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톱질하는 91세 현역 “작업 쉬면 밥 굶는 것과 마찬가지”

손영옥 2026. 3. 18. 0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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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d 문화] 1세대 여성 조각가 김윤신
1세대 여성 조각가 김윤신씨가 지난 10일 개인전이 예정된 경기도 용인 호암미술관 전시장에서 국민일보와 인터뷰하고 있다. 17일 개막한 전시에는 나무와 돌로 된 추상 조각뿐 아니라 판화와 유화까지 다채롭게 소개됐다. 걸을 때는 지팡이에 의지하지만 카메라 앞에 서자 꼿꼿해지는 허리가 90대에도 전기톱을 들고 신작을 만들어내는 열정과 체력을 짐작케 했다. 최현규 기자


1984년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 이민 간 조카도 볼 겸 아름드리나무가 지천인 지구 반대편의 나라에 1년간 지낼 요량으로 휴직을 낸 미대 교수 김윤신에게 대학 당국으로부터 귀국하라는 전갈이 왔다. 어떻게 해야 할까. 부에노스아이레스시립현대미술관에서 이듬해 개인전 기회를 따낸 터였다. 당시 49세의 나이로는 쉽지 않은 결단, 귀국 대신 잔류를 택했다. 이후 40년 이어진 아르헨티나 이민 생활은 간단치 않았다. 40대 중반이던 1979년 이우환 권영우 김창열 등과 함께 상파울루비엔날레에 참여할 정도로 전도유망한 작가였지만 ‘자발적 격리’로 인해 한국에서는 점점 잊힌 조각가가 됐다. 결과적으로 예술에 대한 옹골찬 순수성을 지키는 길이 됐다.

예술적 순수성이 마침내 보상을 받았다. ‘너무 늦게 온 벼락같은 기적’처럼 89세이던 2024년 복이 한꺼번에 터졌다. 베니스비엔날레에 초청됐고, 한국 국제갤러리와 외국계 리만머핀갤러리 두 군데 전속 작가가 됐다. 2023년에 한 서울시립남서울미술관 개인전이 이듬해 그런 복을 가져온 것이다. 올해 봄에는 경기도 용인 삼성 호암미술관에서 개인전까지 하게 됐다. 인생 9회말 역전 홈런을 친 91세 현역 김윤신 작가를 지난 10일 개인전 개막 전 전시장에서 만났다.

귀국하면 안정된 교수직을 이어갈 수 있었는데 왜 낯선 나라 삶을 택했을까. “세계의 유명한 작가들이 줄 서 있을 텐데 한국에서 온 나한테 전시를 해준다니 기회를 놓칠 수가 없었습니다.”

그냥 얻은 기회는 아니었다. 현지 한국대사관을 찾아가 무턱대고 전시를 하고 싶다고 했다. 대사관이 연결해준 부에노스아이레스시립현대미술관 관장은 그가 만들어온 나무 조각 작품 ‘샘플’을 보더니 “30년간 나무 작업을 봤지만 나무의 껍질과 속살이 대비를 이루며 공간을 구축한 이런 작업은 처음”이라며 감탄해 마지않았다.

아르헨티나는 폭우가 내리면 아름드리나무가 거리 곳곳에 쓰러지는 나라였다. 낯선 이 나라에 처음 가볼 생각을 한 것도 나무가 많다는 말에 매료돼서였다. 한국전쟁을 거친 한국은 여전히 국가가 산림녹화 사업을 할 정도로 산에 나무가 귀한 상황이었다.

아르헨티나의 길에 쓰러진 가로수는 작업장으로 바로 옮겨 올 수 없을 정도로 크기가 컸다. 거리에서 주저없이 묵직한 전기톱으로 나무를 잘라내는 동양 여자를 보고 현지인들도 혀를 내둘렀다. 그렇게 해서 남성적 힘의 상징인 전기톱을 전유한 여성 작가 김윤신의 ‘전기톱 나무 조각’이 탄생했다.

전기톱을 들고 작업하는 작가. 작가 제공


사계절이 있는 한국의 나무는 속이 무르다. 그냥 톱으로 슬근슬근 톱질하면 된다. 하지만 열대지방 나무는 조직이 밀도가 있어 전기톱을 쓰지 않으면 안 된다. 워낙 단단해 자칫 톱이 튕겨 나올 수 있어 나무와 사람이 ‘밀당’하는 긴장감이 있다. 한국에서는 나무가 귀해 가느다란 나무로 작품을 하거나 합판이나 통나무를 잘라서 수직으로 세우는 작업을 해야 했다. 아르헨티나에서는 나무 둥치를 통째 작업에 쓰면서 그 안에서 직관적으로 형태를 끌어내며 전기톱으로 잘라 내 내부에 기하학적 공간을 만들어내는 ‘통짜 나무 조각’을 할 수 있었다. 개인전 제목 ‘김윤신: 합이합일 분이분일(合二合一分二分一)’은 작가와 나무가 하나가 되고 통째 나눈 나무가 결국 하나인 작품 세계에 대한 동양적 사유에서 땄다.

단단한 나무에서 뿜어져 나오는 야생의 맛과 추상 조각이 갖는 현대적 미감의 궁합은 김윤신 조각이 주는 묘미다. 그는 나무보다 더 단단한 재료인 돌을 찾아 멕시코, 브라질로 가서 잠시 지내기도 했다.

회화로는 한국에서 버드나무 가지가 흐드러진 것 같은 표현주의적 붓질의 추상 회화를 선보인 것과 달리 아르헨티나 시절에는 남미의 태양을 상기시키는 강렬한 원색의 기하학적 패턴의 회화로 변신했다. 역시 원시미와 현대미가 공명한다.

“1999년 무렵일 거예요. 서울에서 출강했던 성신여대 제자가 수녀가 돼 이런 곳에서 선교하고 있다며 나신의 몸에 기하학적 문양을 그려 넣은 파타고니아 인디오 마푸체족 엽서를 보내 왔어요.”

짜릿한 감동이 왔다. 문명의 때가 타지 않은 순수의 문양을 거기서 봤다. 자신이 조각한 나무에 비슷한 패턴을 넣어 색칠을 했고, 회화로도 발전시켰다.

김윤신은 한국 현대미술의 히트 상품인 ‘단색화’ 작가인 1930년대생 박서보, 하종현 등과 비슷한 또래다. 그들이 중년 이후 한국 미술의 주류로 산 것과 달리 지구 반대편에서 잊힌 듯 살아 왔다. 외롭지 않았을까.

“어디 가서 사나 내가 작업할 수 있는 재료와 도구가 있으면 거기가 내 집이지.”

2008년에는 현지의 동반자였던 제자 김란씨와 김윤신미술관도 만들었다. 그럼에도 한국에서의 끈은 놓지 않으려 했다. 방한할 때마다 전시를 했다. 40년 동안 진화랑, 갤러리현대, 한원미술관 등 7~8차례가 전부였다. 2007년에는 국민일보갤러리에서 개인전을 하며 회화를 선보이기도 했다.

그는 “2022년 마지막이라는 심정으로 방한했다”고 했다. 코로나 팬데믹 뒤라 심신이 지치기도 했다. 마침 한국과 아르헨티나 수교 60주년이라 반디트라소갤러리에서 개인전이 성사됐다.

전시 전경. 작가 제공


기적이 일어났다. 그 전시를 서울시립미술관 백지숙 관장이 보러 와 2023년 서울시립남서울미술관 개인전으로 이어진 것이다. 서울에서 전시와 레지던시 입주가 이어지며 김윤신은 2024년 영구 귀국했다. 40년 만에 다시 돌아온 한국에서 여전히 전기톱을 들고 ‘연한 한국의 나무’를 자르며 갓 지은 밥처럼 따끈한 신작을 만들어내고 있다. 건강 비결을 물었다.

“나는 나이가 들었다고 생각을 안 해요. 항상 청춘이라는 생각을 해요. 작업은 내 생활이고요. 이걸 안 하면 밥을 굶는 거나 마찬가지에요.” 6월 28일까지.

손영옥 미술전문기자 yosoh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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