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20시간 수액에 묶인 아이… 집은 병원이 됐다

유예진 기자 2026. 3. 19. 1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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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 유지 위해 수액에 의존
‘비장애인’으로 분류되는 장부전 환자
장애 인정·재택의료 체계 공백 메워야
지민이가 학교를 마치고 돌아오면, 이다래씨는 직접 집에서 총정맥영양(TPN)을 시행한다./사진=유예진 기자
“저는 제가 아이의 간호사라고 생각하면서 살고 있어요. 집도 하나의 작은 병원처럼 돌아가요.”

학교를 마치고 돌아온 초등학교 6학년 지민이는 가방을 내려놓자마자 바닥에 몸을 눕힌다. 그러면 지민이의 어머니 이다래(45)씨는 능숙하게 위루관(복부를 통해 위에 직접 연결해 영양이나 공기를 배출하는 관)을 통해 장에 찬 가스를 빼고, 수액을 연결할 준비를 한다. 지민이는 선천성 장 질환으로 장 절제 수술을 받은 이후 장부전을 앓고 있으며, 크론병까지 진단됐다. 장부전은 장이 영양분을 제대로 흡수하지 못해 생명 유지에 필요한 수분, 전해질, 영양 공급이 어려운 상태다. 환자들은 생존을 위해 중심정맥 카테터를 통해 영양을 공급하는 총정맥영양(TPN)을 시행해야 한다.

지민이는 구토, 설사, 혈변, 장마비가 반복돼 여러 차례 수술을 받았고, 현재는 하루 16~20시간 TPN으로 영양을 공급받고 있다. 이 치료는 가정에서 시행하는 가정정맥영양(HPN) 형태로 이뤄지고 있다. 남는 4~8시간 동안에만 학교에 가거나 일상생활이 가능하다. 가정간호사가 정기적으로 방문해 수액을 전달하고 상태를 확인하지만, 실제 수액 연결과 관리, 위루관 감압 등 대부분의 의료 처치는 보호자가 맡는다. 여기에 전신에 영향을 미치는 극희귀질환까지 동반돼 여러 진료과 치료를 병행하고 있다. 이처럼 장시간 의료 처치에 의존하고 일상생활이 크게 제한되는 상태지만, 만성 장부전 환자와 TPN 이용자는 현행 제도에서 장애로 인정되지 않고 있다.

◇하루 24시간 이어지는 돌봄… “세 시간 이상 자본 적 없어”
지민이는 현재 크론병 치료를 위한 생물학적 제제 주사를 8주마다 병원에서 맞고 있다. 부족한 영양은 TPN으로 보충한다. 어릴 때는 혈액검사 결과에 맞춰 성분을 조절한 조제 TPN이 필요했지만, 병원 내 반출 가능 인력 제한으로 즉시 시작하지 못했다. 이후 성장하면서 시판 TPN(상업용 정맥영양제)을 사용하게 됐지만, 지방 함량이 높아 매일 사용할 경우 간 수치가 상승하는 문제가 있어 주 3~4회만 사용하고 나머지는 일반 수액으로 보충한다. 이다래씨는 “경장영양(위나 장으로 직접 영양을 공급하는 방법)도 시도했지만 장마비가 반복돼 유지하기 어려웠다”며 “현재는 특수식이, 죽, 흰밥, 고기, 달걀말이 등을 컨디션이 좋을 때 하루 한 끼 섭취하는 수준”이라고 말했다.

지민이가 학교에 있는 시간에도 이씨는 아이 곁을 완전히 떠나지 못한다. 점심시간에 맞춰 학교로 가 위루관을 통해 가스를 빼주고, 상태 변화에 즉각 대응하기 위해 항상 근처에서 대기한다. 밤이 돼도 돌봄은 멈추지 않는다. 수액 주입 상태, 배변·출혈 여부를 계속 확인해야 해 깊이 잠들기 어렵다. 그는 “아이를 재우며 잠시 잠들었다가 자정 무렵 다시 일어나 수액 상태를 확인하고 기저귀와 옷을 갈아입힌다”며 “지민이를 키우며 한 번도 밤에 세 시간 이상 자본 적이 없다”고 말했다. 이어 “처음에는 버티는 데 집중하느라 느끼지 못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우울감과 공황 증상이 심해졌다”며 “이후 복지관에서 약 1년간 부모 상담을 받으며 버텼다”고 했다.
TPN을 준비하는 이다래씨와 지민이의 의료용품으로 가득 찬 수납장./사진=유예진 기자
◇국내 HPN 체계 미비… 해외는 재택의료로 통합 운영
유럽임상영양대사학회 가이드라인에서는 지민이처럼 3개월 이상 정맥영양(PN)이 필요한 환자의 경우, 삶의 질을 고려해 퇴원 후 가정에서 시행하는 가정정맥영양(HPN)을 권고하고 있다. HPN은 전문성이 필요한 치료지만, 적절한 환자 선정과 체계적인 교육·관리 시스템이 갖춰지면 가정에서도 안전하게 시행할 수 있는 것으로 제시된다. 서울대병원 소아청소년과 고재성 교수는 “HPN은 단순한 치료를 넘어 지속 가능한 관리 체계가 핵심이지만, 국내에는 이러한 기반이 충분히 마련돼 있지 않다”며 “현재는 일부 의료기관의 가정간호나 중증소아 재택의료 시범사업 형태로 제한적으로 운영되고 있다”고 말했다.

가장 큰 문제는 공급과 전달 체계다. 약사법상 의약품 배송이 제한돼 있어 정맥영양제 배송 시스템이 제대로 구축되지 못했다. 이에 따라 환자나 보호자가 직접 병원을 방문해 약제를 수령해야 한다. 조제형 PN은 한 달에 10회 이상 병원을 오가야 하는 경우도 있고, 상품형 PN 역시 월 1회 이상 방문이 필요하다. 병원까지 평균 이동시간은 105분에 달한다. 고 교수는 “운반 과정에서도 안전 문제가 제기된다”며 “일부 환자는 병원에서 대량의 수액을 직접 들고 이동하거나, 택배나 퀵서비스를 이용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이어 “지방 성분이 포함된 유리병 제제는 온도와 충격에 민감해 파손이나 변질 위험이 있다”고 했다.

경제적 부담도 크다. 정맥영양 주입 펌프, 수액세트, 주사기 등 필수 소모품에 대해 건강보험 급여가 적용되지 않아 대부분을 환자가 전액 부담한다. 펌프를 제외한 소모품 비용만 월 평균 57만7000원 수준으로 조사됐다. 고 교수는 “조제형 PN은 병원 약국에서 무균 환경으로 제조해야 해 숙련 인력과 고가 장비가 필요하다”며 “관련 수가가 낮아 조제할수록 적자가 발생하는 구조”라고 말했다. 이어 “HPN 교육과 상담에 대한 별도 수가도 없어 환자와 보호자를 교육할 인력 역시 부족하다”고 했다. 

반면, 해외 주요 국가는 HPN을 재택의료 서비스로 체계화해 운영하고 있다. 미국은 입원과 외래 기능을 분리한 구조에서 다기관 협력 기반의 환자 중심 모델을 구축해, 외래 진료소가 처방과 임상 모니터링을 맡고 전문 약국이 PN 조제와 배송을 전담한다. 이를 통해 의료기관의 부담을 줄이고 환자의 선택권을 높이고 있다. 영국은 국가건강보험 체계 아래 재택의료 서비스 제공기관이 PN 조제와 배송, 교육, 장비 공급과 관리까지 전 과정을 통합해 제공하고 있다. 프랑스 역시 국가가 지정한 전문센터를 중심으로 병원 약국의 조제·배송과 장비 공급, 방문 간호 서비스가 연계되는 중앙집중형 구조를 갖추고 있다. 이처럼 해외에서는 약물, 장비, 교육, 간호 서비스 전반을 하나의 체계 안에서 지원하며 환자 부담을 줄이는 데 초점을 두고 있다.

◇“제도 공백 속 방치… 장애 인정·지원 체계 마련 시급”
전문가들은 만성 장부전 환자에 대한 제도적 기반 마련이 시급하다고 강조한다. 현재 장부전은 장루를 제외하면 별도의 장애등록 기준이 없어, 환자들이 장애인복지법에 따른 지원을 거의 받지 못하는 상황이다. 식사나 약물만으로 생명을 유지하기 어려워 장기간 TPN에 의존해야 하는 환자임에도 제도 밖에 놓여 있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만성 장부전 환자도 장애등록 대상에 포함해 일상생활에서 필요한 보호와 지원을 받을 수 있도록 법적 기준을 마련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사회서비스 정책을 연구하는 연구위원 A씨는 “현재처럼 질환별로 개별 기준을 추가하는 방식은 한계가 있다”며 “장애 인정 범위를 넓히는 동시에 등록제 자체를 보다 유연하게 개편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어 “장애 기준에 미치지 못하더라도 일상생활에 제약이 있는 경우에는 예외적으로 인정하거나, 장애 등록 여부와 관계없이 필요한 급여를 신청할 수 있도록 하는 방안도 함께 검토돼야 한다”고 했다.

치료 체계 전반에 대한 제도적 기반 마련도 필요하다는 의견도 제기된다. 고재성 교수는 “정맥영양제의 안전한 배송 체계 구축이 시급하다”며 “자동복막투석이나 산소치료처럼 요양비 지원이 적용되는 다른 재택치료와 달리, HPN에 필요한 주입 펌프와 소모품은 지원 대상에서 제외돼 있어 환자 부담이 크다”고 말했다. 이어 “관련 의료기기와 소모품을 요양비 지원 대상에 포함하는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며 “의료기관 중심의 구조를 보완하기 위해 가정정맥영양 서비스 제공 체계를 다양화하고, 지역사회 기반 재택의료와의 연계를 확대해야 한다”고 했다. 

정부도 제도 개선 필요성을 인지하고 관련 검토를 진행 중이다. 보건복지부 장애인정책국 장애인정책과 두유림 행정사무관은 “만성 장부전 관련 장애인 등록 기준 개정 여부는 연구용역을 통해 필요성을 검토한 뒤, 결과를 반영해 법령 개정을 추진할 계획”이라며 “연구는 올해 하반기까지 진행되며, 이후 개정안 마련과 입법예고 등 절차가 이어질 것”이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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