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 불타버린 산과 집… 더 새까맣게 탄 삶은 무너졌다


지난해 3월 발생한 영남 지역의 대규모 산불은 주민들의 신체 피해뿐 아니라 정신적 피해까지 야기했다. 국민일보 이슈탐사팀은 기존 공식 사망자 외 추가 사망자 가운데 정신적 후유증과 연관된 이들이 최소 6명이나 되는 것으로 파악했다. 산불 이후 자신의 상황을 비관해 자살한 사람들도 있었다.
둘째 딸 결혼식을 두 달 앞두고 지난달 말 본인이 운영하던 펜션에서 숨진 채 발견된 김수형(가명·65)씨는 산불 이후 동네 사람들에게 “소나무가 다 타 황량한데 앞으로 우예 장사를 해 갖고 살겠습니꺼”라고 자주 한탄했다고 한다. 2023년 경북 포항에서 영덕으로 넘어온 김씨는 2024년 여름부터 영업을 시작했지만 채 1년도 안 돼 산불을 맞았다.
문제는 다 타버린 산이었다. 주변을 둘러싼 100년 된 소나무 산과 탁 트인 경관이 펜션의 자랑이었는데 산불 이후 예약이 뚝 끊겼다. 까맣게 탄 나무들을 보고 있으면 그의 속은 더 새까맣게 타들어 갔다.

김씨는 빠른 속도로 변해갔다. 펜션을 지으면서 빌린 대출금 이자를 독촉하는 전화가 숨통을 옥죄어 왔다. 경제적 스트레스로 정신과에서 우울증 진단까지 받았다. 알코올에 의존하는 날도 많아졌다. 그를 잘 아는 지인은 “이전에는 술 먹자고 불러내도 ‘술 생각 없습니다’ 하고 거절하던 사람이었는데 산불 이후 혼자 모르게 술을 많이 먹었던 것 같다”고 했다.
더 이상 버틸 수 없었던 모양이다. 김씨는 지난 1월 술에 취한 채 자신의 펜션에 불을 질렀다. 인근 펜션에도 불을 지르려다 주민에게 발각됐다. 극심한 스트레스에 시달리다 우발적으로 불을 지른 게 아닐까 추정될 뿐이었다.
김씨는 자살 전 지인들에게 “산불 피해 지원에 다들 고생이 많다”는 말을 하고 다녔다고 한다. 산불 피해자 단체대화방에도 ‘산불피해대책위원회 모든 분들께 사과드립니다. 저도 어렵게 살다 보니 집회에 잘 가지도 못하고 뒤에서 염탐만 했습니다. 저처럼 얍삽하게 살지 말고 용기 내어 나서주십시오’라는 글을 남겼다. ‘마지막 인사’였다.
인근 청송에서도 과수원이 산불로 전부 타버린 A씨가 최근 자살한 일이 있었다. 주민들은 재산상의 피해액이 수억원대에 달할 것으로 추정했다. 대책위 관계자는 “기존에 받던 스트레스와 산불로 인한 피해가 복합적으로 작용한 것 같다”고 말했다.
대형 산불은 특히 정신건강에 악영향을 미친다는 연구 결과가 많다. 2023년 미국 하와이 마우이섬 산불 이후엔 자살 상담전화 이용률이 이전 대비 41%나 급증했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2009년 173명이 사망한 호주 대형 산불의 경우 10년이 지난 시점까지도 주민 상당수가 외상후 스트레스장애(PTSD)와 우울증을 호소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형님 집 불에 다 타삣다. 다 내려앉았는데 우이할껴.”
배순자(가명·90·여)씨는 지난해 3월 31일 대구의 한 요양병원에서 동네 주민으로부터 청천벽력 같은 소리를 들었다. 배씨가 한 달 정도 잠시 요양병원에 입원한 사이 집이 산불로 모두 새까맣게 타버렸다는 것이다. 배씨는 경북 영덕군 지품면 오천리에서 태어나 한평생을 살았다. 타버린 것은 단지 집과 동네가 아니라 배씨의 삶 자체였다. 그래서 가족들은 차마 배씨에게 산불 소식을 전하지 못했다.
소식을 접한 배씨는 아들 박경열(64)씨에게 “당장 나 마을에 갖다 놓으라”고 졸랐다. 만류해도 “니가 내 아들 맞냐”며 고집을 부렸다. 다음 날 경열씨는 어쩔 수 없이 어머니를 모시고 집으로 향했다. 어머니 눈에 들어온 건 엉망이 된 동네와 무너진 집. 배씨는 한동안 입을 열지 못했다. 겨우 정신을 차린 어머니는 안방 쪽을 가리키며 “저기 결혼반지도 사진도 비상금도 다 있는데 찾아야 한다”고 아들을 채근했다. 경열씨가 다 타버려 골조만 남은 철제 책상 서랍에 손을 대자 재가 돼버린 어머니의 물건이 흙바닥으로 힘없이 떨어졌다. 병원으로 돌아가는 차 안에서 어머니는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병원에 돌아온 어머니는 같은 병실을 쓰던 환자들을 붙잡고 “우리 마을이 자꾸 없어진다”는 말을 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모르는 사람을 붙잡고 옛날 동네 이야기를 늘어놓기도 했다. 다른 환자들을 마을 사람으로 착각하는 등 섬망 증상이 찾아온 것이다.
다른 환자들이 어머니를 두고 ‘자꾸 밤늦게까지 중얼거린다’고 토로하기 시작했다. 병실을 옮긴 뒤에는 급격히 말이 없어졌다. 걷기도 어려워져 휠체어를 타고 다녔다. 이후 식사도 거부하고 하루종일 침대에 웅크리고 누워 있었다. 기력이 쇠해져 산소호흡기도 달아야 했다. 불타버린 집을 보고 온 뒤 나흘 만인 4월 5일 폐합병증으로 숨졌다. 요양보호사의 도움을 받긴 했지만 전소된 집을 보기 전까지 어머니는 거동이 가능했고, 섬망 증상도 없었다. 경열씨는 “어머니는 당연히 입원이 끝나면 고향에 돌아간다고 생각했겠지만 집이 전소되고 갈 데가 없어지니 인생이 끝났다고 생각한 것 같다”고 떠올렸다. 이어 “몸이 안 좋은 상태에서 큰 충격을 받으니 급격히 상태가 나빠진 것 같다. 그러나 의학적으로 산불의 영향을 증명하기는 쉽지 않다”고 말했다.
산불로 집과 송이밭 피해를 입은 신현욱(83)씨는 산불이 발생한 지 2개월도 되지 않아 원인을 알 수 없는 복통을 호소하며 급사했다. 신씨는 5년 전 간암 판정을 받았지만 일상생활에는 지장이 없었다. 동네 주민은 “평소 오토바이를 타고 장에 다니고, 전날만 해도 멀쩡하게 지인들을 만나고 다니던 사람이 안 좋은 일을 당했다고 해서 마을 사람 모두가 깜짝 놀랐다”고 했다.
사망진단서에 적힌 사인은 ‘미상’이다. 유족 신현철(62)씨는 “평소 스트레스를 받을 때마다 배가 아프다는 말을 했던 게 마음에 걸린다”며 “평생 살던 집이 전소되니 얼마나 속상했을까 싶다”고 말했다.
소아마비를 앓던 이영근(72)씨는 지난해 6월 부엌에서 크게 넘어지면서 뇌경색이 와 결국 숨졌다. 이씨는 산불로 집이 전소된 뒤 창고에서 아내와 살며 우울감과 화병에 시달렸다고 한다. 전소된 집은 영근씨가 평생 모은 전 재산으로 리모델링을 한 소중한 집이었다. 한 지인은 “집을 고치면서 즐거워하던 모습이 생각난다. 그런 이씨가 집이 전소되고 이따금 빈집에 찾아가 눈물을 흘리곤 했다”고 말했다. 또 다른 지인은 “열심히 구둣방을 운영하며 살던 낙천적인 사람이었다”며 “산불 피해로 스트레스를 받고 많이 괴로워했다”고 했다. 혼자 남은 이씨 아내도 정신적 스트레스에 시달리고 있다. 주민들에 따르면 이씨 아내는 5년 전부터 우울증과 공황장애를 겪고 있었지만 산불 피해 이후 약 없이는 잠을 자지 못할 정도로 심해졌다고 한다.
지난해 10월 갑작스럽게 심근경색으로 사망한 황모(72)씨도 산불 피해 후 주변에 극심한 정신적 스트레스를 호소했다고 한다.
살아 남은 이들도 산불 피해의 상처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청송군 진보면 기곡리 이장인 최명규(63)씨는 잿더미로 변해버린 8000평 사과 농장에 쪼그려 앉아 한숨만 쉬었다. 이 농장은 2004년 귀농해 20년 넘게 가꿔온 그의 전부였다.
모든 걸 잃은 최씨는 산불로 화상을 입고 병상에 누워 있는 아들 민수(27)씨를 본 뒤 다시 한번 무너졌다. 이후 최씨는 석 달 넘게 방에서 나오지 못했다. 좁은 곳만 들어가면 숨이 목 끝까지 들어찼다. 힘겹게 포항까지 찾아간 병원에서는 그에게 초기 알츠하이머와 폐소공포증 진단을 내렸다. 최씨는 “1년 가까이 단 한 번도 수면제를 먹지 않고 잠든 적이 없다”고 말했다.

영남 산불 피해 주민 3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응답자의 87%가 PTSD 위험군에 속한다는 분석도 나왔다. 그린피스·녹색전환연구소·재난피해자권리센터 ‘우리함께’는 17일 국회 산불특위가 공동 주최한 토론회에서 이 같은 실태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이선주 그린피스 기후에너지 캠페이너는 “초대형 산불이 단순한 물적 피해를 넘어 피해 주민의 삶과 공동체를 어떻게 무너뜨렸는지 여실히 보여줬다”고 말했다.
토론회에 참석한 변환동 행정안전부 산불 피해지원 및 재건지원단 전문관은 “정부는 피해 주민들의 심리 지원을 계속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이슈탐사팀=김판 김지훈 이강민 기자 pa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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