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양 실종 8분 후 어둠 휩싸이고 며칠 만에 기온은 영하 수십도로…

2026. 3. 18. 02:07
음성재생 설정 이동 통신망에서 음성 재생 시 데이터 요금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글자 수 10,000자 초과 시 일부만 음성으로 제공합니다.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이정모의 지구 사용 설명서]
지구에 햇빛이 사라진다면
게티이미지뱅크


어느 날 아침 태양이 떠오르지 않는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처음에는 그저 흐린 날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창문 밖이 어둡고 햇빛이 보이지 않아도 사람들은 대수롭지 않게 하루를 시작한다. 날씨가 흐린 날은 자주 있으니까 말이다. 그러나 해가 떠야 할 시간이 지나도 하늘이 밝아지지 않는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아침 8시가 되어도, 9시가 되어도 세상은 여전히 밤처럼 어둡다. 거리의 가로등은 꺼지지 않고 자동차들은 전조등을 켜고 달린다. 사람들은 휴대전화로 뉴스를 확인하며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알아보려 할 것이다.

그때 우리는 비로소 깨닫는다. 우리가 얼마나 태양에 의존하며 살아왔는지를 말이다. 평소에는 너무 당연해서 의식하지 못하지만 사실 지구의 거의 모든 에너지는 태양에서 온다. 우리가 먹는 음식도, 우리가 숨 쉬는 공기도, 우리가 경험하는 날씨도 결국 태양과 연결돼 있다. 태양에서 나온 빛이 지구에 도달하는 데에는 약 8분 19~20초가 걸린다. 빛은 초속 약 30만㎞의 속도로 달리지만 태양과 지구 사이의 거리는 약 1억5000만㎞나 되기 때문에 태양이 갑자기 사라진다 해도 지구에서는 8분여 동안 아무 변화도 느끼지 못한다. 그 시간이 지나면 세상은 순식간에 어두움에 휩싸인다.

빛이 사라지면 온도도 빠르게 내려간다. 태양은 지구를 따뜻하게 하는 거대한 난로와 같다. 지금 지구 표면의 평균온도는 (최근 100년 사이에 1도나 올라서) 약 16도인데, 이것은 태양에게서 지속적으로 에너지를 공급받고 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태양이 사라지면 지구는 더 이상 에너지를 공급받지 못하고 우주로 열을 빼앗기기만 한다. 며칠이 지나면 평균기온은 영하 수십 도까지 떨어지고, 몇 달이 지나면 전 지구 바다 표면이 얼기 시작한다. 시간이 더 흐르면 지구는 두꺼운 얼음으로 덮인 행성으로 변할 것이다.

태양이 하는 일은 단순히 지구를 따뜻하게 하는 것만이 아니다. 태양은 지구 생명의 근본적인 에너지원이다. 식물은 햇빛을 이용해 광합성을 한다. 식물은 이산화탄소와 물을 이용해 유기물을 만들고 그 과정에서 산소를 방출한다. 우리가 숨 쉬는 산소의 절반 이상이 이러한 광합성 과정에서 만들어진다. 또한 식물은 거의 모든 먹이사슬의 출발점이다. 식물이 태양빛을 이용해 에너지를 저장하고 식물을 초식동물이 먹고 초식동물을 육식동물이 먹는다. 태양빛이 사라진다면 결국 지구 생태계의 에너지 흐름 자체가 멈추게 된다.

태양빛은 우리가 눈으로 보는 밝은 빛만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다. 햇빛은 여러 종류의 전자기파가 섞여 있는 에너지다. 인간의 눈이 감지할 수 있는 부분을 가시광선이라고 하는데 무지개 색깔로 나뉘는 바로 그 빛이다. 그러나 태양은 가시광선뿐 아니라 자외선과 적외선도 함께 보내고 있다.

자외선은 파장이 짧고 에너지가 높은 빛이다. 자외선은 피부를 태우고 DNA에 영향을 주기도 하지만 동시에 우리 몸이 비타민 D를 만드는 데 필요한 빛이기도 하다. 지구에는 자외선을 흡수하는 오존층이 있어 생명체를 보호한다. 만약 오존층이 없다면 강한 자외선 때문에 지표의 생명은 훨씬 살기 어려웠을 것이다. 반대로 적외선은 파장이 길고 열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빛이다. 우리가 햇볕 아래 서 있을 때 따뜻함을 느끼는 것은 바로 이 적외선 때문이다. 태양에서 오는 적외선은 지구 표면을 데우고, 이 열이 대기와 바다를 움직인다. 적도에서 데워진 공기는 상승하고 차가운 공기는 내려오면서 거대한 대기 순환을 만든다. 바다에서도 비슷한 일이 벌어진다. 태양이 바닷물을 데우면 해류가 움직이고 이 거대한 해류는 지구 곳곳의 기후를 조절한다.

게티이미지뱅크


결국 가시광선이든 자외선이든 적외선이든 모두 태양이 보내는 에너지다. 이 에너지가 얼마나 거대한지 숫자로 보면 더욱 놀랍다. 태양에서 지구로 들어오는 총에너지는 초당 약 174페타와트, 즉 174조 킬로와트 정도로 추정된다. 이것은 매초 약 17경 줄(J)에 해당하는 어마어마한 에너지다. 연간으로 계산하면 지구는 태양으로부터 약 550만 엑사줄(EJ)의 에너지를 받는다. 엑사줄은 10의 18승 줄에 해당하는 거대한 에너지 단위다.

이 숫자가 얼마나 큰지 실감하기는 쉽지 않다. 비교를 하나 해보자. 현재 인류 문명이 1년 동안 사용하는 전체 에너지는 650엑사줄 정도다. 석유와 석탄, 천연가스, 원자력, 수력, 풍력, 태양광 등을 모두 합친 값이다. 이 숫자를 태양 에너지와 비교하면 흥미로운 사실이 드러난다. 인류가 1년 동안 사용하는 에너지는 지구가 태양으로부터 받는 에너지의 약 0.01% 정도에 불과하다. 다시 말해 인류 문명이 1년 동안 쓰는 모든 에너지는 태양이 지구에 단 1시간 동안 보내는 에너지와 맞먹는 것이다.

물론 이 에너지가 모두 지표에 흡수되는 것은 아니다. 지구는 들어온 태양빛의 약 30%를 구름과 대기, 얼음, 밝은 지표면을 통해 다시 우주로 반사한다. 이를 지구의 ‘알베도’라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구가 실제로 흡수하는 태양 에너지는 여전히 인류가 사용하는 에너지보다 훨씬 크다. 이 에너지가 대기와 바다, 생태계를 움직이는 거대한 동력이 된다.

태양과 지구의 관계는 또 다른 점에서도 매우 절묘하다. 지구는 태양에서 약 1억5000만㎞ 떨어져 있다. 이 거리가 조금만 달라져도 지구의 모습은 지금과 크게 달라졌을 것이다. 지구보다 태양에 조금 더 가까운 금성은 두꺼운 이산화탄소 대기 때문에 강력한 온실효과가 일어나 표면 온도가 400도가 넘는다. 반대로 태양에서 더 멀리 떨어진 화성은 평균기온이 영하 60도 정도인 차가운 행성이다.

천문학자들은 별 주위를 돌면서 액체 물이 존재할 수 있는 영역을 ‘골디락스 존’이라고 부른다. 너무 뜨겁지도, 너무 차갑지도 않은 적당한 거리라는 뜻이다. 물이 액체 상태로 존재한다는 사실은 생명에게 결정적인 조건이다. 물은 열을 잘 저장하고 화학 반응이 일어나는 공간을 제공한다. 지구의 생명은 결국 이 액체 물 위에서 시작됐다. 지구는 바로 그 영역에 위치해 있다. 덕분에 바다는 얼지 않았고 물은 액체 상태로 유지되었으며 생명은 수십억 년 동안 진화할 수 있었다.

우리는 매일 아침 태양을 본다. 그러나 그것을 특별하게 생각하지는 않는다. 해가 뜨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조금만 생각해 보면 그것이 얼마나 놀라운 일인지 알 수 있다. 태양이 하루만 사라져도 지구는 우리가 아는 세계와 전혀 다른 행성이 된다.

아침에 창문을 열면 햇빛이 방 안으로 들어온다. 우리는 그 빛 속에서 하루를 시작한다. 어쩌면 그 평범한 장면이야말로 지구가 얼마나 특별한 행성인지 보여주는 가장 분명한 증거일지도 모른다. 지구는 스스로 빛나는 행성이 아니다. 태양의 빛을 받아 살아가는 작은 푸른 행성일 뿐이다.

오늘 아침은 찬란하지 않다. 하늘은 흐리고 마음도 어딘가 무겁다. 그래도 괜찮다. 오늘도 어김없이 태양은 떠올랐고 우리는 그 빛 아래에서 또 하루를 살아간다. 어쩌면 그것만으로도 이미 충분히 감사한 일인지 모른다.

<전 국립과천과학관장>

GoodNews paper ⓒ 국민일보(www.kmib.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Copyright © 국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