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카이치 ‘방어전’이 스탠다드…‘호르무즈 눈치게임’ 시작됐다
미국의 동맹·우방국들이 ‘호르무즈 눈치 게임’에 돌입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이 주한미군 주둔 규모까지 거론하며 이란 사태에 기여하라고 압박을 높이는 가운데 당장 19일 미·일 정상회담을 통해 먼저 담판에 나설 다카이치 사나에(高市早苗) 총리의 ‘방어전’ 수준이 한국을 비롯한 다른 국가의 결정에도 기준점으로 작용할 전망이다.
실제 정부 내에서는 미·일 정상회담 결과부터 지켜보자는 기류가 감지된다. 조현 외교부 장관은 17일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전체회의에 출석해 중동 파병 요청이 있었는지에 대해 “요청이라고 할 수도 있고 안 할 수도 있고 그런 상황”이라며 “파병 그 자체에 대해서는 미국 측과 논의가 있었느냐에 대해 현재로서는 답변드리기 참 곤란하다”고 말했다.

전날 조 장관과의 통화에서 마코 루비오 미 국무장관은 호르무즈 해협과 관련한 “한국 측의 지지”와 “협력”을 요청했다. 이를 공식 요청으로 해석하는 시각이 많았는데, 정부는 신중한 입장을 보인 것이다. 외교부 당국자는 이에 대해 “현재로서는 미국의 구상이 구체화되지 않았다”며 “앞으로 구상이 어떻게 발전할지 지켜보면서 신중하게 우리가 다뤄나가겠다는 의미”라고 부연했다.
안규백 국방부 장관도 국회 국방위원회 답변을 통해 “공식 요청은 문서로 수발하거나 양국 장관끼리 협의를 하든가 이런 절차를 공식적으로 거쳐야 한다”며 “아직 그런 절차와 요청이 없었다고 말씀드린다”고 밝혔다. 또 “여러가지 옵션 검토를 하고 있다”면서 “지금 청해부대의 임무와 상태에서 (임무 확대는)고려하고 있지 않다”고 덧붙였다.
이는 트럼프는 전투함 파견을 특정해 요청했지만, 실제 미국이 원하는 기여의 수준이 구체화하지는 않았다는 뜻일 수 있다. 이와 관련, 일본 요미우리 신문은 16일 “고이즈미 신지로(小泉 進次郎) 일본 방위상과 피트 헤그세스 미 국방부(전쟁부) 장관의 전날 통화에서 미 측이 일본에 호르무즈 해협의 안전 항행 확보를 위한 연합인 ‘해상 태스크포스(TF)’에 대한 지지를 요구했다”고 보도했다. TF의 위상이나 역할은 확실치 않지만, 헤그세스 장관이 직접 나선 만큼 군사적 지원을 수반할 가능성이 크다는 지적이다.
한국은 앞서 지난 2020년 청해부대의 작전 구역을 소말리아 아덴만 해역에서 호르무즈 해협까지 일시 확대한 적이 있지만, 사실상 전면전이 진행 중인 지금은 상황이 다르다. 이란의 전방위 드론·미사일 공격은 물론 기뢰 부설까지 불거지는 가운데 전쟁터 한복판에 군함을 파견하는 건 장병들의 생명과 직결되는 문제라는 게 정부의 인식이다. 호르무즈 해협은 유엔해양법상 상선이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는 ‘통과 통행권’이 적용돼 이란이 한국 상선의 출입을 막을 경우 법적 개입 근거는 충분하지만, 실제 파병은 차원이 다른 이야기라는 뜻이다.

또 국회 파병 동의안에 따르면 현재 소말리아 아덴만 해역에 나가있는 청해부대에 부여된 직접적인 임무는 해적 퇴치다. 47진으로 파견된 이순신함(DDH-Ⅱ)급 4400t급 구축함 대조영함은 SM-2 함대공 미사일, 5인치 함포, 근접방어체계(CIWS) 골키퍼 정도를 갖추고 있다. 대북 방어에 초점이 맞춰진 무장 체계만으로는 폭이 34㎞, 항로 상으론 3㎞에 불과한 호르무즈 해협에서의 생존성은 제로에 가까울 수 있다는 게 군사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전투함 파병이 어려울 경우 대안도 거론된다. 해군은 제5기뢰·상륙전단 제52기뢰전대가 강경급 기뢰탐색함(소해함·MHC·450t)과 양양급(MHS·730t)을 각 6척씩 총 12척 보유하고 있다. 그러나 이들 소해함은 호위 기능이 사실상 없어 단독 작전은 불가능하다. 미 구축함 등 다국적군과 연합 작전을 하는 방안은 가능할 수 있지만, 이를 위해선 국회의 별도 파병 동의가 필수적이란 게 군 당국의 인식이다.
이외 해상 초계기 활동이나 20㎜~40㎜ 대공포 탄약 비축분 또는 드론 탐지 레이더 등 무기 지원도 거론되지만, 트럼프 대통령이 “전투함(War Ships)” 지원을 직접 거론한 만큼 이는 미국의 요구 수준에는 미치지 못 할 가능성이 크다.

유사한 청구서를 받아든 주요국이 먼저 매를 맞게 된 격인 일본의 대응을 주목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이와 관련, 일본 아사히신문은 복수의 정부 관계자를 인용해 일본 정부가 자위대 파견 가능성을 검토하기 시작했다고 17일 보도했다.
다만 다카이치 총리는 이날 참의원 예산위원회에 출석해 “자위대에 의한 기뢰 제거와 선박 호위, 타국군에 대한 후방 지원 외에 정보 수집 목적으로 함정 파견”을 선택지로 언급하면서도 무력 사용의 상대방으로 “나라 또는 국가에 준하는 조직”이 상정되는 경우 “파견할 수 없다”며 신중한 입장을 재차 피력했다. 정보 수집 명목으로 주변 해역에 함정을 파견하는 방법이 부상하고 있다는 현지 매체들의 해석이 나오는 이유다.
미국은 세계적 수준인 일본의 소해 함대 파견을 눈독 들이고 있지만, 일본 국내적으로 평화헌법 등 법적 한계가 있다. 일본 정부 관계자들은 이번 사태가 2015년 제정된 신안보법제 상 ‘집단적 자위권’ 발동 대상은 아니라는 취지로 발언해 왔다.
문제는 트럼프가 이런 국내적 한계를 받아들일지 여부다. 트럼프는 16일(현지시간)에도 백악관 기자들과 만나 호르무즈 해협 문제를 거론하며 “일본에 4만5000명의 (미군) 병력이 주둔해 있고, 한국에도 4만5000명, 독일에 4만5000~5만 명의 병력이 있다”며 “우리는 이 모든 나라를 지켜주고 있다”고 발언했다.
이는 동맹국에 꺼내들던 ‘안보 무임 승차론’을 이란 사태에서도 적용해 관세 보복 등 상응 조치에 나설 수 있다는 노골적 경고나 다름 없다. 실제 트럼프는 “나는 누구의 도움도 필요 없다. 우리는 세계 최강국이며 세계 최강의 군대를 갖고 있다”며 “(군함 파견 요청을 받은) 국가들이 어떻게 나오는지 보려고 했다"고도 말했다. 전투함 파견 요청을 받은 국가들이 좀처럼 호응하지 않는 가운데 이를 동맹의 진정성을 파악하는 수단으로 활용할 수 있다는 의도를 내비친 셈이다.
앞서 독일과 호주는 일찌감치 “호르무즈 해협에 군함을 보내지는 않는다”며 선을 그었다. 영국 역시 “더 확대된 전쟁으로 휘말리지 않을 것”(키어 스타머 총리, 15일)이라며 난색을 표하고 있다. 다만 이들 국가들은 다른 방식으로 기여를 할 가능성이 있다는 평가다.
호주는 이미 아랍에미리트(UAE) 알민하드 공군기지에 E-7A 웨지테일 조기 경보 통제기와 병력 등을 파견하기로 결정했다. 이와 관련, 조 장관은 16일 페니 웡 호주 외교부 장관과 통화했는데, 외교부는 “최근 중동 상황”도 논의했다고 밝혔다. 이는 미 측의 호르무즈 해협 기여 요구와 관련해 ‘동병상련’으로 관련 논의를 나눴을 것으로 예상되는 대목이다.
이유정·윤지원 기자 uuu@joongang.co.kr
Copyright © 중앙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새벽 2시, 발신자는 대통령…청와대 참모 벌써 4명 쓰러졌다 | 중앙일보
- 얼굴에 숨은 '뇌 하수구' 찾았다…치매 막는 마사지 방법 | 중앙일보
- 예일대 아빠 "수포자 될 뻔 했다"…아이에 게임 시킨 이유 | 중앙일보
- "사람이 물에 빠졌다"…이천 온천 수영장서 20대 남성 사망 | 중앙일보
- 치매 손님 집 따라가 상습 추행한 콜택시 기사…홈캠 영상 보니 | 중앙일보
- 70차례 폭행 후 "아직 안 죽었냐"…얼굴뼈 조각난 택시기사 의식불명 | 중앙일보
- 조국 vs 한동훈 빅매치 성사? 그들이 부산행 노리는 이유 | 중앙일보
- [단독] 李 "3년? 1년 내 끝내라"…규제법령 조사 속도낸다 | 중앙일보
- "생리휴가, 여성에 되레 해롭다"…도입 청원 기각한 '이 나라' | 중앙일보
- "다 불 질러" 공산주의 쿠바서 이례적 反정부 시위…왜 | 중앙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