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주자본주의]④"결국 기관이 움직여야"… 스튜어드십 코드의 현실
도입만 하고 작동 안 하는 스튜어드십 코드
기관 '행동' 막는 비용·규제·이해상충 구조
평가·자산배분 연계 등 인센티브 설계돼야
편집자주
개정 상법 시대를 맞아 한국 자본시장이 '주주자본주의'라는 새로운 전환점을 맞고 있다. 법 시행에 따른 제도적 변화는 기업 지배구조와 자본시장 관행 전반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본지는 5회에 걸쳐 개정 상법이 가져올 변화와 이에 대비한 움직임, 향후 주주자본주의 정착을 위한 제도적 과제들을 짚어본다.
①개정상법 시대 열렸다…3월 주총 키워드는
②"지금이 마지막"…상법 개정에 기업들 '지배력 방어' 총력
③'주가누르기 방지법' 본격화…전문가들 "핵심은 상증세 개편"
④"결국 기관이 움직여야" 스튜어드십 코드의 현실
⑤마지막 퍼즐은 공시제도…"주주 배제한 '결과 공시' 뜯어고쳐야"
국내 자본시장에 주주자본주의가 정착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기관투자가가 '행동하는 주주'로 자리 잡아야 한다. 기업 지배구조를 개선하기 위한 제도적 틀이 마련되더라도 이를 실제로 실행에 옮길 주체가 움직이지 않으면 실효성을 담보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도입 이후에도 기대만큼 활성화되지 못한 '스튜어드십코드(기관투자가의 의결권 행사 지침)'는 이러한 한계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로 꼽힌다.
19일 김남근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실 등에 따르면 2017~2024년 스튜어드십코드에 가입한 33개 자산운용사의 의결권 행사현황을 분석한 결과, 운용사당 평균관여활동수는 연평균 5.4건으로 일본의 2.5% 수준에 그쳤다. 스튜어드십코드는 연기금, 자산운용사 등 기관투자가들이 기업 의사결정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도록 한 준칙이다. 도입 후 외형상 참여 기관은 늘었지만 실질적 주주권 행사는 여전히 기대에 미치지 못한 셈이다.

이러한 실효성 논란 배경으로는 시간과 비용 부담 대비 효익은 적은 '구조적 한계'가 지목된다. 여기에 자산운용사들로선 투자대상기업과의 관계 악화 가능성, 패시브 펀드 운용구조의 한계, 5%룰(대량보유보고 의무)·의결권 대리권유와 같은 법적리스크 등까지 더해져 적극적인 행동에 나서기 어렵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또한 상당수 기업의 주주총회 일정이 특정 시기에 집중되면서 충분한 검토시간을 확보하기 어렵다는 점 역시 현실적 한계로 꼽힌다.
이효섭 자본시장연구원 선임 연구위원은 "스튜어드십코드가 실효적으로 작동하지 못하면서 그간 주주관여도 저조했던 것"이라며 "평가 의무화도 안 했고, 인센티브나 페널티도 없었다"고 지적했다. 이준서 동국대 교수 역시 "문제는 형식이 아니라 실행"이라며 "코드 이행 여부를 점검하고 이를 자산 배분에 반영하는 피드백 구조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처럼 실효성 논란이 이어지는 가운데 관건은 제도 도입을 넘어 '어떻게 실질적으로 작동하게 만들 것인가'다. 금융당국이 스튜어드십 코드 활성화에 착수한 가운데, 자본시장 전문가들은 공통적으로 '평가와 보상 구조'의 전환을 핵심과제로 지목하고 있다.
이남우 한국기업거버넌스포럼 회장은 "현재는 가입 여부에 일정점수, 정책 마련에 추가 점수를 주는 구조라 실질적 차별화가 크지 않다"며 "가점을 확대해야 한다. 자금을 배분하는 과정에서 스튜어드십 활동을 정성적으로 평가하고 가점을 실질적으로 반영한다면, 별도의 강제 점검 없이도 충분한 유인이 작동할 수 있다"고 제언했다. 이 연구위원 역시 "평가를 공개하고 실제 자산배분 시 인센티브, 페널티를 주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며 "국민연금기금에 일정부분 위탁하는 방안 등 다양한 방안을 고려해볼 수 있을 것"이라고 언급했다.
유럽 최대 연기금인 네덜란드 연기금자산운용(APG) 출신 김정남 전 매니징 디렉터는 기관투자가의 책임 있는 관여가 작동하기 위해서는 ▲활동 및 성과 공시에 대한 통일된 보고 포맷과 가이드라인 ▲위탁운용사 선정 및 평가 시 스튜어드십 활동 질적 평가 반영 ▲관련 규제 명확화 및 표준 프로토콜 마련 등의 제도적 장치가 필요하다고 짚었다.

해외 주요국에서는 기관투자가 간 '협력적 주주관여'가 이미 보편화돼있다. 김 전 디렉터는 한국에서 이러한 협력적 주주관여가 자리 잡지 못한 이유로 "집단행동·공시·미공개정보 관련 규제 리스크에 대한 불확실성이 크다"며 "국민연금을 제외하면 국내 기관투자가의 대기업 지분율이 높지 않아 관여의 실효성도 제한적"이라고 지적했다.
또한 그는 강제적 이행점검 없이도 비교적 제도가 잘 작동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 일본에 대해 "금융청(FSA)은 코드 개정과 운영 방향을 제시하고, 공적연금(GPIF)은 운용사 평가에 스튜어드십 성과를 적극적으로 반영하며, 일본거래소그룹(JPX)은 기업에 구체적인 자본 효율성과 주주가치 관련 공시를 요구한다"며 "한국도 금융위원회, 국민연금, 한국거래소 간 긴밀한 정책 공조와 역할 분담 구조와 세부 목표가 보다 명확히 될 필요가 있다"고 제언했다.
스튜어드십코드 활성화를 위한 개선 방안은 이달 초 더불어민주당 코리아 프리미엄 K자본시장특별위원회와 국내 자산운용사 대표들과의 좌담회에서도 언급됐다. 이 자리에서는 일본처럼 상장사의 주주관련 경영지침인 '기업거버넌스코드'를 도입해 기업들이 주주와 건설적인 대화를 하게끔 제도화해야 한다는 제언이 나왔다. 또한 대량보유보고제도의 '공동보유' 및 '경영권 영향 행위' 관련 규정이 미국, 영국 등에 비해 광범위하고 모호하다는 지적도 제기됐다. 하루 최대 주총 개최 기업 수를 제한하는 쿼터제를 도입하는 방안도 거론됐다. 오기형 특위위원장은 "일본의 밸류업정책 추진과정에서 핵심적 제도는 기업지배구조 코드와 스튜어드십코드"라며 "스튜어드십코드 유인체계 개선이 필요하고, 상장지수펀드(ETF) 상품관련 자금의 주주관여활동에 대한 보완도 필요하다"고 전했다.

이와 함께 전문가들은 주주자본주의가 정착되기 위해서는 제도뿐 아니라 시장 참여자 간 신뢰가 함께 구축돼야 한다는 점 역시 강조하고 있다. 김 전 디렉터는 "지속 가능한 리레이팅의 핵심은 한국 주식시장에 대한 투자가들의 신뢰 정착 여부"라며 "상법·자본시장법 개정의 실효성 확보를 통한 주주가치 보호 제도의 정비, 금융당국의 일관되고 적극적인 메시지, 국민연금의 수탁자 의무에 기반한 일관된 관여 등의 제도적 지원이 함께 시행돼야 한다"고 당부했다.
조슬기나 기자 seul@asiae.co.kr
박승욱 기자 ty1615@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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