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 4명 산골 예배당에 아이들이…마을 살리는 심장됐다

김용현 2026. 3. 17. 16:27
음성재생 설정 이동 통신망에서 음성 재생 시 데이터 요금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글자 수 10,000자 초과 시 일부만 음성으로 제공합니다.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전임자 별세 후 노인 4명 남은 교회 자원한 인수철 목사의 ‘삶의 목회’
‘작밴’ 통해 교회 문턱 넘은 아이들… 70대 어르신과 세대 통합 예배
춘당교회 '작밴(작은 밴드)' 아이들이 예배당에서 찬양 합주 연습에 몰두하고 있다. 이들은 매월 마지막 주일 어르신들과 함께 세대 통합 예배를 드린다.

아무도 가려 하지 않던 자리였다. 최근 국민일보가 찾은 강원도 횡성군 청일면 속실리 춘당감리교회. 생계를 위해 막노동을 하던 전임 목회자가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난 뒤 70~80대 노인 4명만 남아 예배당을 지키던 산골 교회였다. 문을 열자 방과 후에 모인 초·중·고교생 아이들이 일렉트릭 기타와 드럼을 쥐고 찬양 합주 연습에 한창이었다.

강원도 횡성군 청일면 속실리 하천변 산자락에 위치한 춘당감리교회. 전임 목회자가 별세한 뒤 비어있던 자리를 인수철 목사가 자원해 지켜왔다.

2019년 4월 인수철(44) 목사가 부임한 후 6년이 지났다. 이제 이 교회는 현재 주일마다 50여명이 모인다. 인 목사는 “예배를 놓지 않고 지키던 분들이 계셨고, 그 믿음을 보고 들어왔을 뿐”이라며 “작은 교회라 못 한다는 건 세상의 계산법이고, 일단 밭을 갈면 주님이 일하신다는 걸 여기서 배웠다”고 말했다.

불교 집안 장손에서 산골 목회자로

인 목사에게 이 가파른 길은 처음부터 낯설지 않았다. 충남 당진 시골 마을에서 불교 집안의 장손으로 자란 그는 중학교 1학년 때 아버지를 교통사고로 잃었다. 어머니가 결혼 전 다녔던 교회를 다시 다니기 시작하면서 신앙생활을 시작했고, 이듬해 겨울 수련회에서 목사의 꿈을 품었다. 신학교를 거쳐 충남 서산 한 상가에서 3년간 개척교회를 이끌었지만 성도라곤 가족이 전부인 시간이었다. 그래도 그는 “한 영혼이 귀하다는 걸 그때 배웠다”고 했다. 이후 횡성감리교회 부목사로 2년을 보내다 아무도 가지 않으려 했던 이 자리에 자원했다.
인수철 목사가 "작은 교회라 못한다는 세상 계산법 대신, 일단 밭을 갈면 주님이 일하신다"며 농촌 목회의 철학을 설명하고 있다.

인 목사의 동역자 류인영(김포 다음세대교회) 목사도 가족과 함께 이 마을에 터를 잡았다. 두 가정의 정착은 소멸 위기의 마을에 실질적인 동력이 됐다. 전교생 9명으로 폐교 위기였던 춘당초등학교는 두 목사의 자녀 총 6명이 전학을 오며 활기를 찾았고 폐교 위기를 넘겼다. 교직원 일자리와 마을 상권도 보존됐다.

“시골서 전도지는 힘 없어… 함께 살아가”

인 목사는 동네 체육대회에 선수로 뛰고 의용소방대원으로 땀 흘리며 주민들과 거리를 좁혔다. 동네 더덕 축제에서 커피를 팔고, 마을 주민들과 함께 옥수수 농사를 지어 모은 1000만원으로는 태국 현지 사역자 숙소를 건축했다. 그의 아내는 다음 주 다섯째 출산을 앞두고 있지만, 교회 차량 할부금을 위해 부임 후 처음 책정된 사례비 인상분 5년치 190만원을 5년 동안 헌금하기로 했다.
성도들이 직접 옥수수 농사를 짓고 커피를 팔아 모은 선교비 1000만 원으로 태국 현지에 건립한 사역자 숙소 명판. 춘당교회의 기도는 국경을 넘어 이어지고 있다. 인 목사 제공

시골 아이들에게 돌봄의 공간을 내어주자 아이들이 먼저 움직였다. 인 목사의 자녀들과 어울리던 동네 친구들이 하나둘 예배당 문턱을 넘기 시작했고, 현재 면 단위 거주 청소년 30여명 중 20명이 등록해 매주 10여명이 출석한다. 류 목사가 전담하는 ‘작밴(작은 밴드)’ 사역은 이들의 일상이 됐다.

80대 노인 4명만 남았던 산골 교회가 매주 50여 명이 모이는 공동체로 성장했다. 지난 절기 예배 후 전 세대 성도들이 모여 환하게 웃으며 기념 촬영을 하고 있는 모습. 인 목사 제공

일렉트릭 기타를 치는 심서현(15)양은 “찬양할 때 하나님께 제 마음을 드리는 기분이 좋다”라고 했다. 베이스 기타를 연주하는 인하성(17)군은 “목사님들이 이해하기 쉽게 가르쳐 주셔서 계속하게 된다”고 말했다. 이들은 교회 찬양대로 매월 마지막 주일엔 마을 어르신들과 함께 예배를 드린다.

한국교회의 동역과 권사님들의 기도

산골 교회의 자립 뒤에는 한국교회의 묵묵한 동역이 있다. 수해로 교회 뒤편 흙이 쓸려 내려와 벽 안으로 스며들기 시작했을 때, 인 목사는 굴착기 자격증을 따 직접 땅을 팠지만 암반 앞에서 한계에 부딪혔다. 사정을 들은 여주 믿음제일교회 이수명 목사가 교회 소유의 대형 굴착기를 끌고 와 한 달 넘게 무상으로 배수로를 정비했다.
교회의 든든한 뿌리가 되어준 노년 성도들과 함께한 인수철 목사. 기사 마지막에 언급된 故 최돈익·함옥희 권사 부부처럼, 예배당을 끝까지 지켜온 이들의 헌신이 오늘의 기적을 만들었다. 인 목사 제공

교회가 마을을 품기까지, 그 뿌리에는 예배당을 끝까지 지켜낸 노년 성도들도 있었다. 고(故) 최돈익 함옥희 권사 부부는 매주 트럭에 손수 지은 밥을 싣고 와 성도들과 나눴다. 재정이 막막할 때도 “목사님, 한번 해봅시다”라며 품을 내어주던 이들은 2년 전 겨울, 이틀 간격으로 나란히 세상을 떠났다. 인 목사는 “두 분 권사님이 살아서 아이들 찬양을 들으면 얼마나 기뻐하셨을까 그립다”며 “그 손녀와 자녀들이 언젠가 다시 이 마당을 밟기를 기도하면서 이 자리를 지키려 한다”고 말했다.

횡성=글·사진 김용현 기자 face@kmib.co.kr

GoodNews paper ⓒ 국민일보(www.kmib.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Copyright © 국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