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장탱크 꽉 차 석유 시추 멈추면…지층 구조 바뀌어 더 큰 재앙

김기환 2026. 3. 19. 0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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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란의 호르무즈 봉쇄가 국제 유가 급등의 1차 원인이라면, 수면 아래 잠복한 리스크(위험)는 원유 ‘저장 탱크’다. 유조선은 봉쇄만 풀리면 오갈 수 있지만, 생산한 원유를 보관할 저장 탱크가 가득 차는 건 차원이 다른 문제다.

영국 가디언은 지난 15일(현지시간) “산유국마다 원유 흐름을 돌리려고 분주하지만, 저장 탱크가 가득 차며 유일한 선택지로 수도꼭지(taps)를 잠그는 일만 남았다”고 짚었다.

유전은 발전소처럼 쉽게 생산을 켰다 껐다 할 수 있는 구조가 아니다. 석유 시추는 기본적으로 ‘연속 공정’이다. 지하에서 원유를 뽑아내, 저장하고, 선적해, 수출하는 흐름이 끊김 없이 이어져야 한다. 현재는 끝단인 수출이 막힌 상황이다.

하지만 저장 탱크가 꽉 찰 경우 선적·수출 이전 단계부터 제동이 걸린다. 유전에선 주입정을 통해 지하 저류층에 물·증기·이산화탄소(CO2)를 강한 압력으로 밀어넣어 생산정으로 원유를 밀어 올리는 방식으로 원유를 뽑아낸다. 생산 중단이 위험한 건 생산을 오래 멈출 경우 지층 압력·구조가 바뀔 수 있어서다.

이충재 한국투자증권 연구원은 “석유 생산을 중단하면 유전 내부 압력이 바뀐다. 석유는 혼합물이라 오래 고여 있으면 가벼운 성분은 뜨고 무거운 성분은 가라앉아 유전 내부가 끈적끈적한 형태로 바뀔 수 있다”고 우려했다. 아미르 자만 리스타드에너지 미주 상업부문 책임자는 “전쟁이 끝나더라도 유전의 종류와 연식 등에 따라 생산량을 이전 수준으로 회복하는 데 수주, 수개월까지 걸릴 수 있다”고 전망했다.

역시 호르무즈해협을 통해 오가는 액화천연가스(LNG)도 마찬가지다. LNG는 천연가스를 영하 160도 이하로 냉각해 액체로 만들어 저장한다. 원유보다 저장 조건이 까다롭다. 권효재 COR에너지인사이트 대표는 “LNG 액화 시설은 한 번 끄면 다시 가동하는 데 한 달 이상은 기본이다. 생산량을 끌어올리는 데 몇 달이 걸릴 수 있다”고 말했다.

저장 탱크 용량이 꽉 차기까지 얼마 남지 않았다는 우려가 나온다. JP모건은 중동 산유국이 감당할 수 있는 원유 저장 용량이 25일 치라고 짚었다. 전쟁 개전 시점(2월 28일) 기준으로 하면 데드라인까지 일주일쯤 남은 셈이다.

이란이 봉쇄를 풀 때까지 ‘시간 벌기’가 핵심이다. 이미 사우디아라비아·이라크·쿠웨이트·아랍에미리트(UAE) 등 중동 산유국은 생산 감축, 중단에 들어갔다. 사우디는 탱크가 꽉 차는 걸 막기 위해 생산한 원유를 동부 유전에서 서부 홍해 연안으로, UAE는 서부 아부다비 유전에서 동부 푸자이라항으로 호르무즈를 우회해 보내고 있다.

김기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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