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고 자율화 때도 우려했지만 시장 안착, 방송심의도 민간에 맡겨야"

박성호 2026. 3. 18. 10: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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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 미디어 패러다임 전환기 심의제도 개선방안 토론회 개최, 위원장도 "낡은 규제 혁신하겠다"

[박성호 기자]

▲ 심의제도 개선 토론회 현장 김희경 공공미디어 연구소 연구위원의 발제와 이어진 토론에서 자율규제로의 이행에 대한 필요성이 제기되었다
ⓒ 박성호
방송 심의가 정권의 입맛에 맞지 않는 보도를 억압하는 수단으로 전락했다는 비판이 제기되는 가운데, 학계와 현업 전문가들이 미디어 패러다임 전환기에 걸맞은 심의제도 개선 방안을 논의했다.

한국방송학회는 지난 13일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에서 '합리적인 방송미디어 심의제도 개선방안 마련'을 주제로 기획 세미나 및 토론회를 개최했다. 이날 행사에서는 현행 심의제도의 구조적 한계를 지적하고, 민간 자율규제 체제로의 전환 필요성을 강조하는 목소리가 이어졌다.

"1970년대 행정심의체계, 이미 수명 다했다"
▲ 토론회 서두에 인사말을 하는 강재원 방송학회장 방송미디어 심의제도 개선방안 마련 토론회 인사말을 통해 자율규제로의 이행을 강조했다.
ⓒ 박성호

강재원 학회장은 인사말에서 현행 내용심의체계가 1970년대에 도입된 행정심의체계에 뿌리를 두고 있으며, 하루가 다르게 급변하는 현대 미디어 환경을 수용하기에 이미 제도적 수명이 다했다고 진단했다. 특히 글로벌 OTT와 전통적 방송 간 규제 비대칭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규제 중심 접근에서 벗어나 미디어 자율성 회복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발제를 맡은 김희경 미디어미래연구소 연구위원은 현행 방송심의제도의 구조적 상황과 공정성 심의의 본질적 문제를 분석했다. 김 위원은 방통심의위가 민간 독립 기구의 형태를 띠고 있으나 실질적으로는 행정 기구로서 권력을 행사하는 위상의 모순을 지적하며, 이것이 실질적인 사전검열 효과를 낳고 있다고 비판했다.

특히 김 위원은 방송 심의의 최대 쟁점인 공정성 개념을 정면으로 다뤘다. 행정기관이 방송의 공정성을 판단하는 행위는 국가가 특정 진실관이나 가치관을 공식적으로 승인하는 결과를 초래하며, 이는 다양한 의견이 경쟁하는 사상의 자유시장 원리에 정면으로 위배된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즉 국가가 공정의 잣대를 독점하는 것 자체가 헌법상 표현의 자유를 침해할 소지가 크다는 분석이다.

김 위원은 온라인 시사정보 사후심의를 둘러싼 문제도 짚었다. 그는 현행 제도의 한계를 세 가지로 정리했다. 첫째, 허위조작정보의 판단 기준이 모호해 표현의 자유 침해 논란이 발생할 수 있다는 점이다.

둘째, 징벌적 손해배상 강화가 언론을 위축시키고 전략적 봉쇄소송(SLAPP)으로 악용될 가능성이 있다는 점이다. 셋째, 심의기구가 직접 허위정보를 판정하고 삭제를 명령하는 구조는 사실상 검열 기능을 강화하고, 플랫폼에 과도한 책임을 전가해 과잉 규제를 초래한다는 점이다.

이러한 문제의 해결을 위해 김 위원은 심의 기구의 독립성을 높이기 위한 인사추천위원회 설치 등 투명성 제고 방안을 제시했다. 아울러 법정 제재 의결 시 재적 위원 3분의 2 이상의 찬성을 요하는 특별다수제 도입도 언급했다.

그러나 김 위원이 발제의 최종 결론으로 강조한 해법은 결국 심의제도 자체를 민간 자율규제 영역으로 전면 전환하는 것이었다. 위임형이나 승인형 자율규제 모델을 통해 심의 주체를 국가에서 민간으로 완전히 이전하는 것만이 미디어 패러다임 변화에 부합하는 근본적 혁신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자율 규제, 충분히 가능하다"

토론에서는 자율규제의 구체적 실행 방안도 제시됐다. 김동원 한국예술종합학교 강사는 플랫폼 규제와 콘텐츠 심의를 분리해 각각에 적합한 자율규제를 적용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이승철 한국기자협회 부회장은 행정적 공정성 심의가 언론의 권력 감시 기능을 위축시키는 현실을 짚으며, 외부의 강제적 규제 대신 방송사 간 상호 비판과 견제가 가능한 미디어 비평 프로그램 활성화를 통해 언론 본연의 자정 기능을 회복하는 것이 실질적인 대안이 될 수 있다고 밝혔다.

채정화 한국방송학회 미디어정책특별위원은 표현의 자유 보장과 국가 개입의 최소성 원칙을 강조하는 한편, 방송법과 정보통신망법 간 규제 정합성이 결여된 구조적 문제를 지적하며 통합적 자율규제 체제로의 이행 필요성을 언급했다.

심의기구 거버넌스의 퇴행, 짚어야 할 이유

MBC플러스 부국장이자 한국방송학회 대외협력이사인 필자도 이날 토론자로 참석해 심의제도 개선 논의의 본질을 짚으며, 심의 기구를 둘러싼 거버넌스의 변천과 그에 따른 독립성 후퇴 문제를 제기했다.

필자는 김대중 정부 시절 공보처라는 행정 기구가 전담하던 규제 기능을 민간 독립 기구인 방송위원회로 이관한 것은, 국가 행정 체제에서 탈피해 방송 정책과 심의의 민간 독립성을 확보하고자 했던 역사적 진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2008년 방송과 통신의 융합이라는 미디어 환경 변화에 대응한다는 명분 아래 정보통신부와 방송위원회가 통합되면서, 국가 행정기관이 다시 방송 규제의 전면에 등장하는 구조적 변화가 발생했다고 지적했다.

이어 정부 영향력이 비대해진 방송통신위원회 체제에서는 방송 심의가 국가 기구에 의한 사실상의 검열 수단으로 전락할 위험이 있었음에도 이를 견제할 제도적 보완 장치가 마련되지 않았다고 덧붙였다. 심의 기구의 독립성을 지킬 최소한의 안전장치 없이 통합을 강행한 것은 정책적 실책이자 심의 민주화의 퇴행이라는 비판도 제시했다.

또한 심의제도 개선 논의가 단순히 공정성 문제에 국한돼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방송법이나 시행령 등 상위 법령과 달리, 실제 제작 자율성을 제약하는 것은 심의규칙이며, 이 규칙의 모순을 면밀히 살펴봐야 한다고 말했다.

특히 광고 규제를 사례로 들며, 상위 법령은 미디어 산업 활성화를 위해 가상광고와 간접광고를 허용하고 있음에도 하위 심의규칙은 광고 효과를 제한하는 과도한 조항으로 입법 취지를 사실상 무력화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러한 심의규칙의 경직성은 방송 규제 완화를 통해 콘텐츠 글로벌화를 추구하는 국정 방향에 역행할 뿐 아니라, 글로벌 OTT에는 존재하지 않는 방송사 대상의 대표적인 비대칭 규제로 작용하며 우리 방송 산업의 경쟁력을 갉아먹고 있다는 지적이라고 강조했다.

최상훈 한국방송협회 정책실장은 과거 규제기관 내 광고사전심의 기구에서 심의 실무를 직접 담당했던 본인의 경험을 가감 없이 공유해 눈길을 끌었다.

최 국장은 국가가 광고 내용을 일일이 심의하던 제도를 폐지할 당시, 자신을 포함한 심의 담당자들이 광고 소재가 엉망이 될 것을 얼마나 심각하게 우려했는지, 그리고 그 과정에서 직장을 옮겨야 했던 아픔을 겪었음을 회고했다.

그러나 막상 자율화가 시행되자 시장은 차분하게 자정 능력을 발휘하며 안착했고, 우려했던 큰 혼란은 어디에도 없었다. 그는 이러한 생생한 증언을 바탕으로, 방송 심의 역시 시장과 미디어 업계의 역량을 믿고 민간 자율 체제로 전환하는 것을 주저할 이유가 없다고 호소했다.

정책 당국도 "낡은 규제 혁신하겠다"
▲ 심의제도 개선 토론회에서 축사 중인 김종철 방송미디어통신위원장 김위원장은 규제는 공공성을 구현하기 위한 전제라는 인식 아래, 개인과 기업, 국내기업과 다국적기업 등 다층화된 층위와 맥락을 '좋은 규제(Good Regulation)'의 관점에서 합리적으로 설계해야 할 과제를 안고 있음을 역설했다
ⓒ 박성호
김종철 방송미디어통신위원장은 축사에서 인공지능 시대의 도래와 콘텐츠 융합 가속화로 인해 기존 법제가 환경 변화를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을 인정했다. 특히 기존 방송사와 글로벌 OTT 간 비대칭 규제로 인한 형평성 문제와 공정경쟁 환경 저해 우려를 직접 언급했다.

김 위원장은 헌법적 가치 위에서 공적 책임을 재정립하고, 표현의 자유를 충분히 보장하면서도 변화하는 상황에 맞지 않는 낡은 규제를 과감히 혁신하여 방송미디어 산업의 활력을 높이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특히 규제는 공공성을 구현하기 위한 전제라는 인식 아래, 개인과 기업, 국내기업과 다국적기업 등 다층화된 층위와 맥락을 '좋은 규제(Good Regulation)'의 관점에서 합리적으로 설계해야 할 과제를 안고 있음을 역설했다.

아울러 규제와 진흥의 연동적 관계 속에서 실효성 있는 자율규제 도입 등 심의제도 전반의 개편 방향에 대해 이번 토론회에서 심도 있는 논의가 이루어지길 기대한다고 전했다.

이러한 정책 당국의 전향적인 태도는 심의기구 거버넌스 개선 및 심의규칙 정비 필요성 등 전문가들이 제시한 패러다임 전환의 목소리와 궤를 같이한다. 그러나 토론회 한 번으로 수십 년간 굳어온 국가 주도 심의 체제가 하루아침에 바뀌지는 않는다.

미래지향적 디지털 미디어 생태계 조성을 위해 현장의 혜안을 적극 경청하겠다는 약속이 실제 심의제도의 근본적 혁신으로 이어지려면, 지금부터가 진짜 시작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필자의 네이버 블로그에도 실립니다. 글쓴이는 MBC플러스 부국장이자 한국방송학회 대외협력이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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