멕시코 무용수와 금수저 미국 사업가의 사랑, '설마' 했더니...

김상목 2026. 3. 19. 17: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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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예술영화 개봉신상 리뷰] <드림스>

[김상목 기자]

'페르난도'는 멕시코 출신의 젊고 매력적인 청년이다. 그는 재능 있는 무용수이기도 하다. 게다가 매력적인 애인도 있다. '제니퍼'는 부유한 가문의 '금수저' 사업가다. 이민자와 예술가를 후원하는 자선재단을 운영하며 미국과 멕시코를 넘나들던 그녀는 전도유망한 페르난도와 사랑에 빠졌다. 둘은 열정적으로 사랑을 나눈다. 하지만 결정적인 문제가 있다.

페르난도는 제니퍼가 멕시코에 오는 날만 기다려야 한다. 그는 연인과 늘 함께하고 싶다. 물론 제니퍼도 연인과 떨어지기 싫은 건 마찬가지다. 그러나 국경은 둘을 갈라 놓는다. 페르난도는 여러 차례 밀입국을 감행하지만, 천신만고 끝에 도착한 페르난도를 대하는 제니퍼는 곤란한 표정을 짓는다. 사랑하지만 상류사회에 그와 연인임을 공개할 용기는 없는 탓이다.

사랑이 넘어설 수 없는 사회적 조건의 제약
 <드림스> 스틸
ⓒ ㈜엔케이컨텐츠
<드림스>는 불편한 영화다. 불쾌한 이물감이 보면 볼수록 끓어오르는 그런 이야기를 시작부터 의도한다. 그러나 선정적인 폭력이나 성적 묘사로 승부수를 던지는 얄팍한 저의는 아니다. '날 것' 그대로인 묘사가 보는 이의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찰나가 종종 등장하지만, 뻔하진 않다. 조마조마하게 점점 관계에 균열이 벌어지는 연인 사이가 과연 어떻게 치달을지 보는 이를 조마조마하게 만드는 의외성이 두드러진다. '혹시', '설마', '제발' 같은 표현이 관객의 머릿속에 불쑥 튀어나오게 만드는 작업이다.

단순하게 사랑하는 연인의 상황을 대입해 보자.

페르난도: 젊고 잘생긴 미혼 청년, 멕시코 국적, 무용 특기생, 라틴계
VS
제니퍼: 이혼 경력 연상녀, 미국 국적, 금수저 사업가, WASP

둘의 사랑은 충동적이거나 가볍지만은 않다. 서로의 상황과 조건을 이해하고 있다. 제니퍼는 페르난도를 동등한 파트너로 대하며 존중한다. 일방적 관계로 치닫지 않음은 영화 속 그들의 모습을 보면 어렵지 않게 파악할 수 있다. 탈식민주의 문화적 접근에서 종종 불편한 풍경이지만 제국주의의 유산을 설명할 때 등장하는 (부유한) 백인 중년 여성과 (가난한) 유색인종 청년의 성적 관계와는 확연히 다른 형태다.

페르난도와 제니퍼의 관계는 그 정도로 속물적이진 않다. 멕시코에선 중산층으로 살아가는 페르난도는 제니퍼에게 얹혀사는 편안한 삶을 거부하고 동등한 연인으로 함께하고 싶다. 거듭된 밀입국 시도는 단지 경제적 문제가 아니다. 평등한 관계로 사랑하는 이 곁에 서기 위해서다. 페르난도는 자신의 재능을 인정받고 성공해 당당하게 제니퍼와 공개적으로 관계를 이어가는 게 꿈이다.

제니퍼는 그런 페르난도의 꿈이 불편하다. 현재 관계에서 제니퍼는 노력하는 편이다. 바쁜 일정을 조정해 가능한 멕시코에 자주 방문하고, 적어도 함께 있는 시간 동안은 연하의 애인과 동등한 관계를 유지한다. 경제적 부로 페르난도를 지배하려는 의도는 딱히 보이지 않는다. 그저 자신의 공적 업무와 가족 관계에 폐가 됨을 꺼릴 따름이다. 그녀는 충분히 연인에게 이런 상황을 설득하여 동의를 얻을 수 있다고 믿는다.

트럼프의 국경장벽 아래 멈추는 사랑
 <드림스> 스틸
ⓒ ㈜엔케이컨텐츠
사랑하면 뭐든 해결할 수 있다고 믿던 연인에게 각자가 갖춘 배경 차이는 극복 대상으로만 보였을 테다. 우리는 진정 사랑하기에, 부유한 백인이 성적 쾌락 대상으로 유색인을 착취하는 것도, 한 건 잡기 위해 봉을 잡은 것도 아님을 두 사람은 추호도 의심하지 않았을 게 분명하다. 그러나 트럼프가 방대한 미국과 멕시코 국경지대에 천문학적 예산을 투입해 건설한 국경 분리장벽처럼, 둘의 차이나는 배경은 결정적인 질곡으로 넘어설 수 없는 질곡이 된다.

영화 시작과 함께 타오를 것 같은 땡볕 속에 방치된 트레일러가 보인다. 그 안에는 콩나물시루처럼 사람이 가득하다. 생리적 한계를 참지 못해 밖에 뭐가 있을지도 모른 채 벽을 두드리며 비명을 지른다. 그러나 메아리는 돌아오지 않는다. 한참 지나 브로커가 문을 연다. 그들은 밀입국자를 위협해 가진 걸 빼앗은 다음 사막에 유기한다. 페르난도 역시 그렇게 방치된 이들 중 하나다. 물 한 모금 구걸하고 차를 얻어타며 간신히 제니퍼가 있는 샌프란시스코에 닿는다. 하지만 그렇게 우여곡절 끝에 자신을 보러 온 연인을 대하는 그녀의 태도는 석연찮다.

물론 반가움이 앞선다. 분위기를 보니 밀입국 시도가 이번이 처음도 아니다. 페르난도는 그녀의 도움은 필요하지 않다며 제 발로 제니퍼의 저택을 나와 홀로 자립하려 한다. 변두리 모텔에서 일하며 무용단에 가입하기 위해 거리 공연에 열중한다. 맨땅에 헤딩하는 셈이지만, 출중한 재능과 노력 덕분에 그의 꿈은 한발 한발 목표에 다가선다. 홀로서기 과정에서 미국 사회의 뿌리 깊은 차별에 직면하지만, 이 정도는 각오했던 일이라 대수롭지 않게 참아낸다.

하지만 소박한 성공을 목전에 두고 페르난도에게 재앙이 닥친다. 물론 단순히 고국으로 추방되는 게 전부다. 제니퍼는 한달음에 국경을 넘어와 연인을 위로하고, 여기에서 잘 지내면 된다며 자신이 시간을 더 자주 내 함께 하자고, 무용단도 멕시코에서 만들면 된다고 위로한다. 하지만 그녀가 고백한 비밀 때문에 둘의 관계는 위기로 치닫는다.

세상이 은폐하려는 불편한 진실
 <드림스> 스틸
ⓒ ㈜엔케이컨텐츠
관객은 사랑이 모든 장벽을 뛰어넘어 결실을 이루길 기대한다. 이 풍진 세상에 온통 힘 빠지고 우울한 일투성이인데 기껏 시간 내어 어렵게 도착한 극장에서라도 장밋빛 꿈을 꾸고픈 소박한 욕망을 누가 탓하랴. 요즘 극장가에서 성공적인 실적을 올리는 작품 목록만 봐도 충분히 입증 가능한 경향이다.

하지만 <드림스>는 정확히 그 대척점을 목표로 설정하는 작업이다. 굳이 <원 배틀 애프터 어나더> 속 야만적인 국경수비대의 폭력이나 한눈에 훅 꽂히는 철근 콘크리트 장벽이 등장할 필요도 없다. 처음엔 좀 특이한 배경을 가진 연인으로 보이던 페르난도와 제니퍼의 관계는 끝내 둘 사이의 넘어설 수 없는 근본적인 조건을 뛰어넘지 못한다. 사랑의 힘으로 그들이 안정된 관계를 비 온 다음 땅이 굳듯이 극복하길 모두가 바랄 테지만, 그런 소망을 사뿐히 짓밟으며 현실의 절대다수는 이렇게 되고 만다는 서늘한 선언을 관객이 직시하길 권한다.

당연히 영화를 보고 나면 불편할 수밖에 없다. 꼭 저렇게까지 표현해야 하나, 불쾌함이 현실에 도움이 될 게 뭐란 말인가 항변이 머릿속에서 입 밖으로 튀어나올 듯하다. 미리 알았다면 피하고 싶은 딱 그런 영화다. 하지만 누군가는 즉자적인 불만에 이어 다시금 돌아보는 순간, 감독이 전달하고픈 뿌리 깊은 차별과 배제의 장벽을 깨닫고 오싹하게 될 테다. 그게 <드림스>의 정수이자 본질이다.

계속되는 비극을 고발하는 묵시록
 <드림스> 스틸
ⓒ ㈜엔케이컨텐츠
사랑의 종말을 섬뜩하게 그리는 <드림스>는 국내에선 보기 힘든 장르에 속한다. 유럽의 의식 있는 탈식민주의 경향 작가들이나 제국주의 식민지를 장기간 경험한 3세계 국가들에선 흔한 장르이지만, 일제강점기를 거치고도 유독 한국에선 낯선 표현이라 생소할 수 있다.

정작 과거부터 현재까지 차별과 배제를 일삼지만 작은 시혜와 더불어 굳건한 지배 세력의 본질을 조망하며, 세상의 어두운 이면을 서슴없이 후벼 파는 <드림스>는 형식적으론 답습에 가까운 작업이다. 이런 유형의 작품군은 제법 유구한 전통과 변주를 축적한 상태라 익숙한 이들에겐 다소 아쉬울 법하다.

감독이 보여주던 서릿발 같은 표현력이 조금 도돌이표 같다는 평가도 나올 만하다. 하지만 요즘 어설픈 선진국 반열에 도취한 우리 사회 일각을 진단하기엔 적절한 시간에 딱 맞춰 당도한 작품이다. 사랑의 종말, 위선과 배제의 민낯을 낱낱이 폭로하는 영화다.

<작품정보>

드림스
Dreams
2025|멕시코, 미국|드라마, 로맨스
2026.03.18. 개봉|98분|청소년관람불가
감독/각본 미셸 프랑코
출연 제시카 차스테인, 아이작 에르난데스, 루퍼트 프렌드, 마샬 벨
수입 ㈜엔케이컨텐츠
배급 ㈜디스테이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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