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의 열매] 이종근 (9) 보석사업 내리막에 건축업 올인했다 빚더미

전병선 2026. 3. 19. 0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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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 대통령 서거 이후 전두환 정권이 들어섰지만 사회는 여전히 혼란스러웠고 경제도 불안했다.

보석사업 역시 불황이 길어지고 있었고 그러다 보니 천금선교회에 들어가는 막대한 재정은 혼자 감당하기에 버거운 짐이 됐다.

사업을 이어갈 터전이 하루아침에 사라질 위기에 놓이자 마음이 불안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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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금선교회 지원 급한 마음에
건축 붐 속 친구 제안에 솔깃
지인 돈, 사채까지 무리한 투자
잇단 실패로 빚 커져, 집도 팔아
1982년 경북청장년연합회 회장 당시 이종근 장로 모습.


박정희 대통령 서거 이후 전두환 정권이 들어섰지만 사회는 여전히 혼란스러웠고 경제도 불안했다. 보석사업 역시 불황이 길어지고 있었고 그러다 보니 천금선교회에 들어가는 막대한 재정은 혼자 감당하기에 버거운 짐이 됐다. 새로운 수입원이 필요했다.

설상가상으로 세 들어 있던 점포의 주인이 가게를 비워 달라고 통보해왔다. 상가를 새로 건축해야 한다는 이유였다. 사업을 이어갈 터전이 하루아침에 사라질 위기에 놓이자 마음이 불안해졌다. ‘마땅한 사업도 찾지 못했는데 장사의 터전까지 없어지면 어떻게 하나.’

하나님이 더 좋은 길로 채워 주실 것이라고 믿고 기도했지만 막연한 불안은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결국 인근을 수소문해 점포 한 칸을 새로 얻었다. 이전보다 형편은 못 했지만 다시 장사를 시작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때부터 사업은 서서히 내리막길을 걷기 시작했다.

적자는 매달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결국 교회 보조금도 중단해야 했고 신학생 장학금 지원 역시 멈출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전도지 무료 배포 사역만은 끝까지 붙들고 있었다. 그것만은 포기할 수 없었다.

조급한 마음은 점점 커졌다. 그러던 중 새로운 기회처럼 보이는 일이 찾아왔다. 1983년 무렵부터 우리나라 건축 경기가 호황을 맞기 시작했다. 대도시마다 아파트가 들어섰고 곳곳에서 건축 붐이 일어났다. 바로 그때 친구가 건축업을 해 보지 않겠느냐고 제안했다.

친구가 가져온 사업계획서를 검토했다. 말 그대로 돈이 쏟아질 것 같은 사업이었다. 나는 여러 사람을 찾아다니며 시장조사도 하고 조언을 들었다. 이야기를 들을수록 확실한 사업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그것만 가지고는 부족했다. 기도를 해봐야만 했다. 건축사업 여부를 놓고 하나님께 기도해 보았지만 특별한 응답은 없었다. ‘무소식이 희소식이다. 잘못 가면 하나님이 막으시겠지’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내가 동원할 수 있는 돈을 모두 끌어모으기 시작했다. 부족한 자금은 사채까지 빌려왔다. 곧 돈이 들어올 것이라는 확신이 있었기 때문에 크게 두렵지 않았다.

그러나 현실은 달랐다. 금방이라도 돈을 자루로 안겨 줄 것 같던 건축업은 번번이 허공을 치고 말았다. 86년은 평생 잊을 수 없는 해가 됐다. 그해 봄 나를 돈방석에 앉혀 줄 것이라 믿었던 건축업이 부도를 맞았기 때문이다. 돈방석이 아니라 감당하기 어려운 빚더미 위에 올라앉아 있었다. 혼자서 기도할 때면 하염없이 눈물이 흘러나왔다.

‘주님, 저 혼자 잘 먹고 잘 살려고 한 것이 아닙니다. 주님도 다 아시지 않습니까. 그런데 왜 저를 망하게 하십니까. 사업을 하면서도 하나님의 일은 할 수 있는데 꼭 이렇게까지 하셔야 합니까.’

현실에서 문제는 계속 이어졌다. 사채의 대부분은 친지와 친척들에게 빌린 돈이었기에 이자만 갚으면 시간을 벌 수 있었다. 그러나 은행 담보 대출은 달랐다. 게다가 친구 부탁으로 서 준 보증까지 문제가 됐다. 그 친구가 부도나면서 그 빚도 결국 내가 떠안게 됐다. 더는 방법이 없어 오랫동안 살아온 정든 집을 팔기로 했다.

정리=전병선 선임기자 junbs@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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