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반도체 육성 없인 코스피 ‘속 빈 강정’
최근 코스피가 전인미답 고지를 잇따라 돌파했지만, ‘진짜 재평가’까지는 가야 할 길이 멀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우리 시장이 반도체 슈퍼사이클과 자본 시장 제도 개편 기대를 타고 질적 도약을 시도 중이지만, 극심한 변동성 등 취약점도 노출했다는 평가다. 글로벌 패시브 자금을 운용하는 대형 기관투자자는 자산 배분 때 변동성(Volatility)을 리스크 척도로 삼는다. 코스피가 선진국 지수에 편입되려면 시장 예측 가능성이 높아야 하는데, 현재 취약한 구조를 그대로 두고는 ‘선진 자산’으로 분류되기 어렵다는 지적이다. 전문가들은 코스피 구조적 재평가를 위해서는 ▲반도체 편중을 누그러뜨릴 산업 다변화 ▲상속·증여세 개편 ▲지속가능한 지배구조 개혁 등에 속도를 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사이클 꺾이면 코스피 흔들
코스피가 ‘반도체 ETF’처럼 움직인다는 말은 과장이 아니다.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지난 2월 말 기준 코스피에서 삼성전자 시가총액 비중은 25.4%(보통주 23.2%+우선주 2.2%)에 달한다. SK하이닉스 시총 비중도 14.5%다. 두 반도체 기업의 시총 비중은 40%에 달한다. 반도체 업황이 순풍을 탈 때 코스피가 빠르게 상승세를 타다가도 업황에 균열 조짐이 나타나면 돌연 과민 반응하는 이유다.
문제는 반도체 의존도가 시간이 갈수록 점차 심화한다는 점이다. 수출과 설비투자까지 한국 경제 핵심 지표 전반이 반도체 중심으로 재편된다. 산업통상부 집계에 따르면, 올 1~2월 누계 수출액(통관 기준) 가운데 반도체 비중은 34.3%다. 한국산업은행 설비투자 계획 조사에서도 올해 국내 전체 설비투자 계획 217조원 가운데 반도체가 32.3%인 70조원이다. 2023년 25.5%에서 3년 새 6.8%포인트 올랐다. 올 들어 우리 수출과 투자의 약 3분의 1이 반도체에 집중됐다.
반도체 편중 산업 구조는 코스피 상승장에서 약점이 된다. 현재 코스피는 반도체 업황을 반영해 주당순이익(EPS)이 상향되고 그 기대가 시장 전체 낙관론으로 번지는 구조다.
한국기업거버넌스포럼은 “대표적 경기민감주인 반도체 산업은 이익의 정점에 근접할수록 PER이 낮아진다”며 “삼성전자의 올해 예상 PER이 8배, 하이닉스가 6배란 사실은 이들 주가가 이익 정점에서 멀지 않았다는 의미”라고 진단했다.
전문가들은 반도체 산업 집중도를 낮추려면 호황에 도취되지 말고 지금이라도 제2, 제3반도체 발굴과 육성에 사활을 걸어야 한다고 지적한다. 당장 조선, 방산, 전력기기 등이 향후 주력 산업 후보로 거론된다. 하지만, 이들 업종 역시 각자 한계를 안고 있다. 조선은 사상 최대 수주 잔고가 곧바로 수익성 보장으로 이어지지 않는다. 방산도 대규모 수주가 장기 협력으로 연결될지, 정치·외교 변수에 흔들릴지 변수가 적지 않다. 전력기기는 수주 산업 특유의 매출 인식 시차와 이익 관리 문제가 껄끄럽다.
홍춘욱 프리즘투자자문 대표는 “이미 반도체·조선·방산·전력 등 핵심 주력 산업에 막대한 고정자산 투자가 단행됐고 생산성도 세계적인 수준”이라며 “현재 산업 구조가 더 심화할 가능성이 크지, 약화하기는 어렵다”고 지적했다.
최도연 SK증권 리서치센터장은 “기존에도 반도체 비중이 높았던 한국은 최근 K자형 성장 구조 속에서 성장 산업이 일부 업종으로 쏠리며 산업 집중도가 더 심화했다”며 “단기간 비중 격차를 뒤집기 쉽지 않지만, 최소한 성장 속도 측면에서 반도체보다 높은 산업이 등장한다면 반도체 쏠림 구조는 점진적으로 완화할 수 있다”고 말했다.
서지용 상명대 경영학과 교수는 “코스피 시총의 40%를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점유하는 구조 아래서는 증시 변동성이 확대될 수밖에 없다”며 “반도체 외 바이오·2차전지·콘텐츠 등 성장 산업 상장 확대와 연기금의 분산 투자 유도로 변동성을 적정 수준 관리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조건부 세제 인센티브 부여해야
코리아 디스카운트를 설명할 때 빠지지 않는 대목이 상속·증여세다. 한국의 명목 최고 상속세율은 50%다. 최대주주 할증까지 더하면 실질 부담은 60%까지 올라간다. 상속·증여세 완화가 곧장 주가 상승으로 이어진다는 실증이 부족하다는 시각이 있지만, 시장에서는 과도한 세 부담을 그대로 두고는 주주환원 정책 역시 ‘반쪽짜리’로 전락할 수 있다고 지적한다.
최근 정부·여당이 추진하는 ‘상속세·증여세법 일부개정안(주가 누르기 방지법)’도 이런 우려가 단초가 됐다. 현행 세법 체계는 상장 주식의 상속·증여세를 상속·증여 시점 전후 각 2개월, 총 4주 평균 주가로 산정한다. 즉, 시가로 상속·증여세를 매기므로 주식을 물려줄 때 PBR이 1배 미만이면 유리하다. 이 때문에 현 세법으로는 승계를 앞둔 대주주가 주가를 낮게 유지할 유인이 생긴다는 비판이 일었다.
이소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대표 발의한 개정안은 상장사 대주주 지분을 상속·증여할 때 기업 주가가 자산가치·수익가치에 비해 비정상적으로 낮다고 판단되면, 주가(시가) 대신 공정가액을 과세 기준으로 적용하도록 한다. 주가순자산비율(PBR) 0.8배 등에 미달한 기업을 ‘저평가’로 보는 방안이 논의된다. 즉, 주가를 억눌러도 세 부담이 줄지 않도록 해, 주가 부양 유인을 자극하겠다는 취지다.
다만, 근본 원인인 상속·증여세율을 뜯어고치지 않고서는 미봉책에 불과하다는 시각도 있다. 이진우 메리츠증권 리서치센터장은 “과도한 세 부담은 기업의 주주환원 유인을 제한하는 것이 사실”이라며 “당근과 채찍이 공존할 필요가 있으며, 주주환원 지속기업만 상속세를 완화하는 방안도 고려해볼 만하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상속·증여세 개편을 단순 세율 인하보다 정교한 접근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장기 보유 지분에 대한 이연 납부 특례를 확대하거나 경영권 프리미엄 할증 손질, 일정 수준 이상 주주환원과 공시 투명성, 고용 유지 등을 조건으로 세제 인센티브를 부여하는 방식이 거론된다.
김대종 세종대 경영학과 교수는 “높은 상속·증여세율은 대주주가 주가를 낮게 유지하려는 유인을 제공하고, 이는 주주환원에 소극적인 태도로 이어져 코리아 디스카운트의 직접적 원인 중 하나로 작용한다”며 “ ‘부의 세습’이 아닌 ‘기업의 연속성’ 측면에서 세제 혜택을 주는 대신 해당 기업 지배구조를 선진화하고 고용을 유지하는 등 조건을 강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시장 정체성부터 확 바꿔야
이미 진행 중인 지배구조 개혁도 지금보다 더 예측 가능성과 지속 가능성을 높여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최근 상법 개정으로 자사주 소각, 배당 확대 등 변화가 시장에 긍정적 신호를 줬지만, 대주주·이사회·경영진·소액주주 간 얽히고설킨 이해관계를 실질적으로 정렬하기까지는 상당한 시일이 소요될 전망이다.
무엇보다 한국 시장의 핵심 정체성부터 바뀌어야 한다는 지적이다. ‘실적은 좋지만 언제든 일반주주가 피해볼 수 있는 시장’이 아니라 ‘예측 가능한 규칙이 작동하는 시장’으로 자리 잡아야 한다는 지적이다. 최도연 센터장은 “상법 개정 등을 통해 한국 기업들의 회계·공시 투명성이 개선된다면 외국인 투자자 입장에서도 국내 기업에 대한 접근이 훨씬 쉬워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는 해외 투자자들도 주목하는 지점이다. 최근 증권 시장 개장 70주년 기념 세미나에서 하진수 JP모건증권 서울 대표는 “외국인 투자자들이 자본 관리, 배당 정책, 소액주주 권익 보호가 실제 어떻게 실행되는지 큰 관심을 보인다”고 전했다. 이승우 유진투자증권 리서치센터장은 “미국 기업의 분기 실적 콘퍼런스콜 비율이 95% 수준인 반면, 한국은 아직도 20%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정보 비대칭이 줄지 않는 한 해외 장기 자금이 한국에 선진 시장 수준의 프리미엄을 주기 어렵다는 얘기다.
전문가들은 지배구조 개혁에도 다각적인 접근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주주환원은 기본으로 ▲물적분할 후 재상장 ▲중복상장 ▲형식적인 사외이사 제도 ▲자사주의 우회 활용 ▲불투명한 공시 등은 여전히 한국 시장이 짊어진 숙제다. 김대종 교수는 “자사주 소각과 배당 확대는 이벤트가 아니라 시스템으로 안착할 때 힘을 발휘한다”며 “이사회 실질적인 독립성과 소액주주 보호 장치가 함께 갖춰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주주가치 제고를 내세우면서도 지배주주의 우회 선택지가 넓고 일반주주의 방어 수단은 제한적이라는 의구심이 남아 있다면, 코리아 디스카운트 해소는 쉽지 않다는 설명이다.
한국기업거버넌스포럼은 ‘자본 시장 개혁 완수를 위해 이재명정부에 바라는 10대 과제’ 논평에서 ▲자사주 의무 소각 관련 법안의 예외 요건 강화 ▲자회사 상장의 원칙적 금지 ▲강제성을 띤 밸류업 정책 재가동 ▲국민연금 수탁자책임 강화 ▲투자자 보호센터 설립 ▲회사법 전문법원 검토 등을 제시했다.
이남우 한국기업거버넌스포럼 회장은 “지수 부양 논쟁보다 지배구조 개선을 통해 구조적인 밸류에이션 디스카운트를 해소하는 게 정공법”이라고 진단했다.
자본 시장 신뢰는 ‘처벌과 집행’에서 완성된다는 의견도 새겨들을 만하다. 지배구조 개혁 종착점은 이사회 구조나 공시 강화에만 머물지 않는다. 불공정 거래를 적발하고 제재하는 시장 규율 전반이 바로 서야 한다는 의미다.
빈기범 명지대 경제학과 교수는 “주가 조작, 횡령, 분식회계, 미공개 정보 이용 같은 불공정 거래를 선진국 수준으로 엄하게 형사 처벌하고 사건을 신속히 처리해야 시장 전반 신뢰가 올라간다”고 강조했다.
[조동현 기자 cho.donghyun@mk.co.kr ]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351호(2026.03.18~03.24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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