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배나 오른 묘목값… 불탄 사과 과수원 농사 어쩌나”

김판,김지훈,이강민 2026. 3. 18. 18: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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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불 1년, 꺼지지 않은 상처]
<하> 산 자들의 고통
지난 3일 방문한 경북 안동시 임동면 일대의 임시주택 단지. 임시주택 뒤로 까맣게 그을린 산의 모습이 보인다. 마을 곳곳에 산불특별법 피해자 지원 신청을 안내하는 내용의 플래카드가 걸려 있다. 안동=김지훈 기자


지난해 3월 영남 지역에 산불이 난 뒤 살아남은 이들의 삶도 녹록지 않긴 마찬가지다. 마을 풍경은 사뭇 달라졌고, 산불이 남긴 후유증으로 고통받고 있는 이들도 적지 않다. 이전 삶을 복원하려고 해도 묘목과 종자 가격이 급등해 엄두가 나지 않는다.

산불 뒤 달라진 풍력발전 설명회

지난 4일 찾아간 경북 영양군 한 마을회관에서 때아닌 ‘잔치’가 벌어지고 있었다. 고령인 마을 주민 20여명 사이로 젊은 청년 몇몇이 눈에 띄었다. 마을 이장은 ‘풍력발전 회사 직원’이라고 이들을 소개했다. 풍력발전기 설치 2차 설명회가 끝난 뒤 회사 측이 마련한 ‘뒤풀이’였다. “앞으로 같이 가시죠!” 상기된 얼굴의 한 남성 직원이 주민에게 술을 한잔 받아먹은 후 이렇게 말하자 주민들은 일제히 “와하하” 웃었다.

“저거 잘 보셔야 해.” 한 남성 주민이 잔치가 끝날 무렵 조용히 말을 걸어왔다. 이 남성은 “저거(풍력발전기) 찬성하는 사람은 외지인밖에 없다”며 “우리 원주민들은 증·고조부터 살아왔는데 갑자기 뭘 세운다? 이런 거 안 해도 잘 살아갈 수 있어요. 외지 분들이야 돈 받고 마을을 떠나면 그만이지…”라고 한숨을 쉬었다. 그는 “일단 돈이 생길 수 있다니까 다들 좋다고 하지. 분위기가 저러니까 말 꺼내기도 어렵다”고 말했다.

산불 발생 이전에는 풍력발전기가 마을 인근에 들어오는 것을 반대하는 주민이 많았다고 한다. 그러나 산불 뒤 ‘빈 산’은 개발에 최적화된 장소가 됐다. 풍력단지가 들어서면 주민들에게 통상 수백만원에서 수천만원의 보상금이 지급된다고 한다. 산불로 살기 어려워진 주민들의 마음도 흔들리기 시작했다.

산불 뒤 폭등한 사과 묘목과 마늘 종자

“불이 나자마자 가격을 싹 다 올리더라니까….” 경북 청송군 진보면의 한 과수원 주인 최명규(63)씨가 사과밭에 걸터앉아 연신 한숨을 쉬고 있었다. 최씨 너머로 새까만 땅이 끝없이 펼쳐졌다. “한때는 과수원이었다”는 말만이 1년 전 이곳의 풍경을 떠올리게 했다. 최씨는 “2004년 귀농해 아들과 함께 20년 넘게 가꿔온 곳인데…”라며 말을 뗐다. 사과 농사를 지었다는 그는 “당장 어떻게 먹고살지, 전부 타버린 농장을 어떻게 다시 만들지 막막하다”고 했다. “사과밭 한 평에 나무가 한 그루씩 8000그루를 심어야 하는데 값은 두 배 가까이 됐다”는 게 그의 한탄이다.

한 그루에 1만4000~1만5000원 선이던 사과나무 묘목이 지난해 산불 발생 직후 2만4000원까지 치솟았다고 했다. 그는 “과수원 복구 수요를 노린 담합이 있는 것 아니냐”고 의심했다. 그러면서 “우리가 급하다는 걸 아니까 저러는 거지”라고 한숨을 내쉬었다. 그가 말한 사과나무 묘목(3년생) 가격은 18일 기준 훨씬 더 오른 3만원 안팎에 거래되고 있다. 주민들은 의성의 특산물인 마늘 종자값도 크게 올랐다고 토로했다.

보상금 나온 뒤 발길 뜸해진 자식

영양의 한 임시주택에서 홀로 살고 있는 A씨는 주로 고추장과 김치로 끼니를 때우고 있다. 영양=이강민 기자

“좀 일어나 보이소. 밥은 먹고 사소?” 경북 지역 피해대책위원회 관계자가 지난 5일 한 임시주택을 찾아 문을 열며 말했다. 고령의 A씨는 어두컴컴한 거실 냉장고 앞에 쪼그려 누워 미동도 하지 않았다. 겨우 눈을 뜬 A씨는 두 손을 허공에 뻗으며 일으켜 달라는 몸짓을 했다.

A씨는 산불에 집이 전소됐다. A씨의 경증치매는 그날 이후 걷잡을 수 없이 악화됐다. 임시주택에서 홀로 살기 시작한 A씨는 하루의 대부분을 안에서 누워 보내는데 욕창이 생길까 걱정된다고 한다. 주민들에 따르면 집이 전소되고 A씨가 받은 수천만원은 타지에 사는 자식에게 넘어갔다고 한다. 하지만 이후 자식의 발길은 뜸해졌다고 한다.

인근 주민은 “하도 답답해서 내가 자식이 왔을 때 ‘자주 오지는 못해도 요양보호사나 도우미를 구해줘야 하는 것 아니냐고 한마디했다”고 말했다. 피해대책위 관계자는 “병원에 가야 하지만 돌볼 사람도 없이 혼자 지내고 있다”고 말했다.

보상금 지급과 관리는 종종 문제가 되곤 한다. 피해 주민 300명을 대상으로 한 시민단체 실태 조사에서도 비슷한 사례가 있었다. 보고서에 따르면 심층 면접에 응한 한 주민은 “보상금이 자녀 통장으로 들어가는 경우가 있다. 자녀들이 보상금을 가져가고 부모가 집을 짓지 못하는 사례가 있다”고 말했다.

1년째 병상에 있는 의용소방대원

경북 의성읍의 한 식당에서 김성곤(58)씨를 만났을 때 그는 하늘색 환자복 차림이었다. 그는 “옷이 좀 그렇지요”라며 멋쩍게 웃었다. 김씨는 산불을 처음으로 진압하러 간 의성군 소속 의용소방대원이라고 자신을 소개했다. 그는 “처음 불이 났을 때는 별생각 없었죠. 동료와 둘이 그냥 올라가서 끄고 오려 했으니까요”라며 산불이 시작된 날을 떠올렸다. 산불이 발생한 날 김씨는 동료와 함께 15ℓ짜리 플라스틱 물통을 메고 산을 올랐다고 한다. 김씨는 오른쪽 무릎을 보여주며 “처음에 둘이서 진화하려다 도저히 안 되니까 급하게 내려왔죠. 그러다 낙엽 덮인 골짜기에 빠졌는데, 빠져나오려다가 무릎이 돌아가고”라고 말했다.

이어 “수술하면 괜찮겠지 했는데 또 가슴이 답답해서 병원에 가 보니 폐에 가스가 찼대요. 정신없이 불 끄면서 연기를 하도 마셔서 그런지”라고 했다. 가스가 들어찬 그의 폐 사진은 2023년에 촬영해놓은 그의 깨끗한 폐 사진과는 아주 다른 모습이었다. 그는 한참 동안 이야기를 늘어놓은 뒤 “보상은 몰라도 치료는 끝까지 나라가 도와줘야 하는 것 아닙니까”라고 토로하며 병원으로 돌아갔다. 산불은 꺼졌지만 주민들의 고통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었다.

이슈탐사팀=김판 김지훈 이강민 기자 pa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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