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내포구에서 한림항까지 제주 서쪽 바당길

문운주 2026. 3. 19. 1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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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올레 15-B코스]포구와 습지, 성곽이 품고 있는 또 하나의 이야기

[문운주 기자]

 한림항에 정박한 어선들이 잔잔한 바다 위에 줄지어 서 있다. 제주 서쪽 바다의 일상이 고요하게 펼쳐지는 풍경이다.
ⓒ 문운주
제주올레길 15-B코스는 제주 서쪽 한림항에서 고내포구까지 이어지는 약 15.5km의 바당길이다. 포구와 습지, 옛 성터와 해안 산책로, 그리고 해녀의 삶이 이어지는 마을을 차례로 지나며 제주 서쪽 해안의 풍경과 시간을 함께 보여주는 길이다
6일 아침 7시, 제주올레 A·B코스 역방향 분기점에서 길을 나섰다. 새벽의 찬 바닷바람이 얼굴을 스치고 지나간다. 변덕스러운 날씨다. 기온이 영하로 떨어졌다. 바다에는 거센 파도가 넘실거렸다. 금방이라도 비가 쏟아질 듯 바닷가 풍경은 을씨년스럽게 느껴진다.
 제주 현무암 돌담 위로 담쟁이덩굴이 촘촘히 얽혀 있다. 겨울을 지난 덩굴이 돌담을 감싸며 마을 길에 오래된 제주 돌담 풍경을 보여준다.
ⓒ 문운주
 제주 들판에 노란 유채꽃이 넓게 피어 봄의 기운을 전하고 있다. 흐린 하늘 아래 초록 줄기 사이로 작은 노란 꽃들이 바람에 흔들리며 서북쪽 제주 들녘의 이른 봄 풍경을 만들어 낸다.
ⓒ 문운주
고내리 마을길로 발걸음을 옮겼다. 낮은 돌담이 이어진 골목길 풍경이 정겹다. 담벼락에는 담쟁이가 돌담을 휘감고 있다. 제주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멀구슬나무에는 노란 열매가 대롱대롱 매달려 있다. 마을을 벗어나자 들판에는 꽃망울을 머금은 유채가 봄을 준비하듯 고개를 내밀고 있다.

길은 서서히 바다 쪽으로 열린다. 바닷물과 민물이 만나는 먼물습지를 지났다. 잔잔한 물 위로 갈대와 습지 식물이 바람에 흔들리고, 그 사이로 새들이 조용히 날아올랐다. 습지는 바다와 마을 사이에서 잠시 숨을 고르게 하는 공간처럼 느껴졌다.

습지를 지나자 다시 바다가 가까워졌다. 멀리 해안선을 따라 이어진 길은 다음 목적지인 애월진성 으로 이어졌다. 제주 서쪽 해안을 따라 걷는 올레길은 바다와 마을, 그리고 오래된 시간의 흔적을 번갈아 보여주며 천천히 앞으로 나아간다.

애월진성은 조선 선조 14년(1581) 제주목사 김태정이 왜구의 침입을 막기 위해 애월포구에 돌로 쌓은 해안 성곽이다. 성의 둘레는 약 166m, 높이는 약 2.4m다. 바다와 접한 북쪽 성벽은 비교적 원형이 잘 남아 있다.

애월진성을 지나면 해안을 따라 이어지는 애월환해장성을 만난다. 환해장성은 고려 원종 때 제주에 들어온 삼별초가 관군의 공격을 막기 위해 해안을 따라 쌓은 성곽에서 시작된 것으로 전해진다. 이후 조선시대에 왜구의 침입을 막기 위해 보수되고 일부 구간이 다시 축조되었다.
 <표해록>의 저자 장한철의 삶이 시작된 생가
ⓒ 문운주
▲ 장한철 표해록 표류하던 이들이 불을 피워 연기를 올리며 구조를 요청한다. 그러나 다가온 배는 구원이 아닌 또 다른 위기, 해적선이었다.(사진출처: 장한철 생가 영상 캡처)
ⓒ 문운주
애월환해장성에서 해안을 따라 20여 분쯤 걸었을까, 한담해안산책로에 이른다. 길 위에서 가장 먼저 마주한 것은 <표해록>을 남긴 장한철의 생가 터로 전해지는 곳이다. 해양문학의 백미로 꼽히는 그의 기록은, 이 바다와 맞닿아 있는 삶의 흔적 속에서 더욱 실감 나게 다가온다.

<표해록>은 조선 후기 제주 유생 장한철이 과거 시험을 보러 가던 중 풍랑을 만나 표류했다가 돌아온 경험을 기록한 글이다. 제주에서 출발한 배가 바다에서 길을 잃고 떠돌다 극적으로 귀환하는 과정이 담겨 있으며, 당시 제주인의 해상 경험과 바다에 대한 인식을 생생하게 전해준다.

제주 서쪽 바닷길의 백미, 한담해안산책로
 한담해변의 현무암 바위 위에 갈매기들이 모여 있고, 파도는 바위에 부딪히며 하얀 포말을 일으킨다. 제주 서쪽 바다의 거친 아름다움이 드러나는 풍경이다.
ⓒ 문운주
 파도가 거세게 일렁이며 검은 현무암 바위를 두드리고 있었다. 바람과 물결이 어우러진 제주 서쪽 바다의 생생한 풍경이다.
ⓒ 문운주
이어서 길은 바다를 바로 곁에 두고 이어진다. 현무암 바위 위에 갈매기들이 모여 있다. 파도는 바위에 부딪히며 하얀 포말을 일으킨다. 제주 서쪽 바다의 거친 아름다움이 드러나는 풍경이다. 시야가 탁 트여 있어, 걸음을 옮길수록 바다의 색과 빛이 조금씩 달라진다.

파도는 발밑까지 밀려오고, 때로는 잔잔한 물결이 유리처럼 빛난다. 한담해안산책로는 변화하는 바다의 표정을 가장 가까이에서 보여주는 길이다. 걷는 이들은 자연스레 속도를 늦추고, 파도 소리와 바람에 몸을 맡기게 된다.

한담해안산책로를 지나 곽지해수욕장에 이르면,하얀 모래와 맑은 물빛이 어우러진 해변이 펼쳐진다. 조금 전까지의 거친 파도와는 또 다른 제주 서쪽 바다의 얼굴이다. 과물노천탕에는 바닷가 옆으로 솟아나는 맑은 용천수가 흐르고 있다. 이곳은 풍경을 넘어, 오래전부터 이어져 온 삶의 터전이기도 하다.
 귀덕포구의 현무암 돌담과 잔잔한 바다, 그리고 작은 어선이 어우러진 제주 서쪽 해안의 소박한 풍경
ⓒ 문운주
 귀덕 어촌 포구에 정박한 어선들과 방파제 위 갈매기들, 그리고 뒤편으로 돌아가는 풍력발전기가 제주 서쪽 바다의 일상 풍경을 보여준다.
ⓒ 문운주
귀덕 어촌 포구에 정박한 어선들과 방파제 위 갈매기들, 그리고 뒤편으로 돌아가는 풍력발전기가 제주 서쪽 바다의 일상 풍경을 보여준다. 귀덕포구는 안캐(안쪽), 중캐(중간쪽), 밖캐(밖았쪽)와 같은 3판 구조를 옛날 방식 그대로 잘 간직하고 있다. 이런 모구 축조방식은 제주에서만 볼 수 있는 것으로 2017년옛 포구 원형 그대로 복원했다.

길은 수원환해장성과 대수포구를 지나 한림항에 이르러 끝을 맺는다. 항구에는 어선들이 빼곡히 정박해 있고, 배 위에서는 어부들이 그물을 손질하며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다. 엉킨 그물을 풀고 정리하는 손길에는 바다를 삶의 터전으로 살아온 시간의 흔적이 고스란히 묻어 있다.

고내포구에서 시작해 먼물습지와 애월진성, 환해장성, 한담해안길과 곽지, 그리고 수원리를 지나 이곳 한림항에 이르기까지, 길은 끊임없이 바다와 함께 이어졌다. 그 길 위에서 마주한 것은 단순한 풍경이 아니라, 제주 사람들이 바다와 함께 살아온 시간이었다.
▲ 한림수원리 해변 현무암 바위, 갈매기, 풍력발전기가 아름다운 풍광을 자랑하는 제주 서쪽 해안
ⓒ 문운주
 한림항 어선 위에서 어부가 그물을 손질하고 있다. 엉킨 그물을 풀고 정리하는 손길 속에 바다를 삶의 터전으로 살아온 시간과 일상의 노동이 고스란히 묻어난다.
ⓒ 문운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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