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쳐 가기엔 아까운 곳… 도담삼봉을 보는 법

최영길 2026. 3. 18. 17: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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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양을 가장 단양답게 설명하는 도담삼봉의 사계

[최영길 기자]

▲ 초봄의 도담삼봉 2026. 3. 11. 시간이 잠시 멈춘 듯한 평온함. 모든 사진은 아침 7시 반을 전후해 같은 위치에서 촬영했다.
ⓒ 최영길
충북 단양 사람들은 외지 손님에게 소개할 만한 곳으로 대부분 도담삼봉부터 떠올린다. 단순히 그곳이 유명한 관광지라서가 아니다. 그저 남한강 푸른 물결 위에 세 개의 봉우리가 무심한 듯 꼿꼿하게 떠 있는 장면 하나면, 이 고장이 어떤 공기를 품고 있으며 어떤 시간을 견뎌왔는지 단번에 전해지기 때문이다.

처음 단양을 찾은 이들은 압도적인 풍경 앞에 잠시 말을 잃는다. 이곳에서 수십 년을 살아 이 풍경에 익숙한 사람들도 종종 발걸음을 멈춘다. 이 고장 사람들에게 도담삼봉은 대표 관광지이기 전에 삶의 배경이자 항상 제일 먼저 떠오르는 가장 든든한 고향 풍경이다.

도담삼봉을 이해하려면 먼저 물길의 흐름을 읽어야 한다. 강원도 주천강과 평창강이 만나 영월의 청령포를 휘돌아 흐르던 서강의 물은 태백 검룡소에서 시작된 동강과 만나 비로소 남한강이라는 이름을 얻는다. 그 물길이 굽이굽이 흘러 충청도 단양에 닿아 세 개의 바위 봉우리를 품는다.

도담삼봉은 강원도의 시간과 충청도의 기억이 하나의 물길로 이어져 빚어낸, 아주 오래된 대화의 결과물이다. 남한강 물길은 더 아래로 내려가 북한강과 만나 한강이 되지만, 도담삼봉은 당당하게 그 자리에 머물며 시간을 붙잡아 둔다.

도담삼봉의 사계
▲ 봄의 도담삼봉 2025. 6. 19. 연둣빛 새순과 어우러진 이른 아침 풍경.
ⓒ 최영길
겨우내 꽁꽁 얼어붙었던 남한강의 얼음이 풀리고 강바람에서 비릿한 흙 내음이 묻어날 때면, 도담삼봉에도 봄이 찾아온다. 봄의 도담삼봉은 바위틈 사이로 강인하게 뿌리를 내린 여러 식물이 연둣빛 새순을 틔우며 생기를 되찾는다.
이 시기 도담삼봉의 진면목은 이른 아침 물안개 속에서 드러난다. 하얀 안개는 세 개의 봉우리를 신비로운 선계(仙界)의 모습으로 탈바꿈시킨다. 안개 너머로 어렴풋이 보이는 삼봉의 실루엣은 마치 수묵화 속 한 장면처럼 정갈하다. 단양 사람들은 이 풍경을 보며 한 해의 다짐을 되새기곤 했다. 화려한 꽃대궐은 아니어도, 바위 틈새를 뚫고 나오는 생명력을 보며 위안을 얻는 것이다.
▲ 여름의 도담삼봉 2023. 7.14. 장마철 힘차게 흐르는 남한강 물줄기.
ⓒ 최영길
여름이 오면 도담삼봉은 거친 풍파를 온몸으로 받아내는 기개 높은 선비의 기상을 보여준다. 장마철, 세차게 흐르는 남한강의 물살이 봉우리의 밑동을 때리며 지나가도, 바위는 미동도 하지 않은 채 도도하게 서 있다.
여름날 도담삼봉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이야기가 바로 조선의 건국 공신 정도전이다. 그의 호 '삼봉(三峰)'이 바로 이곳에서 따온 것이다. 옛날 강원도 정선군에 있던 삼봉산이 홍수로 인해 지금의 도담리로 떠내려와 자리를 잡은 후, 정선군 소유의 봉우리가 이곳으로 왔으니 세금을 내라는 정선군 관료의 억지를 어린 정도전이 기지로 막아냈다는 전설이 서린 곳이다. 시원한 강바람을 맞으며 도담삼봉을 바라보고 있으면, 세상의 소란함은 강물에 씻겨 내려가고 오직 자연과 나만이 마주 앉은 듯한 느낌을 경험하게 된다.
▲ 가을의 도담삼봉 2025.10.19. 이른 아침 물안개가 도담삼봉 주변으로 피어오르고 있다.
ⓒ 최영길
가을은 도담삼봉이 가장 단정해지는 계절이다. 하늘은 한없이 높아지고 강물은 거울처럼 맑아져 봉우리의 모습을 그대로 비춘다. 물 위에 떠 있는 세 봉우리와 물속에 잠긴 세 봉우리가 마주 보는 데칼코마니는 가을이 아니면 보기 어려운 장면이다.
주변의 단풍이 불타오르듯 붉게 물들어도, 노을이 강물을 황금빛으로 물들이는 해질 녘에도 삼봉만큼은 그 화려함에 휩쓸리지 않고 자신의 색깔을 지킨다. 화려하게 시선을 압도하는 자극이 아니라, 오래 두고 보아도 질리지 않는 균형에서 오는 힘이다.
▲ 겨울의 도담삼봉 2022.12.22. 설경 속에서 고요하게 자리를 지키는 삼봉.
ⓒ 최영길
겨울이 찾아와 남한강이 얼어붙고 온 세상이 하얀 눈으로 덮이면, 도담삼봉은 가장 깊은 침묵 속으로 빠져든다. 꽁꽁 언 강판 강 위로 눈이 쌓이면 삼봉은 화선지 위의 수묵화가 된다. 겨울의 삼봉은 한없는 적막감 속에서 우리에게 '견딤'의 미학을 가르쳐준다. 그림처럼 서 있는 삼봉은 사람들에게 말없이 위로를 건넨다. '잠시 멈춰 서 있어도 괜찮다, 이 겨울을 견뎌내면 다시 봄은 온다'고 속삭인다.

잊을 수 없는 유년의 풍경

기자에게 도담삼봉은 단순히 이름난 관광지가 아니다. 태어나고 자란 어린 시절의 모든 봄과 가을이 머물렀던 '교정'의 연장선이었다. 단양에서 초등학교를 다녔던 시절, 소풍 장소는 늘 정해져 있었다. 1학년 입학 때부터 6학년 1학기까지, 무려 11번의 소풍을 모두 도담삼봉으로 갔다. 6학년 2학기에 경주로 떠났던 수학여행이 아니었다면, 초등학교 6년은 온통 삼봉으로 채워졌을 것이다.

어린 마음에 '또 거기야?'라며 투덜대기도 했다. 어머니가 싸주신 김밥 도시락과 사이다를 가방에 넣고 친구들과 줄지어 걷던 그 길, 삼봉 앞에서 보물찾기를 하고 장기자랑을 하던 기억은 이제 단양이라는 이름과 떼려야 뗄 수 없는 삶의 조각이 되었다. 그때는 몰랐다. 왜 선생님들이 우리를 매번 이곳으로 데려갔는지. 이제는 알 것 같다. 11번의 반복은 지루함이 아니라, 우리 고장의 가장 소중한 가치를 아이들의 영혼에 깊이 새겨넣기 위한 어른들의 배려였다는 것을 말이다.

그동안 마주한 삼봉은 매번 달랐다. 어떤 날은 강물이 줄어들어 봉우리가 더 높아졌고, 홍수 때에는 붉은 황토물이 봉우리 턱밑까지 차오르기도 했다. 그렇게 오랜 세월을 보고 나서야 비로소 나는 이 풍경이 흐르는 물길 속에서 매 순간 새롭게 태어나고 있음을 깨달았다.

요즘은 풍경도 이미지로 빠르게 소비된다. 하지만 도담삼봉은 그렇게 스쳐 지나가기에는 너무나 아까운 풍경이다. 단양 사람들에게 이곳은 '유명한 곳'이기 이전에 '늘 그 자리에 있는 곳'이다. 누군가의 어린 시절 소풍 사진 속에도, 퇴근길 잠시 차를 세우고 한숨을 돌리는 어느 가장의 고단한 눈길 속에도 도담삼봉은 늘 같은 모습으로 남아 위로를 건넨다.

영화 <왕과 사는 남자>로 더욱 유명해진 영월 '청령포'를 지나온 물길은 남한강이 되고, 그 강은 단양에서 도담삼봉을 품는다. 도담삼봉은 단절된 한 장면이 아니라 물길의 시간과 지역의 기억, 그리고 오늘을 사는 사람들의 일상이 켜켜이 쌓여 만들어진 거대한 서사다. 단양 사람들이 도담삼봉을 가장 먼저 떠올리는 이유는 결국 그 풍경 안에 우리네 삶의 기쁨과 슬픔, 그리고 11번의 소풍만큼이나 두터운 추억이 들어 있기 때문일 것이다.

도담삼봉은 오늘도 남한강 위에 묵묵히 서 있다. 그리고 그 말 없는 풍경은 여전히 단양을 가장 단양답게 설명해 준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단비뉴스에도 실립니다.기자는 단양에서 초등학교 1학년부터 6학년까지 11번의 소풍을 도담삼봉으로 갔던 그 시절의 기억을 되살려 이 글을 썼습니다. 위 사진들은 출근길에 오전 7시 30분을 전후해 같은 위치에서 촬영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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