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시험대 선 K-바이오]③프로티나·서울대 백민경팀, 신약설계 최대 난제 풀어

곽민재 2026. 3. 18. 0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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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로 단백질 예측→실험→설계 루프
CDR 규칙 찾은 AI, 프로티나 경쟁력 ↑
편집자주
인공지능(AI)이 제약·바이오 시장의 판도를 뿌리째 뒤흔들고 있다. 엔비디아가 글로벌 빅파마 일라이 릴리와 손잡고 10억달러(약 1조4990억원)를 들여 AI 신약 개발에 나서기로 한 건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문법으로 제약·바이오 산업사(史)가 다시 쓰이는 흐름의 상징과도 같다. 후보물질 발굴에 머물렀던 AI의 영토는 정교한 임상 설계와 최적 환자군 선별, 실시간 제조 공정 제어 등 신약 개발의 전(全) 주기로 확장하며 산업의 경제성 자체를 근본적으로 재편하고 있다. 후보물질 도출에 드는 시간을 평균 3~4년에서 최대 1년여로 단축시켰고, 표적 단백질에 대한 3차원적 이해와 독성 예측 정확도를 무기로 통상 40~65%에 머물렀던 임상 1상 성공률을 80~90% 수준까지 끌어올렸다. 천문학적인 매몰 비용이 발생하는 초기 실패 리스크를 줄이는 AI의 효율성은 신약 개발의 '죽음의 계곡'을 넘어야 하는 기업들에게 유일한 돌파구다. 아시아경제는 'AI 시험대 선 K-바이오'라는 기획을 통해 '속도전'으로 재편된 2026년 글로벌 신약 개발 판도를 들여다보고 우리 바이오 산업이 나아가야 할 생존과 도약의 길을 모색한다.

국내 인공지능(AI) 신약 개발 경쟁의 축은 '데이터 관찰'과 '단백질 설계'로 갈린다. 실험 데이터를 대규모로 축적해 항체 규칙을 찾아내는 삼성-프로티나 진영이 '분석형 AI' 중심 전략을 택했다면, 셀트리온과 협력하는 갤럭스는 자연계에 존재하지 않는 단백질 구조를 직접 설계하는 '생성형 AI' 접근을 전면에 내세운다. 이들이 서 있는 지점은 글로벌 AI신약 전장(戰場)의 최전선이나 다름없다. 아슬아슬한 경쟁의 복판에서 국내 AI신약 산업의 새 지도를 그리고 있는 두 기업을 차례로 만나봤다.

<2>최대 난제 CDR 규칙성 찾아낸 프로티나-백민경 교수팀

인공지능(AI) 신약 개발에서 '속도'가 생존을 가르는 변수로 떠오르고 있다. 후보 물질 발굴에 수년이 걸리던 기존 방식으로는 글로벌 경쟁을 따라잡기 어려워진 상황에서 국내외 바이오텍들이 AI 전략을 앞세워 속도전에 뛰어들고 있다.

윤태영 프로티나 대표가 서울 구로구 프로티나 본사에서 인터뷰하고 있다. 정동훈 기자

그 한가운데서 AI 항체 신약 개발사 프로티나와 협력하는 서울대 백민경 교수 연구팀이 의미 있는 성과를 내놨다. AI를 활용한 항체 신약 개발에서 가장 큰 난제로 꼽히던 CDR(상보성 결정 영역)의 규칙성을 밝혀낸 것이다. 항원을 직접 잡아당기는 이 여섯 개의 고리형 구조는 '나풀거리는' 가변 구조를 가져 AI조차 설계하기 어렵다고 알려져 있었다. 백 교수팀의 항체 설계 AI 'AbGPT-3D'가 이 규칙성을 발견했고, 실제 항체 신약 AI에 적용 가능한 수준임을 확인했다.

윤태영 프로티나 대표(서울대 생명과학부 교수)는 지난 9일 아시아경제와의 인터뷰에서 "수십만 개에 가까운 데이터에서 찾은 조건이기 때문에 항체 전반에 통하는 규칙이라는 내적 확신이 생겼다"고 했다. 이와 관련한 논문은 이달 말 생명과학 분야 논문 사전공개 사이트인 '바이오아카이브(bioRxiv)'에 공개될 예정이며, 세계 최초가 될 것으로 보인다.

"CDR 규칙 있었다"…데이터로 신뢰도 확인

프로티나의 핵심 플랫폼은 'SPID(스피드·Single-molecule Protein Interaction Detection)'다. 단백질과 단백질의 상호작용(PPI)을 단일분자 수준에서 정량화하는 기술로, 2015년 창업 당시 임상 샘플 분석 사업의 기반이었다. 지금은 이 플랫폼 위에 AI를 얹어 항체 신약 후보 물질을 압축 개발하는 구조로 진화했다. 프로티나의 접근법은 '있는 것을 정확히 본다'는 분석 AI(Analytical AI)로 요약된다. 대규모 실험 데이터로 실제 항체의 거동을 정밀하게 측정하고, 그 데이터를 AI 설계에 피드백하는 방식이다. 백 교수팀이 AbGPT-3D로 여러 조건으로 트레이닝한 결과를, 프로티나가 SPID 플랫폼으로 생산한 대규모 실험 데이터와 대조해 실제와 가장 잘 맞는 조건을 찾는 구조다.

윤 대표는 위성사진을 예로 들며 "기존 항체 연구는 서울 전체를 흑백으로 찍거나, 구로디지털단지 한 구역만 초고해상도로 찍는 방식 중 하나였다"며 "저희 기술은 고해상도를 유지하면서 기존보다 100~1000배 넓은 영역을 찍을 수 있고, 그렇게 대규모로 봤기 때문에 규칙이 보였다"고 설명했다.

이 규칙은 단순한 학문적 발견이 아니다. 생성형 AI로 항체를 설계할 때 적용 가능한 트레이닝 조건을 찾아낸 것이다. 신뢰도는 실전 검증으로 확인됐다. 실제 축적한 내부 데이터에 이 조건을 적용했더니 적합률이 90% 이상이었다는 게 회사 측 설명이다. 프로티나는 이번 논문 공개를 계기로 글로벌 빅파마 등에 접촉할 근거가 생길 것으로 보고 있다.

주당 5000→3만개…삼성 협력이 만든 '속도 혁신'

CDR 규칙 발견의 배경에는 SPID 플랫폼의 기술적 도약이 있다. 지난해 가을 주당 5000개 수준이던 항체 서열 처리 능력이 지금은 1만5000~3만개로 향상됐다. 삼성바이오에피스와의 협력 과정에서 대규모 데이터 생산 수요가 생기면서 장비 자동화와 대수 증설이 동시에 이뤄진 결과다. 윤 대표는 "팀원들이 주말·명절도 반납하면서 공정 전반이 최적화됐다"고 말했다.

윤태영 프로티나 대표가 서울 구로구 프로티나 본사에서 자사의 AI 신약 개발 플랫폼 'SPID'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정동훈 기자

프로티나는 삼성바이오에피스, 백 교수팀과 컨소시엄을 구성해 470억원 규모의 'AI 활용 항체신약 개발' 국책 과제를 수행 중이다. 2027년까지 신약 후보 물질 10개 발굴, IND(임상시험계획) 제출 1건이 목표다. 삼성 측 지정 타깃에 대한 후보 물질 공급은 순조롭게 이뤄지고 있으며 현재까지 일정에 큰 차질은 없다는 설명이다.

삼성이 프로티나를 택한 배경에도 이같은 '실험 기반 빅데이터 생산 역량'이 자리하고 있다. AI가 설계한 수천~수만 개 후보 물질 중 실제 약품으로 쓸 수 있는 고품위 후보를 추려내려면 대규모 실험 검증이 필요하다. 다음 목표는 주당 10만 개 처리지만, 단순 증설이 아닌 플랫폼 자체의 기술 혁신이 필요하다고 본다. 칩·장비·소프트웨어를 직접 만드는 구조인 만큼 내년을 목표로 개발 중이다.

'베스트인클래스'서 '퍼스트인클래스'로…드노보 설계가 '마지막 숙제'

프로티나의 현재 전략은 '바이오베터 압축 개발'이다. 전임상·임상1상에서 유효성이 확인된 기존 항체를 출발점 삼아, AI와 자율실험의 폐쇄형 루프(closed-loop)로 효능과 안정성을 끌어올린 새로운 후보 물질을 3~4개월 만에 만들어낸다. 완전히 새로운 서열로 재설계하기 때문에 특허에서 자유롭다. 신약 개발 전략으로 치면 '베스트인클래스'다. 다음 목표는 출발점 없이 처음부터 항체를 설계하는 '드노보(de novo)', 즉 '퍼스트인클래스'다.

윤 대표는 "전 세계 어느 기업도 아직 못 하고 있는데, 여러 추세를 봤을 때 1~2년 안에는 실현해야 하지 않겠느냐"고 했다. CDR 규칙 발견이 무작위 탐색의 범위를 좁혀주고, 빨라진 검증 속도가 이를 뒷받침하기에 가능한 목표라는 것이다.

올 상반기에는 자체 개발 에셋 3개를 공개한다. 퇴행성 관절염 스몰몰레큘 제제, 비만 항체, 자가면역질환 이중항체다. 비만 항체는 GLP-1 계열 치료 후 체중 유지를 겨냥한 '리바운드 방지' 포지셔닝이다. 항체 개발 난이도가 가장 높은 GPCR(세포막 단백질) 타깃에서 저용량·장기지속 특성을 구현했다는 점이 학계 주목을 받아 최근 미국비만학회 구두 발표 대상으로 선정됐다. 오는 6월 초 공식 발표할 예정이다. 윤 대표의 올해 키워드는 '실증'이다. 내년까지 임상 1상 1~2개 진입, 반년마다 에셋(신약후보 물질) 2~3개 추가를 목표로 하며, 내년 상반기 중 글로벌 제약사와의 얼라이언스에서도 가시적 성과를 내겠다는 구상이다.

곽민재 기자 mjkwak@asiae.co.kr
정동훈 기자 hoon2@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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