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불 보상금’ 가져 간 아들 부부…노모만 남았네 [르포]
下 : 산 자들의 고통
경북 산불 피해 지역 현장 르포

“좀 일어나보이소. 밥은 먹고 사소?” 경북 지역 피해대책위원회 관계자가 지난 5일 한 임시주택의 문을 열며 말했다. A씨는 어두컴컴한 거실 냉장고 앞에 쪼그려 누워 미동도 하지 않았다. 대책위 관계자의 부름에 겨우 눈을 뜬 A씨는 두 손을 허공에 뻗으며 일으켜달라는 몸짓을 했다.
A씨는 대규모 산불에 집이 전소되는 피해를 입었다. A씨의 경증 치매는 그날 이후 걷잡을 수 없이 악화됐다. A씨는 임시주택에서 홀로 살기 시작했다. 주민들에 따르면 하루의 대부분을 안에서 누워 보내는데 욕창이 생길까 걱정된다고 한다. A씨의 손과 발은 이미 퉁퉁 부어있었다.
주민들의 말에 따르면 A씨가 집이 전소되고 받은 수천만원은 타지에 사는 자식에게 넘어갔다고 한다. 자식은 이후 발길이 뜸해졌다고 한다.
인근 주민은 “하도 답답해서 내가 자식이 왔을 때 ‘자주 오지는 못하더라도 요양보호사나 도우미를 구해 관리를 해줘야 하는 것 아니냐. 이제 몇 년 산다고 이렇게 구느냐’고 한마디 했다”고 말했다.
A씨의 냉장고를 열자 구호단체 마크가 크게 찍힌 고추장이 보였다. A씨는 피해대책위나 구호단체 등에서 받은 고추장과 김치 등을 반찬으로 끼니를 해결하는 날이 많다고 한다. 대책위는 “상태를 보면 병원에 가야 하지만 돌볼 사람이 없다”며 “피해대책위에서 간간히 와서 상태를 체크해주고 있지만 쉽지 않은 상황”이라고 말했다.
보상금 지급과 관리는 종종 문제가 되기도 한다. 그린피스·녹색전환연구소·재난피해자권리센터 ‘우리함께’가 17일 국회 산불특위가 공동 주최한 토론회에서 발표한 실태조사 결과 보고서에 따르면, 안동에서 심층 면접에 응한 한 주민은 “보상금이 자녀 통장으로 들어가는 경우가 있다. 자녀들이 보상금을 가져가고 부모가 집을 짓지 못하는 사례고 있다”고 말한 것으로 기록됐다.

지난 4일 찾아간 경북 영양군 한 마을회관에서 때아닌 ‘잔치’가 벌어지고 있었다. 대체로 고령인 마을 주민 20여명 사이로 젊은 청년 몇몇이 눈에 띄었다. 마을 이장은 ‘풍력 발전 회사 직원’이라고 이들을 소개했다.
풍력 발전기 설치 2차 설명회가 끝난 뒤 발전 회사 측이 마련한 ‘뒤풀이’ 성격의 자리였다. 테이블 위에는 보쌈과 치킨, 떡과 과일이 놓여 있었고 술잔도 쉼 없이 돌아갔다. “앞으로 같이 가시죠!” 상기된 얼굴의 한 남성 직원이 한 주민에게 술을 한 잔 받아먹은 후 이렇게 말하자 주민들은 일제히 “와하하” 웃었다.
“저거 잘 보셔야 해”. 한 남성 주민이 잔치가 끝날 무렵 조용히 말을 걸어왔다. 자리 가장 왼편에서 무표정으로 조용히 앉아있던 주민이다. 이 남성은 “저거(풍력 발전기) 찬성하는 사람은 마을 외지인밖에 없다”며 “우리 원주민들은 증·고조 할아버지부터 살아왔는데 갑자기 뭘 세운다? 이런 거 안 해도 아무 상관 없이 잘 살아갈 수 있어요. 외지에서 온 분들이야 돈 받고 집으로 돌아가면 그만이지…”라고 한숨 쉬었다.
그는 “산불 나고 일단 돈이 생기니까 다 좋다고 하고 있지. 분위기가 저러니까 말 꺼내기도 어렵다”며 “나 혼자 반대한다고 되는 것도 아니다”라고 말했다.
산불 발생 이전에는 풍력 발전기가 마을 인근 산에 들어오는 것을 반대하는 주민들이 많았다고 한다. 그러나 산불 이후 상한 나무를 베면서 ‘빈 산’은 아이러니하게도 개발에 최적화된 장소가 됐다. 마을에 풍력단지가 들어서면 주민들에게 통상 수백만원에서 수천만원 사이의 보상금이 지급된다고 한다. 산불 피해로 경제적 어려움을 겪고 있는 주민들의 마음도 흔들리기 시작했다.

“불이 나자마자 가격을 싹 다 올리더라니까…” 경북 청송군 진보면 기곡리의 한 과수원, 주인 최명규(63)씨가 사과밭에 걸터앉아 연신 한숨을 쉬며 담배 연기를 뿜어대고 있었다. 최씨 너머로 새까만 땅이 끝없이 펼쳐졌다. “한때는 과수원이었다”는 말만이 1년 전 이곳의 녹색 모습을 떠올리게 했다.
최씨는 “2004년 귀농해 아들과 함께 20년 넘게 가꿔온 곳인데…”라며 말을 뗐다. 산불 전에는 사과 농사를 지었다는 그는 “당장 어떻게 먹고 살지, 전부 타버린 농장을 어떻게 다시 만들지 막막하다”고 했다. “사과밭 한 평에 나무가 한 그루씩, 8000그루를 심어야 하는데 값은 두 배 가까이 됐다”는 게 그의 한탄이다.
한 그루에 1만4000~1만5000원 선이던 사과나무 묘목이 지난해 산불 발생 직후 2만4000원까지 치솟았다고 했다. 그는 “과수원 복구 수요를 노린 조직적인 담합이 있는 것 아니냐”고 의심했다. 그러면서 “사과나무는 4~5년은 돼야 과일이 열리니까, 그 전엔 손가락 빨아야 돼. 우리가 급하다는 걸 아니까 저러는 거지”라고 한숨을 내쉬었다.
최씨는 “안 그래도 어려운 사람들을 상대로 이러면 안 된다’고 사정했는데도 소용이 없더만”이라고 말했다. 그가 말한 사과나무 묘목(3년생)의 가격은 18일 기준 훨씬 더 오른 3만원 안팎에 거래되고 있다.
의성군에서 만난 박기(71)씨와 황학기(57)씨도 “의성의 특산물인 마늘 종잣값이 크게 올랐다”고 말했다. 박씨는 “예년엔 1정에 250만원이면 살 수 있던 종자가 산불 이후에 400만원까지 오르니 누가 의성마늘을 키우겠어요”라고 되물었다. 황씨는 “요새는 그래서 죄다 스페인산(대서종) 써요. 이대로 가면 이제 토종 마늘은 없어지겠지”라고 했다.

S자로 구불구불한 커브 길을 지날 때마다 새까맣게 타버린 산과 나무가 풍경을 가득 채웠다. 크게 산길을 돌 때면 이따끔씩 ‘산불 피해 보상하라’는 현수막이 큼지막하게 붙어 있었다.
안동시 임동면 박곡리의 10평짜리 임시주택에 사는 이장 김윤년(60)씨는 조그마한 비닐하우스에 쪼그려 앉아 검은색 플라스틱 통에 고추 씨앗을 심으며 입을 뗐다. “겨우 40명이 사는 이 마을에서 땅이랑 과수원이 다 타버렸으니 막막하죠”.
김씨는 “이런 작은 마을에서 누가 관아(관공서)에 등록까지 다 하고 그러면서 농사 짓겠어요. 다 그냥 알아서 하는 거지”라고 말했다. “몇 명은 보험사에서 조금은 받았다는데, 행정 등록이 안 돼 있으니까 나라에선 보상을 못 해주겠다고…”라며 한숨을 쉬었다.
그러나 정작 산불이 마을을 휩쓰는 동안 고령의 주민을 구출하는 건 마을 이장들의 일이었다. 김씨는 “행정 일 하는 사람들을 탓하고 싶지 않다”면서도 “대피 명령도 없고, 어떻게 하란 말도 없으니 내 판단으로 사이렌 켜고 차로 어르신들 실어 날랐어요. 대부분 주민들이 80~90대 고령인데 어떻게 자력으로 대피합니까”고 말했다.
기곡리 이장을 맡고 있는 최명규씨도 “목숨을 걸고 탈출을 도왔는데 돌아온 건 아무것도 없다”고 한탄했다. 그는 “나는 둘째치고, 우리 아들 민수(26)를 볼 때마다 마음이 너무 아파요”라고 읊조렸다. 명규씨는 “어르신들을 다 모셔다드리고 병원에 갔는데, 온몸에 화상을 입은 아들이 머리를 전부 밀고 병원에 누워있는 모습을 보고 무너져 내렸다”고 말했다.

하늘색 환자복을 입고 의성군 의성읍의 한 식당에서 만난 김성곤(58)씨는 “옷이 좀 그렇지요”라며 멋쩍게 웃었다. 김씨는 자신을 이 산불을 처음으로 진압하러 간 의성군 소속 의용소방대원이라고 소개했다.
김씨는 “처음 불이 났을 때는 별생각 없었죠. 동료랑 둘이 그냥 올라가서 끄고 오려 했으니까요”라며 산불이 시작된 날을 떠올렸다. 산불이 발생한 날 김씨는 동료와 함께 15ℓ짜리 플라스틱 물통에 물을 받아 불을 끄러 산에 올랐다고 한다.
김씨는 오른쪽 무릎을 보여주며 “처음에 둘이서 끌라다가, 도저히 안 되니까 급하게 내려왔죠. 그러다 낙엽에 덮인 골짜기 못 봐서 다리가 빠졌는데, 빠져나오려다가 무릎이 돌아가고”라고 말했다.
이어 “수술하면 괜찮겠지 했는데 또 가슴이 답답해서 병원에 가 보니 폐에 가스가 찼대요. 정신없이 불 끄면서 연기를 하도 마셔서 그런지”라고 했다. 가스가 들어찬 그의 폐 사진은 2023년에 촬영해놓은 그의 깨끗한 폐 사진과는 아주 다른 모습이었다. 그는 한참 동안 자신의 이야기를 늘어놓은 뒤 “보상은 몰라도 치료를 끝까지 나라가 도와줘야 하는 것 아닙니까”라고 토로하며 병원으로 돌아갔다.
이슈탐사팀=이강민 김지훈 김판 기자 river@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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