힙합 비트 위에 서린, 아버지의 디아스포라 역사

주환선 2026. 3. 19. 10: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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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일 한국인 래퍼들이 노래하는 아버지의 삶... 힙합으로 억눌린 정체성을 드러내다

[주환선 기자]

최근 'PM Kenobi'의 랩을 들으며 자연스레 재일 한국인 래퍼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게 됐다(관련 기사 : "나는 누구일까" 묻는 재일동포 3세대, 힙합으로 답하다). 원래 J-POP을 즐겨 들었지만, J-힙합을 다시 들은 건 오랜만이었다. 유학 시절 일본 친구가 건네주던 몇 곡을 처음 들었을 때 느꼈던 낯설지만 신선한 감각이 다시 살아났다.

유튜브 댓글을 훑다가 눈에 띈 문장이 있었다. "자이니치들의 아빠들은 다 나쁜 아빠였나 봐." 랩의 가사만 보면 그렇게 보일 수도 있다. 일부 랩 속의 아버지들은 가족을 돌보지 않고 폭력적이거나 무책임했던 모습들이다. 하지만 그 평가 뒤에는 구조적 가난과 차별, 사회적 배제를 향한 무관심이 숨겨져 있다. 문제의 행동을 감싸자는 뜻은 아니다. 다만 그들이 어떤 자리에, 어떤 조건 속에서 '아버지'로 살아야 했는지 함께 생각해 보고 싶을 뿐이다.

날 것 그대로의 노래
▲ 재일한국인 랩퍼 (왼쪽부터) 유키 치바, PM kenobi, 한냐 한냐의 「가족」 (피처링 KOHH-유키치바의 전 랩네임. 아버지의 성을 사용했다), PM kenobi 「haraboji&aboji」, 유키치바 「비행기」는 그들의 가족사, 아버지에 대한 랩이다. 그 곡에는 솔직한 본인들의 생각이 담겨있다.
ⓒ 일러스트 주환선
"Family 선택할 수 없어, 피는 붉은 것뿐만이 아니지."

'한냐(Hannya)'의 곡 '가족'(2017년)에는 아버지에 대한 원망과 그리움이 뒤섞여 있다. 국적도, 가정도 아들에게 거짓말하고 일본 사회의 그늘에서 위험하고 더러운 일을 떠맡아야 했던 세대. 그들은 조선말 욕과 술에 취한 노래로 존재를 드러내다가도, 일터와 골목에서는 늘 고개를 숙이고 살아야 했다.

한냐의 랩은 그런 아버지를 향한 분노와 슬픔의 기록이다. 거친 비트 위로 쏟아지는 원망 속에는, 무책임하던 아버지를 이해하려는 아들의 감정이 스며 있다. 이 노래를 피처링한 유키 치바(이전 랩네임 KOHH)는 두 살 때 세상을 떠난 한국인 아버지, 그리고 중독과 병으로 고통 받던 어머니 이야기를 날 것 그대로 노래한다. 아버지는 약물에 취해 스스로 세상을 떠났고, 어머니는 몇 번이고 생을 포기하려 했다. 그의 가사에는 상처와 상실감만이 남아 있다.

PM Kenobi의 자전적 랩은 또 다른 이야기를 들려준다. 제주에서 일본으로 이주한 할아버지, 그리고 그곳에서 태어나 자란 아버지의 이야기를 통해 세대를 잇는다. 강제동원과 전후 혼란, 국적 문제 속에서 할아버지는 일본 사회의 밑바닥에서 버텼고, 아버지는 일본어를 모국어로 쓰게 된 세대였지만 끝내 "완전한 일본인"이 되지 못했다. 그의 랩에서 제주부터 시작된 가족의 역사와 기억이 비트 위로 살아난다.

랩 속에 담긴 디아스포라의 역사

이들의 서사는 조선인 디아스포라의 역사와 맞닿아 있다. 중앙아시아 고려인이 소련 강제 이주의 기억을 더듬고, 조선족 청년이 만주의 변방에서 차별 속에 뿌리내렸듯, 재일 한국인은 식민지 조선에서 일본으로 끌려와 혹은 남겨져 살아남은 사람들의 후손이다. 이들에게 힙합은 단지 음악 장르가 아니라, 억눌린 정체성을 드러내는 언어이자 저항의 형식이다. 감춰졌던 한(恨)과 혈육의 역사를 드러내는 자기 기록이기도 하다. 원래 힙합의 시작인 자유와 사회 저항과도 결을 같이 한다.

연구자들은 1세부터 3세까지 재일 한국인이 겪은 차별을 교육·노동·주거·복지·국적·사회적 낙인에 걸친 구조적 폭력으로 규정한다. 1·2세가 '조국'과 민족 의식을 붙잡으며 저항했다면, 3세는 일본 시민으로서 국적 취득과 인권, 다문화 담론으로 맞섰다. 그러나 일본 사회는 여전히 그들을 '영구적인 외국인'으로 대했고, 언론은 종종 그들을 범죄나 사회 부적응의 상징으로 소비했다. "비(非)국민"이라는 낙인은 오랫동안 이들을 따라붙었다.

이런 배경 속에서 무대 위의 재일 한국인 래퍼들은, 힙합이 지닌 '날 것의 삶'이라는 정신을 누구보다 선명히 보여준다. 그들의 마이크는 아버지가 끝내 말하지 못한 시대의 일기이자, 다음 세대에게 전하는 기록이다. 그 플로우, 비트와 라임을 따라가다 보면 우리는 "나쁜 아빠였나 보다"라는 1차적인 판단을 넘어, 그 뒤에 놓인 역사와 구조를 마주하게 된다.

일본과 한국은 오랜 세월 문화적으로 긴밀하게 엮여 왔다. 지금은 K문화의 영향으로 일본 출신 연예인들이 한국 무대에 서고, 한국 아티스트도 일본에서 활발히 활동한다. 언어를 배우고 교류하는 일은 점점 자연스러워졌다. 그렇기에 이제는 재일 한국인이 양국 사이에서 더 이상 외면 받지 않도록 우리가 노력해야 한다. 따뜻한 포용이 그들의 뿌리와 상처를 감싸줄 때, 식민의 시간을 견뎌온 조선인 할아버지 세대의 슬픔도 함께 씻겨 내려갈 것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네이버블로그, 브런치에도 실립니다. 추천곡 : 한냐 「가족」, PM kenobi 「haraboji&aboji」, 유키 치바 「비행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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