보가 포함된 법률문서의 특성상 비실명화라는 절차를 한 단계 더 거쳐야 활용이 가능한 점, 모든 판결문이 공개되지 않고 있는 점 등도 한계로 꼽힌다. 법원은 이 같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자체 AI를 개발해 법관들에게 제공하고 있지만, 아직 성능이 빅테크의 생성형 AI 서비스에는 크게 미치지 못하는 상황이다.

그럼에도 AI가 이미 일반적으로 쓰이고 있는 상황인 만큼 부작용을 최소화하는 방향으로 변화에 대비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사법부 인공지능위원회 주무 위원으로 AI 가이드북 제작을 주관한 권창환 수원지법·수원가정법원 안산지원 부장판사는 “AI에 문제가 있다는 부분만 강조하면 활용이 위축되고, AI 사용이 필연적인 현실에서 뒤처질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권 부장판사는 “개인정보 문제나 법적 제약과 무관한 영역에서부터 활용례를 쌓아 AI 리터러시(문해력) 역량을 축적해야 추후 이런 문제가 기술적으로 해결됐을 때에도 유연하게 적응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테크이슈팀=심희정 양한주 김혜지 기자 simcity@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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