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지용 교수 “퇴로 없으니 투자 안 한다” [2026 미래경제포럼]

“위험 투자에 대한 회피가 고착화돼 있습니다. 민간이 충분히 들어와 손실을 보더라도 정부가 이를 일정 부분 보전해 주는 모델을 구체화해야 목표에 더 가까이 갈 수 있습니다.”
서지용 상명대 경영학부 교수는 19일 서울 여의도 CCMM빌딩에서 열린 ‘2026 쿠키뉴스 미래경제포럼’에서 ‘혁신투자를 위한 실패 구제 방안’을 주제로 발표하며 이같이 말했다. 정부가 생산적 금융 확대를 위해 국민성장펀드와 위험가중치 조정, 비상장 투자 활성화 방안 등을 내놓고 있지만, 정작 금융회사가 적극적으로 위험자산에 나설 수 있는 ‘실패 구제 장치’는 부족하다는 지적이다.부동산·가계대출 쏠림…PF 부실이 막는 자금 이동
서 교수는 최근 생산적 금융 논의가 본격화한 배경으로 부동산과 가계대출에 쏠린 자금 구조를 꼽았다. 기준금리는 2.5% 수준까지 내려왔지만 주택담보대출 금리는 여전히 높은 데다 부동산 PF 부실도 완전히 해소되지 않으면서 자금도 기업금융으로 충분히 이동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는 “현재 PF 대출은 약 0.85% 수준의 충당금을 적립하도록 돼 있는데, 향후 부실이 확대되면 페널티 성격으로 적립 기준이 더 강화될 가능성이 있다”며 “이 과정에서 자금이 부동산 PF 정리에 과도하게 쏠릴 경우, 오히려 생산적 금융으로의 자금 이동을 제약하는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정부는 연간 30조원씩 5년간 총 150조원 규모의 국민성장펀드를 조성해 첨단 전략산업과 중소·벤처기업, 지방균형발전 프로젝트 등에 자금을 공급하겠다는 구상이다. 아울러 은행의 주담대 위험가중치를 높이고 혁신기업 대출의 위험가중치는 낮춰 자금 흐름을 바꾸겠다는 방침도 제시했다. 비상장 혁신기업 투자를 위한 BDC 도입과 세제 지원도 주요 정책 축으로 제시되고 있다.
하지만 서 교수는 정책 청사진과 금융권 현실 사이의 간극이 여전히 크다고 봤다. 실제로 5대 시중은행의 생산적 금융 비중은 대체로 25% 안팎에 머물고 있으며, 정부가 기대하는 30% 수준에는 못 미친다. 증권사 역시 겉으로는 기업금융과 벤처 투자 비중이 늘어난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 자금은 첨단 우량주나 상대적으로 안전한 기업에 집중되는 경향이 강하다는 것이다.
그는 은행권의 걸림돌로 PF 규제 강화와 BIS 비율 관리 부담을 들었다. 위험자산이 늘면 충당금 부담이 커지고 자본비율 관리가 어려워지기 때문에, 은행으로선 자연스럽게 우량 차주 중심으로 여신을 공급할 수밖에 없다는 설명이다. 최근 혁신기업 대출이 다소 늘어난 것도 세제 혜택이나 정책 인센티브에 따른 일시적 반응일 가능성이 크다고 했다.
증권사도 사정은 크게 다르지 않다고 봤다. PF 익스포저를 줄이며 위험자산 비중을 낮추는 데는 성공했지만, 정작 확보한 투자 여력은 안전한 포트폴리오로 다시 쏠리고 있다는 것이다. 서 교수는 “증권사 역시 영업용순자본비율 부담이 있고, 손실이 발생했을 때 자본여력이 충분하지 않다”며 “단기 성과를 중시하는 보상 체계와 보수적 문화도 위험투자를 가로막는 요인”이라고 말했다.
“퇴로가 없다”…낮은 수익률·엑시트 한계
해외와 비교하면 한계는 더 뚜렷하다. 국내 벤처 포트폴리오 내부수익률(IRR)은 미국의 절반 수준이고, 투자금 회수 성공률도 낮으며, 평균 보유 기간은 더 길다는 것이다. 그는 “가장 큰 문제는 결국 퇴로가 불확실하다는 점”이라며 “투자 회수 경로가 불투명하다 보니 전반적으로 위험투자를 회피하는 경향이 고착화됐다”고 설명했다.
해외에서는 정부가 손실을 함께 부담하는 방식으로 민간의 모험자본 공급을 유도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미국 중소기업청(SBA)은 벤처캐피탈이 발행한 채권에 지급보증을 제공해 민간 자금 조달을 돕고, 영국은 규제 샌드박스를 통해 금융혁신 실험을 확대했으며, 호주는 맥쿼리 모델을 통해 정부가 일정 부분 손실을 보전하면서 민간 컨소시엄의 인프라·신산업 투자를 뒷받침했다는 것이다.
서 교수는 한국도 단순한 규제 완화만으로는 부족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위험가중치를 조금 낮춰주거나 세제 혜택을 일부 주는 정도로는 금융회사의 태도를 바꾸기 어렵다”며 “미국처럼 공적 보증을 명확히 하거나, 유럽처럼 정부가 손실보전 한도를 구체적으로 제시해야 민간이 안심하고 들어올 수 있다”고 말했다.
국민성장펀드 ‘최초 손실 보전’ 구조 시급
구체적 대안으로는 △SBA식 보증기금 신설 △국민성장펀드 최초 손실의 정부 대위변제 △손실 세액공제 도입 △규제 샌드박스 확대 △민간 컨소시엄 조성 등을 제시했다. 공시 위반이나 불공정거래, 자본시장법 위반 피해자에 대한 배상 재원을 별도로 마련해 개별 금융회사에 항의가 집중되지 않도록 하는 제도적 보완도 필요하다고 했다. 예탁금 보호 한도를 높이고, 필요할 경우 예금보험공사의 지원도 제도화할 필요가 있다는 제언도 내놨다.
국민성장펀드의 손실보전 구조를 조기에 확정해야 한다는 점도 강조했다. 서 교수는 “펀드는 구조적으로 손실이 발생할 수밖에 없는데, 최초 손실에 대해서는 정부가 일정 부분 대위변제하는 장치가 필요하다”며 “초기 손실이 발생하면 후속 펀드 조성 과정에서 투자자 유치가 어려워질 수 있는 만큼, 최초 손실을 정부가 부담하는 방안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어 “정부가 손실을 일정 부분 떠안겠다는 신호만으로도 투자자에게 신뢰를 줄 수 있다”며 “결과적으로 국민성장펀드의 손실 보전 메커니즘을 보다 구체적으로 설계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정부의 방향은 맞지만 금융회사의 현실은 아직 거기까지 미치지 못하고 있다”며 “올해 펀드 손실을 어떻게 보전할지에 대한 구체적 방안과 피해 구제 제도, 세액공제 등 인센티브 체계를 조속히 마련해야 정책이 실제로 작동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김미현 기자 mhyunk@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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