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민 공연 본 중3 아들 감동 깨트린 엄마의 한 마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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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수정 기자]
지난 15일 일요일 오후였다. 햇살은 겨우내 묵혀 두었던 금빛을 꺼내들 듯 거리를 환하게 비췄다. 바람은 아직 차가우면서도 어딘가 느슨해져 있었다. 계절이 겨울과 작별 인사를 하고 있다는 신호였다. 그 봄 기운을 등에 업고 중학교 3학년 아들과 함께 부산 드림씨어터로 향했다. 뮤지컬 <라이프 오브 파이>를 보기 위해서였다.
이 작품은 원래 동명의 소설이 원작이다. 이후 이안 감독이 만든 영화로도 널리 알려졌다. 한 소년이 망망대해에서 호랑이와 함께 표류 하며 살아남는 이야기. 이미 여러 매체로 유명한 작품이지만, 이번에는 무대 위에서 살아 움직이는 이야기로 다시 태어났다. 요즘 가장 주목 받는 배우 중 한 명인 박정민이 주인공 파이 역으로 출연한다는 소식에 티켓은 금세 매진됐다.
공연장이 무려 1700석이 넘는다는데 객석은 빈자리를 찾기 어려웠다. 티켓 오픈과 동시에 예매를 시도했지만 역시 좋은 자리는 이미 사라진 뒤였다. 결국 아들과 나는 3층 2열 중앙에 자리를 잡았다. 무대와 거리는 있었지만, 전체를 한눈에 볼 수 있다는 점에서는 오히려 장점이었다. 바다도 멀리서 보면 더 넓게 보이는 법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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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현수막 뮤지컬 현수막을 보는 순간 심장이 쿵쾅, 온몸의 혈류가 빨라지기 시작했다 |
| ⓒ 박수정 |
중학교 3학년쯤 되면 부모와 보내는 시간이 자연스럽게 줄어든다. 친구들이 더 중요해지고, 부모는 점점 '필요할 때 찾는 사람' 정도로 밀려난다. 그런데 뮤지컬이라는 공통분모가 생기니 공연 전에도, 공연 후에도 이야깃거리가 이어졌다.
무대 위에서는 배우 박정민이 극을 이끌어 갔다. 두 시간 가까운 시간 동안 엄청난 분량의 대사를 소화하며 감정의 파도를 타고 올랐다 내렸다. 소리를 지르고, 절망하고, 희망을 붙잡고, 다시 살아가려는 몸짓을 이어가는 동안 그의 등에 땀이 선명하게 맺혔다. 어떤 장면에서는 눈물을 훔치기도 했다.
'아, 저 사람은 지금 자신의 일을 온몸으로 하고 있구나.'
그 생각이 들었다. 무대 위의 열연을 보며 객석에 앉아 있던 나는 괜히 어깨를 고쳐 앉았다. 공연이 끝난 뒤 집으로 돌아오는 길. 나는 감동이 아직 가시지 않은 목소리로 말했다.
"저 많은 대사를 다 외우잖아. 그러니까 암기과목 시험 때 못 외운다는 건 말이 안 되는 거지."
잠깐의 침묵. 그러자 아들이 한숨을 쉬며 말했다.
"엄마… 지금 감동이 다 깨졌거든."
그리고는 덧붙였다.
"공연 보고 나와서 잔소리하는 사람 처음 봤어."
그날의 감동은 그렇게 교육 메시지와 함께 조금 깨졌다. 하지만 그 덕분에 우리는 한참을 웃었다. 뮤지컬 <라이프 오브 파이>는 단순한 모험 이야기가 아니었다. 파이가 겪는 절망적인 상황을 지켜보면서 나는 자연스럽게 내 삶을 떠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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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캐스팅 보드 좋아하는 배우를 만날 수 있는 공연이라 설렘 가득한 시간이었다 |
| ⓒ 박수정 |
'아, 내가 힘들다고 생각했던 것들은 사실 별일이 아닐 수도 있겠구나.'
삶은 원래 예측이 잘 되지 않는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멈춰 있을 수는 없다. 파이가 끝까지 살아남으려 애썼듯, 우리도 결국은 헤쳐 나가야 한다. 핑계는 없다. 그냥 앞으로 나아가는 수밖에.
뮤지컬이 끝난 뒤 나는 앞으로 해야 할 일들을 조용히 떠올렸다. 글을 쓰는 일, 공부하는 일, 앞으로 계획하고 있는 여러 도전들. 아직은 막연하지만 분명한 방향이 있는 것들이다. 영화는 비교적 쉽게 볼 수 있지만, 공연은 그렇지 않다. 시간도 맞춰야 하고, 비용도 적지 않다. 그럼에도 공연장을 나오며 이런 생각이 들었다.
'돈이 아깝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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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뱅갈 호랑이, 리처드 파커 주인공 파이와 함께 열연을 펼친 호랑이 |
| ⓒ 박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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