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S 도입한 MLB, 포수 역할이 더 중요해졌다?...타자별 존 예습에 챌린지 역이용 전략까지 등장
-챌린지 역이용 전략까지 등장…포수 역할 오히려 복잡해져
-"생각할 줄 아는 선수가 살아남는다"

[더게이트]
'로봇 심판이 도입되면 프레이밍이 주특기인 포수들은 엄청난 피해를 입을 것이다.' 미 프로야구 메이저리그(MLB)에 ABS(자동 투구 판정 시스템) 도입 논의가 본격화될 때 한창 나왔던 묵시록적 예언이다.
포수들은 러다이트 운동이라도 벌일 기세로 "내가 15년 동안 했던 모든 노력이 사라진다", "스트라이크를 훔치는 게 우리의 밥벌이"라고 항변했다. 프레이밍 기술의 가치가 사라지면 포수 포지션의 유형 자체가 달라질 것이라는 예상도 나왔다. 롭 맨프레드 MLB 커미셔너조차 "ABS 도입 결정을 내리기 전에 충분히 생각해야 할 실질적인 우려"라고 인정할 정도였다.
그러나 막상 ABS 챌린지 시스템이 도입된 이번 MLB 스프링 트레이닝 시범경기를 보면, 상황이 애초 예상과는 전혀 다른 양상으로 흘러가는 분위기다. 프레이밍이 사라지기는커녕 오히려 더 중요해졌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챌린지를 언제, 어떻게 쓸지를 판단하는 새로운 역할까지 더해지면서 포수 포지션이 더 복잡하고 까다로운 자리가 됐다는 얘기다.

이젠 심판이 아니라 타자를 공부한다?
필라델피아 필리스 포수 J.T. 레알무토는 이번 시범경기에서 경기 전 루틴이 하나 더 늘었다. 3루 코치 더스티 와탄이 매 경기 새로운 스카우팅 리포트를 건네는데, 여기엔 상대 타자들의 성향이나 약점이 아니라 각 타자의 타격 자세와 스트라이크존이 담겨 있다. 기사는 "과거엔 포수들이 심판의 스트라이크존을 공부했다. 어떤 심판은 넉넉하고 어떤 심판은 빡빡했다. 이제는 타자마다 달라지는 존을 익혀야 한다"고 전했다.
ABS에서 스트라이크존의 위아래는 타자 키의 일정 비율로 계산된다. 아래는 신장의 27%, 위는 53.5%다. 타격 자세와 관계없이 신장 기준으로 고정된다. 탬파베이 레이스 포수 닉 포르테스는 "존의 상단과 하단이 사실상 유동적"이라며 "키가 작은 타자를 상대로 완벽하게 잡은 공이 키 큰 타자에게는 볼이 된다. 똑같은 느낌으로 잡아도 결과가 달라진다"고 설명했다. 저지의 존 최상단은 알투베보다 15cm 이상 높다.
포수 출신인 탬파베이 레이스 코치 드류 부테라는 "프레이밍은 오히려 지금 더 중요하다"고 단언했다. MLB의 ABS는 모든 판정을 기계에 맡기는 KBO리그 방식과 다르다. 구심이 여전히 모든 투구를 판정하되, 이의가 있을 때만 ABS에 챌린지를 신청하는 방식이다. 챌린지를 신청하지 않으면 심판 판정이 그대로 유지된다. 포수가 경계선상의 공을 스트라이크처럼 잡아내면 타자가 챌린지를 신청하지 않는 한 그 판정은 그대로다.

"스트라이크를 볼처럼 잡는다"…챌린지 역이용 전략도
프레이밍을 아예 거꾸로 이용하는 전략도 등장했다. 포수가 스트라이크를 일부러 볼처럼 잡아서 타자가 챌린지 기회를 낭비하게 만드는 것이다. 과거의 프레이밍이 심판을 속이는 기술이었다면, 이제는 타자의 판단을 흐리는 도구로도 쓰일 수 있다는 얘기다.
레알무토는 "실제로 그런 이야기를 해봤다"고 인정하면서도 "실전에서 해낼 자신은 없다"고 덧붙였다. 클리블랜드 가디언스 포수 오스틴 헤지스는 "몇 년 뒤엔 그런 일이 더 많이 생길 것"이라며 "다만 존을 완전히 익히려면 공 1만 개는 받아봐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부테라 코치는 "이젠 심판과 타자 모두를 불확실하게 만드는 것이 포구의 목표"라고 강조했다.
구단들은 어떤 선수에게 챌린지 판단을 맡길지도 논의 중이다. 충동적으로 챌린지를 남발했다간 초반에 기회를 다 써버릴 수도 있기 때문이다. 판정에 즉각적으로 영향을 받는 타자나 투수보다는 포수가 가장 냉정하게 판단할 수 있는 위치에 있다는 공감대가 형성되고 있다. 볼티모어 오리올스 선발 크리스 배싯은 "ABS는 포수의 영역"이라고 말했다.
오스틴 헤지스는 "생각할 줄 아는 선수가 살아남는다"면서 "포구도 되고, 존도 알고, 리드도 잘한다면 이젠 타격만 조금 보태면 된다"로 새로운 시대 포수의 역할을 정의했다. 오히려 과거보다 포수의 역할은 더 중요해지고 복잡해졌다. 포수를 위협할 것으로 여겨졌던 기술이, 오히려 포수의 가치를 새로 정의하는 도구가 되고 있다.
Copyright © 더게이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