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령에 관리 부실까지 드러났는데…결국 ‘솜방망이 처벌’인가
7년간 6억대 횡령에도 ‘경징계·훈계·주의’ 처분 요구 그쳐
국장급 조사도 안하고...신분상 문책, 하위직만 '희생양'?
사건 기간 과장·팀장 대부분 퇴직…“엄중 문책” 약속 흐지부지

제주사회에 큰 충격을 안긴 제주시청 공무원의 수억원대 쓰레기종량제봉투 판매대금 횡령 사건과 관련해, 총체적 관리 부실이 확인됐지만 처벌이 솜방망이에 그칠 것으로 보이면서 논란이 확산되고 있다.
사안의 중대성에도 불구하고 엄중한 문책 없이 마무리될 가능성이 제기되면서, 사실상 '봐주기' 수순이라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특히 자신의 책임이 아니라며 선을 긋고 있는 과장급 공무원들은 퇴직 등을 이유로 대부분 처벌을 피한 것으로 나타났다. 결국 상대적으로 가벼운 문책마저 하위직 공무원들에게 집중된 것으로 드러났다.
제주특별자치도감사위원회가 17일 공개한 종량제봉투 판매대금 횡령 사건 특별점검 결과 보고서에 따르면, 제주시 당국의 관리 부실 책임이 명확히 확인됐다.
보고서는 종량제봉투 판매관리 시스템에 구조적인 허점이 있었고, 담당 부서 직원들의 업무 태만과 관리 소홀까지 겹치면서 횡령이 가능했던 것으로 분석했다.
◇ 사건의 전말은...
해당 사건은 제주시청 한 부서 소속 종량제봉투 판매 담당 공무직 직원 ㄱ씨가 수년에 걸쳐 수억 원대 판매대금을 빼돌린 사실이 지난해 7월 적발되면서 수면 위로 드러났다.
ㄱ씨는 지난 2018년부터 지난해 7월까지 약 7년간 종량제봉투를 현금으로 결제한 매장을 골라, 주문을 취소한 것처럼 꾸미는 수법으로 3813회에 걸쳐 6억 3000여만 원을 횡령한 것으로 나타났다.
담당 부서에서는 편의점의 영수증 재발급 요청에 따라 판매 내역을 확인하는 과정에서, 전산상 '주문 취소' 처리된 건이 실제로는 배송까지 이뤄진 사실을 확인했다. 주문이 취소됐다면 봉투가 공급되지 않아야 함에도 배송이 이뤄진 점이 이상 징후로 포착된 것이다.
이를 계기로 ㄱ씨의 근무 기간 전반에 대한 조사가 이뤄졌고, 횡령 규모는 6억 원대로 드러났다.
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횡령) 혐의로 구속 기소된 ㄱ씨는 1심에서 징역 3년을 선고받았다.
◇ 7년간 지속된 수억대 횡령...가능했던 이유는
문제는 ㄱ씨가 수년간 동일한 수법으로 범행을 이어왔음에도 제주시청 내부에서 판매 업무에 대한 교차 점검이 전혀 이뤄지지 않았다는 점이다.
서귀포시와 달리 제주시의 관리 시스템에 치명적인 허점이 있었던 사실도 확인됐다. 횡령이 발생할 수밖에 없는 구조적 환경이 방치돼 있었던 셈이다.
실제 감사위원회 보고서에서도 이 같은 문제가 핵심적으로 지적됐다.
감사위는 △주문 취소 여부 확인 없이 전산상 취소 처리 △분임징수관의 징수결정 없이 공급대금 취소 △종량제봉투 수불부 미작성으로 재고관리 부실 등 총 11건의 위법·부당 사항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부서 팀장과 과장 등 간부 공무원의 관리 소홀도 도마에 올랐다. 결재와 인계·인수 절차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음에도 관리자들이 이를 인지하지 못하는 등 관리 전반이 총체적으로 부실했던 것으로 나타났다. 감사위는 "담당 팀장과 과장의 경우 관련 규정 검토를 소홀히 하여 담당자들로 하여금 종량제 봉투 공급대장 등을 기록.관리하게 하거나 일자별로 결재를 받도록 하지 않았고 수입금출납원 및 분임징수관으로서 세외수입 관리 업무를 소홀히 하는 등 관리・감독 업무를 태만히 처리했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담당 과장의 경우 책임 회피로 일관했다. 사무관 A는 감사위 조상서 "수불부는 결재한 적이 없고 이월 관련 사항도 직원들이 관리하는 것으로만 알고 있었을 뿐 직접 결재한 적이 없어 재고량을 확인하지 못한 부분은 있으나 연말에는 결산을 통해 이월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었다"고 주장했다. 감사위는 그러나 "관련 규정 검토를 소홀히 하여 담당자들로 하여금 종량제봉투 공급대장 등을 기록.관리하게 하거나 일자별로 결재를 받도록 하지 않은 점, 분임징수관으로서 세외수입 관리 업무를 소홀히 하여 A가 근무기간 동안 1215회에 걸쳐 1억8302만 원 상당이 횡령된 점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할 때 A의 주장을 받아들이기 어렵다"며 수용하지 않았다.
관리 시스템 자체의 구조적 문제도 드러났다.
대금 수납 방식과 관련해 서귀포시는 약 5년 전부터 현금 수납을 폐지했지만, 제주시에서는 이에 대한 검토조차 하지 않은 채 별다른 개선 없이 기존 방식을 유지해온 것으로 확인됐다.

◇ 그럼에도, '엄중한 문책' 대신 '솜방망이'...왜?
그럼에도 감사위는 제주시 공무원들에 대한 신분상 문책을 경징계와 훈계·주의 수준으로 요구하면서 '솜방망이 처분' 논란을 자초했다.
제주시에 기관경고 1건과 부서경고 1건, 징계 1건 등 행정 처분과 함께 15명에 대한 신분상 조치가 이뤄졌지만, 중징계 대상자는 단 한 명도 없었다. 신분상 조치 또한 경징계 7건, 훈계 4건, 주의 4건에 머물렀다.
특히 과장·국장급 책임자들은 퇴직 등을 이유로 문책을 피해갔고, 결국 7급 이하 하위직 직원들만 문책 대상에 올랐다. 공적 자금 횡령이라는 중대한 사안임에도 단 한 명도 '엄중한 책임'을 지지 않는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더구나 국장급에 대해서는 이번에 조사조차 이뤄지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사실상 하위직만 '희생양'으로 삼았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감사위는 신분상 문책 양정사유와 관련해, 사건 기간에 근무한 과장 5명 중 4명과 팀장 6명 중 2명이 퇴직했고, 일반 공무원 중 4명은 징계 시효 경과, 나머지 1명은 횡령사건 발견자여서 제외됐다고 설명했다.
김완근 제주시장은 지난해 사건 직후 기자회견에서 "수사가 마무리되는 대로 해당 직원과 감독자들에 대한 엄중한 문책을 진행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감사위가 낮은 수준의 처분을 요구하면서 '엄중 문책' 약속은 사실상 흐지부지됐다는 지적이 나온다. 사안은 중대한데도 책임지는 이가 없는 상황이 됐다는 비판이다. 감사위의 징계처분 요구 수위 결정에 적절성 논란이 제기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헤드라인제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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