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액주주 이사회 진입 ‘제한’ 논란… 기업들, 정관 변경 통해 방어 강화

임성영 2026. 3. 19. 0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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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 수 줄이고 자격 요건 신설…개정 상법 영향 회피 논란
자사주, 주주 환원 대신 경영권 방어 수단 활용 지적
“코리아 디스카운트 해소 노력에 영향 우려”
주주총회 소집공고를 마무리한 코스피200·코스닥150 구성 상장사 328개사와 관련 이슈가 확인된 2개사를 포함한 330개 기업 가운데 32개 기업이 이사 수 상한을 낮추거나 새로 규정했다. 그래픽=한지영 디자이너.


12월 결산법인의 정기 주주총회 시즌을 앞두고 상장사들이 정관 변경에 나서고 있다. 표면적으로는 경영 효율성을 내세우고 있지만, 일부에서는 집중투표제 등 개정 상법의 영향을 줄이고 지배주주의 경영권을 강화하려는 조치 아니냐는 비판도 제기된다.

18일 한국기업거버넌스포럼에 따르면, 지난 13일 기준 주주총회 소집공고를 마무리한 코스피200·코스닥150 구성 상장사 328개사와 관련 이슈가 확인된 2개사를 포함한 330개 기업 가운데 32개 기업이 이사 수 상한을 낮추거나 새로 규정했다. 삼성전자, 삼성SDS, 카카오, GS, 셀트리온 등이 포함된다.

이사 수 줄이고 자격 요건 신설…개정 상법 영향 회피 논란

가장 눈에 띄는 곳은 카카오다. 기존 ‘3명 이상 11명 이하’였던 이사 수를 ‘3명 이상 7명 이하’로 줄였다. 셀트리온 역시 15인이던 상한을 9인으로 축소했으며, 하이트진로는 상한을 13명에서 5명으로 낮췄다.

이 같은 움직임은 집중투표제 도입 시 소액주주가 결집해 자신들이 지지하는 이사를 선임하는 것을 어렵게 만들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집중투표제에서는 선임할 이사 수가 많을수록 소액주주가 의결권을 특정 후보에게 집중해 최소 1석을 확보할 가능성이 커진다. 반면 이사 정원이 줄어들면 이사 1명을 선임하는 데 필요한 지분율이 높아져 소액주주의 이사회 진입 문턱이 올라갈 수 있다.

일부 기업은 외부 인사의 이사회 진입 요건을 강화할 수 있는 이사 자격을 정관에 명시했다. 효성중공업과 효성티앤씨는 이사 후보 자격으로 △그룹사 3년 이상 경력 또는 △재임 이사 3분의 1 이상의 추천을 요구하는 조건을 신설했다. 이에 대해 소액주주가 추천한 외부 전문가의 진입이 사실상 어려워질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구현주 법무법인(유) 한누리 변호사는 “그룹사 경력이나 기존 이사의 추천 등이 필수 요건으로 작동할 경우, 지배주주와 이해관계를 달리하는 후보는 후보군에서 배제될 가능성이 있다”며 “형식상으로는 열려 있지만 실질적으로는 외부 인사의 진입 장벽을 높일 수 있다”고 말했다.

이사 임기를 ‘3년 이내’로 유연하게 설정하는 기업도 늘고 있다. 삼성전자와 GS 등도 이 같은 변경을 도입했으며, 이는 특정 이사의 임기를 상대적으로 짧게 설정하거나 이사진 교체 시점을 분산시키는 방식으로 활용될 가능성도 제기된다. 이 경우 집중투표제로 선임된 이사가 있더라도 이사회 내 영향력이 빠르게 약화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구 변호사는 “이번 주주총회에서는 이사 정원을 줄이거나 선임할 이사 수를 제한하는 선결 안건 상정, 시차임기제 도입 등 개정 상법의 영향을 줄이려는 선제적 대응이 이어질 수 있다”며 “정관 변경이 결과적으로 일반주주의 이사회 진입 가능성을 제한하는 효과로 이어질 수 있는 만큼, 주주들이 안건 내용을 면밀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코스피 27개사와 코스닥 38개사 등 65개 기업은 이사회 결의만으로 자사주를 처분하거나 소각할 수 있는 조항을 신설하거나 강화했다. 그래픽=한지영 디자이너.


자사주, 주주 환원 대신 경영권 방어 수단 활용 논란

자사주를 경영권 방어 수단으로 활용할 수 있도록 하는 정관 변경도 늘고 있다. 한국기업거버넌스포럼 분석 결과, 코스피 27개사와 코스닥 38개사 등 65개 기업은 이사회 결의만으로 자사주를 처분하거나 소각할 수 있는 조항을 신설하거나 강화했다.

자사주는 원칙적으로 의결권이 없지만 제3자에게 처분될 경우 해당 주식은 의결권을 회복하게 된다. 자기주식 상태에서는 의결권이 없으나 제3자에게 넘어가면 일반 주식으로 전환되기 때문이다. 경영권 분쟁 상황에서 우호 세력(백기사)에게 자사주를 넘길 경우 지배주주 측의 의결권 방어 수단으로 활용될 수 있다는 지적이 제기돼 왔다.

특히 SK이노베이션은 전략적 제휴를 명분으로 자사주를 우호 세력에게 처분할 수 있는 근거를 마련했으며, 티케이지휴켐스는 처분 목적에 지배구조 안정화를 명시했다. 이에 따라 자사주가 주주 가치 제고보다는 경영권 방어 수단으로 활용될 가능성도 거론된다.

밸류업·상법 개정 앞두고 ‘선제 대응’… 코리아 디스카운트 해소 노력에 영향 우려

정부는 밸류업 프로그램과 상법 개정을 통해 △집중투표제 의무화 △감사위원 분리선출 확대 △자사주 소각 의무화 등을 추진하고 있다. 2026년 정기 주주총회는 관련 제도가 본격 시행되기 전 마지막 정기주총으로 향후 기업 지배구조 변화의 분기점이 될 것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이남우 한국기업거버넌스포럼 회장은 “올해 주주총회는 개정 상법 시행을 앞두고 기업들이 유리한 환경을 선점하기 위해 정관을 먼저 정비하려는 움직임이 나타날 수 있다”며 “집중투표제와 감사위원 분리선출 확대는 일반주주가 지배주주의 영향력을 견제할 수 있는 수단인데 이사 정원 축소나 시차임기제 등이 확산될 경우 제도 효과가 제한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정관은 모든 주주의 권리 구조를 규정하는 중요한 규범”이라며 “주주권을 제한하는 방향의 변경이 이어질 경우 자본시장 신뢰와 코리아 디스카운트 해소 노력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고 덧붙였다.

개인투자자뿐 아니라 기관투자가와 금융당국의 역할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박유경 전 네덜란드 연금자산운용(APG) 신흥국 담당 대표는 “코리아 디스카운트 해소를 위해서는 법·제도 정비뿐 아니라 시장 참여자와 금융당국이 함께 거버넌스 문화를 개선해야 한다”며 “제도 도입 이후에도 관행이 정착되지 않으면 효과가 제한될 수 있다”고 말했다.
임성영 기자 rssy0202@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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