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당과 지옥 사이…코스피의 줄타기

배준희 매경이코노미 기자(bjh0413@mk.co.kr) 2026. 3. 17. 2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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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도체 슈퍼 사이클에 올라탄 코스피는 올 들어 무서운 속도로 상승세를 탔다. 지수 앞자리가 불과 몇 달 만에 바뀔 정도로 상승 탄력이 커졌다. 코스피지수가 1000에서 2000 돌파까지 약 18년 4개월 걸렸지만, 4000에서 6000 돌파는 불과 5개월여밖에 걸리지 않았다. 랠리 이면에 가려져 있던 세계 최고 수준 변동성도 잇따라 노출했다. 올 들어 코스피 시장에서는 사이드카가 8차례 발동될 정도로 급등·급락을 반복했다. 막대한 유동성과 레버리지 투자 확대, ETF 쏠림 현상 등이 변동성을 눈덩이처럼 키웠다는 분석이다. 상법 개정과 주주환원 확대 기대 속 이번 상승을 ‘코리아 디스카운트 해소’로 해석하는 시각이 많지만, 반도체 실적 개선이 주도한 랠리라는 신중론도 제기된다. 한국 기업 이익에 투자자들이 다른 시장보다 비싼 값을 쳐주는 ‘진짜 재평가’까지는 남은 과제가 적지 않다는 평가다. 올 들어 수차례 ‘천당과 지옥’을 오간 코스피의 두 얼굴을 들여다본다.

2000까지 18년…6천피는 5개월

개미 ‘빚투’ 과열이냐 재평가냐

숨 가쁜 질주를 벌이던 코스피가 중동 분쟁 확대 등으로 세계 최고 수준 변동성에 노출됐다는 진단이 쏟아진다. 올 들어 코스피 시장에서는 8번의 사이드카(프로그램 매매 호가 효력 일시 정지)가 발동됐고, 이 가운데 매도 사이드카는 5번·매수 사이드카는 3번이다. 이 정도 변동성은 선진국은 물론 신흥국 증시에서도 유례를 찾기 힘들다. 반도체 슈퍼 사이클이 빚어낸 기업 이익 증가가 증시 상승 동력이 된 반면, 막대한 유동성과 투기적 자금이 쌓아 올린 변동성은 코스피 랠리 이면에 가려진 ‘또 다른 얼굴’로 지목된다. 상법 개정 등으로 주주환원이 큰 폭 개선됐지만, 이번 랠리를 고질적인 ‘코리아 디스카운트’ 해소로 평가할 수 있을지에 관해서도 전문가들 사이에서 시각이 나뉜다.

사이드카만 8번 발동

레버리지·ETF 쏠림 심화

최근 우리 증시는 세계 최고 수준 변동성을 보였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올해 코스피 시장에서 발동된 사이드카는 총 8차례(매도 5번·매수 3번)다. 코스닥 시장에서도 하루가 멀다 하고 사이드카가 발동됐다. 사이드카는 지수 선물 가격이 급등락할 때 시장 과열을 막으려 발동되는 장치로, 단기간 여러 차례 발동되는 경우는 드물다. 선진국은 물론 주요 신흥국 증시와 비교해도 이 같은 빈도의 시장 안정 장치 발동은 찾아보기 힘들다는 평가다.

변동성 배경으로는 몇 가지 요인이 지목된다. 첫째, ETF 쏠림 심화다. ETF는 개인투자자 매수·매도 주문에 대응해 증권사 같은 유동성공급자(LP)가 기계적으로 물량을 공급한다. 가령, 유동성공급자가 개인 투자자 순매수에 대응하려 ETF를 매도하면 손실 위험을 줄이려 기초자산인 현물 주식이나 선물을 매수하는 헤지 포지션을 취한다. 이 과정에서 기초자산 주가가 기업 실적이나 정보 변화보다 ETF 자금 유출·입과 유동성 공급자 리밸런싱에 더 민감하게 반응할 가능성이 높다. 일각에서는 단일 종목 레버리지 ETF 허용으로, 개별 종목 주가 변동성이 큰 폭 확대되는 ‘왝더독(Wag The Dog)’ 현상 심화를 우려한다. 왝더독은 현물 주가가 기업 실적이나 중장기 전망보다 파생상품 수급에 더 민감하게 반응하는 현상을 뜻한다. 금융당국은 삼성전자 등 국내 우량주 단일 종목을 기초자산으로 한 2배 레버리지 ETF 도입을 추진 중이다.

둘째, 한국 시장 특유의 높은 레버리지 선호도다. 블룸버그통신이 인용한 블룸버그 인텔리전스 자료에 따르면, 올 들어 지난 3월 6일까지 미국에 상장된 한국 주식 추종 ETF로 유입 자금은 215억달러에 달했다. 이는 직전 3개월과 비교하면 두 배 수준이다. 이 가운데 약 20%가 레버리지 상품에 몰렸다. 블룸버그는 “한국 개인 투자자들은 전 세계적으로 미국 상장 레버리지 ETF 거래를 가장 적극적으로 주도하는 투자자들 가운데 하나”라고 진단했다. ‘MSCI 코리아 25/50’ 지수 하루 등락률을 세 배로 추종하는 레버리지 ETF ‘디렉시온 데일리 사우스 코리아 불 3X(KORU)’를 예로 들며, “한국 데이트레이더들 사이에서 중독적인 취미처럼 자리 잡았다”고도 했다.

코스피지수 앞자리가 바뀌는데 소요된 기간이 최근 들어 급격히 줄어든 것도 레버리지 등 ETF 열풍이 주도했다는 시각이 많다. 과거 코스피지수가 1000(1989년 3월 말)에서 2000(2007년 7월 24일)까지 도달하는 데 약 18년 4개월 걸렸다. 2000(2007년 7월 24일)에서 3000(2021년 1월 6일)까지 13년 5개월가량 소요됐다. 그러다 ▲3000(2021년 1월 6일) → 4000(2025년 10월 27일) 약 4년 9개월 ▲4000(2025년 10월 27일) → 5000(2026년 1월 22일) 약 3개월 ▲5000(2026년 1월 22일) → 6000(2026년 2월 25일) 1개월 남짓으로 급격히 단축됐다.

행동경제학을 연구하는 학계에서는 투자자 구성과 투자 행동 변화가 맞물린 결과로 해석한다. 특히 젊은 투자층을 중심으로 장기 투자보다 단기 고수익을 노리는 투자 방식이 확산하면서 가격 변동성이 확대됐다는 진단이다. 장기 투자로는 자산 격차를 따라잡기 어렵다는 인식이 확산했고 이 때문에 2030 투자자 사이에서 높은 변동성을 감수하더라도 단기간 큰 수익을 기대하는 투자 방식이 확산했다는 것이다.

행동경제학에서는 이런 행동 변화를 기준점 이동(Reference Point Shift)과 손실 회피(Loss Aversion)가 결합된 결과로 바라본다. 과거 투자자들이 예금 금리나 연 10% 안팎 주식 수익률을 기준으로 투자 판단을 했다면, 최근 젊은 투자자 기준점은 비트코인이나 ‘밈주식’ 같은 극단적 사례로 옮겨갔다. 이런 상황에서는 안정적인 장기 투자 수익률을 좇는 게 오히려 ‘기회 손실’처럼 느껴진다는 것이다. 특히, 자산 가격 상승으로 이미 경제적 경쟁에서 뒤처졌다는 인식이 강해질수록 2030 투자자는 고위험 선택을 선호하는 경향을 보인다고 행동경제학은 설명한다. 전망이론(Prospect Theory)에 따르면, 사람들은 손실 영역에 있다고 인식할 때 위험을 회피하기보다 오히려 더 큰 위험을 감수하려는 성향을 보인다. 레버리지 ETF 등에 대한 관심이 높은 배경도 이런 심리 변화로 설명할 수 있다는 주장이다.

자사주 소각 잇따르지만

높은 상속·증여세율은 발목

사정이 이렇자 이번 랠리의 이면과 성격을 되짚어보려는 신중한 시각도 고개를 든다. 증시의 가파른 상승이 막대한 유동성과 투자 행태 변화가 맞물려 촉발된 과열인지, 주주환원 등에 따른 코리아 디스카운트 해소의 결과인지 신중히 짚어볼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다.

무엇보다 코리아 디스카운트 해소 논쟁 핵심은 같은 이익을 내는 기업에 시장이 몇 배의 가치를 매기느냐의 문제다. 한국 기업이 비슷한 성장성과 이익 규모를 가진 해외 기업보다 낮은 PER(주가수익비율)과 PBR(주가순자산비율)을 받는 현상이 코리아 디스카운트다. 결국 코리아 디스카운트 해소 여부는 시장에서 부여하는 PER이 구조적으로 상승했는지에서 갈린다는 평가다.

시장 전문가들은 현재로선 코스피 랠리가 PER의 구조적 재평가보단 삼성전자 등 가파른 이익 개선이 주도한 결과로 보고 있다. 익명을 원한 국내 증권사 이코노미스트는 “국내 상장사의 자사주 규모는 전체 증시 시가총액의 3% 안팎 수준에 불과하다. 모든 자사주가 소각된다고 가정해도 EPS 증가 효과는 기대보다 미미할 수 있다. 자사주 소각만으로 코리아 디스카운트 해소나 멀티플 리레이팅을 기대하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특히, 높은 상속·증여세율을 그대로 두고는 우리 기업 자본 효율을 획기적으로 개선하기 힘들다는 시각도 적지 않다. 현재 한국 상속세 최고세율은 60%까지 올라간다. 대주주 일변도 지배구조가 코리아 디스카운트 여러 요인 가운데 하나로 볼 수 있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이런 지배구조를 초래한 ‘진짜’ 원인인 상속·증여세부터 뜯어고쳐야 한다는 주장이다.

상장사 지분을 승계해야 하는 대주주 입장에서는 세금을 낼 현금을 확보하면서도 지배력 약화를 방어해야 하는 만만치 않은 과제에 직면한다. 이 때문에 배당 확대나 자사주 소각처럼 주가를 끌어올릴 수 있는 주주환원보다 내부 유보 축적과 지배력 방어를 우선하는 유인이 강해졌다. 이런 의사결정이 누적돼 한국 기업 특유의 폐쇄적 지배구조와 낮은 주주환원 성향이 고착화됐다는 지적이다. 김우진 서울대 경영대학 교수는 “코리아 디스카운트 근본 원인은 우리나라 상속·증여세율이 너무 높은 데서 나온다. 과도한 상속세율도 함께 손보지 않는다면 기업 밸류업(가치 제고) 자체가 공허해진다”고 지적했다.

[배준희 기자 bae.junhee@mk.co.kr]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351호(2026.03.18~03.24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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