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당한 엄흥도의 한 마디, 가슴에 날아와 박히다

최경식 2026. 3. 17. 1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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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사남> 흥행 포인트 짚어보기

[최경식 기자]

* 이 기사에는 영화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영화 <왕과 사는 남자(아래 왕사남)>는 기대 이상의 흥행을 거뒀다. 이 영화의 손익분기점은 약 260만 명 정도였는데, 현재 그것을 훌쩍 뛰어넘는 관람객을 끌어들이고 있다. 극장에서 관람객들은 단종의 죽음을 보며 눈물 흘리고, 한명회의 역적질을 보며 분노를 표출하고, 엄흥도의 충절을 보며 감명을 받고 있다.

영화의 흥행 현상은 극장에 국한되지 않는다. 대중은 단종의 유배지였던 강원도 영월 청령포로 찾아간다. 그곳에서 단종의 애사를 피부로 느끼며 공감한다. 그렇다면 구체적으로 영화의 어떠한 모습들이 대중의 이목을 집중 시켰을까. 필자가 생각하는 <왕사남> 흥행 포인트를 몇 가지 짚어보겠다.

청령포의 단종
 영화 <왕과 사는 남자> 스틸컷
ⓒ ㈜쇼박스
그동안 나왔던 단종 관련한 이야기는 주로 '계유정난'과 그 전후의 일에 초점이 맞춰졌다. 수양의 권력 찬탈 과정이 드라마틱하다고 여겨졌기 때문이다. 실제로 그랬다. 해당 역사에는 인간 본성과 권력 투쟁의 어두운 측면이 적나라하게 담겨있다.

특히 영화 <관상>에서 이정재 배우가 연기한 수양은 이를 잘 구현했다. 결국 주인공은 언제나 수양이었다. 반면 단종은 부차적인 존재에 불과했다. 이에 따라 그의 유배 생활이 집중적으로 조명된 적은 거의 없었다.

<왕사남>은 기존의 공식을 파괴했다. 청령포의 단종에게 모든 조명을 집중시켰다. 그곳에서 마을 주민들과 어울리면서, 슬픈 내면이 점차 밝게 변화해 가는 과정을 재미있게 표출 시켰다. 단종 역을 맡았던 박지훈 배우는 섬세한 눈빛과 행동 연기로 영화의 재미와 감동을 한껏 끌어올리는 데 일조했다. 관람객들은 단종에 대한 연민을 넘어, 멀게만 느껴졌던 군왕이 민초들과 가까이 어울리는 모습에서 큰 공감대를 형성했다.

색다른 한명회
 영화 <왕과 사는 남자>를 통해 단종의 비극이 널리 알려지면서, 가해자라고 할 수 있는 수양과 한명회가 거센 지탄을 받고 있는 상황. 사진은 영화 <왕과 사는 남자>에 등장하는 한명회(유지태 분).
ⓒ ㈜쇼박스
영화는 단종과 엄흥도 이외에 또 하나의 인물에 집중하고 있다. 바로 어둠의 모사꾼, '한명회'다. 그는 수양을 만나기 전까지 별 볼 일 없는 사람이었다. 과거 시험에도 붙지 못해 궁지기 등을 하며 방황했다.

그러다가 친구인 권람의 소개로 수양을 만나면서 인생이 달라졌다.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계책을 발휘하며 쿠데타를 성공으로 이끌었다. 세조 집권 시기는 물론 그 이후에도 오랜 기간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며 천수를 누렸다.

그런데 대중은 지금껏 한명회의 이미지를 왜소하고 간교한 모사꾼으로만 떠올렸다. 미디어가 해당 인물을 그렇게 묘사했기 때문이다. 실제로는 그렇지 않았다. 일부 기록을 살펴보면, 한명회는 '기골이 장대하고 얼굴이 수려해 모두가 우러러 보았다'라고 한다. 아마도 한명회를 기존 이미지로만 생각했던 관객들은, 영화에서 색다른 모습으로 등장한 배우 유지태에게 적잖은 충격을 받았을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스크린을 꽉 채우는 유지태의 한명회에게 커다란 위압감을 느꼈다. 색다른 한명회로 말미암아 영화는 대중의 흥미를 효과적으로 고양시킴은 물론 고증의 측면에서도 신뢰와 전문성을 높였다는 평가다.

처절했던 단종의 최후

관객 대부분은 단종 최후의 순간에 눈물을 흘렸다. 어찌 보면 영화 전체를 통틀어 가장 인상적인 명장면이라고 생각한다. 사실 필자는 영화를 보기 전에 단종의 죽음을 어떻게 묘사할지 궁금했다. 단종의 죽음과 관련해 여러 버전들이 있기 때문이다. 결국 가장 슬픈 버전이 마지막 장면으로 채택됐다.

영화는 단종의 최후에 상당한 분량을 할애했다. 엄흥도가 울부짖고 단종이 점점 의식을 잃어가는 과정은 관객의 몰입을 유도하기에 충분했다. 필자도 이 장면에서 숨을 죽였다. 돌이켜보면 이만큼 처절하고 집중적으로 단종의 죽음을 묘사한 경우는 처음이었던 것 같다.

영화가 끝난 후 '여운'이 오래갔다는 후기가 많았는데, 그만큼 단종의 최후를 효과적으로 연출했기 때문이다. <왕사남>의 전반부, 중반부 내용은 사실상 이 마지막 장면을 위한 '빌드업'이라는 생각마저 들 정도였다.

추구해야 할 가치

필자는 엔딩 때 자막으로 나왔던 엄흥도의 명언이 크게 와닿았다.

"옳은 일을 하다가 화를 입는 것은 내가 달게 받겠다."

이는 3족이 멸할 것이 두려워 아무도 단종의 시신을 수습하지 않을 때, 엄흥도가 당당하게 했던 말이다. 그가 추구했던 가치는 '올바른 도리'다. 자신과 가족이 화를 입을 것이 우려됨에도 마땅히 해야 할 도리에 헌신했다. 대부분의 관객들은 '충의공' 엄흥도를 보면서 진정으로 추구해야 할 가치가 무엇인지를 깨달았을 것이다.

단종과 엄흥도, 사육신은 당대에 비참하게 살다 갔지만, 역사에서는 영원히 살아남았다. 그리고 최근에는 '문화의 힘'을 통해 많은 이들의 마음속에 자리 잡았다. 이를 가능하게 한 장항준 감독과 유해진 배우, 박지훈 배우, 유지태 배우, 전미도 배우, 이준혁 배우 등에게 감사드린다. 정말로 큰 일을 하셨다. 앞으로도 결코 잊히지 않을 영화일 것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최경식 기자의 브런치, 블로그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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