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화기 너머 하루 100통의 항의... 그 속에서 '나'를 지키는 법
[부산노동권익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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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날씨와 정반대인 목소리 창밖은 맑고 눈부십니다. 하지만 상담원의 책상 위 전화기 너머로는 성난 고객의 불평이 쏟아지고 있습니다. 수화기 주변으로 찌릿찌릿한 불만과 소음의 파동이 묘사되어, 날씨와는 대조되는 무거운 현장 분위기를 시각적으로 보여줍니다. |
| ⓒ 부산노동권익센터 |
날씨마저 화창한 오뉴월의 봄날. '오월은 푸르구나'라는 가사의 동요가 떠오를 만큼 맑은 하루였지만 그 고객의 기분은 날씨와 정반대였다. 처음 드린 인사도 무색하게, 확인할 틈도 없이 불평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ARS를 어떻게 통과했는지 모르겠지만, 전산시스템엔 정보 하나 뜨지 않았다. 마치 비회원처럼 연결된 그 고객의 불평 섞인 하소연은 더욱 낯설고 달갑지 않았다. 단순한 불만이라면 맞장구를 치며 속상한 마음을 달래드리고, 해결 가능한 사안이라면 조심스럽게 안내를 드리면 그만이다.
하지만 제도에 대한 불만과 업무적인 요구가 얽힌 경우는 다르다. 본인 확인을 마쳐도 끝맺음이 되지 않는 유선 상담이 쉽지 않은 이유 중 하나이기도 했다. 내가 느낀 '달갑지 않음'이 목소리에라도 묻어 나올까 염려되었다. 고객이 말이 막바지에 이르렀을 때, 최대한 부드럽고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내 감정이 전달되는 순간, 상황은 걷잡을 수 없이 악화된다는 것은 불 보듯 뻔했기 때문이다.
보이지 않는 '말'의 힘... 사소한 차이 하나에도 모든 게 달라진다
비대면 고객 상담, 흔히 '콜센터'라 부르는 이 직장에서 나는 '보이지 않는 말'이 얼마나 강한 힘을 가졌는지 자주 느낀다. 똑같은 단어도 어조와 속도에 따라 전혀 다르게 들린다. 정중하게 느끼기도 하고 반대로 무례하게 받아들여지기도 한다. 말 끝의 '요'와 '니다'의 차이, 높임말의 뉘앙스, 그 사소한 차이 하나에도 고객의 반응은 확연히 달랐다.
부산에서 평생을 나고 살았던 나에게 사투리를 고치는 일도 쉽지 않았다. 부산 사람이 부산 사투리를 쓰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지만, 직업 특성상 전문성과 친절함을 위해 지양해야 했기 때문이다. 물론, 일부 고객들은 오히려 표준어 말고 사투리를 사용해 달라고 요청하는 분도 계시기는 했다.
업무의 특성상, 요청사항을 처리하거나 문의 사항을 안내해 드리는 부분이 대부분이기는 하다. 일하는 브랜드의 특징이 주 고객층의 연령층이 높기 때문에 꼭 전문용어를 사용하지 않아도 설명을 단번에 알아듣기는 어려운 부분이 많고 똑같은 설명이라도 두세 번씩 풀어서 말씀을 전해야 한다.
게다가 말의 속도도 조절해서 천천히 또박또박 전달을 해야 이해를 하시기 때문에 고객의 눈높이에 맞춘 용어의 사용, 고객이 알아들을 수 있는 말의 속도로 상담이 진행되어야 한다.
사무실에서의 하루는 결코 짧지 않다. 시간을 분류를 한 뒤 생각을 해보았을 때, 눈 깜빡 하면 지나가는 주어진 점심시간 한 시간이 어찌 그리 야속하게 지나가는지. 따로 휴게시간으로 분류되는 시간은 없고 틈틈이 물을 뜨러 가거나 화장실을 가기 위해 자리를 비우는 시간이 허락되는 유일한 휴식시간이지만 일정 시간 이상 초과가 될 경우에는 인센티브에 불이익이 생기기 때문에 마음놓고 쉴 수 있는 시간은 아니기도 하다.
연결된 고객님께서 업무적인 상담만 하면 참으로 좋으련만. 월요일 같은 경우에는 10명 중 8명 이상의 고객님들이 연결이 어려움에 대해 호소를 제법 길게 하신다.
그리고 위에서도 언급했듯 고객의 연령대가 높아서인지는 몰라도 간단명료하게 말씀하시기 보다
구구절절하게 모든 사연을 다 말씀을 하신다. 예를 들어서, 카드를 분실해서 재발급이 필요한 경우에도 '어디에 가는 길에, 쓰려고 보니 카드를 잊어버린 것 같고 그래서 새로 하나 내려고 하는데'라는 식으로 말씀하신다.
또는 카드로 뭔가를 구매하셨다가 취소를 해서 그 취소확인을 하고 싶으신 경우에도 '구매처와 그것을 구매했던 이유와 취소하는 사유'까지 모두 언급을 하신 후에 취소 확인에 대한 이야기를 하시는 것이다. 일부는 업무와 관계없이 상담사에게 일상을 공유하는 분들도 제법 계시는 편이다.
카드사 고객센터에서 20대의 대부분을 보냈지만 이러한 흐름으로 상담이 흘러가지는 않았다. 브랜드마다 특색이 있기는 한데 요청사항 외의 것을 언급하는 지금의 고객님들은 한 번씩 나를 힘들게 한다. 내 목소리가 고객에게 전해지지 않도록 전화기의 음소거 버튼을 누른뒤 한숨을 푹 내쉰다. 버튼을 한번 더 눌러 음소거를 해제한 다음 고객이 이야기 했던 사항에 진정성 없는 호응을 몇 번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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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침묵의 위로 모니터 위에 세워둔 가장 좋아하는 두 캐릭터 인형이 묵묵히 그녀를 바라봅니다. 말은 없지만 "누나야 진짜 고생 많다"라고 말해주는 듯한 귀여운 표정의 인형들을 보며, 작은 숨구멍을 찾고 다시 버틸 힘을 얻습니다. |
| ⓒ 부산노동권익센터 |
하지만 하루에 100여 통에 가까운 전화를 받고, 그중 절반 이상이 불만이나 항의일 때, 진정성 있는 태도를 유지하는 건 생각보다 쉽지 않다. 그래서 공감이라는 단어는 때때로 내게 의무로 다가오기도 했다. 감정은 들키면 안 된다는 압박 속에서 나는 '괜찮은 척'을 해야만 했고, 그 과정에서 조금씩 무뎌져 가는 나 자신을 마주하게 되었다.
마지막 통화를 끝나고 로그아웃 버튼을 누르며 나도 모르게 깊은 한숨이 새어나왔다. 오늘 하루의 업무가 끝났다라는 안도감과 함께 그 만큼 소모된 체력과 정신력. 이 일은 늘 그렇다. 정신을 가다듬고 모니터 위에 세워 둔 내가 제일 좋아하는 캐릭터이자 내 귀여운 사무실 동생들을 바라본다. 말은 없지만 언제나 그 자리에 있다. 이따금씩 고객에게 표현해버리고 싶었던 마음을 꾹 눌러 삼킬 때도, 억울해도 감정 하나 드러내지 못한 채 "네, 고객님"을 반복할 때도 이 두 녀석은 묵묵히 나를 바라본다.
말도 없고, 정작 해결해주는 것 하나 없지만 그래도 '누나야 진짜 고생많다'라고 말해주는 것 같은 그 표정. 현실은 바뀌지 않지만, 귀여운 내 동생 두 마리를 바라보면서 나를 위한 작은 숨구멍이 된다. 의미없이 녀석들을 한번씩 만져보기도 하고, 눈으로 쓰다듬고 나면 조금 괜찮아지는 것 같다. 아니 그래도 버틸 수는 있게 된다.
오늘도 나는 출근을 한다. 말 못하는 세상 귀여운 두 녀석을 마주보고 앉아 무표정한 얼굴로 웃는 법을 배우고 아무 말 없는 존재에게서 위로를 받는다. 이 일이 감정 노동이라는 이름 아래 내 감정을 덜어가지만, 그렇다고 내가 감정 없는 사람은 아니라는 걸 이 두 녀석이 매일 조용히 증명해준다.
감정노동자라는 말은 언제부턴가 익숙해진 단어가 되었지만, 그 안에 담긴 무게는 여전히 낯설고 무겁게 느껴질 때가 많다. 감정을 쓰는 일이 곧 일이 되고, 동시에 감정을 숨기는 것도 일이 된다. 공감하되 너무 깊게 이입하지 말 것, 친절하되 전문성을 유지할 것. 업무지침은 그렇게 말하지만, 사람의 마음은 그렇게 정형화되지 않는다. 나도 사람인지라 어느 날은 작은 말 한마디에도 상처를 받고, 어느 날은 이름 모를 고객의 진심 어린 "고마워요"라는 말에 눈시울이 붉어지기도 한다.
상담을 하면서 가장 힘들었던 순간은, 감정을 느낄 여유조차 없이 기계처럼 응대를 반복할 때였다.
공감하는 척, 웃는 척, 괜찮은 척을 반복하다 보면 어느 순간 내 안의 감정도 닳아 없어지는 기분이 들었다. 하지만 그럴 때마다 자신에게 되묻는다. "나는 왜 이 일을 계속하고 있을까?"
그 대답은 의외로 단순했다. 누군가에게 꼭 필요한 존재가 되고 싶었기 때문이다. 내 말 한 마디가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었다는 것을 느꼈을 때, 그 짧은 통화 속에서도 '이해받고 있다'는 감정을 상대가 느꼈다는 걸 확인했을 때, 나는 이 일이 그저 힘들고 고된 일만은 아니라는 걸 깨달았다.
위에서 언급했듯, 나는 감정노동자지만, 감정이 없는 사람이 아니다. 전화기 너머로 연결되는 수많은 고객 앞에서 때로는 남몰래 속상해하고, 때로는 조용히 위로하며, 그렇게 나도 조금씩 성장하고 있다. 감정은 숨기는 것이 아니라, 조절하고 다듬는 것이라는 걸 배워가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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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다시, 온기를 얹은 인사 어제의 힘겨움은 뒤로하고, 그녀의 곁을 지켜주는 두 인형 앞에서 환하게 웃는 법을 다시 배웁니다. 감정노동자지만 감정이 없는 기계가 아니기에, 자신의 내면을 조절하고 다듬어 진심을 전하고자 합니다. 수화기를 든 그녀의 얼굴에는 조용한 미소가 머물고, 입에선 언제나처럼 따뜻한 인사가 흘러나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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