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정훈의 푸드로드] 빨간 떡볶이 대중화의 기원

2026. 3. 19. 0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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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정훈 서울대 농경제사회학부 교수·푸드비즈니스랩 소장

한국인이 너무나 사랑하는 빨간 양념의 매콤달콤한 고추장 떡볶이. 언제부터 먹었을까? 지금까지 알려진 바에 의하면, 1953년 신당동 마복림 할머니가 가래떡을 우연히 자장면 그릇에 빠뜨렸다가 맛을 본 후, 춘장과 고추장을 섞어서 양철 냄비에서 떡과 함께 끓여 판 것이 그 기원이다. 그런데 흥미롭게도 1950년대에 이 빨간 고추장 떡볶이를 동네에서 먹어 봤다는 사람이 거의 없다.

「 참기름 활용한 짭조름한 레시피
60년대 말 대량 생산한 고추장에
밀떡 버무린 매운맛으로 바뀌어

고추장이 들어간 떡볶이는 당시 대중화된 레시피가 아니었다. 20여년이 지난 1960년대 말, 1970년대 초에 들어서 고추장 떡볶이가 급격히 대중화된다. 게다가 신당동 마복림 할머니의 떡볶이는 엄밀하게는 떡을 볶는 것이 아니라 냄비에 끓이는 형태다. 이 레시피 계보는 1990년대 말까지 크게 유행했던 ‘신당동 즉석 떡볶이’의 형태로 이어진다.

근대 떡볶이의 레시피를 살펴보자. 1936년 1월 11일자 동아일보에 나타난 ‘조선요리 성분 계산표’에는 떡볶이의 성분으로 떡·소고기·버섯·계란 등과 함께 간장과 참기름이 등장한다. 고추장은 없다. 당시의 떡볶이는 참기름에 볶은 고소하고 짭조름한 음식이었다. 이후 1950, 60년대의 문헌에 등장하는 떡볶이 레시피도 모두 기름에 볶는 형태다. 고추장 등 매운 향신료는 들어가지 않았다.

그런데 1960년대 말을 지나며 고추장을 쓴 빨간 떡볶이가 전국 각 학교 인근에 갑자기 나타나기 시작한다. 고추장 떡볶이는 가정식에서 출발한 것이 아니라 번데기와 함께 하교하는 아이들의 군것질거리로 주로 소비되었다. 신기하게도 이 시기에 고추장 떡볶이가 전국에 동시 다발적으로 나타나며 유행하기 시작한다. 당시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1955년 새해를 맞은 경향신문의 ‘희망 좌담회’ 기사에서는 우리나라에도 외국과 같이 대형 식품 제조사가 필요하고, 김치와 장을 편리하게 사 먹을 수 있는 세상이 오길 바라는 염원이 담겨있다. 즉, 1950년대는 공장에서 생산한 장 제품이 아직 존재하지 않았다. 그런데 1960년에 이르자 변화가 보인다. 1962년 조선일보에 샘표 고추장 광고가 지속적으로 실리는데, 고객이 공장을 직접 방문하여 구매하는 방식이었다. 즉, 공장에서 생산하는 고추장은 있지만 아직 슈퍼마켓의 매대 위에서 구매할 수 있는 포장 고추장 제품은 아니었다.

포장 고추장 제품은 1960년대 중반을 넘어서며 출시되는데, 원래는 파월 군장병을 위해 개발한 것이었다. 1967년 조선일보 광고에는 400g들이 샘표 캔 고추장 광고가 실렸고, 당시 여러 기사에서 캔 고추장의 시장 수요가 꽤 빠르게 증가 중이라는 것을 언급하고 있다. 그런데 당시 캔 고추장 시장의 성장은 새로운 국면을 만들어 낸다. 공장에서 생산한 장류의 실효성을 확인한 정부가 1968년 새마을 운동의 주요 아젠다로 ‘장독대 없애기 운동’을 벌이기 시작한 것이다.

장독대 없애기 운동은 도시 미관을 해치고 비위생적이니, 장독대를 없애고 당시 공업화를 통해 시판되기 시작한 된장·고추장·간장을 사 먹자는 캠페인이었다. 이를 통해 주부들의 장 담그는 수고를 덜고, 본격적인 경제 활동에 참여토록 하겠다는 의도도 숨어 있었다.

특히 서울시에서는 이듬해 장독대 없애기 운동을 구체화하는 정책을 본격 시행한다. 서울시가 나서서 직접 장독대를 없애고, 나아가서 시가 직접 투자를 하거나 민자를 유치해 장 공장을 건립하여 장을 실비 가격으로 각 가정에 공급토록 하였다. 이를 시작으로 전국에 규모 있는 장 공장들이 빠르게 들어서기 시작한다. 1970년대 초가 되면 대량 생산 고추장이 전국 각 판매 대리점을 통해 공급 확산될 정도로 일상화된다. 이즈음 고추장 떡볶이가 갑자기 전국적으로 확산되며 학교 인근에 떡볶이 가게와 포장마차가 등장한다.

결국 빨간 떡볶이의 대중화는 장독대 없애기 운동이 만들어 낸 저렴한 고추장의 전국적 보급 확산, 그리고 당시 혼분식 장려 운동의 결과물인 밀떡의 대중화가 결합되어 나타난 새로운 문화 현상이었다. 한때 불량식품이라고 비난받기도 했지만, 학교 뒤편 문방구에서 사 먹던 그 매콤달콤했던 국민학교 시절의 떡볶이 맛이 아련하다. 탈북자들의 증언에 따르면 북한에는 이 빨간 고추장 떡볶이가 없다.

문정훈 서울대 농경제사회학부 교수·푸드비즈니스랩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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