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시대의 글쓰기] "이거 AI로 작성한 기사인가요?" 물은 편집기자가 요청한 것

문현호 2026. 3. 19. 1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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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똑똑한 AI도 대신할 수 없는 창작자의 영역 세 가지... 절실한 '왜'를 품은 사람만 살아남을 것

'AI 시대의 글쓰기'에서 놓치지 말아야 할 본질은 무엇일까요. 다양한 방면에서 활동하고 있는 시민기자들의 경험을 통해 나의 성장을 돕는 인공지능 활용 기준을 모색해 봅니다. <편집자말>

[문현호 기자]

시리즈 <나의 뉴욕 미술관 답사기>를 끝내고 지난달 24일 <오마이뉴스> 편집기자들을 만났습니다. 두 시간 남짓 이어진 대화의 말미에 편집기자 한 명이 조심스럽게 'AI 시대의 글쓰기'에 대한 글을 청탁하셨습니다. 그 제안을 한 편집기자와 'AI 글쓰기'에 관한 잊지 못할 일화가 있기 때문입니다.

'나'를 글에 담는다는 것

지난해 7월 28일 '영화감독 장준환, 장진, 이해준님, 이 글 꼭 보셔야 합니다'라는 기사를 송고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편집기자에게 쪽지 한 통을 받았습니다. 조심스럽지만, 혹시 이 기사를 AI로 작성한 것이 아니냐는 의심 섞인 질문이었습니다. 쪽지를 확인하는 순간 당혹스러움에 가슴이 세차게 뛰었습니다.

사실 고백하자면, AI를 쓰긴 했기 때문입니다. 메모장에 적어 내려간 초고를 바탕으로, AI에게 맞춤법 교정과 가독성을 높이는 퇴고를 부탁해 완성한 기사였습니다. 저는 솔직하게 회신을 드렸고 편집기자는 AI가 수정하기 전의 초고를 보내줄 수 있겠느냐고 정중히 요청하셨습니다. 가독성을 높이는 문장으로 AI가 어떻게 바꿔주는지 궁금해서 그런다면서요. 부끄러운 마음으로 늘어지고 투박한 제 초고를 보내드렸습니다.

그런데 반전이 일어났습니다. 데스크에서는 문장의 호흡이 길고 정돈되지 않은 부분이 있을지언정 오히려 초고가 독자들의 마음을 움직이는 힘이 훨씬 크다고 보시더군요. 결국 제 메모장의 초고가 그대로 기사로 나갔습니다. 당시 편집기자가 보내준 마지막 쪽지는 제 마음을 깊게 울렸습니다.

"너무 완벽한 글을 생산하려 하지 마세요. 기자님의 그대로를 담은 솔직한 글을 보내주면 그것이 오히려 더 좋은 글입니다."

그날 이후, 저는 가급적 제 속에서 건져 올린 '지문'이 충분히 묻어 있는 날것의 글을 기고하려 애쓰고 있습니다. 오탈자와 맞춤법은 여전히 AI의 도움을 받지만, 글의 결만큼은 제 투박한 호흡을 지키려 노력합니다. 그러다 최근 뼈아픈 경험을 했습니다.

지난 2월 13일 게재된 '안목 좋네, 이 말 듣고 싶으면 해야 할 일'이라는 기사였습니다. 고향인 부산에 내려가며 평소의 생각들을 정리한 글이었는데, 그날따라 글이 술술 풀려 거의 한 호흡에 완성한 글이었습니다. 스스로 대견해하며 기분 좋게 기사를 송고했습니다. 하지만 아뿔싸, 기사가 나간 뒤 댓글을 보고서야 제 경솔함을 깨달았습니다.

'구정을 며칠 앞둔'이라는 첫 문장의 첫 단어부터 문제 소지가 있는 표현을 써버린 것이었습니다. 일제강점기의 잔재인 '구정'이라는 단어를 아무런 비판 없이 써버린 것이죠. 만약 AI의 도움을 받았다면 다른 문장을 쓰지 않았을까 싶더군요. '내 그대로를 담는다는 생각'에만 몰입한 나머지 기초적인 확인의 기회마저 놓쳤다는 생각이 떠나질 않았습니다.

이 실수는 저에게 또 다른 가르침을 주었습니다. AI의 매끈한 퇴고를 거절한다는 것은, 그만큼 더 치열하게 자신의 단어를 조목조목 살피고 책임져야 한다는 뜻이라는 것을요. 나를 글에 담는다는 것은 단순히 솔직해지는 것을 넘어, 내 문장에 완전한 책임을 지는 일이기도 하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AI가 대신할 수 없는 영역
 완벽하지 않아도 나만의 매력을 담아낸 글은 독자의 마음을 움직이는 최종적인 선택의 지렛대가 되어줄 것.
ⓒ tinkerman on Unsplash
그렇다면 AI 시대의 글쓰기에서 기술의 활용은 어떤 모양이어야 할까요? 무조건적인 거부도, 맹목적인 의존도 정답은 아닐 것입니다. 저는 AI가 아무리 똑똑해져도 대신할 수 없는 인간 창작자의 영역이 세 가지라고 생각합니다.

첫째, 내 글의 주인이 되는 능력, 주체성.

글쓰기는 화려한 기술보다 무언가를 '전하고 싶다'는 절실한 '의지'에서 시작됩니다. 첫 문장을 떼는 일은 누구에게나 힘든 과정이기에 오늘날 AI의 효용이 부각되곤 합니다. 하지만 제가 생각하는 글쓰기의 핵심은 작가의 '주체성'에 있습니다. 쉽게 말해, 글의 주제와 방향을 AI에게 내어주지 않는 단단한 마음입니다.

휴대폰이 없던 시절, 우리는 소중한 이들의 전화번호를 머릿속에 외우고 다녔습니다. 지금 어떤가요? 우리는 그 수고를 기계의 메모리에 넘겨주었습니다. 글쓰기라고 다를까요? 마찬가지입니다. 스스로 기억하고 연결하는 사유의 근육이 조금씩 야위어갑니다.

AI가 판단을 대행할수록 생각 근육은 퇴화합니다. 문장을 다듬는 정도는 괜찮겠지 하다가 어느새 방향 설정까지 위임하게 되면, 우리는 창작자가 아니라 AI를 관리하는 '작업 반장'으로 전락하게 될 겁니다.

둘째, 직접 겪어낸 안목, 경험 기반의 판단력과 취향.

AI는 정보를 줄 수 있지만 '체험'을 주지는 못합니다. AI가 맛집 리스트를 완벽하게 정리해줄 순 있어도, '이 집은 꼭 겨울에 방문해야 합니다. 창가에서 내리는 눈을 보며 먹는 국물은 전혀 다른 음식이 됩니다'와 같은 문장의 무게는 직접 가본 사람만이 담아낼 수 있습니다.

1년 치 용돈을 모아 풍물시장에서 미세한 빙렬(도자기의 유약 표면에 생긴 작은 금)을 조목조목 살펴 달항아리를 구매한 일이나, 주말 인적 없는 창경궁의 고요한 아침 햇살 속을 산책하며 부산에 계신 어머니를 떠올렸던 것처럼, 직접 느끼고 통과한 경험은 나만의 '안목'이 됩니다.

무엇이 내 결에 맞는지를 골라내는 힘은 오직 축적된 경험에서 나옵니다. 좋은 것을 고르는 눈과 옳은 것을 고르는 눈은 AI가 대신해 줄 수 없는 인간만의 고유한 '해상도'입니다.

셋째, 대체 불가능한 얼굴, 글 쓰는 이의 매력과 신뢰.

정보가 범람할수록 역설적으로 '누가 말하느냐'는 더욱 중요해질 것 같습니다. 우리가 한강의 치열한 문장을, 김영하의 날카로운 서사를, 이기주의 따뜻한 시선을, 유시민의 명료한 논리를 사랑하는 이유는 그들이 내놓는 '정보' 때문만은 아닙니다. 문장들 사이에서 드러나는 그들만의 유일무이한 캐릭터의 역할도 크다는 게 제 판단입니다.

독자는 완벽한 AI의 추천이 아니라, 한 인간이 고뇌 끝에 길어 올린 고유의 '캐릭터'를 신뢰하고 선택합니다. AI가 아무리 매끈한 문장을 쏟아내도, 창작자가 살아온 삶의 궤적에서 우러나오는 독특한 매력은 흉내 낼 수 없습니다.

그때 그 편집기자가 제 초고에서 발견한 '저 그대로의 모습' 역시 기술이 침범할 수 없는 인간적인 신뢰의 영역이었을 것입니다. 완벽하지 않아도 나만의 매력을 담아낸 글은 독자의 마음을 움직이는 최종적인 선택의 지렛대가 되어줄 것입니다.

결국 캐릭터의 시대, 지문이 묻은 문장을 위하여
 왜 이 글을 써야만 하는지, 왜 이 단어여야만 하는지. 그 절실한 '왜'를 품은 사람만이 살아남을 것.
ⓒ emilymorter on Unsplash
글쓰기의 미래는 결국 '작가 캐릭터의 시대'로 수렴할 것이라는 게 제 생각입니다. 고유한 경험과 취향으로 방향을 잡고, AI를 지렛대 삼아 자신만의 세계를 확장하는 창작자들의 시대 말입니다.

얼마 전 뉴욕 JFK 공항 라운지에서 지능의 가치가 증발하고 있음을 실감하며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졌습니다. "지능과 노동을 빼면 나는 어떤 존재인가?" 이 실존적인 물음에 자신만의 답을 내놓을 수 있는 사람만이, AI를 위협이 아닌 날개로 삼아 '증강된 개인'으로 거듭날 수 있지 않을까요?

인공지능이 수행과 실행을 대신할수록, 그 너머의 '의미'는 가장 고귀한 희소자원이 됩니다. 왜 이 글을 써야만 하는지, 왜 이 단어여야만 하는지. 그 절실한 '왜'를 품은 사람만이 기술의 파도 속에서도 끝내 살아남을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직접 마주하고, 고르고, 써 내려가는 수고로운 일상을 멈추지 않으려 합니다. 기계적인 완벽함에 천착하기보다 제 지문이 선명하게 찍힌 투박한 초고를 더 사랑하겠습니다. 비록 잘못된 단어를 선택해 고개를 숙였던 부끄러움이 남을지라도, 그것도 어찌보면 인공지능은 결코 흉내 낼 수 없는 저만의 '정직한 지문'일 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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