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꼭지만 따서 한입’… 딸기보다 더 달콤

김승연 2026. 3. 19. 0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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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컨슈머] 씨없는 파프리카
국내 유일 생산 농장 가보니
지난 3일 전남 영암군 파프리카 농장 ‘해담토’의 유리온실 내부에 씨없는 파프리카 작물이 자라고 있다. 이 온실에는 온도와 습도, 일조량을 조절하는 시스템이 갖춰져 있다. 씨없는 파프리카를 4년째 개발 중인 박민수 대표는 “씨가 없어 꼭지만 따면 한입에 먹을 수 있다”며 “가장 신선할 때 원물 그대로 먹으면 영양과 맛을 모두 느낄 수 있다”고 말했다. 이마트 제공


“파프리카에 씨가 없는 게 얼마나 다르겠느냐고요? 신선할 때 꼭지만 따서 한입에 씹어 먹어보면 그 차이를 바로 느낄 수 있습니다.”

지난 3일 전남 영암군 파프리카 농장 ‘해담토’에서 만난 박민수(44) 대표는 자신 있는 목소리로 이렇게 말했다. 약 12㏊(3만5000평) 규모로 국내 최대 파프리카 농장인 이곳에서는 씨없는 파프리카 출하 준비가 한창이었다.

파프리카가 자라는 유리온실 내부는 섭씨 28도, 습도 80도였다. 얇은 니트 한 장만 입어도 금세 코끝에 땀이 맺혔다. 온실에서 막 땀을 흘린 상태에서 미지근한 씨없는 파프리카의 꼭지를 따 한입 베어 물었다. 달큰한 채수가 입안에 퍼지며 마치 음료수를 마시는 것처럼 시원했다. 아삭한 식감에 당도도 높아 과일처럼 생으로 먹기에도 손색이 없었다.

이곳의 씨없는 파프리카는 최첨단 유리온실에서 재배된다. 온도와 습도는 자동으로 조절되며 로봇이 유리 지붕을 청소하거나 특수 용액을 발라 일조량을 조절하기도 한다. 작물은 흙이 아닌 암면 배지 위에서 자란다. 약 10㎝ 높이의 배지를 사용해 뿌리가 바닥에 넓게 퍼지지 않도록 관리한다.

재배 라인마다 부착된 QR 코드. 이를 통해 작업 구간을 확인한다. 아래 사진은 파프리카를 실은 카트가 농장에서 선별장으로 자동 이동하고 있는 모습. 영암=김승연 기자


파프리카 줄기는 공중에 매달린 채 천장까지 길게 뻗어 있었다. 그 아래로 레일이 놓여 있었고 그 위로 작업자를 태운 장비가 오갔다. 작업자가 파프리카를 따 카트에 담으면 카트는 자동으로 선별장까지 이동한다. 온실 곳곳에는 QR코드가 설치돼 있어 작업자들이 구역별 작물 상태를 점검할 수 있다. 농장이라기보다 자동화된 공장에 가까운 풍경이었다.

해담토의 씨없는 파프리카는 2세대 농업인인 박 대표가 농장의 새로운 성장 동력을 찾는 과정에서 시작된 시도다. 해담토는 아버지 박한영 대표가 시설하우스에서 수박·오이·토마토 등을 재배하다 2002년부터 파프리카 재배에 나선 농장이다. 아버지 곁에서 농사를 배우며 자란 박 대표는 2010년부터 농장 일을 맡았고 이후 최첨단 유리온실 도입과 새로운 품종 개발 등 재배 방식을 다양화해 왔다. 이러한 고민 속에서 신젠타 코리아와 육종 계약을 맺고 국내 재배 환경에 맞는 씨없는 파프리카 품종을 개발했으며 재배 면적도 약 2000평까지 확대했다.

개발 초기 씨없는 파프리카를 소량 재배해 지역에서 판매했을 때 “당도가 높고 씨가 없어 먹기 편하다”는 반응이 이어지면서 상품성이 있다는 확신을 얻었다. 다만 국내에는 씨없는 파프리카 시장 자체가 형성돼 있지 않았다. 자체 판매가 어려울 경우 청과시장으로 유통되는데, 이 경우 일반 미니 파프리카로 취급돼 ‘씨가 없다’는 특징을 살려 판매하기 어려웠다.

전환점은 새로운 신선식품을 찾고 있던 이마트와의 협업이었다. 이마트는 내부 신상품 검토 과정에서 해담토의 씨없는 파프리카를 시식한 뒤 출시를 결정했다. 약 4년의 개발 기간을 거친 이 상품은 올해 1월 일부 매장에서 시범 판매를 진행했고, 3월부터 이마트 트레이더스를 포함한 전국 약 150개 매장으로 판매가 확대됐다.

전남 영암군 파프리카 농장 해담토 유리온실에서 박민수 대표가 씨 없는 파프리카를 들어 보이고 있다. 이마트 제공


이마트는 해담토와 계약을 맺으며 모양이 크게 기형이 아닌 상품은 대부분 매입하는 방식으로 공급 구조를 구축했다. 이 같은 방식으로 폐기율은 5% 미만 수준으로 낮아졌다. 이마트 관계자는 “개발 초기 단계에서는 생산량이 충분하지 않아 농가 수익을 고려한 매입 구조를 운영했다”며 “현재 주당 약 1t 규모 물량이 매장에 공급되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 씨없는 파프리카의 생산량은 일반 파프리카와 비교하면 절반에도 미치지 못한다. 일반 파프리카의 평당 수확량이 약 70㎏ 수준인 반면 씨없는 파프리카는 평당 약 30㎏ 수준에 그친다. 열매 크기가 상대적으로 작은 점도 생산량이 적은 이유 가운데 하나다.

생산 과정에서 고려해야 할 요소가 많아 단가 역시 높은 편이다. 씨없는 파프리카는 수정 없이 열매가 맺히는 ‘단위결과(parthenocarpy)’ 특성을 활용한 품종이다. 수정이 이뤄지면 씨가 생기기 때문에 다른 파프리카 품종과 재배 공간을 반드시 분리해야 한다. 실제 농장 내부에는 거대한 비닐막으로 구역을 나눠 씨없는 파프리카와 일반 파프리카 재배 공간을 구분해 두고 있었다. 해충 방제도 까다롭다. 먹이가 되는 꽃가루가 없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씨없는 파프리카는 일반 파프리카보다 더 짧은 주기로 천적 곤충을 투입해야 한다.

생산뿐 아니라 선별 과정에서도 인력이 더 필요하다. 일반 파프리카는 자동 선별기를 통해 분류된다. 농장에서 1차 외관 선별과 무게 측정을 거치면 피아노 건반처럼 파프리카가 자동으로 분류돼 상자에 담긴다. 상자 뚜껑을 덮는 작업까지 포함해 약 5명이 작업하면 시간당 약 7t을 선별할 수 있다. 반면 씨없는 파프리카는 열매 크기가 작고 전용 선별 장비가 없어 농장에서 자동 선별이 어렵다. 대부분 물량은 경기도 이천에 있는 이마트 후레쉬센터로 보내 그곳에서 수작업으로 선별한다.

그럼에도 씨없는 파프리카의 시장 가능성에 대해 해담토와 이마트 모두 확신을 보이고 있다. 평균 14~15브릭스 수준의 당도와 아삭한 식감이 최근 채식 트렌드와 맞물리며 수요가 형성될 가능성이 있다는 분석이다. 해당 당도는 일반 파프리카(5~7브릭스)보다 두 배 이상 높고 딸기(10~13브릭스)보다도 높은 수준이다. 한입에 먹을 수 있는 작은 크기 역시 채소를 간식처럼 소비하는 ‘채소 스낵화’ 흐름과 맞물린다는 평가다. 박 대표는 “씨가 있는 파프리카는 씨방을 키우는 과정에서 영양이 분산되지만 씨없는 파프리카는 과육 성장에 영양이 집중되는 특징이 있다”고 설명했다.

원물 그대로 먹을 때 장점이 가장 잘 드러나는 만큼 박 대표의 바람도 분명했다. 농장에서 갓 수확한 신선함을 소비자가 그대로 경험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이마트는 산지에서 수확한 파프리카를 물류센터로 바로 보내 선별과 포장 작업을 진행한다. 영암 산지에서 출고된 파프리카는 경기도 이천에 있는 이마트 후레쉬센터로 이동해 선별·포장 과정을 거친 뒤 이튿날이면 전국 매장으로 배송된다. 산지와 물류센터, 매장 간 보관 온도는 약 3~4도로 유지된다.

이마트는 최근 채소를 간식처럼 즐기는 ‘채소 스낵화’ 흐름 속에서 씨없는 파프리카 역시 새로운 소비 수요를 만들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씨를 제거할 필요 없이 한입에 먹을 수 있다는 편의성과 높은 당도를 앞세워 간식용 채소 시장에서 경쟁력을 가질 수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영암=김승연 기자 kit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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